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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DDHISM/無心님의 불교이야기

오온이란 무엇인가?

 


오온 관찰( 조견오온 
照見五蘊 )

오온五蘊은 몸과 마음을 구성하고 있는 다섯(五) 무더기(蘊)라는 뜻이다.

한문으로는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 오온蘊이다.

고대인도어로는 '루빠rūpa, 웨다나vedanā, 산냐saññā, 상카라saṅkhārā, 윈냐나viññāṇa' 칸다khandha(쌓임, 집적, 집합, 무더기; 蘊, 集, 肩, 幹, 茎, 积, 区, 段, 章, 大量, 大堆, 聚集, 蕴; group, bulk, mass, heap)이다.

한글로는 '물질, 느낌 또는 감각, 지각 또는 인식, (아상이 개입된 의도적) 심리 현상, 식(정확하게 말하면 전오식+의意식識, 또는 의식+무의식)' 무더기(쌓임, 집적)로 번역하는 것이 무난하다고 본다.

한문 색(色) 수(受) 상(受) 행(行) 식(識)
고대 인도어 루빠 웨다나 산냐 상카라 윈냐나
한글 물질 느낌,감각 지각,인식 심리현상 의식,무의식



(1) 오온에 대한 잘못된 설명

우연히 유튜브에서 어떤 이가 강의하는 것을 들었다. 그가 오온을 설명하는데
"색은 내가 마음으로 인식하는 대상이고, 수는 느낌이고, 상은 생각이고, 행은 의도이고, 식은 식별이다."라고 한다.
그가 펜을 예를 들어 설명하는데
"눈으로 펜을 보면, 펜을 보는 것이 색(물질)이고
펜이라고 정확히 식별하는 것이 식(식별)이고
그것을 펜에 대해 좋아하고 싫어하는 느낌이 일어나는데 그것이 수(느낌)이고
그것을 펜이라는 상을 떠올려 생각하는 것이 상(생각)이고
생각에 따라 의도를 일으키는 것이 행(의도)이다."
라고 설명한다.

위의 설명에서 무엇이 틀렸는가?

첫째, 대상은 밖에서 들어온 물질(색)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둘째, 수온受蘊(vedanā khandha)은 '여섯 가지 감각(또는 느낌) 받음(受) 작용 무더기'를 총칭한 것이다. 사람의 여섯 가지 감각은 '색성향미촉법'이다.

셋째, 상온想蘊(saññā khandha)은 '생각할 상想' 자를 쓴다고 해서 생각 무더기가 아니고, '감각 받음 작용으로 일어난 심상心像을 수동적·능동적으로 취하는 취상 또는 표상(imaging) 작용, 개념작용, 감각(또는 느낌)에 대한 지각(또는 인식 또는 감지, sense) 작용 등의 무더기'를 총칭한 것이다.
달리 표현하면, 나에게 저장되어 있는 데이터(기억)로부터 여섯 감각 기관(기능)으로 받은 감각 정보에 대한 주관적인 이미지(表象, 概念)를 형성하여 '이것이 뭐다.'라고 지각 또는 인식(감지)하는 작용이다.

넷째, 행온行蘊(saṅkhāra khandha)은 수온·상온·식온 이외의 모든 마음작용을 총칭하는 것으로, 그 중에서도 특히 능동적 작용으로서의 (아상이 개입된) '의지작용, 의도작용, 생각작용, 잠재적 업형성 작용, 마음의 습관적 (탐진치) 반응작용 등의 무더기'를 총칭한 것이다.

다섯째, 식온識蘊(viññāṇa khandha)은 '아는 작용 무더기, 그리고 아는 작용으로부터 형성된 앎(알음알이) 또는 식(의식/일상의식/표면의식 + 무의식/잠재의식/심층의식) 무더기'를 총칭한 것이다.

오온은 부처님이 자신의 몸과 마음을 관찰하시고 나서 사람을 구성하는 요소(또는 작용)들을 크게 다섯 가지 그룹(집합, 무더기)으로 대분류한 것이다.

