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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DDHISM/불교.명상 추천 도서

숫타니파타, 불교 최초의 경전 - 법정스님 번역

<제목차례>

다시 이 책을 내며 1


一. 뱀의 비유 3

뱀의 비유 3

소치는 아이 5

무소의 뿔 7

밭 가는 사람 11

대장장이 춘다 13

파멸 14

천한 사람 16

자비 20

설산에 사는 자 21

알라바카 야차 24

극복 26

성인 28



二. 작은 장 29

보배 30

비린 것 32

부끄러움 33

더 없는 행복 34

수칠로마 야차 35

이치에 맞는 행동 36

바라문에게 어울리는 일 37

배 41

어떠한 도덕을 가질까 41

배움 42

라훌라 43

수행자 방기사 44

올바른 수행 46

제자 담미카의 물음 48



三. 큰 장 51

출가 51

정진 53

훌륭하게 말해진 것 55

불을 섬기는 사람 순다리카 57

젊은 마가의 물음 61

방랑하는 수행자 사비야 64

바라문 세라 69

화살 75

젊은이 바셋타. 77

비난하는 사람 코칼리야 84

홀로 가는 수행자 나라카 87

두 가지 관찰 92



四. 여덟 편의 시 99

욕망 99

동굴 100

분노 101

청정 102

으뜸가는 것 103

늙음 104

구도자 팃사 마이트레야 105

파수라 106

마간디야 107

죽음이 오기 전에 109

투쟁 110

문답 - 첫째 112

문답 - 둘째 114

빠름 116

무기를 드는 일 118

제자 사리풋타 120



五. 피안에 이르는 길 122

서 122

아지타의 질문 127

팃사 멧티야의 질문 128

푼나카의 질문. 129

멧타구의 질문 130

도타카의 질문 131

우파시바의 질문 132

난다의 질문 133

해마카의 질문 134

토디아의 질문 135

캅파의 질문 135

자투칸닌의 질문 136

바드라우다의 질문 136

우다야의 질문 137

포사라의 질문 138

모가라자의 질문 138

핑기야의 질문 139

열여섯 바라문들의 질문에 대한 결론 139



[ 해설 ] 143


- 다시 이 책을 내며

이 <숫타니파타>는 수많은 불교 경전 중에서도 가장 초기에 이루어진 경전이다. 역사적인 인물로서 불타 석가모니와 초기 불교를 이해하는 아주 중요한 자료이다. 불교 경전은 원래 눈으로 읽는 문자로 쓰여지지 않고 부처의 가르침을 들은 제자들이 그 내용을 함께 암송해오다가 후기에 문자로 정착된 것이다. 따라서 소리를 내어 외기 편하도록 운문(시)의 형식으로 전해지고, 후렴처럼 같은 내용이 반복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책에 일련 번호가 붙은 짧은 글은 원래 운문의 형식으로 되어 있는 것이고, 번호가 붙어 있지 않은 긴 문장은 산문으로 된 것이다.

부처에게는 자기 자신이 어떤 종교의 창시자라는 의식이 전혀 없었다. 단지 눈 뜬 사람으로서 그 역할을 다 했을 뿐이다. 그에 대한 호칭도 이 경전에서는 ‘눈 뜬 사람’ ‘수행자’ ‘널리 보시는 분’ ‘고타마’ 등으로 불리고 있다. 그 시절의 수행자들은 나무 그늘이나 바위에 앉아, 때로는 외진 동글 속에서 명상하고 간소한 생활을 했으므로 요즘처럼 조직화된 규모의 사원도 없었다. 지닌 것이라고는 남들이 버린 천조각을 주워 그것을 꿰매어 걸친 누더기 옷에, 바리때 하나를 들고 구름처럼 물처럼 여기저기 걸식 행각을 하면서 자신을 일깨우고 이웃을 깨우쳐 주었다.

그들의 삶이 이처럼 단순하고 소박했기 때문에 그들의 가르침 또한 단순하고 소박할 수밖에 없었다. 이 <숫타니파타>를 보면 2천 5백 년 전 불교가 처음 싹트기 시작할 때 주변의 상황들, 특히 다른 수행자들과의 관계를 엿볼 수 있다. 그리고 부처가 말한 그 가르침의 원형이 어떤 것인가를 자세히 알 수 있다. 내 오두막의 한쪽 벽에는 이 책 안에 들어 있는 다음 같은 글귀가 붙어 있다.

홀로 행하고 게으르지 말며

비난과 칭찬에도 흔들리지 말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이 글귀가 눈에 들어올 때마다 두런두런 외우고 있으면 내 속이 한층 깊어지는 것 같다. 아무렇게나 함부로 지낼 수 없다.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것 같다.

이 <숫타니파타>는 현재에도 동남 아시아 불교권에서는 일상 생활 속에 깊이 파고들어가 있다. 그 한 예로, 스리랑카에서는 결혼식 전날 스님들을 집으로 초대하여 축복의 의식을 올리는데, 이때 스님들은 이 <숫타니파타>의 ‘자비’와 ‘더 없는 행복‘중에서 몇 구절을 다 같이 낭송하고 나서 설법을 한다. 새롭게 인생의 여행에 들어서는 젊은 두 사람이 의지할 교훈으로써 축복해 주는 것이다.

이 책은 1991년부터 샘터사에서 몇 차례 간행한 바 있는데 최근에 와서는 거의 절판이 되었다. 이번에 경전계통의 내 역서들을 새롭게 정리하면서 샘터사의 양해아래 이레 출판사에서 다시 판을 짜 나오게 되었다. 이 기회에 독자들이 보다 접근하기 쉽도록 원고를 다시 손질했다.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은 책 뒤의 주를 펼쳐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이번에도 이 책을 만드는 번거로운 일에 한결같이 마음 써 준 류시화 시인과 이레 출판사 사람들의 노고에 감사드린다.

