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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DDHISM/불교&명상 이야기

기본적인 실천덕목은 팔정도(八正道)

 

 

우리가 지금 불교명상에 관심을 집중하면서 가장 기본적인 실천덕목은 팔정도(八正道)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불교명상이라고 하면 무슨 특별한 것이 있는 것처럼 그리고 신비한 그 어떤 것이 있는 것처럼 지나치게 과대한 망상을 갖는 것도 경계해야 할 일이다. 따라서 우리는 부처님께서 제시한 수행과정을 그대로 따라서 실천에 옮기는 자세가 중요한데 그것은 다름 아닌 팔정도의 실천이다. 팔정도는 사제에서 출발하는데, 특히 사성제인 고집멸도(苦集滅道)의 도성제(道聖諦)에서 비롯된다. 

네 가지의 고상한 진리로 번역되는 사성제(四聖諦,Āryasatya) 또는 사제(四諦)는《아함경(阿含經)》에 나오는 불교 기본 교의(敎義) 가운데 하나이다. 제(諦Satya)는 진리 또는 깨우침을 뜻한다. 사성제는 ‘네 가지 높은 깨우침(Ārya:높은, Satya:깨우침)’ 또는 ‘네 가지 고귀한 진리(Four Noble Truths)’라는 뜻인데, 고제(苦諦)·집제(集諦)·멸제(滅諦)·도제(道諦)의 4가지 진리 또는 깨우침을 의미한다. 흔히 이 네 가지를 간단히 고집멸도(苦集滅道)라고 부른다. 

사성제인 고집멸도는 고통의 원인이 집착(執着) 또는 갈애(渴愛)이며 고통을 소멸시키는 원인 또는 수단이 도(道=八正道)라는 연기관계를 밝힌 것이다. 한편, 고타마 붓다는 ‘우주는 영원한가? 영원하지 않은가?’와 같은 형이상학적 질문들인 십사무기(十四無記)는 사성제와는 달리 지혜(智)·깨달음(覺)· 열반(涅槃)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가르치거나 배울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고타마 붓다는 십사무기(十四無記)와 같은 형이상학적 질문들은 열반으로 나아가게 하는 실다운 길이 아니며, 반면 사성제는 열반으로 나아가게 하는 실제 길이라고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은 사성제에 대해 늘 말하고 가르친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제자들에게도 십사무기와 같은 형이상학적 질문들에 얽매이지 않아야 하며 사성제라는 실제 길을 걸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팔정도(Noble Eightfold Path)는 빨리어로는 ‘아리요 아탕기코 마고(ariyo aṭṭhaṅgiko maggo)’라고 하며, 산스크리트어로는 ‘아랴스탕가마르가(āryāṣṭāṅgamārga)’라고 하는데, 성문승(聲聞乘:Śrāvakayāna)의 가르침 가운데 하나이다. 팔정도(八正道) 앞에는 삼마(sammā)라고 하는 ‘옳은’ ‘바른’이란 정(正)자가 붙는다. 팔정도를 우선 순서대로 나열하면서 간단하게 뜻을 살펴보자. 1.정견(正見:바르게 보기) 2.정사유(正思惟:바르게 생각하기) 3.정어(正語:바르게 말하기) 4.정업(正業:바르게 행동하기) 5.정명(正命:바르게 생활하기) 6.정정진(正精進:바르게 정진하기) 7.정념(正念:바르게 알아차리기) 8.정정(正定:바르게 집중하기).

정견(正見 Right view: samyag-dṛṣṭi 산스크리트:sammā-diṭṭhi빨리어)은 바로 본다는 일차적 의미이지만, 사실은 수행을 해서 어느 정도 눈이 밝아진 상태에서 마음과 사물을 보면, 내면이나 현상이 실상 그대로 바로 보인다는 뜻을 갖고 있다. 어떻게 보면 팔정도에서 가장 중요한 단계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냥 보이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정사유(正思惟: Right intention:samyak-saṃkalpa산.sammā sankappa빨)는 바르게 생각한다는 의미인데, 바르게 생각하면서 수행을 해야 옳은 수행이 되고 마음이 맑아져서 뭔가 바로 보일수가 있는 것이다. 세 번째는 정어(正語:Right speech: samyag-vāc.sammā-vācā)라고 하는데, 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수행한 상태에서 바로 보고 바른 말을 하는 것이다. 여기서 바른 말이란 진리에 합당한 말을 말한다. 네 번째는 정업(正業:Right action: samyak-karmānta.sammā-kammanta)을 말하는데, 바른 행동을 말한다. 다음은 정명(正命:Right way of life: Sammā-ājīva samyag-ājīva.sammā-ājīva)으로서 바른 삶을 말한다. 정정진(正精進:Right effort: samyag-vyāyāma.sammā-vāyāma)은 바른 정진이다. 정념(正念: Right mindfulness: samyak-smṛti.sammā-sati), 바르게 알아차리기이다. 정정(正定: Right concentration:samyak-samādhi.sammā-samādhi)은 바른 집중으로서 명상할 때, 삼매에 들 정도로 열심히 하라는 뜻이다. 