(2) 마음작용을 일어나게 하는 대상에는 밖에서 들어오는 물질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이는 오온을 시간적 연속성을 띠고 일어나는 일련의 정신작용(마음작용) 프로세스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오온이 일어나는 최초의 순서, 마음을 일어나게 하는 외부의 대상이 물질이라고 한다.
"밖에서 들어오는 대상, 즉 형상, 소리, 냄새, 맛, 감촉이 감각기관에 부딪치면 마음작용이 일어난다.
그래서 마음의 대상은 물질이다."
라고 설명한다면,
내면에서 일어나는 대상들은 어찌할 것인가?
마음작용이 외부의 자극에 의해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과거의 기억에 의해서도 마음작용이 일어나고
탐욕, 분노와 같은 번뇌에 의해서도 마음작용이 일어나고
망상이 계속이어지면 앞 마음을 대상으로 뒷 마음이 일어난다.
이때는 물질이 대상이 아니고 내면의 정신감각(기억, 감정 등의 마음의 내용성분 또는 정신감각)이 마음작용의 대상인데,
이럴 때도 물질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래서 부처님은 '사람에게는 여섯 가지 감각 기능(기관)이 있고, 사람에게 마음작용이 일어나게 하는 대상에는 여섯 가지가 있다.'고 설(설명)하셨다. 여섯 가지 감각 가능 또는 기관(6근)은 '안이비설신의'근이고 여섯 가지 대상(6경)은 '색성향미촉법'이다.

(3) 오온에 대한 바른 설명

그럼 초기불교에서는 어떻게 설명하느냐?
색온은 '지수화풍 작용 무더기(쌓임, 집적, 집합)'로 이루어진 몸을 말한다.
밖에서 들어오는 대상이든 안에서 일어나는 대상이든 대상을 '아는 작용 무더기(쌓임, 집적, 집합)'가 식온이다.

우리들이 두루뭉술하게 사용하는 용어인 마음은, 부처님 설법에 따르면 '조건에 따라 찟따citta(心), 마노mano(意), 윈냐나viññāṇa(識)라고 불리는 것'이다.

예컨대, 물은 조건에 따라 얼음, 물, 수증기라고 불린다. 물질의 사대작용(네四 가지 근본大 작용, '지수화풍' 작용; 地무거움 작용, 水수축인력 작용, 風팽창척력 작용, 火변화 작용)이 연기(조건에 따라 상호 의존) 작용하여 생겨난 것 자체(H2O)를 체(體)라 한다면, 조건에 따라 얼음, 물, 수증기로 불리는 것을 상(相)이라고 한다. 조건에 따라 얼음일 때는 얼음에 맞게, 물일 때는 물에 맞게, 수증기일 때는 수증기에 맞게 ‘용(用), 사용’하면 유익하다.

부처님은 설법(법法을 설명)하실 때, 대상(또는 관점, 주제)과의 관계 맺음을 조건으로 그 조건에 따른 마음 작용을 상(相)에 따라 그리고 용(用; 사용처)에 따라 아래와 같은 심心(citta), 의意(mano), 식識(viññāṇa)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셨다.

• 심心; 찟따citta : 맨 마음 작용(kicca; function) 자체(體)

• 의意; 마노mano : 정신감각 작용

참고로, 의근意根(마노 인드리야)은 인간의 경우 주로 뇌를 기반으로 한 정신감각 기능(기관)이며, 인간의 경우 물질감각 기관(기능)은 '안이비설신'근(五根)이다.

• 식識; 윈냐나viññāṇa ; 아는 작용; 알음알이(아는 것, 대상에 대해 생겨난 앎); 의식/일상의식/표면의식 + 무의식/잠재의식/심층의식

참고로, 식온識蘊(윈냐나 칸다)은 '아는 작용의 쌓임/집적/무더기'와 아는 작용으로 생겨난 '앎, 알음알이, 식識(의식/일상의식/표면의식 + 무의식/잠재의식/심층의식)의 쌓임/집적/무더기'를 총칭한 것이다.

참고로, 아비담마에서는 식識만을 마음이라고 하고, 수상행은 '마음따라 일어나는 요소들'이라고해서 마음 부수附隨(cetasika), 한문으로는 심소心所'라고 한다.

(4) 오온을 설(설명)하신 붓다의 의도

오온은 몸과 마음, 즉 물질작용과 정신작용의 쌓임/집적/무더기이다.
붓다께서 몸과 마음을 이렇게 오온으로 분해하여 설명하신 의도는 무엇인가?
몸과 마음 안에 '나'라는 실체가 없음을, 무아임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마음을 시간적 연속성을 지닌 심리-행동 매커니즘으로 설명해버리면 무상하고 실체가 없다는 인식보다는 연속성을 지닌 실체가 있다는 인식이 일어나기 때문에, 이것은 붓다의 의도에 어긋나는 것이다.

마음이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마음은 찰나에 일어나고 사라진다.
앞 마음이 찰나에 일어났다 사라지고 나서 뒷 마음이 앞 마음을 조건으로 찰나에 일어나고 사라진다.
앞 마음이 뒷 마음을 일어나게 하는 원인을 제공할 수는 있다.
거기에 원인과 결과의 관계만 있을 뿐, 그 안에 마음을 일으키는 행위자(실체)가 없는 것이다.

