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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좋은 일이 발생합니다. 이때,
"이건 과거의 업 때문이야." 라고 말하면 그것은 숙명론, 운명론입니다.
"이건 우연히 일어난 일이야."라고 말하면 그것은 우연론, 무인론입니다.
"이건 신의 뜻이야."라고 말하면 그것은 신의론입니다.

붓다는 여기에 대해 뭐라고 말씀하셨을까요?
"네가 사람을 죽였어. 그럼 너는 사람을 죽일 운명이었던 거야? 네가 도둑질을 했어. 그럼 너는 우연히 도둑질을 한 거야? 네가 간음을 했어. 그럼 너는 신의 뜻을 따른 거야?"<외도의 주장 경, A3.61>
이렇게 붓다는 세 가지 경우의 수를 부정하셨습니다.
인간의 의지를 묵살했다는 거죠.
그럼 붓다는 무엇을 주장하셨습니까?
"현상이 일어나는 데는 원인이 있다. 하지만 그 원인을 소멸시킬 수 있다. 네가 지금 여기서 생각을 바꾸고 행동을 바꾸면 결과가 달라진다."
이것이 붓다께서 주장하셨던 연기론, 인과론입니다.

전에 신자들이 성지순례를 갔다가 오면서 사거리에서 신호등을 기다리는데 레미콘이 덮치는 불행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그럼 사람들은 "왜 성지순례를 다녀오면 선업을 쌓았는데 불행한 일이 발생했는가?"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럼 "그건 과거의 업 때문이야."라고 해야 하나요?
그날 성지순례를 안 가고 차라리 집에서 명상을 했으면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까요?
전에 춘천에서 서울로 오는 길목에서 관광버스가 승용차 몇 대를 깔아뭉개는 뉴스가 나오더군요
그들에게 승용차가 없었다면 어떤 결과가 발생했을까요?
여행을 가지 않았거나 대형버스를 타고 갔겠죠?
그럼 그런 사고가 안 일어났겠죠?
업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는 일체지를 갖춘 붓다에게도 다 헤아릴 수 없는 영역입니다.

모든 것을 업 때문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견해입니다.
붓다는
"의도가 업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A6.63>
지금 여기서 마음먹기에 따라 수많은 변화의 수가 생긴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업이 그렇게 쉽게 바뀔까요?
습관과 습성, 성향을 바꾸지 않으면 업은 그대로 진행됩니다.
생각의 패턴이 바뀌어야 업이 바뀐다는 뜻입니다.
여전히 탐욕 속에 살고, 여전히 분노 속에 살고, 여전히 긴장과 억압과 스트레스 속에 산다면
업이 바뀌겠어요?
여전히 스트레스가 받치면 습관적으로 담배를 꼬나물거나 술을 찾습니다.
여전히 집에 들어가면 무의식적으로 티브이를 켭니다.
여전히 한밤중이라도 배가 고프면 냉장고를 뒤집니다.
여전히 지루하면 인터넷을 연결하고 게임을 합니다.
참고 다스리고 놓아버리고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데 업이 바뀔까요?
명상을 통해 정신을 개조하지 않으면 업이 잘 바뀌지 않습니다.
출가수행자들에게 업이 크게 바뀌는 이유가 뭘까요?
그들은 수행을 통해 마음의 패턴을 변화시키기 때문입니다.

유튜브에 도경스님의 '생활 속에서 하는 명상' 법문이 나옵니다.
이것은 일상의 삶 속에서 언제든지, 따로 시간을 내지 않아도 되는 수행 방법입니다.
한 번 들어보시고 그대로 실천해도 됩니다.
유튜브에 떼자니야 사야도 법문이 나오는데
그것도 좋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수행을 하려고 하면 방법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참고 하시기를....

- 글: 석무념 스님  /  그림: 이미지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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