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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김상욱의 물리공부

(6) 엔트로피-어제로 돌아갈 수 없는 이유…‘큐브’가 이미 흐트러졌기 때문


물리학은 시간의 방향성이 없다고 하지만 시간은 과거에서 미래로 흐르지 미래에서 과거로 흐르지 않는다. 학자들은 그 이유를 열역학 제2법칙으로 설명한다. 큐브를 예로 들면 색이 맞춰져 있는 상태는 하나뿐이다. 하지만 색이 틀린 상태는 많다. 경우의 수가 적은 상태에서 많은 상태로 가는 이런 현상을 열역학은 엔트로피가 증가한다고 표현한다. 빅뱅 이후 시간의 흐름은 과거에서 미래로 흐른다.

■ 시간의 화살

아무 일 안 하고 가만히 있어도 내일은 오지만, 어제는 무슨 짓을 해도 오지 않는다. 과학이라면 이런 당연한 자연현상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할 거다. 시간은 왜 한 방향으로만 흐를까? 이 문제에 대한 답을 구하려면 물리학의 아버지 뉴턴에서 시작해야 한다. 뉴턴이 살았던 17세기 사람들에게 시간은 이런 거였다. 해가 뜨면 (하루의) 시간이 시작된다. 여름에는 시간이 길고 겨울에는 짧다. ‘시(時)’ ‘분(分)’ 같은 개념은 거의 쓰이지 않았다. “점심 먹을 때 만나자” 정도의 정확도면 충분했기 때문이다. 천문학자쯤 되어야 지구의 자전이나 공전궤도상 위치로 ‘연·월·일·시·분’ 같은 시간을 말할 수 있었다.

뉴턴은 일상적이지도, 천문학적이지도 않은 수학적이고 추상적인 ‘절대시간’을 제안하였다. 이제 시간은 세상과 상관없이 우주 어딘가 존재하는 숫자가 된 것이다. 뉴턴은 그가 제안한 절대시간으로 운동법칙을 쓴다. 원리적으로 그의 법칙은 모든 운동을 설명할 수 있다. 그렇다면 시간이 왜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지도 설명할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뉴턴의 운동법칙에서 시간의 방향은 의미를 갖지 못한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즉 그의 법칙만으로는 시간이 한 방향으로만 흘러야할 이유를 찾을 수 없다는 말이다.

이는 뉴턴의 운동법칙에만 존재하는 문제는 아니었다. 전자기법칙, 양자역학, 상대성이론 등 이후 발견된 모든 물리법칙들은 시간에 대해 방향성을 갖고 있지 않았다. 공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날아간 사건에 대해 시간을 뒤집어 보면, 공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날아가는 사건이 된다. 이것은 물리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 시간을 거꾸로 돌려도 문제가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사람이 죽은 사건에 대해 시간을 뒤집으면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나야 한다. 물론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사람의 몸을 이루는 모든 물질을 지배하는 물리법칙들에 시간의 방향성이 없다면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것 역시 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물리학자들은 시간의 방향성이 없는 물리법칙으로 시간의 방향을 설명해야 했다.

■ 열역학 제2법칙

‘루빅스 큐브’라는 장난감이 있다. 정육면체 모양의 퍼즐인데, 모든 면을 각각 하나의 색으로 맞추는 것이 목표다. 색이 한 번 흐트러지면 어지간해서는 맞추기 힘들다. 그래서 큐브의 포장지를 뜯어 꺼냈을 때만 색이 맞아있기 십상이다. 누군가 눈감은 채, 흐트러진 큐브를 수십 번 멋대로 돌려서 색이 맞길 바란다면 미친 사람 소리를 들을 거다. 하지만 정말로 운이 좋다면 그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큐브가 가질 수 있는 형태의 수는 모두 43,252,003,274,489,856,000개, 그러니까 4000경 정도 된다. 1초에 하나씩 형태를 바꾼다면 모든 형태를 구현하는 데 1조년이 걸린다는 말이다. 우주의 나이보다 100배쯤 긴 시간이다. 어쨌든 무작위로 돌려서 이 가운데 하나가 우연히 걸리길 기대하기는 불가능하다. 큐브를 돌리는 과정이 시간이 흐르는 것과 같다고 생각해보자. 큐브를 돌리는 방향에 제약은 없다. 시계방향으로 돌린 것을 뒤집으려면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리면 된다는 말이다. 물리법칙에 시간의 방향성이 없다는 것은 큐브를 돌리는 방향에 아무 제약이 없다는 말과 같다. 실제로 그러하다.

