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UDDHISM/불교.명상 추천 도서

승려와 철학자


추천 [서평] 종교와 철학을 잇는 인류의 지혜로서의 불교 < 승려와 철학자 >


인류의 역사가 태동한 이래 아시아나 아메리카 대륙의 문명보다 뒤쳐져있던 유럽과 서구사회의 문명은 15~16세기부터 장족의 발전을 거듭하여 500여년 만에 지구촌 전체를 뒤덮었다. 특히 서구사회는 과학기술 문명과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앞세워 물질적인 번영을 구가했다. 물론, 그들은 지금도 서구인들 무의식 속에 뿌리깊게 남아있는 인종적, 문화적 편견을 토대로 하여 근현대 시대에 지구촌 전역에서 수 많은 타민족과 타인종을 지배,점령하면서 살육과 약탈, 타문명에 대한 침탈을 자행했고 그들의 문명이 심어놓은 물질만능, 인간중심주의는 지구촌의 다른 생태계에 치명적인 위협을 가하고 있다. 아시아,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에서 저지른 만행이 없었다면 서구사회가 지금처럼 번영을 누리고 있을지 회의적일 정도다. 21세기 들어서 서구사회의 만행은 사라졌을까?

서구사회가 언젠가부터 누리던 물질적 번영의 이면에는 그 반대급부가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서구인들은 수 천년의 역사 속에서 가장 물질적인 번영을 누리지만 역으로 정신적, 문화적 번영은 오히려 더 줄어든 것처럼 보인다. 한 때 서구인들의 정신적, 문화적 만족과 행복을 받쳐주던 그리스,로마 신화나 기독교 문화와 정신은 서구사회에서 근대문물이 발달하면서 비과학적이고 비합리적인 것이 되었다. 하지만 정신적, 철학적 바탕이 제거된 서구사회의 물질문명, 과학기술문명은 자신들에게 편안함과 행복감을 가져다 주지 않았다. 서구사회의 문명과 문화에서 무엇이 문제일까?

간혹 그와 같은 서구사회의 정신적, 철학적 빈곤에 대한 새로운 방향과 희망을 동양철학에서 찾는 경우가 있다.
 
이 책은 서구 과학문명을 공부하고 세포 유전학 분야의 과학자로 일하다가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 히말라야 정착해 위대한 스승들 밑에서 가르침을 받고 티베트 승려가 된 아들 '마티유 리카르'와 현대 프랑스 유명 철학자 5인 중의 한 사람으로 한림원 정회원인 아버지 '장-프랑수아 르벨'이 히말라야 산중에서 만나 열흘간 펼치는 대화를 담은 것이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서양 철학자인 아버지와 전도유망한 분자 생물학자였다가 티베트 불교의 승려가 된 아들. 이들이 나누는 대화는 인간의 갈 길을 모색하며 철학의 역할이 박탈당한 이 시대에 서양인이 불교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에 대해, ‘왜 불교일까? 왜 서양에서 대단한 호기심을 유발하는가? 수많은 추종자가 따르는 이유는 무엇인가?’에 대한 문답을 통해 여러가지 생각할 점을 제시한다.(이 책은 처음 발간 후 프랑스에서 6개월 동안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으며 세계 16개국에서 번역 출간되어 수백만의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다고 알려져 있다.)

26세 되던 해 모든 것을 버리고 티베트 불교에 귀의해 구도의 삶을 살아가는 아들과 프랑스의 저명한 철학자이자 언론인인 아버지는 20년 만에 네팔의 히말라야 산중에서 만나게 되고 둘은 인류의 정신적 삶에 대해 열흘간 지적인 대화를 나눈다. 이 책의 첫 주제는 ‘왜 출가했느냐’라 할 수 있다. 최고 수준의 과학문명을 공부한 학생으로서 지난 30년간 이룩된 인류 사상 가장 놀랄 만한 지적이고 과학적인 모험에 동참하지 않고 왜 히말라야로 갔느냐…
아들의 출가에 대한 아버지의 비판적 질문을 통해 불가지론자인 아버지는 불교에서 말하는 궁극적 깨달음에 끝없이 회의를 품는다. 아들은 풍부한 비유로 이를 설명한다. 이들이 나누는 대화는 동서양 철학과 과학을 넘나들며 불교와 삶의 본질에 대해 진지하고 깊이 있게 이어진다. 이들의 대화는 현대 인문학의 세계, 인류 지성사를 책 한 권 속에서 알아볼 수 있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불교는 과학인가? 철학인가? 종교인가? 지식인가? 지혜인가? "종교인들은 불교가 무신론적 철학이고 마음의 과학이라는 이유를 들어 거부하고, 철학자들은 불교를 철학에 끼워주지 않고 종교에 결부시키면서 거부한다. 그러므로 종교는 어디에도 시민권이 없다."
"사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철학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주제들인 존재의 본성, 무지, 고통의 원인, 자율적이고 실체로서의 자아와 현상들의 비존재성, 인과법칙 등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이러한 주제들은 초자연성에 의해 윤색될 수 없습니다."