이 책을 대하는 이마다 두루 행복하라. 태평하라. 안락하라!


1999년 7월

강원도 산골 오두막에서 - 法頂


 


 


一. 뱀의 비유


 


뱀의 비유



 1.

뱀의 독이 몸에 퍼지는 것을 약으로 다스리듯, 치미는 화를 삭이는 수행자는 이 세상도 저 세상도 다 버린다.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 버리듯.

註)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버리듯, 구도자는 그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이 장은 강조하고 있다. 인도에는 코브라 뱀이 많고, 인도인들은 코브라 뱀을 신성한 동물로 여기기 때문에 경전에는 뱀의 비유가 많다. 


 2.

연못에 핀 연꽃을 물 속에 들어가 꺾듯이, 육체의 욕망을 말끔히 끊어 버린 수행자는 이 세상도 저 세상도 다 버린다.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 버리듯.

註) 이 세상은 물질적인 차원, 저 세상은 정신적인 차원을 말한다. 이 세상도 저 세상도 다 버린다는 것은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3.

넘쳐 흐르는 집착의 물줄기를 남김없이 말려 버린 수행자는 이 세상도 저 세상도 다 버린다.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 버리듯. 


 4.

거센 물줄기가 갈대로 만든 연약한 다리를 무너뜨리듯, 교만한 마음을 남김없이 없애버린 수행자는 이 세상도 저 세상도 다 버린다.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 버리듯.


 5.

무화과 나무 숲에서는 꽃을 찾아도 얻을 수 없듯이, 모든 존재를 영원한 것으로 보지 않는 수행자는 이 세상도 저 세상도 다 버린다.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 버리듯. 


 6.

안으로는 성냄이 없고, 밖으로는 세상의 부귀영화를 초월한 수행자는 이 세상도 저 세상도 다 버린다.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 버리듯. 


 7.

잡념을 남김없이 불살라 없애고 마음을 잘 다듬은 수행자는 이 세상도 저 세상도 다 버린다.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 버리듯. 


 8.

너무 빨리 달리거나 느리지도 않고, 잡념을 모두 끊어버린 수행자는 이 세상도 저 세상도 다 버린다.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 버리듯. 


 9.

너무 빨리 달리거나 느리지도 않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다 덧없다는 것을 아는 수행자는 이 세상도 저 세상도 다 버린다.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 버리듯.

註) ‘너무 빨리 달리거나 느리지도 않고’는 지나친 과욕이나 게으름을 경계한 말이다. 


 10.

너무 빨리 달리거나 느리지도 않고, 이 세상이 다 덧없다는 것을 알아 탐욕에서 떠난 수행자는 이 세상도 저 세상도 다 버린다.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 버리듯.


 11.

너무 빨리 달리거나 느리지도 않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다 덧없다는 것을 알아 육체의 욕망에서 떠난 수행자는 이 세상도 저 세상도 다 버린다.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 버리듯.


 12.

너무 빨리 달리거나 느리지도 않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다 덧없다는 것을 알아 미움에서 벗어난 수행자는 이 세상도 저 세상도 다 버린다.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 버리듯. 


 13.

너무 빨리 달리거나 느리지도 않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다 덧없다는 것을 알아 어리석은 집착에서 벗어난 수행자는 이 세상도 저 세상도 다 버린다.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 버리듯.


 14.

나쁜 버릇이 조금도 없고, 악의 뿌리를 송두리째 뽕아버린 수행자는 이 세상도 저 세상도 다 버린다.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 버리듯.


 15.

이 세상에 다시 환생할 인연이 되는, 그 번뇌에서 생기는 것을 조금도 갖지 않은 수행자는 이 세상도 저 세상도 다 버린다.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 버리듯. 


 16.

우리들을 생존에 얽어매는 것은 집착이다.. 그 집착을 조금도 갖지 않은 수행자는 이 세상도 저 세상도 다 버린다.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 버리듯.


 17.

다섯 가지 장애물을 뛰어넘고, 번뇌와 의혹을 물리쳐 괴로움을 벗어 던진 수행자는 이 세상도 저 세상도 다 버린다.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 버리듯.

註) 다섯 가지 장애물이란 인간의 깨어 있음을 방해하는 것으로 탐욕, 분노, 우울, 들뜸, 의심을 가리킨다. 


 


 소치는 아이



 18.

소치는 다니야가 말했다.

“나는 이미 밥도 지었고, 우유도 짜 놓았습니다. 마히 강변에서 처자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내 움막 지붕에는 이엉을 덮어 놓았고, 집 안에는 불을 지펴 놓았습니다. 그러니 신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비를 뿌리소서”註) 마히 강은 ‘큰 강’이라는 뜻.


 19.

스승은 대답하셨다.

“나는 성내지 않고 마음의 끈질긴 미혹도 벗어 버렸다. 마히 강변에서 하룻밤을 쉬리라. 내 움막에는 아무 것도 걸쳐 놓지 않았고, 탐욕의 불은 남김없이 꺼 버렸다. 그러니 신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비를 뿌리소서”

註) 움막은 자기 자신을 가리킨다. 


 20.

소치는 다니야가 말했다. 

“모기나 쇠파리도 없고, 소들은 들판의 우거진 풀을 뜯어먹으며, 비가 와도 견뎌 낼 것입니다. 그러니 신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비를 뿌리소서” 


 21.

스승은 대답하셨다.