큐브의 색이 맞아있는 상태에서 시작하여 무작위로 돌리면 색이 흐트러진다. 이런 당연한 사실을 법칙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것은 큐브를 무작위로 돌려 색이 저절로 맞길 바라는 사람이 얼마나 미쳤다고 생각하는지에 달려있다. 이것도 법칙이라고 생각한다면, 시간의 화살 문제는 해결된다. ‘큐브의 색이 맞아있는 상태’를 ‘과거’라고 부르고 ‘큐브의 색이 흐트러진 상태’를 ‘미래’라고 부르면 끝이다. 큐브를 무작위로 돌리면 과거에서 미래로만 가며, 그 반대 과정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것이 시간의 화살이다.

잠깐! 운이 좋으면 색이 저절로 맞을 수도 있지 않나? 물론 운이 어마어마하게 좋아야 한다. 이렇게 생각해보자. 큐브를 70억개쯤 준비하여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씩 나누어 준다. 이들이 모두 무작위로 큐브를 돌렸을 때 70억개의 큐브가 한꺼번에 색이 맞을 확률은 얼마나 될까? 사실 시간이 반대방향으로 흐를 확률은 이보다 훨씬(‘훨씬’보다 더 강한 표현이 없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작다.

처음 이런 식으로 시간의 화살을 설명한 사람은 루트비히 볼츠만이라는 물리학자였다. 학계의 반응은 싸늘했다. 시간이 한 방향으로 흐르는 것이 단지(?) 확률적으로 그렇게 되기가 쉬워서라니. 그렇다면 이 법칙은 확률적으로 옳은 진리란 말인가? 수학적으로 본다면 완전히 틀린 말이라는 뜻이다. 안타깝지만 볼츠만은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오늘날 대부분의 물리학자는 볼츠만의 관점을 지지한다. 그래서 여기에 ‘열역학 제2법칙’이라는 멋진 이름을 주었다. 이제 당신은 시간이 왜 한 방향으로만 흐르느냐는 질문에 우아한 답변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열역학 제2법칙 때문이에요!”

■ 엔트로피

물리학자라면 열역학 제2법칙을 수학적으로 좀 더 엄밀하게 기술하고 싶은 욕구를 느낄 것이다. 큐브 이야기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색이 맞아있는 상태(과거)’와 ‘색이 흐트러진 상태(미래)’의 차이는 그 상태가 갖는 ‘경우의 수’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색이 맞은 상태는 단 한 가지밖에 없다. 하지만 색이 흐트러지는 것은 정말 수없이 많은 경우가 가능하다. 당신의 방이 잘 정돈되었을 때의 모습은 단 한 가지이지만, 방이 어질러진 형태에는 상상도 할 수 없이 많은 가능성이 있다. 세 살배기 장난꾸러기를 방에 놓아두고 1분에 한 번씩 들여다보면 모두 다른 모습이 나올 테니 말이다. 과거에서 미래로 간다는 것은 결국 상태를 이루는 경우의 수가 작은 상황에서 많은 상황으로 간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이 ‘경우의 수’에 ‘엔트로피’라는 이상한 이름을 주면 열역학 제2법칙은 “엔트로피는 증가한다”는 멋진 문장으로 바뀐다. 시간이 한 방향으로 흐른다는 말은 “우주의 엔트로피가 증가한다”는 말과 같다.

잠깐! 우주의 엔트로피가 증가하려면 과거의 엔트로피가 작았어야 하는 거 아닌가? 큐브로 이야기하면, 처음에 큐브의 색깔이 맞춰져 있었어야 한다는 말이다. 우주의 큐브는 처음에 누가 맞춰 놓은 걸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점점 엔트로피가 작아져서 결국에는 엔트로피 0의 상태, 단 하나의 가능성만 있는 상태에 도달하게 된다. 우주가 한 점에서 출발했어야 한다는 말이다. 바로 빅뱅이다. 빅뱅은 천문학적인 관측 증거를 가지고 있지만, 엔트로피와 시간의 방향을 생각해보면 필연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결론이기도 하다. 빅뱅이 왜 있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빅뱅이 없었으면 시간이 미래로 흐를 수 없다.

