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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DDHISM/불교&명상 이야기

오직 모를 뿐

내가 아는 어떤 스님에게 은사 스님이 찾아오셨다. 은사 스님은 유명한 선승이었다. 선승은 상좌에게 몇 시간에 걸쳐서 '오직 모를 뿐'을 강조하셨다.

"오직 모르는 그곳으로 들어가라.  생각이 끊어지고 오직 모르는 것만이 존재하는 그곳으로 들어가라. 그것 외에 다른 것이 없다. 수행은 이것 뿐이다."

그렇게 은사 스님은 몇 시간에 걸쳐 오직 모를 뿐을 강조하셨다. 이윽고 스님의 말씀이 끝나고 입을 다물자 상좌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스님! '오직 모를 뿐'이라는 상태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진리를 알지 못하는 무지한 상태(무명)가 있습니다.
두 번째는 무기에 빠져 의식이 끊어져서 깜깜한 상태가 있습니다.
세 번째는 삼매에 들어 감각이 끊어지고 생각이 정지된 상태가 있습니다.
네 번째 멍때리고 있을 때에도 오직 모르는 상태입니다.
다섯 번째 뇌가 발달이 안 됐거나 뇌손상을 입어 백치가 된 사람도 아무 생각이 없이 오직 모르는 상태에 있습니다.
여기에 해당이 안 되면 스님이 아는 또 다른 상태는 어떤 것입니까?
생각이 끊어지고 오직 모름만이 존재하는 다른 상태가 있습니까?
그 상태에서는 의식은 있습니까 아니면 없습니까? 
아니면 여전히 생각이 일어나고 사라집니까? 생각이 없으면 의도는 일어납니까?
오직 모를 뿐인 상태를 경험하면 번뇌는 소멸하고 다시 일어나지 않습니까, 아니면 계속 일어납니까?"

상좌의 질문에 스승은 말문이 막혔다. 이렇게 분석적인 논리는 처음 들어보기 때문이었다. 논리학이라는 현대 학문을 배운 상좌에게 옛 전통만을 우직하게 고수해 온 은사는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상좌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갔다.

"저는 끝없는 앎만이 있습니다.
마음에 탐욕이 일어나는 것을 앎니다.
마음에 분노가 일어나는 것을 앎니다.
어떤 감정이 일어나든지 그것에 개입해서 반응하면 괴로움이 된다는 것을 앎니다.
반응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그것이 곧 사라진다는 것을 앎니다.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이 연기에 의한 것이며 실체가 없다는 것을 앎니다.
이렇게 관찰이 계속되면 탐욕과 분노가 소멸되어 간다는 것을 앎니다. 
탐욕과 분노가 소멸되어가는 것만큼 '아'도 같이 소멸되어 간다는 것을 앎니다.
그렇게 계속 수행하면 고요와 평온이 찾아온다는 것을 앎니다.
고요와 평온이 생기면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지혜가 일어남을 앎니다.
이렇게 저에게는 오직 앎만이 있습니다.

저는 '오직 모를 뿐'이라고 생각을 강제로 정지시키지는 수행은 하지 않습니다.
대신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간섭하지 않고, 그 일어난 성질을 관찰하고 이해하는 수행을 하고 있습니다.
이해가 깊어지면 지혜가 자라납니다.
지혜가 일어나면 번뇌는 자연스럽게 사라져가고, 고요와 평온이 찾아옵니다.
고요와 평온이 자리를 잡으면 앎이 스스로 일어나 활동을 시작합니다.
앎이 일어나 모든 것을 주관하기 시작하면 저는 뒤로 물러나 할 일이 없습니다.
그때부터는 앎이 수행을 이끌어가기 때문입니다.
이때가 되면 저에게는 오직 앎만이 있을 뿐입니다."

오직 모를 뿐이라고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무조건 정지시키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수행은 생각을 정지시키는 것이 능사가 아니고 지혜를 일으켜 무명을 타파하는 것이 아닐까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 글:석무념 스님 / 그림: 이미지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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