“내 뗏목은 이미 잘 만들어져 있다. 욕망의 거센 흐름에도 끄떡없이 건너 벌써 피안에 이르렀으니, 이제는 뗏목이 필요 없노라. 그러니 신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비를 뿌리소서” 


 22.

소치는 다니야가 말했다.

“내 아내는 착하고 허영심이 없습니다. 오래 함께 살아도 항상 내 마음에 흡족합니다. 그녀에게 그 어떤 나쁜 점이 있다는 말도 듣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신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비를 뿌리소서”


 23.

스승은 대답하셨다.

“내 마음은 내게 순종하고,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 있다. 오랜 수양으로 잘 다스려졌다. 내게는 그 어떤 나쁜 것도 남아 있지 않다. 그러니 신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비를 뿌리소서”


 24

소치는 다니야가 말했다.

“나는 놀지 않고 내 힘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내 아이들은 모두 다 건강합니다. 그들에게 그 어떤 나쁜 점도 볼 수 있다는 말도 듣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니 신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비를 뿌리소서”


 25.

스승은 대답하셨다.

“나는 누구에게도 속해 있지 않다. 스스로 얻은 것으로 온 세상을 거니노라. 남에게 소속될 이유가 없다. 그러니 신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비를 뿌리소서”


 26.

소치는 다니야가 말했다.

“나에게는 갓 태어난 송아지도 있고, 젖을 먹는 어린 소도 있습니다. 새끼 밴 어미 소도 있고, 암내 내는 암소도 있습니다. 그리고 암소의 짝인 황소도 있습니다. 그러니 신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비를 뿌리소서” 


 27.

스승은 대답하셨다.

“나에겐 갓 태어난 송아지도 없고, 젖을 먹는 어린 소도 없다. 새끼 밴 어미소도 없으며, 암내 내는 암소도 없다. 그리고 암소의 짝인 황소도 없다. 그러니 신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비를 뿌리소서”


 28.

소치는 다니야가 말했다.

“소를 매 놓은 말뚝은 땅에 박혀 흔들리지 않습니다. 새로 엮은 밧줄운 튼튼해서 소도 그것을 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신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비를 뿌리소서” 


 29.

스승은 대답하셨다.

“황소처럼 고삐를 끊고 코끼리처럼 냄새나는 넝쿨을 짓밟았으니, 나는 다시 인간의 모태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신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비를 뿌리소서”

註) 인도의 코끼리는 발정기가 되면 난폭해져 숲과 마을을 짓밟고 돌아다니기 때문에 이런 비유가 자주 쓰인다. 


 30. 

이때 갑자기 사방이 어두워지고 검은 구름이 비를 뿌리더니 골짜기와 언덕에 물이 넘쳤다. 신께서 뿌리는 빗소리를 듣고 다니야는 이렇게 말했다. 


 31.

“우리는 거룩한 스승을 만나 얻은 바가 참으로 큽니다. 눈이 있는 이여 우리는 당신께 귀의하오니 스승이 되어 주소서 위대한 성자시여.註) 초기 불교에서는 부처님을 가르켜 ‘눈이 있는 이’ 또는 ‘눈 뜬 분’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32.

아내도 저를 따라 행복하신 분 곁에서 열심히 수행을 하겠나이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생사의 윤회가 없는 피안에 이르러 이 고통에서 벗어나게 될 것입니다.“ 


 33.

이때 악마 파피만이 말했다.

“자녀가 있는 이는 자녀로 인해 기뻐하고, 소를 가진 이는 소로 인해 기뻐한다. 사람들은 집착으로 기쁨을 삼는다. 그러니 집착할 것이 없는 사람은 기뻐할 것도 없으리라.” 


 34.

스승은 대답하셨다.

“자녀가 있는 이는 자녀로 인해 근심하고, 소를 가진 이는 소 때문에 걱정한다. 사람들이 집착하는 것은 마침내는 근심이 된다. 집착할 것이 없는 사람은 근심할 것도 없다.”


 


 무소의 뿔



 35.

모든 살아 있는 것들에게 폭력을 쓰지 말고, 살아 있는 그 어느 것도 괴롭히지 말며, 또 자녀를 갖고자 하지도 말라. 하물며 친구이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36.

만남이 깊어지면 사랑과 그리움이 생긴다. 사랑과 그리움에는 고통이 따르는 법. 사랑으로부터 근심걱정이 생기는 줄 알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37.

친구를 좋아한 나머지 마음이 거기 얽매이게 되면 본래의 뜻을 잃는다. 가까이 사귀면 그렇게 될 것을 미리 알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註) ‘본래의 뜻’이란 자기가 목적한 바를 뜻한다.


 38.

자식이나 아내에 대한 집착은 마치 가지가 무성한 대나무가 서로 엉켜 있는 것과 같다. 죽순이 다른 것에 달라 붙지 않도록,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39.

묶여 있지 않는 사슴이 숲속에서 먹이를 찾아 여기저기 다니듯이, 지혜로운이는 독립과 자유를 찾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40.

동행이 있으면 쉬거나 가거나 섰거나 또는 여행하는 데도 항상 간섭을 받게 된다. 남들이 원치 않는 독립과 자유를 찾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41.

동행이 있으면 유희와 환락이 따른다. 또 그들에 대한 애정은 깊어만 간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이 싫다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42.

사방으로 돌아다니지 말고, 남을 해치려 들지 말고, 무엇이든 얻은 것으로 만족하고, 온갖 고난을 이겨 두려움 없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43.

출가한 처지에 아직도 불만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또한 출가하지 않고 집에서 수행하는 재가자 중에도 그런 사람들이 흔히 있다. 남의 자녀에게 집착하지 말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44.

