선입견 때문인지는 몰라도 일본학자들의 글은 되도록 피하고 싶은 마음이 내게 있었나 보다. 내가 이 책을 택한 것은 순전히 〈아함경〉을 읽고 싶은 마음의 연장선이었다. 아함경을 읽게 된 계기는 작년 여름에 어느 절집에서 우연히 만난 스님께서 〈아함경〉과 〈금강경〉을 읽어보라고 권해서였다. 그저 혼자서 불교를 배우려고 이책 저책 뒤적이며 〈벽암록〉이니 〈무문관〉이니 하는 수준에 맞지도 않는 책들, 이제 보면 참으로 불요불급했던 책들을 읽고 있었던 나는, 그 스님의 권에 따라 〈아함경〉을 읽기 시작하였다. 내가 구입한 역본은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한문에서 번역한 역본이었다. 그러나 그저 경전을 읽는다는 의미만 있을 뿐, 부처님이 가르치신 사성제가 무엇이고, 팔정도가 무엇이고, 연기가 무엇이고 열반이 무엇인지 절실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매 한가지이지만, 나는 아직 불교를 배우는 초보자 중의 초보자다. 이렇게 진척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불교 배우기를 그칠 수 없는 것은, 구도자의 삶이 항상 내 마음 한 켠에 청정한 영상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일상에서 평범하게 살지라도 나는 그 영상만큼은 지울 수 없어 어떤 식으로든 그 영상과 더불어 호흡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끈질긴 호흡 끝에 〈아함경〉을 읽기 시작했는데 이마저도 별도의 진척이 보이지 않았으니 나로서는 나에 대하여 참 실망할 만도 했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어 빨리어에서 번역한 역본이 있다길래 내쳐 그것을 구입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맛지마니까야〉(중부아함), 〈쌍윳타니까야〉(상응부아함)는 무려 십수 권에 이르고 권당 가격도 만만치 않아 포기했다. 그러다가 택한 책이 바로 이 책, 마스타니 후미오의 〈아함경〉이다.
이 책은 〈아함경〉이라는 서명을 달고 있지만, 〈아함경〉 번역서가 아니라 〈아함경〉 해설서이다. 아주 쉽고 다정하고 조심스러운 이야기와도 같은 해설서. 그러나 절실한 마음을 일으키는 해설서. 이 책을 읽다보면 일본학자들의 저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 책의 저자 마스타니 후미오는 철두철미 빨리어 원전을 토대로 〈아함경〉을 해설한다. 〈아함경〉을 해설하되 각종 학문적 논의를 일별하면서 차곡차곡 나아가는 방식을 취하지는 않는다. 예컨대, 와타나베 쇼코의 〈불타 석가모니〉의 경우는 부처님의 일생을 이야기하면서 각종 학문적 논의들을 섭렵한 흔적을 역력히 드러내느라 책의 생동감이 떨어지는 편에 속한다. 그러나 마스타니 후미오의 〈아함경〉은 저자 자신의 학문적 역량이 상당할 텐데도 그런 학문적 접근이 아니라 내면적 접근을 하면서 내용을 서술해 나간다. 그래서 그가 감동하는 대목에서 나도 감동하고, 그가 조심스러워 하는 대목에서 나도 조심스러워 한다. 경전과 저자와 독자가 호흡을 같이 한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그는 극동아시아의 대승불교가 가지고 있는 견해와 다른 견해를 서술할 때에는 각별히 조심스럽다. 이 조심스러움은 대승불교의 역사 역시 위대한 불교의 역사임을 주저없이 인정하기에 가능하다.
내용은 1. 그 사람, 2. 그 사상, 3. 그 실천, 이 세 대목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함경〉을 해설한다는 명목하에, 〈아함경〉의 텍스트에 근거하여, 그리고 〈아함경〉에 대한 자신의 웅숭 깊은 이해를 토대로, 저자는 부처님의 근본적인 가르침들을 이야기한다. 사성제, 팔정도, 연기, 열반, 선우, 삼보, 이타행 등등, 불교의 근본 주제들이 하나하나 이야기된다. 빨리어에 기반한 그의 설명은 이해하기 쉽고 십분 공감이 되고 부드럽다. 그 주제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서양철학자들의 견해가 가끔씩 등장하지만, 눈에 거슬리지 않는다. 나같은 경우에는 삶의 가르침에 관한 한 서양철학자들의 견해를 평가절하하는 편에 속하기 때문에 저자가 그들의 견해를 삽입한 것이 이채롭긴 했지만, 다른 독자들로선 환영할 만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책의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워낙 마음에 잘 스며든 탓일까. 마치 한 줄기 바람을 쐬고 난 기분이다. 아무튼 이 책의 내용은 독자들에게 강력하게 육박하거나 강렬한 호흡을 일으키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늘 곁에 두어야 하는 책인 것만 같다.
같은 저자의 또 다른 저서, 〈불교개론〉도 읽어보았다. 〈불교개론〉과 〈아함경〉은 중복되는 내용이 상당히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책 역시 기쁘게 읽었다. 〈불교개론〉은 〈아함경〉의 내용을 압축적으로 서술하는 대신, “불교의 역사”, “경전과 종파”를 덧붙혀서 소승불교에서 대승불교, 선불교까지 이어지는 불교의 역사와 경전 번역 등에 관하여 서술하고 있다. 불교에 입문하기 원하는 독자들이라면 이 두 책 중 어느 책을 선택해도 후회하지 않으리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이 책들은 이원섭 선생의 탁월한 번역을 거쳐서 더욱 빛난다. 일본 저자들에 대한 이유 없는 선입견이 이 책을 늦게 만나게 만들었다는 사실이 못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