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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DDHISM/불교&명상 이야기

부처님 최초의 설법

보리수 아래서 정각을 이루신 부처님은 사함빠띠 범천왕의 간청으로 법을 펼칠 결심을 하셨다. 적당한 근기의 사람을 천안(天眼)으로 살펴보시니 자신에게 선정을 지도했던 알라라 깔라마와 웃타까 라마뿟따였지만, 두 분 모두 세상을 떠난 뒤였다. 그래서 자신의 곁을 떠난 다섯 비구(꼰단냐, 앗사지, 마하나마, 밧디야, 왑빠)를 교화하시기 위해 이시빠따나의 녹야원(鹿野園)으로 가셨던 것이다. 녹야원으로 가시는 길에 부처님께서는 우빠까 유행승을 만나게 된다. 이때 부처님과 우빠까 사이에 나누었던 대화가 『성구경(聖求經)』(M26)에 기록되어 있다.

 

[우빠까]

"도반이여, 그대의 감관은 밝습니다. 피부색은 청정하고 빛이 납니다. 도반이여, 그대는 어느 분께로 출가했습니까? 그대의 스승은 누구십니까? 그대는 어느 분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습니까?"

 

[부처님]

"나는 모든 것에 뛰어난 자요, 모든 것을 아는 자이며

어떤 것에도 물들지 않고

모든 것을 버리고 갈애가 소멸하여 해탈했고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았으니

누구를 스승이라 부르겠습니까?

 

나에게는 스승도 없고, 유사한 이도 없으며

지상에도 천상에도 나와 견줄 이가 없습니다.

나는 세상에서 아라한이고, 위없는 스승이며,

유일한 정등각자이고

모든 번뇌가 꺼져 적멸을 이루었습니다.

 

나는 까시의 성으로 가서 법륜을 굴릴 것입니다.

어두운 이 세상에 불사(不死)의 북을 울릴 것입니다."

 

우빠까 유행승은 이해를 하지 못하고 고개를 흔들며 떠나갔다. 그렇다면 부처님께서 우빠까를 만나신 것은 아무 소용이 없었을까? 그렇지 않다. 이 인연으로 훗날 우빠까는 출가하여 불환자(아나함)가 되었기 때문이다. 정각을 성취한 다음부터 부처님의 일거수 일투족은 모두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부처님은 다시 길을 재촉하여 다섯 비구를 만나셨다. 이들은 부처님이 고행을 포기하고 사치스러운 생활에 물들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의심이 가득한 상태였다. 부처님은 다음과 같은 말로 그들을 설득했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호사스러운 생활을 하지도, 용맹정진을 포기하지도, 사치스러운 생활에 젖지도 않았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아라한이고, 바르게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한 사람이다. 비구들이여, 귀를 기울여라! 불사는 성취되었다. 내가 이제 그대들에게 가르쳐주리라. 그대들에게 법을 설하리라. 내가 가르친 대로 실천하면, 그대들은 오래지 않아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바르게 집을 떠나 출가하는 목적인 그 위없는 청정범행의 완성을 지금여기에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 것이다."

 

여기까지는 『성구경』의 기록이다. 그리고 나서 다섯 비구에게 최초로 설법하신 것이 유명한 『초전법륜경』(S56:11)이다. 이 경전은 북방으로 전한 『잡아함경(雜阿含經)』에도 포함은 되어 있는데, 아쉽게도 내용이 완전하지 않다. 그리고 이 경전이 한국에서는 그다지 중시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남방에서는 통째로 암기하는 불자들이 많을 정도로 크게 중시되었다. 사성제와 팔정도라는 부처님이 깨달으신 핵심을 설하신 경전이기 때문이다. 경전을 모두 인용하기에 다소 길기 때문에 핵심에 해당하는 전반부만 이곳에 옮기려고 한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바라나시에서 이시빠따나의 녹야원에 머무셨다. 거기서 세존께서는 오비구를 불러서 말씀하셨다.

 

중도(中道) = 팔정도(八聖道)

 

비구들이여, 출가자가 가까이 하지 않아야 할 두 가지 극단이 있다. 무엇이 둘인가? 

 

그것은 저열하고, 촌스럽고, 범속하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을 주지 못하는 감각적 욕망에 대한 쾌락의 탐닉에 몰두하는 것과 괴롭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을 주지 못하는 자기학대에 몰두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두 가지 극단을 의지하지 않고 여래는 중도(中道)를 완전하게 깨달았나니, 안목을 만들고, 지혜를 만들고, 고요함과 최상의 지혜와 바른 깨달음과 열반으로 인도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여래가 완전하게 깨달았으며, 안목을 만들고, 지혜를 만들고, 고요함과 최상의 지혜와 바른 깨달음과 열반으로 인도하는 중도인가?