잎이 진 코빌라라 나무처럼, 재가 수행자의 표적을 없애버리고 집안의 굴레를 벗어나 용기 있는 이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註) 코빌라라 나무는 흑단의 일종. ‘재가 수행자의 표적’은 머리, 수염, 흰 옷, 장식품, 향료, 처자와 하인이 있는 것을 말함.


 45.

만일 그대가 지혜롭고 성실하고 예의 바르고 현명한 동반자를 얻었다면 어떠한 난관도 극복하리니, 기쁜 마음으로 생각을 가다듬고 그와 함께 가라.


 46.

그러나 만일 그대가 지혜롭고 성실하고 예의 바르고 현명한 동반자를 얻지 못했다면 마치 왕이 정복했던 나라를 버리고 가듯,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47.

우리는 친구를 얻는 행복을 바란다. 자기보다 뛰어나거나 대등한 친구는 가까이 친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친구를 만나지 못한 때는 허물을 짓지 말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48.

금세공이 잘 만들어 낸 두 개의 황금 팔찌가 한 팔에서 서로 부딪히는 소리를 듣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註) ‘두 개의 황금 팔찌가 한 팔에서 서로 부딪히는 소리를 듣고’는 팔찌가 하나일때는 소리가 나지 않지만 두 개 이상일 때는 서로 부딪혀 소리가 나는 것과 같이, 여럿이 함께 있으면 시비가 생기고 번거로우니 혼자서 수행하라는 뜻이다.


 49.

이와 같이, 두 사람이 함께 있으면 잔소리와 말다툼이 일어나리라. 언젠가는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을 미리 살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50.

욕망은 실로 그 빛깔이 곱고 감미로우며 우리를 즐겁게 한다. 그러나 한편 여러 가지 모양으로 우리의 마음을 어지럽힌다. 욕망의 대상에는 이러한 근심 걱정이 있는 것을 알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51.

이것이 내게는 재앙이고 종기이고 화이며, 질병이고 화살이고 공포이다. 이렇듯 모든 욕망의 대상에는 그와 같은 두려움이 있는 줄 알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52.

추위와 더위, 굶주림, 갈증, 바람, 그리고 뜨거운 햇볕과 쇠파리와 뱀. 이러한 모든 것을 이겨내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53.

마치 어깨가 떡 벌어진 얼룩 코끼리가 그 무리를 떠나 자유로이 숲 속을 거닐 듯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54.

연희를 즐기는 사람에게는 잠시 동안의 해탈에 이를 겨를도 없다. 태양의 후예가 한 이 말을 명심하여,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註) ‘잠시 동안의 해탈’이란 세간적인 선정禪定이라는 뜻으로, 그것을 얻었을 때만 잠시 잡념으로부터 놓여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다. ‘태양의 후예’는 부처님을 가리킨다.


 55.

서로 다투는 철학자들의 논쟁을 초월하여 진정한 깨달음의 도를 얻은 사람은 ‘나는 지혜를 얻었으니 이제는 남의 지도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알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56.

탐내지 말고 속이지 말며, 갈망하지 말고 남의 덕을 가리지도 말며, 혼탁과 미혹을 버리고 세상의 온갖 집착에서 벗어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57.

의롭지 못한 것을 보고 그릇되고 굽은 것에 사로잡힌 나쁜 친구를 멀리하라. 탐욕에 빠져 게으른 사람을 가까이 하지 말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58.

널리 배워 진리를 아는, 생각이 깊고 현명한 친구를 가까이 하라. 그것이 이익이 됨을 알고 의심을 버리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59.

세상의 유희나 오락 또는 쾌락에 젖지 말고 관심도 갖지 말라. 꾸밈없이 진실을 말하며,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60.

아내도 자식도 부모도 재산도 곡식도, 친척이나 모든 욕망까지도 다 버리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61.

‘이것은 집착이구나. 이곳에는 즐거움도 상쾌함도 적고 괴로움뿐이다. 이것은 고기를 낚는 낚시이구나.’ 이와 같이 깨닫고, 지혜로운 자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62.

물 속의 고기가 그물을 찢듯이, 한 번 불타 버린 곳에는 다시 불이 붙지 않듯이 모든 번뇌의 매듭을 끊어버리고 ,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63.

눈을 아래로 두고, 두리번거리거나 헤매지 말고, 모든 감각을 억제하여 마음을 지키라. 번뇌에 휩쓸리지 말고 번뇌에 불타지도 말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64.

잎이 져 버린 파리찻타 나무처럼, 재가자의 모든 표적을 버리고 출가하여 가사를 걸치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65.

여러 가지 맛에 빠져들지 말고 요구하지도 말며 남을 부양하지도 말라. 누구에게나 밥을 빌어먹고 어느 집에도 집착하지 말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66.

마음속의 다섯가지 장애물을 벗어 던지고 온갖 번뇌를 버리고 어느 것에도 의지하지 않으며 욕망의 고리를 끊어 버리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67.

전에 경험했던 즐거움과 괴로움을 모두 던져 버리고, 또 쾌락과 근심을 떨쳐 버리고 맑은 고요와 안식을 얻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68.

최고의 목표에 이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마음의 안일함을 물리치고 수행에 게으르지 말며, 부지런히 정진하여 몸의 힘과 지혜의 힘을 갖추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69.

홀로 앉아 명상하고 모든 일에 항상 이치와 법도에 맞도록 행동하며 살아가는 데 있어서 무엇이 근심인지 똑똑히 알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70.

집착을 없애는 일에 게으르지 말고, 벙어리도 되지 말라. 학문을 닦고 마음을 안정시켜 이치를 분명히 알며, 자제하고 노력해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71.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72.

이빨이 억세며 뭇 짐승의 왕인 사자가 다른 짐승을 제압하듯이, 궁핍하고 외딴 곳에 거처를 마련하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73.

