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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DDHISM/불교&명상 이야기

유신견2

공자가 그랬다는군요.
인간은 원래 선하다고,
어질고 의롭고 예의바르고 지혜롭게 산다면 온 세상이 평화롭고 행복할 거라고.


그러자 순자가 반론을 폈다는군요.
인간은 원래 악하다고,
원초적 욕망에 의해 움직이는 존재라고
그래서 지혜로운 스승들이 민중을 교육을 시키고 개몽시켜야 한다고.

그러자 한비자가 또 반론을 폈다는군요.
인간은 원래 에고의 동물이라고,
자신의 이익에 따라 생각하고 행위한다고
아무리 선한 행위를 하더라도 보상을 바라고 하는 거라고.
그래서 국가는 법률을 제정해서 법으로 다스려야 한다고
인간은 인간적으로 대해서는 사회가 통제가 안 된다고
법으로 상벌원칙을 정확히 해야 사회가 통제가 된다고 했다는 군요.

요즘 세상이 한비자의 의견대로 법치주의가 되었어요. 
그런데 법을 제정하는 정치 권력이 법을 이용해서 사기를 치니, 원 세상에.

뭐, 성선설과 성악설이 깊이 들어가면 매우 심오한 의미를 지니고 있을 것이지만,

유교는 개인의 수행보다는 세속의 행복한 삶에 촛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 같으니까,
여기서 대충 넘어기로 하죠.


대승불교에서도 성선설에 가까운 견해가 있죠.
일체중생실유불성(一切衆生 悉有佛性)이라고
모든 중생이 불성을 가지고 있다고 
개에게도 불성이 있다고
깨닫고 깨닫지 않고에 상관없이 본래불이라고
다만 미혹에 가려져 있을 뿐이라고
잠시 구름에 가려져 있지만 구름 뒤에는 찬란한 태양이 영원히 빛나고 있다고
그대가 본래 부처임을 자각하고 부처처럼 생각하고 행위하면 부처가 되는 거라고 하는군요.
오! 매우 쉽습니다. 정말 그럴 듯해요.
내가 본래불인데 왜 계속 번뇌가 일어나고 괴롭죠?

(그리고 중생은 어디까지 포함되는 거죠? 개에게도 불성이 있는 것은 알겠는데, 

단세포인 아메바나 짚신벌레에게도 불성이 있는 걸까요? 

어떤 이는 무정물까지도 불성이 있다고 하는데, 그럼 돌에도 불성이 있는 걸까요?)


초기불교에서는 인간은 선할 때도 있고 악할 때도 있다고 하는군요.
마음이야 변화무쌍한 것이니까 종잡을 수도 없고요.
초기불교에서는 유신견을 깨뜨린 자와 깨뜨리지 못한 자로 구분하죠.
유신견(자아, 에고, 아상)이 있으면 대부분의 행위가 자신에게 이익되는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겠어요?
유신견이 있으면 이기적일 수밖에 없고, 자동반사적으로 자신에게 유리하게 행위할 거니까요.
자동반사적이라는 말은 바로 오온 중 상카라(행), 즉 조건 지어져 일어남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조건지어져 있으니까 그런 상황에서는 그렇게 생각하고 행위할 수밖에 없다는 거죠.


유신견이 있으면 자동반사적으로 이기적이 되고, 

자동반사적으로 번뇌가 일어나고,

자동반사적으로 갈애와 집착이 일어나는 악순환이 일어난다는 거죠.

그래서 유신견을 무너뜨려야 자동반사적이고 조건지어져 일어나는 상카라(행)가 무너진다는 겁니다.

상카루펙카냐나(saṇkhārupekkhāñāṇa , 현상에 대한 평온의 지혜)라는 단계가 있어요.
유신견이 소멸하기 전 단계에 일어나는 지혜인데요.
어떤 대상에도 흔들리지 않고 평온을 유지하는 경지이죠.
자동반사적으로 반응하는 상카라(행)가 반응을 멈추고 고요와 평온을 유지하는 단계입니다.
여기를 넘어서면 유신견이 소멸하는 순간이 오는 거죠.
그래서 유신견이 소멸한 그 자리가 범부와 성인의 경계선이오, 성선과 성악의 경계가 되겠군요.


결국 결론이 뭐겠어요?
수행을 해서 유신견을 소멸시켜라 이런 말 아니겠어요?
그냥 착하게 살고 공덕을 쌓는 것만으로는 천상에 태어날 수는 있을지언정,
언젠가는 다시 인간계나 그 아래로 떨어지는 불행을 면치 못한다.
하지만 유신견이 소멸하면 성인의 흐름에 들어 영원히 악도에는 떨어지지 않는다, 뭐, 이런 말 아니겠어요?

- 석무념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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