팔정도는 계정혜(戒定慧) 삼학(三學)이란 3부분으로 분할해서 지혜 윤리 집중(선정)으로 나눠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정견, 정사유는 혜(智慧: wisdom:prajñā.paññā)에 해당하며, 정어(正語), 정행(正行), 정명(正命)은 계(戒 Ethical conduct:śīla.sīla)에 해당하는 윤리이며, 정정진(正精進), 정념(正念), 정정(正定)은 정(定:Concentration:samādhi)에 해당된다.

이상에서 팔정도를 살펴보았는데, 팔정도는 불교명상 수행에서 매우 중요한 실천덕목들이다. 근래에 들어와서 다수의 사람들이 남방불교의 나라인 미얀마 등지에 가서 위빠싸나(觀法) 수행을 하면서, 주로 정념(알아차림)에 집중하는 경향을 명상이라고 이해하는 것 같은데, 사실은 팔정도 수행이 정상이다. 기존의 불교전통에서 참선수행을 하는 분들이 가만히 앉아서 좌선하는 것을 진짜 명상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간화선을 수행했던 선사들은 참선만이 참선이 아니고 행주좌와 어묵동정(行住坐臥語默動靜)이 다 참선수행이라고 이해했고 또 그렇게 실천해 왔다. 한국에서 명상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부족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남방불교에 가서 명상수행을 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남방에 가서 실제로 명상을 해보면 분위기가 너무 좋고 적은 비용으로도 명상을 할 수 있는 점에 있어서 별 어려움이 없다. 그리고 한국 사찰에서 느꼈던 분위기와는 전연 다른 환경이란 것을 알게 되고, 이런 것이 정말로 불교 승가 공동체이구나 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게다가 미얀마의 명상 센터에서 느끼는 것은 2500년을 거슬러서 타임머신을 타고 사위성이나 왕사성에 가서 부처님을 만나는 것 같은 좋은 의미에서의 착시현상 또한 짜릿한 감동이다.

지금 우리나라 불교에서는 특히 조계종에서 참선을 주로 한다. 다른 군소종단에서도 명상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참선하면 조계종이다. 1만2천 승니(僧尼=남녀승려)가운데 20%정도인 2천여 명의 승니가 안거(安居)를 정기적으로 하고 이는데, 이 같은 현상은 매우 높은 비율이다. 미얀마의 비구가 약 50만 명이라고 하는데, 모두가 위빠싸나를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태국도 마찬가지이다. 약 40만 명의 비구가 다 명상을 하는 것은 아니다. 10%도 안 된다고 본다. 미얀마의 경우에는 오히려 일반 불자들의 명상인구가 더 많다. 비구들은 보다 교학(敎學) 공부에 더 열중한다. 태국도 마찬가지이며, 다른 상좌부 국가들의 공통된 현상이다. 이렇게 보면, 한국불교의 조계종 승니가 1만 2천 명 밖에 안 되지만, 20%인 2천 명 정도가 참선을 한다는 것은 높은 수치이다. 행주좌와 어묵동정이 다 참선이라고 광의의 해석을 하면, 거의 100%가 참선수행을 하는 선종불교(禪宗佛敎)의 승려들이라고 하겠다.

상좌부권의 남방불교 국가에서도 전통적으로 숲 속에서 명상만을 하는 수행비구와 사미들이 있는데, 미얀마와 태국에는 이런 전통이 강하게 남아 있다. 스리랑카도 이런 전통이 있으며, 비구의 길은 바로 이런 명상수행을 통해서 부처님처럼 깨달음을 성취하는 것을 불교수행의 정도(正道)로 여기면서 팔정도 수행을 열심히 하는 숫자도 꽤나 된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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