자비와 고요와 동정과 해탈과 기쁨을 적당한 때를 따라 익히고, 모든 세상을 저버림 없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74.

탐욕과 혐오와 어리석음을 버리고, 속박을 끊고 목숨을 잃어도 두려워 말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75.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친구를 사귀고 또한 남에게 봉사한다. 오늘 당장의 이익을 생각하지 않는 그런 사람은 보기 드물다. 자신의 이익만을 아는 사람은 추하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밭 가는 사람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거룩하신 스승께서는 마가다국 남산에 있는 ‘한 포기 띠’라고 하는 바라문 촌에 계셨다. 그때 밭을 갈고 있던 바라문 바라드바자는 씨를 뿌리려고 오백 개의 쟁기를 소에 매었다. 스승께서는 오전 중에 바리때와 가사를 걸치고, 밭을 갈고 있는 바라문 바라드바자에게로 가셨다. 때마침 그는 음식을 나누어주고 있었음으로 스승은 한 쪽에 섰다. 바라문 바라드바자는 음식을 받기 위해 서 있는 스승을 보고 말했다. 

“사문이여, 나는 밭을 갈고 씨를 뿌립니다. 밭을 갈고 씨를 뿌린 후에 먹습니다. 당신도 밭을 가십시오. 그리고 씨를 뿌리십시오. 갈고 뿌린 다음에 먹으십시오.”

스승은 대답하셨다.

“바라문이여, 나도 밭을 갈고 씨를 뿌립니다. 갈고 뿌린 다음에 먹습니다.”

바라문이 말했다.

“그러나 우리는 당신 고타마의 쟁기나 호미, 작대기나 소를 본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어째서 ‘나도 밭을 갈고 씨를 뿌립니다. 갈고 뿌린 다음에 먹습니다’라고 하십니까”

이때 밭을 갈던 바라문 바라드바자는 시로써 스승에게 여쭈었다.

註)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는 불교 경전의 첫머리에 항상 시작되는 구절이다. 

註) 사문은 당시 힌두교 정통 사제인 바라문의 권위와 형식주의에 반대하여 강변과 숲 속에서 자유롭게 수행하던 자유사상가적인 수행자이다.


 76.

“당신은 농부라고 자처하지만 

우리는 일찍이 밭가는 것을 보지 못했네.

당신이 밭을 간다는 사실을

우리들이 알아듣도록 말씀해 주시오.“


 77.

스승은 대답하셨다.

“나에게 믿음은 씨앗이요, 고행은 비이며, 지혜는 쟁기와 호미, 부끄러움은 호미자루, 의지는 쟁기를 매는 줄, 생각은 호미날과 작대기입니다.


 78.

몸을 근신하고 말을 조심하며, 음식을 절제하여 과식하지 않습니다. 나는 진실을 김매는 일로 삼고 있습니다. 부드러움과 온화함이 내 소를 쟁기에서 떼어놓습니다.


 79.

노력은 내 소이므로 나를 절대 자유의 경지로 실어다 줍니다. 물러남이 없이 앞으로 나아가 그곳에 이르면 근심 걱정이 사라집니다.


 80.

이 밭갈이는 이렇게 해서 이루어지고 단 이슬의 열매를 가져옵니다. 이런 농사를 지으면 온갖 고뇌에서 풀려나게 됩니다.

註) ‘단 이슬’은 죽지 않는 것을 뜻한다.


 이때 밭을 가는 바라문 바라드바자는 커다란 청동 그릇에 우유죽을 하나 가득 담아 스승께 올렸다.

“고타마께서는 우유죽을 드십시오. 당신을 진실로 밭을 가는 분이십니다. 당신 고타마께서는 단 이슬의 열매를 가져다주는 농사를 짓기 때문입니다.”


 81.

“바라문이여, 시를 읊어 얻은 것을 나는 먹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바르게 보는 사람들(눈 뜬 사람들)의 법이 아닙니다. 시를 읊어 얻은 것을 눈 뜬 사람들은 받지 않습니다. 바라문이여. 법도를 따르는 이것이 바로 눈 뜬 사람들의 생활 태도입니다.

註) ‘여기서 ’시를 읊어‘란 설법을 말한다. 다시 말해 설법을 하고 보수를 받지 않겠다는 뜻이다.


 82.

완전에 이른 사람, 위대한 성자, 번뇌의 더러움을 다 없애고 나쁜 행위를 소멸시켜 버린사람에게는 다른 음식을 바치십시오. 그것은 마침내 공덕을 바라는 이에게 더 없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그러면 고타마시여. 이 우유죽을 저는 누구에게 드려야 합니까?”

“바라문이여, 신, 악마, 범천들이 있는 세계에서 신, 인간, 사문, 바라문을 포함한 여러 중생 가운데서 완전에 이른 사람과 그의 제자를 빼놓고는, 아무도 이 우유죽을 먹고 소화시킬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바라문이여, 이 우유죽일랑 생물이 없는 물 속에 버리십시오.”

그리하여 밭을 가는 바라문 바라드바자는 그 우유죽을 생물이 없는 물 속에 쏟아 버렸다. 그런데 그 우유죽을 물 속에 버리자마자 부글부글 소리를 내면서 많은 거품이 끓어올랐다. 마치 온종일 뙤약볕에 쬐여 뜨거워진 호미날을 물 속에 넣었을 때 부글부글 소리를 내면서 많은 거품이 이는 것과 같았다. 이때 바라문 바라드바자는 온몸이 오싹하여 두려워 떨면서 스승 곁에 다가섰다. 그리고 스승의 두 발에 머리를 숙이며 여쭈었다.