아들 마티유 리카르는 “생물학과 물리학이 생명의 기원과 우주의 형성에 관련하여 놀랄 만한 지식을 낳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지식들로 행복과 고통의 근본적인 메커니즘을 규명할 수 있습니까?”라는 반문을 철학자인 아버지에게 던지며, 특히 출가 전 위대한 철학자나 예술가, 시인을 만나고 세계적인 과학자들을 사귀었지만, ‘저것이 내가 진정으로 열망하는 모습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생겼다고 고백한다. 비록 자신의 분야에서는 세계적인 위치에 올랐지만 ‘가장 소박한’ 인간적인 완성과는 거리가 멀었고, 이를테면 위대한 시인이 사기꾼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에 절망했으며, 이에 반해 그가 대학 시절 히말라야 여행에서 만난 티베트의 승려는 엄청난 감동으로 다가왔다고 말한다. 가르침과 현실에서의 삶이 일치하고 진정한 내면의 평화를 가져오는 불교야말로 자신의 모든 것을 걸 새로운 삶의 방편으로 손색이 없었으며, 20년 훨씬 넘게 승려생활을 한 아들은 아버지와의 대담에서도 ‘이 선택을 단 한번도 후회한 적이 없었다’라고 이야기한다.
 
서로 너무나 대조적인 가치관으로 평행선을 달릴 것만 같았던 두 사람이 히말라야의 정경을 바라보며, 서로의 가치관에 대해 체계적으로 논의해 본 적이 없었던 두 사람이지만 최근 서양 사회에서 불교가 급속히 확산되는 것을 계기로 자연스럽고도 짜임새 있는 대화를 통해 서로간의 생각을 허물없이 교환하는 자리를 마련하기에 이른 것이다. 카투만두를 굽어보는 깊은 산 속의 외딴 산장에서 두 사람은 역사상 전 인류에게 부과되었던 여러 의문들에 대해 깊은 대화를 나누며 인류 지성사에 대한 탐구로, 동양과 서양의 정신사를, 삶과 사상, 정치와 휴머니티, 과학에 이르는 다양한 분야에 걸쳐 폭넓게, 혼란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인생을 풍요롭게 살아가는 지혜와 인류의 참된 미래를 모색하기에 이른다.

인간 삶에 관한 진지한 성찰이 담긴 이 책에서 보여주는 부자간의 대화가 더욱 가치 있는 점은 이들 부자가 최고 수준의 서양 과학문명을 공부한 학자로서, 단순히 철학적, 종교적 문제만을 다루는데 그치지 않고 안락사나 인종 갈등과 유전자 복제 등과 같은 현대적 쟁점들에 대한 지식인의 진지한 고민을 보여준다는데 있다. 특히 세상의 단맛과 쓴맛을 두루 경험한 나이 든 아버지가 피력하는 유한성의 철학과 순수한 종교적 이상을 간직한 아들의 불교 철학은 서로 수렴하기도 하고 분산하기도 하면서 더 나은 세계와 인간을 지향하는 사람들의 노력을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굳이 부자간의 대화 전체를 내가 평가한다면, 아들의 '판정승'이라고 생각한다. 장-프랑수아 르벨은 처음부터 끝까지 '과학기술 만능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 서구의 철학과 문명이 일으킨 19~20세기의 학살과 만행, 살육과 전쟁, 환경파괴와 양극화는 지구인들의 고통을 배가시키고 있음에도 르벨은 이 문제를 애써 외면한다. 20세기 말까지 현대과학의 성과는 인류역사상 최대의 실적을 거두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류의 과학이 사물과 인간에 대한 완전한 이해가 가능하다는 희망을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서구 과학문명의 특징인 전문화와 이분법의 한계가 점점 더 드러나고 있는 상황이라 할 수 있다. "과학 측정의 시도가 측정결과에 영향을 미치게"되는 양자역학이 대표적이다. 즉 과학의 주체인 인간(측정자)의 간섭을 배제한 과학의 결과물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불교 승려인 마티유 리카르의 'KO승'도 아니다. 수 년, 수 십년간 산중 사찰에서 명상과 수련을 통해서만 불교의 지혜에 가까워질 수 밖에 없는 현재의 상황은 대다수의 일반사람들이 불교의 진리와 지혜에 다가가기 불가능한 구조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류 대다수 사람들이 쉽게 편하게 접할 수 있는 철학이나 과학처럼 많은 부분을 다듬고 일반화시켜야 하는 큰 숙제가 남겨져 있는 것이다.

그래도 이 책을 통해 티벳 불교가 한국의 불교보다 훨씬 더 부처의 진리와 지혜에 접근하고 있고 대중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한국의 불교는 존재감 자체가 과거보다 더 줄어들었다. 그것은 불교를 받아들이고 부처의 지혜를 실천하는 한국의 불교계가 진리나 지혜 자체보다 기독교처럼 물질과 명예와 정치에 민감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특히 조계종) 티벳 불교와 달리 한국 불교는 '마음의 과학'이 아니라 '일신교' 같은 종교로 가고 있는 것이다. 결국 불교가 종교든, 철학이든 그 수행자들이 어떤 모습과 결과를 보여주느냐가 한국 불교의 미래를 결정하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은 법정스님의 열 아홉번째 추천도서였다.
 

[ 2012년 3월 18일 ]

- 알라딘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1995245


맨 위로 맨 아래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