붓다는 <무아경>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비구들이여, 그대는 지수화풍 무더기로 이루어진 몸에 대해 '몸이여, 아프지 마라. 몸이여 건강해라.'라고 할 수 있느냐?"
"그대는 대상에 대해 좋하하거나 싫어하는 느낌(또는 감각)이 일어날 때, '느낌이여, 일어나지 마라. 느낌이여, 일어나라.'라고 할 수 있느냐?"
"그대는 대상을 식별하는 지각(또는 인식)이 일어날 때, '인식이여, 일어나지 마라. 인식이여, 일어나라.라고 할 수 있느냐"
"그대는 탐욕, 분노, 성냄, 의도 등과 같은 상카라들이 일어날 때, '상카라여, 일어나지 마라. 상카라여 일어나라.'라고 할 수 있느냐?"
"그대는 대상을 아는 마음이 일어날 때, '식이여, 일어나지 마라. 식이여, 일어나라.'라고 할 수 있느냐?"
"스승이시여, 그럴 수 없습니다."
"비구들이여, 그래서 물질, 느낌, 지각, 상카라, 식은 너의 것도 아니고, 네가 아니고, 너의 자아도 아닌 것이다."

(5) 결론

그럼 수행 시 오온을 어떻게 관찰(사띠하여 이어봄)하는가?

부처님이 가르치신 '몸, 느낌, 마음, 법에 대한 사띠(마음챙겨 알아차림)를 확립하고 정착하는 수행'이 있다. 초보 수행자는 마음(마음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 또는 마음 작용이 일으키는 현상) 중에서 상카라를 잘 관찰할 필요가 있다.

"탐욕이 일어나면 '나에게 탐욕이 있구나!'라고 알아차린다."
이와 같이 탐욕, 분노, 시기, 질투, 인색, 사견, 자만, 해태, 혼침, 의심, 지루함, 우울함, 우월감, 열등감 등과 같은 해로운 마음을 관찰(사띠하여 이어봄)한다.

왜 해로운 마음들을 주로 관찰하는가?
해로운 마음들을 제거하면 유익한 마음들만 남기 때문이다.
관찰이 이루어지면 해로운 마음들은 설 자리를 잃고 소멸해간다.
마치 도둑이 들키면 도망치듯이....

몸의 움직임에는 항상 의도가 먼저 일어나는데, 그 의도를 하루 종일 관찰할 수도 있다.

모든 상카라들이 그리고 또한 모든 오온들이 '원인과 결과의 흐름 현상'(달리 표현하면 인과 연기적인 흐름 현상, 줄임말로 연기현상)일 뿐 그 안에 '실체가 없음'(무아임)을 관찰할 수도 있다.

[출처 : 석무념비구 포스팅,  (일부 수정보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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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심경 般若心經



조견오온 照見五蘊 : 오온五蘊을 밝게 비추어(照) 봄(見), 오온을 여실히(있는 그대로) 깊이 관찰하여 꿰뚫어 봄.

반야심경은 반야바라밀다심경의 줄임말로,

'관자재보살 행심行深반야바라밀다시 : 관자재보살이 깊은深 반야바라밀다 수행行 시'

'조견오온개공空 : 오온이 모두 다 공空함(실체 없음, 무아임)을 밝게 비춰보아( 오온을 여실히 관찰하여 모두 다 실체가 없음을 꿰뚫어 보아 )'

'도일체고액 : 일체 고액 건너다(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났다 )'

- 로 시작하는 한문 270자로 된 짧은 경전으로 한국 불자들이 가장 애송하는 불교경전이다.

한국 사찰에서 열리는 법회나 불교행사 시 다른 경전은 안 읽어도 반야심경과 천수경(천수천안 대자대비 관세음보살경)은 꼭 합송(합창으로 독송 또는 암송)한다. 한국에서는 반야심경을 암송하지 못하면 제대로된 불자( 부처님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하는 자 )가 아니라고 취급당한다.

관자재觀自在 보살은 '오온을 관觀(관찰)'하여 일체 고액으로부터 자유 자재自在해진 보살이라는 뜻이다.

반야般若는 빠알리어 빤냐panna(산스크리트어로는 프라즈냐prajna)의 한문 음사로 '지혜'라는 뜻이다.