“훌륭한 말씀입니다, 고타마시여. 훌륭한 말씀입니다, 고타마시여. 마치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 주듯이, 덮인 것을 벗겨 주듯이, 길 잃은 이에게 길을 가르쳐 주듯이, 또는 ‘눈 있는 사람은 빛을 보리라’하고 어둠 속에서 등불을 비춰 주듯이, 당신 고타마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진리를 밝혀 주셨습니다. 저는 당신께 귀의합니다. 그리고 진리와 도를 닦는 수행자들의 모임에 귀의합니다. 저는 고타마 곁에 출가하여 완전한 계율을 받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밭을 가는 바라문 바라드바자는 부처님 곁에 출가하여 완전한 계율을 받았다. 그후 얼마 되지 않아 이 바라드바자는 사람들을 멀리하고 홀로 부지런히 정진하여, 마침내 수행의 최종적인 목표를 -- 많은 사람들은 바로 그것을 얻기 위해 집을 떠나 집 없는 상태가 된 것인데 -- 이 생에서 깨달아 증명하고 실천하며 살았다. ‘태어나는 일은 이제 끝났다. 수행은 이미 완성되었다. 할 일을 다 마쳤다. 이제 또다시 이런 생사를 받지 않는다.’라고 깨달았다. 그리하여 바라드바자 장로는 성인의 한사람이 되었다.


 


 대장장이 춘다



 83.

대장장이네 아들 춘다가 말했다.

“위대하고 지혜로운 성인, 눈을 뜬 어른, 진리의 주인, 집착을 떠난 분, 최고의 인간, 뛰어난 마부께 저는 묻겠습니다. 세상에는 어떤 수행자들이 있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註) 춘다는 부처님 당시 부유했던 금속세공인이다.


 84.

스승은 대답하셨다.

“춘다여, 네 종류의 수행자가 있고, 다섯 번째는 없느니라. 지금 그 물음에 답하겠다. ‘도의 승리자’ ‘도를 말하는 사람’ ‘도에 의해 사는 사람’ 그리고 ‘도를 더럽히는 자’이니라.”


 85.

대장장이 춘다가 말했다.

“눈을 뜬 사람은 누구를 가리켜 ‘도의 승리자’라고 부르십니까? ‘도를 말하는 사람’은 어째서 다른 사람과 견줄 수 없으며, ‘도에 의해 산다’는 것은 무슨 뜻인지 설명해 주십시오. 그리고 ‘도를 더럽히는 자’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십시오.


 86.

“의혹을 넘어서고, 고뇌를 이기고 열반을 즐기며, 탐욕을 버리고 신들을 포함한 온 세계를 이끄는 사람, 이런 사람을 ‘도의 승리자’라고 눈을 뜬 사람들은 말한다.


 87.

이 세상에서 가장 으뜸가는 것을 가장 으뜸가는 것으로 알고 법을 설하고 판별하는 사람, 의혹을 버리고 동요하지 않는 성인을 수행자들 중에서 둘째로 ‘도를 말하는 사람’이라 부른다.


 88.

잘 설명된 진리의 말씀인 도에 의지해 살면서 스스로 절제하고, 깊이 생각해 잘못된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을 수행자들 중에서 셋째로 ‘도에 의해 사는 사람’이라 부른다.


 89.

맹세한 계율을 잘 지키는 체하지만, 고집 세고 가문을 더럽히며, 오만하고 남을 속이며, 자제력 없고 말많고 그러면서도 잘난 체하는 사람을 가리켜 ‘도를 더럽히는 자’라고 한다.


 90.

학식이 있고 현명한 재가 수행자는, ‘그들 네 종류의 수행자는 다 이와 같다.’고 알아, 그들을 통찰하여 그와 같음을 보더라도 믿음이 변하지 않는다. 그는 더렵혀진 것과 더렵혀지지 않은 것, 깨끗한 이와 깨끗하지 않은 자를 혼동할 염려가 없기 때문이다.“


 


 파멸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날 거룩한 스승께서는 사밧티의 제타 숲, 외로운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 주는 장자의 동산에 계셨다. 그때 모습이 아름다운 한 신이 한 밤중이 지나 제타 숲을 두루 비추며 스승께 가가이 다가왔다. 그리고 예의를 갖춰 절한 뒤, 한 쪽에 서서 시로써 물었다.

註) ‘사밧티의 제타 숲, 외로운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 주는 장자의 동산’은 지금의 인도 우타푸라데시 주 사헤트 마헤트에 있는 기원정사jetavana라는 절을 말한다.


 91.

“파멸하는 사람에 대해서 고타마께 여쭈어 보겠습니다, 파멸에 이르는 문은 어떤 것입니까? 스승께 그것을 묻고자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92

스승은 대답하셨다.

“잘되는 사람도 알아보기 쉽고, 파멸하는 사람도 알아보기 쉽다.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은 잘 되고, 진리를 싫어하는 사람은 파멸한다.


 93.

“잘 알겠습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이것이 첫째 파멸의 문입니다. 스승님, 둘째 것을 말씀해 주십시오. 파멸의 문은 무엇입니까?”


 94.

“나쁜 사람들을 가까이하고 착안 사람들을 멀리하며, 나쁜 사람이 하는 일을 좋아하면 이것은 파멸의 문이다..”


 95.

“잘 알겠습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이것이 둘째 파멸의 문입니다. 스승님 셋째 것을 말씀해 주십시오. 파멸의 문은 무엇입니까?”


 96.

“아무 때나 잠자는 버릇이 있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버릇이 있고, 분발하여 정진하지 않고 게으르며, 걸핏하면 화를 내는 사람이 있다. 이것은 파멸의 문이다.”


