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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DDHISM/불교&명상 이야기

종교에 대한 붓다의 생각

두 바라문 학생이 서로 자기 스승의 가르침이 옳다고 주장했다. 

한 바라문 학생이 말했다.


"나의 스승은 신에게 항상 기도하고 음식을 바치고 온전히 신의 뜻에 맡기고 살아가라고 가르치시지. 그렇게 신에게 헌신하면 닥쳐오는 악업도 피해가고 행운이 다가오고 죽은 뒤에는 신의 세계에 태어난다고 가르치시지. 나도 헌신의 길이 진정 신에게 다가가가는 길이라고 생각해."

다른 바라문 학생이 말했다.


"나의 스승은 신을 찬미하는 만트라(주문, 다라니)를 항상 외우며 정신을 집중하는 것을 가르치시지. 그렇게 진언수행을 하면 마음에 강한 에너지가 생기고 악업이 소멸되고 선업이 증장되며 죽은 뒤에 신의 세계에 태어난다고 가르치시지. 나도 만트라 수행이야말로 진정 신에게 다가가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해."

둘을 서로 자기 스승의 가르침이 훌륭하다고 주장했으나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그래서 둘은 길은 다르지만 목적지는 같다고 추측하면서 논쟁을 끝냈다. 그때 마침 위대한 사문 고따마가 근처 숲속에 머물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래서 둘은 이 문제를 위대한 사문에게 가져가 보기로 했다.

붓다께서 아찌라와띠 강변의 숲속에 머물고 있을 때, 두 바라문 학생이 와서 질문했다.


"저의 스승은 신에게 열심히 기도하고 음식을 바치고 헌신하면 신이 헌신의 대가로 은총을 내린다고 합니다. 또한 업장이 소멸되고 죽은 뒤 신의 세계에 태어난다고 가르치십니다. 그런데 이 친구의 스승은 신을 찬미하는 만트라(다라니, 주문)를 외우면 업장이 소멸되고 죽은 뒤 신의 세계에 태어난다고 가르치십니다. 어느 스승의 말씀이 맞습니까? 아니면 모든 길이 한양으로 향하듯 두가지 길이 다 신의 세계로 인도합니까?"


붓다는 그들에게 이렇게 되물었다.


"그렇게 가르친 그대들의 스승은 신을 본 적이 있는가?"

"없습니다.

"그럼 그대들의 스승의 스승은 신을 본 적이 있는가?"

"없습니다."

"그럼 위로 7대의 스승들은 신을 본 적이 있는가?"

"없습니다.

"그럼 그 신에게 기도하고 음식을 바치고 헌신하는 것을 최초로 가르친 스승이나 신을 찬미하는 만트라를 최초로 만든 스승은 신을 본 적이 있는가?"

"없습니다."

"그럼 웃기지 않는가? 아무도 신을 본 적이 없다. 신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면서 신에게 다가가는 방법을 제시한단 말인가? 이것은 마치 장님이 장님을 이끌고 가는 꼴이 아니겠는가?"

붓다는 아래로는 지옥 세계에서 위로는 천상 세계까지 모든 세계를 손 안의 겨자씨 보듯이 훤히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이 능력을 얻기 위해서 4아승지겁하고도 십만 겁을 윤회하면서 사마타를 닦았다. 어떤 생에서는 사마타를 완성하기 위해서 일생을 사마타 수행에 매진하기도 했다. 그는 과거생에 존재의 실상을 관찰하는 위빠사나 수행을 하면 바로 도과를 성취해서 존재계를 벗어날 수 있는 능력이 충분히 있었다. 그러나 많은 중생을 제도하려는 원력이 있었기 때문에 위빠사나 수행을 해서는 안되었다. 위빠사나 수행을 하면 존재계를 벗어나 해탈해버리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오랬동안 사마타 수행을 한 댓가로 그는 모든 존재계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다. 붓다가 되기 위해서는 이 능력이 반드시 필요했다.

붓다는 지옥 중생부터 천상의 신들까지 모든 존재계를 샅샅히 살펴보아도 당신보다 더 위대한 존재를 보지 못했다. 비록 위대한 신들조차도 욕망의 굴레 속에 살고 있었다. 그래서 붓다는 두 바라문 학생들이 말하는 그런 위대한 존재, 인간의 헌신을 받고 그들에게 은총을 내리고 죽으면 자신의 곁으로 대려와서 지극한 행복을 누리게 해줄 수 있는 위대한 능력자, 세상을 창조하고 다스리는 그런 신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붓다는 두 바라문 학도들에게 그들의 종교관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렇게 말하면 세상은 혼란에 빠질 것이 분명했다. 세상은 원래 그런 것이다. 종교가 진실하건 진실하지 않건 그것이 그들에게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는 의지처가 되기도 하고 바르게 살아가게 하는 좋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붓다는 그들의 신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도 그들에게 뭔가 좋은 교훈을 내려야했기에 그들이 믿는 존재가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 물었다.


"그래, 그대들이 믿는 신은 어떤 존재인가? 소유욕은 있는가?"

"우리의 위대한 신은 소유욕이 없습니다."

"그럼 그대들은 소유욕이 있는가?"

"있습니다."

"그럼 소유욕이 있는 사람이 어떻게 소유욕이 없는 신의 세계에 태어날 수 있단 말인가?"

"그대들이 믿는 신은 탐욕이 있는가? 성냄이 있는가? 어리석음이 있는가? 자만심이 있는가?"

"우리의 위대한 신은 탐진치가 없습니다. 모든 욕망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그럼 그대들은 탐진치가 있는가? 자만심이 있는가?"

"있습니다."

"그럼, 탐진치와 자만심이 있는 그대들이 어떻게 신의 세계에 태어날 수 있단 말인가? 탐진치를 제거하고, 자만심에서 벗어나야만 신의 세계에 태어날 수 있다. 그런데 마음을 관찰하여 내면의 욕망, 성냄, 어리석음, 자만, 시기, 질투, 인색과 같은 온갖 해로운 마음을 제거할 생각은 하지 않고, 기도하고 공양을 올리고 헌신하고 만트라를 외운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디가 니까야 삼명경 (D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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