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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DDHISM/불교&명상 이야기

깊은 삼매


은사 스님이 상좌에게 말했다.

"옛날 스님들은 새가 머리에 둥지를 틀고 새끼를 기르는 것도 모를 정도로 깊은 삼매에 들곤 했었다."


상좌가 이의를 제기했다.

"스님, 그건 뻥입니다."

은사가 상좌를 어의없다는 듯이 바라보면서 설득을 위해 삼매에 대한 증거를 하나 더 제시했다.
"옛날에 나라에서 백성들을 동원해서 도로 공사를 하는데 땅 속에서 둥근 덩어리 물체가 나왔는데, 그 덩어리를 열어보니까 선풍도골의 노인이 앉아 있었다. 그 노인은 수 세기 동안 깊은 삼매에 들어있었던 것이다. 너무 오랫동안 깊은 삼매 속에 있다보니 손발톱이 자라 온몸을 감싸게 되었고, 지형이 변해서 땅속으로 들어간 것이지."

"스님, 그런 말도 되지 않는 소설을 믿는단 말입니까? 그 스토리는 하나의 교훈을 주기 위해서 만든 이야기 입니다. 그 소설의 뒷부분은 이렇습니다. 왕이 그 불가사의한 도인을 왕궁으로 데려가 왕사로 삼고 극진한 존경을 올렸죠. 그런데 어느 날 도인을 모시던 시녀의 배가 점점 올라오는 것이 아니겠어요. 그래서 왕은 시녀를 심문했죠. 그래서 밝혀진 사실은 도인이 시녀를 범한 것이죠. 이 이야기는 선승들이 지어낸 것일 겁니다. 아무리 깊은 삼매라도 깨달음과 하등 상관이 없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삼매와 깨달음은 별개다' 라는 법문이 선어록에 자주 등장합니다."

상좌는 말을 계속 이었다.
"화두삼매라는 것은 일상생활에서 모든 감각이 살아있는 상태에서 화두일념이 현전하는 것을 말합니다. 외부와의 감각이 끊어진 깊은 삼매에서는 생각이 정지되어 있어서 지혜가 일어나지 않고, 욕망의 소멸도 일어나지 않고, 깨달음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비유를 들어 설명한 것입니다."

상좌는 이야기의 팩트를 과학적이고 논리적으로 설명했다.
"그렇게 새가 머리에 둥지를 틀 정도나 자신의 몸이 땅에 묻히는 줄도 모르고 그렇게 오랫동안 삼매에 들어있는 것은 생체물리학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인간의 몸은 오랫동안 외부에서 물과 영양을 공급하지 않으면 파괴됩니다. 아무리 깊은 삼매라도 생체활동은 이어져야 하기 때문이죠."

은사가 반론을 제기했다.
"너는 왜 그렇게 비판적으로만 보냐. 깊은 삼매에서는 생체활동이 완전히 정지될 수도 있고, 신비스런 힘이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어내어 몸을 유지하게 할 수도 있는 것이지."

"아무리 종교가 초월적이 힘을 믿는다고 해도 상식적이고 과학적인 것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럼 부처님은 6년 고행을 했는데, 왜 그렇게 몸이 바짝 말라버렸을까요? 4아승지겁을 선정을 닦았다는 부처님보다 더 대단한 분이 있을까요? 아무것도 먹지 않고 그렇게 오랫동안 생명을 유지할 정도면 부처님보다 더 대단한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붓다는 6년 고행을 하고 뼈만 남았죠."

"부처님은 6년 동안 삼매에 들지 않고 있었나보다."

"그리고 이건 청정도론에 나오는 근거있는 교리입니다. 그렇게 깊은 삼매는 멸진정 밖에 없습니다. 다른 8선정은 외부에서 자극이 가해지면 삼매에서 깨어나기 때문입니다. 생체활동이 거의 정지되어 느낌과 인식이 끊어진 멸진정만이 외부에서 자극을 가해도 깨어나지 않습니다. 청정도론에서는 멸진정에 들 때에는 7일을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삼매에 들어가기 전에 '7일 이내에 삼매에서 나오리라.'라고 결의를 한 다음에 삼매에 들어갑니다. 7일이 넘어가서 외부에서 영양이 공급되지 않으면 세포가 파괴되기 시작한다고, 그러므로 7일 이내에 삼매에서 나와야 한다고 청정도론에서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멸진정(滅盡定)에는 아무나 들어갈 수 없다. 오직 아나함과 아라함만이 들어갈 수 있다. 즉 선정과 통찰지(지혜)를 함께 완성한 성자, 삼매뿐만 아니라 지혜도 함께 완성했거나 거의 완성한 성인들만이 들어갈 수 있다. 아직 성욕도 극복하지 못한 범부는 결코 들어갈 수 없다. 멸진정이 무엇이고, 선정만 닦은 사람은 결코 들어갈 수 없는 경지이고, 아나함과 아라한도 멸진정에 들어갈 때에는 5가지 결의를 하고 들어가야 한다는 기초적인 교리조차 모르면서 맹목적인 믿음만을 강조하면 어쩌란 말인가?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주는 신비스러움이 중생의 뇌를 마비시키는 작용을 하나? 비과학적이고 비논리적인 소설이 더 듣기 좋은 것일까? 종교는 믿음이다. 그러나 불교는 믿음이 아니라 진실을 추구하는 가르침이다.


- 석무념 스님


주) *멸진정(滅盡定) :  무심정(無心定)의 하나. 성자(聖者)가 무여 열반계(無餘涅槃界)의 조용함을 본떠서 닦는 선정(禪定). ▷무상정(無想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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