 97.

“잘 알겠습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이것이 셋째 파멸의 문입니다. 스승님 넷째 것을 말씀해 주십시오. 파멸의 문은 무엇입니까?”


 98.

“자기는 풍족하게 살고 있으면서 늙고 병든 부모는 돌보지 않는 사람이 있다, 이것이 파멸의 문이다.”


 99.

“잘 알겠습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이것이 넷째 파멸의 문입니다. 스승님 다섯째 것을 말씀해 주십시오. 파멸의 문은 무엇입니까?”


 100.

“바라문이나 사문 또는 다른 걸식하는 이를 거짓말로 속인다면, 이것은 파멸의 문이다.”

註) 사문은 바라문 이외의 수행자인데, 그들은 베다 성전을 신봉하지 않았다. 이 바라문과 사문이 그 당시 종교계의 대표적인 그룹이었다. <주석서>에 의하면, 사문에게 ‘무엇이든 필요한 것이 있으면 말해 주십시오’라고 하여 필요한 것을 말하게 한 다음, 그것을 주지 않으면 속이는 일이 된다고 했다.


 101.

“잘 알겠습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이것이 다섯째 파멸의 문입니다. 스승님 여섯째 것을 말씀해 주십시오. 파멸의 문은 무엇입니까?”


 102.

“엄청나게 많은 재물과 먹을 것이 풍족한 사람이 그것을 혼자서만 독차지한다면, 이것은 파멸의 문이다.”


 103.

“잘 알겠습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이것이 여섯째 파멸의 문입니다. 스승님 일곱째 것을 말씀해 주십시오. 파멸의 문은 무엇입니까?”


 104.

“혈통을 뽐내고 재산과 가문을 자랑하면서 자기 친척을 멸시하는 사람이 있다. 이것이 파멸의 문이다.”


 105.

“잘 알겠습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이것이 일곱째 파멸의 문입니다. 스승님 여덟째 것을 말씀해 주십시오. 파멸의 문은 무엇입니까?”


 106.

“여자에게 미치고 술과 도박에 빠져, 버는 대로 다 잃어버리는 사람이 있다. 이것이 파멸의 문이다.”


 107.

“잘 알겠습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이것이 여덟째 파멸의 문입니다. 스승님 아홉째 것을 말씀해 주십시오. 파멸의 문은 무엇입니까?”


 108.

“자기 아내로 만족하지 않고, 매춘부와 놀아나고 남의 아내와 어울린다면, 이것은 파멸의 문이다.”


 109.

“잘 알겠습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이것이 아홉째 파멸의 문입니다. 스승님 열째 것을 말씀해 주십시오. 파멸의 문은 무엇입니까?”


 110.

“한창때가 지난 남자가 틴발 열매처럼 불룩한 젖가슴을 가진 젊은 여인을 유혹하고 그녀에게 질투하는 일로 밤잠을 이루지 못한다면, 이것은 파멸의 문이다.”


 111.

“잘 알겠습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이것이 열째 파멸의 문입니다. 스승님 열한번째 것을 말씀해 주십시오. 파멸의 문은 무엇입니까?”


 112.

“술과 고기 맛에 빠져 재물을 헤프게 쓰는 여자나 남자에게 집안 일을 맡긴다면, 이것은 파멸의 문이다.”


 113.

“잘 알겠습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이것이 열한번째 파멸의 문입니다. 스승님 열두번째 것을 말씀해 주십시오. 파멸의 문은 무엇입니까?”


 114.

“크샤트리아 집안에 태어난 사람이 권세는 작은데 욕망만 커서, 이 세상에서 왕위를 얻고자 한다면, 이것은 파멸의 문이다.


 115.

세상에는 이와 같은 파멸의 문이 있다는 것을 잘 살펴, 현자와 성자들은 진리를 보고 행복한 세계에 이른다.“


 


 천한 사람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날 거룩한 스승께서는 사밧티의 젯타 숲, 외로운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 주는 장자의 동산에 계셨다. 그때 스승께서는 오전에 바리때와 가사를 걸치고 밥을 빌러 사밧티에 들어가셨다. 


그때 불을 섬기는 바라문 바라드바자의 집에는 성화가 켜지고 재물이 올려져 있었다. 스승은 사밧티의 거리에서 탁발하면서 그의 집에 가까이 가셨다.

불을 섬시는 바라문 바라드바자는 스승이 멀리서 오는 것을 보더니 말했다.

“까까중아 거기 있거라. 엉터리 사문아, 거기 멈춰라. 천한 놈아 거기 섰거라.”

이렇게 당한 스승께서는 불을 섬기는 바라문 바라드바자에게 말씀하셨다.

“바라문이여, 도대체 당신은 어떤 사람이 참으로 천한 사람인지 알고나 있소?”

註) ‘까까중아 거기 있거라. 엉터리 사문아, 거기 멈춰라. 천한 놈아 거기 섰거라’는, 신성한 불을 섬기는 바라문 바라드바자가 그 신성한 불이 더렵혀질까 봐 스승에게 화를 낸 것이다.


“고타마여, 나는 사람을 천하게 만드는 조건을 알지 못합니다. 아무쪼록 사람을 천하게 만드는 조건이 무엇인지 알 수 있도록 나에게 그 이치를 말씀해 주십시오.”

“바라문이여, 그러면 주의깊게 잘 들으시오, 내가 말해주겠소.”

네, 어서 말씀해 주십시오.“

불을 섬기는 바라문 바라드바자는 스승께 대답했다.

스승은 말씀히셨다.