바라밀波羅蜜 또는 바라밀다波羅蜜多는 고대인도어(빠알리어 & 산스크리트어) 빠라미따pāramitā의 한문 음사로 ‘피안彼岸(깨달음의 언덕)에 도달(到)함'(도피안到彼岸) 또는 (정각/피안에 이르는) '성취·완성'이라는 뜻이다. 또한 정각(완전한 바른 깨달음; 또는 피안)에 이르기 위해서 닦아야 할 수행법('정각에 이르는 여덟八 부분으로 이루어진 바른正 길道, 팔정도八正道'를 닦는 수행법)을 총칭한다.

관자재보살은 어떻게(How)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할 수 있었을까?

부처님이 사성제 중 도성제로 가르치신 '정각에 이르는 여덟 부분으로 이루어진 바른 길(팔정도)을 닦는 수행법'을 바르게 배워서 바르게 실천하면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할 수 있다. ('팔정도를 닦는 수행'에 대한 상세 내용은 '여기' 를 참조해보세요)
.
《반야심경》은 《대반야바라밀다경》의 핵심을 간추려 담고있는 짧은 경전이다. 반야심心경은 ‘마하반야바라밀다심心경’의 줄임말이다. 여기서 '심心'은 마음을 뜻하는 찟따citta의 번역어가 아니라, 핵심核心·정수·정요精要·에센스를 뜻하는 흐르다야hṛdaya의 번역어이다.

마하摩訶는 고대인도어(빠알리어 & 산스크리트어) maha의 한문 음사(음역)로 ‘크다(大), 위대하다’라는 뜻이다. 반야般若는 빠알리어 빤냐panna의 한문 음사로 '지혜'라는 뜻이다. 바라밀波羅蜜 또는 바라밀다波羅蜜多는 고대인도어(빠알리어 & 산스크리트어) 빠라미따pāramitā의 한문 음사로 ‘피안(깨달음의 언덕)에 도달함’ 또는 '성취·완성'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반야심心경》은 '정각에 도달하는 큰 또는 위대한 지혜의 완성을 설한 경, 《마하반야바라밀다경, 대반야바라밀다경》'의 핵심心·정수·정요·에센스를 간추려 담고있는 경전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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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첨언하자면, 반야경류에 등장하는 보살로 '오온을 관觀(관찰)하여 일체 고액으로부터 자유 자재自在해진 보살이라는 뜻인 관자재觀自在 보살'은 훗날 편찬된 정토경류(정토삼부경; 아미타경, 대무량수경, 관무량수경) 등에서 신격화된 최고지위의 부처인 아미타불(천국의 다른 이름인 극락을 건설 창조하고 우주 곳곳에 수 많은 부처를 창조하여 내려보내서 다스리는 신격화된 최고지위의 부처)를 보필하는 협시보살 중 하나인 관세음 보살로 변질된다. 천 개의 손과 천 개의 눈을 가진 천수천안 대자대비 관세음觀世音 보살은 모든 세상(世) 중생들의 고통 소리(音)를 관觀(관찰)하여 대자대비로 구원해 준다는 신격화된 보살이다.

관세음觀世音은 ‘세상을 내려다보는 지배자’라는 뜻을 가진 산스크리트어(범어) 아랴왈로끼떼슈와라(अवलोकितेश्वर, Aryavalokiteśvara)를 한역한 것이다. 산스크리트어 아랴왈로끼떼avalokite는 '세상(lokite)을 굽어보는 또는 아래를 내려다 보는' 이라는 뜻이고, 슈와라svara는 '신神'을 의미한다. 즉 '세상을 굽어 살피시는 신(절대자, 지배자)'이라는 뜻이다. 산스크리트 원어에는 보살(정각, 해탈, 열반을 이루기위해 수행하는 자)이라는 뜻은 없다. 슈와라svara는 이시바라ishvara에서 파생된 어미인데, 이는 힌두교에서 최고신(삼주신; 브라만, 비슈누, 시바) 중 하나인 시바Shiva에게 붙이는 용어다.

이처럼 대승불교의 관세음보살 신앙은 힌두교의 시바 신앙에 대한 대응으로 생겨났다. 이는 기독교에서 이민족의 여신 숭배사상을 성모 마리아 신앙(또는 숭배사상)으로 치환시킨 것과 유사하다. 또다른 증거로 관세음보살을 찬양하는 천수경(천수천안 관세음보살경) 중의 신묘장구대다라니에 나타나는 관세음보살에 대한 묘사는 힌두교의 시바(또는 비슈누)에 대한 묘사와 매우 유사하다. 신묘장구대다라니에 등장하는 '알약바로기제새바라'가 바로 '아랴왈로끼떼슈와라Aryavalokiteśvara'를 음사(음역)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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