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UDDHISM/불교&명상 이야기

붓다의 위빠사나 수행


정각을 성취하기 전 보살이었을 때, 나는 마음을 두 부류로 나누었지. 

불선한 마음들과 선한 마음들로 말이지.
불선한 마음들은 감각적 욕망, 악의, 해코지와 같은 해로운 마음들이고, 

선한 마음들은 출리(감각적 욕망에서 벗어남), 악의 없음, 해코지 없음과 같은 유익한 마음들이야. 

내가 방일하지 않고 알아차림을 유지하며 머물 때 불선한 마음들이 일어났지. 그때 나는 이렇게 사유했어.


"나에게 감각적 욕망, 악의, 해코지와 같은 불선한 마음들이 일어났다. 

이것은 나와 남을 괴롭히고 통찰지를 소멸시키고 열반으로 가는 길을 방해한다." 


이렇게 사유함으로써 나는 해로운 마음들에서 벗어났지. 

이것은 마치 곡식이 무르익은 가을 들판에 소치는 목동이 소떼를 단속하는 거와 같애. 

조금이라도 한눈을 팔면 소떼가 남의 곡식을 뜯어먹게 되고 

그러면 욕을 얻어먹고 변상을 해줘야 하는 손실이 발생하는 거지. 

그러므로 번뇌가 일어날 때에는 바짝 고삐를 당겨서 해로운 마음들을 버리고 제거해야 하는 거야.

또 내가 방일하지 않고 알아차림을 유지하며 머물 때 선한 마음들이 일어났지, 그때 나는 이렇게 사유했어.


"나에게 출리, 악의 없음, 해코지 없음과 같은 선한 마음들이 일어났다. 

이것은 나와 남을 괴롭히지 않고 통찰지를 증장시키고 열반으로 인도한다."


이렇게 사유함으로써 나는 유익한 마음들을 키우고 증장시켰지. 

이것은 마치 추수를 끝내고 텅 빈 가을 들판에 소치는 목동이 소떼를 바라보는 거와 같애. 

나무 그늘에 누워 '소떼가 저기 있구나'라고 알기만 하면 되는 거지. 

그와 같이 내면을 들어다보면서 '나에게 유익한 마음들이 일어나 있구나.'라고 알기만 하면 되는 거야.


이렇게 내게 불굴의 정진이 생겼고, 

알아차림이 확립되어 잊어버림이 없었고, 

몸은 경안하고 마음은 집중되어 일념을 이루었지. 

일념이 계속되자 삼매가 일어나고 초선, 이선, 삼선, 사선을 성취했지. 

삼매가 일어나자 나는 삼매에서 나와 모든 번뇌를 소멸하는 지혜로 마음을 기울였지. 

그렇게 방일하지 않고 스스로 독려하며 머물자 나에게 

무명이 제거되고 명지가 일어났고, 

어둠이 제거되고 광명이 일어났지.

** (두 가지 사유의 경; M19) - 붓다의 위빠사나 수행.



붓다께서 어떻게 위빠사나를 수행했는지, 

어떻게 팔정도를 실천했는지 살짝 엿볼 수 있는 경전의 말씀입니다. 

이 경전에 사찰의 벽화에 나오는 심우도(尋牛圖)를 연상하는 문장이 있다는 것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어떻게 수행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에게 좋은 영감을 주는 경입니다. 

수행은 어려운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불선한 마음을 제거하고 선한 마음을 키우는 것입니다. 

열반이 저절로 일어날 때까지.


- 석무념 스님


맨 위로 맨 아래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