 

그것은 바로 성스러운 팔정도이다. 바른 견해바른 사유바른 말바른 행위바른 생계바른 정진바른 마음챙김바른 삼매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바로 여래가 완전하게 깨달았으며, 안목을 만들고, 지혜를 만들고, 고요함과 최상의 지혜와 바른 깨달음과 열반으로 인도하는 중도이다.

 

사성제(四聖諦)

 

비구들이여, 이것이 고성제(苦聖諦)이다. 태어남도 괴로움이다. 늙음도 괴로움이다. 병도 괴로움이다. 죽음도 괴로움이다. 싫어하는 것과 만나는 것도 괴로움이다. 좋아하는 것과 헤어지는 것도 괴로움이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도 괴로움이다. 요컨대 취착의 다섯 가지 무더기 자체가 괴로움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고집성제(苦集聖諦)이다. 그것은 바로 갈애이니, 다시 태어남을 가져오고, 즐김과 탐욕이 함께 하며, 여기저기서 즐기는 것이다. 즉 감각적 욕망에 대한 갈애, 존재에 대한 갈애, 존재하지 않음에 대한 갈애가 그것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고멸성제(苦滅聖諦)이다. 그것은 바로 그러한 갈애가 남김없이 빛바래어 소멸함, 버림, 놓아버림, 벗어남, 집착 없음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고멸도성제(苦滅道聖諦)이다. 그것은 바로 팔정도이다. 바른 견해바른 사유바른 말바른 행위바른 생계바른 정진바른 마음챙김바른 삼매이다.

 

사성제(四聖諦)를 세 가지 양상에서 관찰함

 

비구들이여, 나에게는 '이것이 고성제이다'라는 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한 눈(眼)이 생겼다, 지혜(智)가 생겼다, 통찰지(慧)가 생겼다, 명지(明)가 생겼다, 광명(光)이 생겼다. '이 고성제는 철저하게 알아져야 한다'라는‥‥'이 고성제는 철저하게 알아졌다'라는‥‥

 

비구들이여, 나에게는 '이것이 고집성제이다'라는‥‥'이 고집성제는 버려져야 한다'라는‥‥'이 고집성제는 버려졌다'라는‥‥

 

비구들이여, 나에게는 '이것이 고멸성제이다'라는‥‥'이 고멸성제는 실현되어야 한다'라는‥‥'이 고멸성제는 실현되었다'라는‥‥

 

비구들이여, 나에게는 '이것이 고멸도성제이다'라는‥‥'이 고멸도성제는 닦아져야 한다'라는‥‥'이 고멸도성제는 닦아졌다'라는 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한 눈이 생겼다, 지혜가 생겼다, 통찰지가 생겼다, 명지가 생겼다, 광명이 생겼다. 

 

바른 깨달음을 선언함

 

비구들이여, 내기 이와 같이 3가지 양상과 12가지 형태를 갖추어서 사성제를 있는 그대로 알고 보는 것이 지극히 청정하게 되지 못하였다면, 나는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실현하였다고 신과 마라와 범천을 포함한 세상에서, 사문바라문과 신과 사람을 포함한 무리 가운데에서 스스로 천명하지 않았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나 내기 이와 같이 3가지 양상과 12가지 형태를 갖추어서 사성제를 있는 그대로 알고 보는 것이 지극히 청정하게 되었기 때문에, 나는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실현하였다고 신과 마라와 범천을 포함한 세상에서, 사문바라문과 신과 사람을 포함한 무리 가운데에서 스스로 천명하였다.

 

그리고 나에게는 '나의 해탈은 확고부동하다. 이것이 나의 마지막 태어남이며, 이제 더 이상의 다시 태어남은 없다'라는 지(知)와 견(見)이 일어났다.

 

이 법문을 듣고 꼰단냐 존자와 1억8천만의 신들이 "형성된 것은 그 무엇이건 모두 소멸하기 마련이다"라는 법안(法眼)이 열려 예류과를 얻었다고 한다. 나중에 부처님께서는 『진리의 분석 경(諦分別經)』(M141)에서 "비구들이여, 여래아라한정등각자는 바라나시의 이시빠따나에 있는 녹야원에서 위없는 법의 수레바퀴를 굴렸다. 그것은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신이나 마라나 범천이나 이 세상 누구도 멈추게 할 수가 없다. 그것은 사성제를 설명하고, 가르치고, 선언하고, 확립하고, 드러내고, 분석하고, 해설한 것이다"라고 하시면서 당신께서 초전법륜을 굴리셨던 일을 증명하신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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