■ 통계물리

색이 맞아 있는 큐브가 흐트러진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새로운 물리법칙을 고안할 필요는 없다. 다만 큐브를 무작위로 조작하다 보면, 경우의 수가 큰 쪽으로 가게 마련이라는 ‘당연한’ 가정으로 충분하다. 열역학 제2법칙은 법칙 아닌 법칙인 거다. 이런 의미에서 아인슈타인은 열역학 법칙이야말로 최후까지도 뒤집히지 않을 물리법칙이라 말한 바 있다. 여기서 핵심은 경우의 수가 많다는 거다. 이처럼 수가 많다는 것은 그 자체로 새로운 현상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이런 것을 다루는 분야를 ‘통계물리’라고 한다.

동전을 던지면 앞면이 나올지, 뒷면이 나올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동전을 던져 짜장면을 먹을지, 짬뽕을 먹을지 결정한다. 하지만 동전을 100만개 정도 던지면 대략 절반은 앞면, 절반은 뒷면이 나온다. 이처럼 통계물리는 많은 수의 대상을 통계적으로 다루어 새로운 물리적 현상이나 규칙을 찾는 분야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통계물리가 특수한 상황을 다루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사실 물리학의 대상이 되는 것들은 대개 이런 상황이다.

당신은 지금 이 순간에도 주위에 있는 셀 수 없이 많은 공기분자들과 충돌하고 있다. 공기분자는 소리보다 빠르지만, 당신은 공기분자와 부딪치고 있다는 것을 인식조차 할 수 없을 거다. 공기분자가 당신 피부에 가하는 평균적인 충격을 ‘압력’이라 하고, 그들이 가진 평균 운동에너지를 ‘온도’라고 한다. 산에 올라가면 압력이 낮아진다. 당신 몸을 두드리는 공기분자의 수가 작아졌기 때문이다. 우주공간에 나가면 공기가 거의 없으니 압력이 0에 가까워진다. 날씨가 춥다는 것은 단지 공기분자의 평균 속력이 작다는 거다.

여기서 반복해 등장한 ‘평균’이라는 통계적 표현에 주목하자. 이런 통계적 기술이 가능한 이유는 당신 주변에 있는 공기분자가 어마어마하게 많기 때문이다. 작은 방 안에 있는 공기분자의 수는 대략 10,000,000,000,000,000,000,000,000,000개 정도다. 사실 0 몇 개를 잘못 써도 문제없을 정도로 큰 수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든 물질은 엄청나게 많은 수의 원자, 분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통계물리는 자연을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하는 지식이다.

물에 잉크를 한 방울 떨어뜨리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잉크가 퍼져서 물 전체가 뿌옇게 된다. 하지만 가만히 놓아둔 뿌연 물이 맑은 물과 잉크 한 방울로 스스로 분리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잉크가 한곳에 방울로 모여 있는 것보다 퍼져있는 경우의 수가 많기 때문이다. 즉 잉크가 퍼져가는 과정은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과정인 것이다. 통계물리의 방법은 잉크의 확산이라는 자연현상과 큐브의 문제를 동일한 방식으로 설명해준다.

이처럼 통계물리의 대상이 반드시 물리학적인 것일 필요는 없다. 최근 통계물리의 영역이 생명현상과 인간사회로 확장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고 없는 고속도로에 정체가 일어나는 이유, 인터넷 연결망이 갖는 필연적 구조, 지구의 역사에서 대규모 멸종이 일어난 빈도 같은 것들이 모두 통계물리의 대상이다.

하나의 물 분자는 수소원자 두 개와 산소원자 하나로 구성된다. 두 개의 수소원자는 104.5도의 각을 이루며 산소에 붙어있다. 하나의 물 분자는 이처럼 그냥 꺾인 막대기다. 하지만 물 분자가 무수히 많이 모이면 ‘물’이라는 새로운 상태가 된다. 하나의 물 분자로부터 흐르는 강물의 모습을 상상하기는 불가능하다. 양질전환(良質轉換)이랄까. 이제 온도를 바꾸면 물이 얼음이 되거나 수증기가 된다. 이것은 물 분자의 집단이 협동하여 만들어낸 새로운 실체다.

하나의 입자는 시작도 끝도 없는 절대시간 위를 움직인다. 여기에는 시간의 방향도 없다. 수많은 입자가 모이면 비로소 시간이 흐르기 시작하고, 새로운 현상들이 창발(創發)한다. 인간 역시 수많은 입자들이 모여 만들어진 새로운 실체다. 자신이 왜 존재하는지 고민하는 실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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