註) 조금 전까지 이놈 저놈 하면서 서슬이 퍼렇게 대들던 바라문이, 바로 그 자리에서 고분고분 대하고 있는 것을 보고 의아해 하지 않을 수 없다. 경전이나 주석서에는 그럴만한 상황 설명이 전혀 없다. 부처님의 위력에 태도가 바뀌었거나, 화를 잘 내는 사람이라 자신의 지나친 언동에 대해 이내 후회를 하게 됐는지도 모른다. 화를 잘 내는 사람은 후회도 곧잘 하는 법이니까.


 116.

“화를 잘내고 원한을 쉽게 품으며, 성질이 못돼 남의 미덕을 덮어 버리고, 그릇된 생각으로 음모를 꾸미는 사람,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시오.


 117.

한 번 태어나는 것이거나 두 번 태어나는 것이거나, 이 세상에 있는 생물을 해체고 동정심이 없는 사람,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시오.

註) ‘한 번 태어나는 것이거나 두 번 태어나는 것’이라 함은, 한 번 태어나는 것은 태에서 나는 것이고, 두 번 태어나는 것은 알에서 나는 것이다. 알은 다시 부화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118.

시골과 도시를 파괴하고 공격하여, 독재자로 널리 알려진 사람,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시오.


 119.

마을에서나 숲에서나 남의 것을 훔치려는 생각으로 이를 취하는 사람,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시오.


 120.

빚이 있어 돌려 달라는 독촉을 받으면 ‘당신에게 언제 빚진 일이 있느냐’고 발뺌을 하는 사람,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시오.


 121.

얼마 안되는 물건을 탐내여 행인을 살해하고 그 물건을 약탈하는 사람,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시오.


 122.

증인으로 불려 나갔을 때 자신의 이익이나 남을 위해, 또는 재물을 위해 거짓으로 증언하는 사람,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시오.


 123.

때로는 폭력을 쓰거나, 또는 서로 눈이 맞아 친척 또는 친구의 아내와 놀아나는 사람,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시오,


 124.

가진 재산이 풍족하면서도 늙고 병든 부모를 섬기지 않는 사람,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시오.


 125.

부모, 형제, 자매, 또는 계모를 때리거나 욕하는 사람,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시오.


 126.

상대가 이익되는 일을 물었을 때, 불리하게 가르쳐 주거나 숨긴 일을 발설하는 사람,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시오.


 127.

나쁜 일을 하면서, 아무도 자기가 한 일을 모르기를 바라며 숨기는 사람,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시오.


 128.

남의 집에 갔을 때는 융숭한 대접을 받았으면서, 그 쪽에서 손님으로 왔을 때는 예의로써 보답하지 않는 사람,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시오.

註) 찾아온 손님을 기꺼이 맞으라는 교훈은 고대 인도에서 널리 강조되었다.


 129.

바라문이나 사문 또는 걸식하는 사람을 거짓말로 속이는 사람,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시오.


 130.

식사 때가 되었는데도 바라문이나 사문에게 욕하며 먹을 것을 주지 않는 사람,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시오.


 131.

어리석음에 이끌려 변변치 않은 물건을 탐내어 사실이 아닌 일을 말하는 어리석은 사람,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시오.


 132.

자기를 내세우고 남을 무시하며, 스스로의 교만 때문에 비굴해진 사람,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시오.


 133.

남을 괴롭히고 욕심이 많으며, 인색하고 덕이 없으면서 존경을 받으려 하며,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사람, 그를 천한사람으로 아시오.


 134.

깨달은 사람을 비방하고 출가자나 재가 수행자들을 헐뜯는 사람,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시오.


 135.

사실은 성자(아라한)도 아니면서 성자라고 지칭하는 사람은 전 우주의 도둑이오. 그런 사람이야말로 가장 천한 사람이오. 내가 당신에게 말한 이러한 사람들은 모두가 참으로 천한 사람이오.

註) 깨닫지 못했으면서 자칭 깨달았노라고 하면 가장 큰 거짓말이 되어 승단으로부터 축출을 당한다.


 136.

날 때부터 천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오. 때어나면서부터 바라문이 되는 것도 아니오. 그 행위에 의해서 천한 사람도 되고 바라문도 되는 것이오.


 137.

나는 한 사람을 예로 들겠으니 이것으로 내 말뜻을 알아 들으시오. 찬다라족의 아들이며, 개백정 마탕가로 세상에 알려진 사람이 있었소.

註) 찬다라족은 천민의 한 종족이다. 그들은 주로 도살업에 종사했다.


 138.

그 마탕가는 얻기 어려운 최상의 지혜를 얻었소. 많은 왕족과 바라문들이 그를 섬기려 모여들었소.


 139.

그는 신들의 길, 더러운 먼지를 떨어 버린 성스러운 길에 들어섰으며, 탐욕을 버리고 범천의 세계에 가게 되었소. 천한 태생인 그가 범천의 세계에 태어나는 것을 아무도 막을 수 없었소.


 140.

[베다]를 외는 자의 집에서 태어나 베다의 글귀에 친숙한 바라문들도 때로 나쁜 행위에 빠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소.


 141.

이와 같이 되면 현세에서는 비난을 받고 내세에는 나쁜 곳에 태어나오. 신분이 높은 태생도 그들이 나쁜 곳에서 태어나는 것을, 그리고 비난 받는 것을 막을 수는 없소.

註) 나쁜 곳이란 한문으로는 악취惡趣, 악도惡道라고 번역한다. 흔히 지옥, 아귀, 축생,을 말하는데 수라修羅를 추가하기도 한다.


 142.

날 때부터 천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오. 날 때부터 바라문이 되는 것도 아니오. 오로지 그 행위에 의해서 천한 사람도 되고 바라문도 되는 것이오.“

이와 같이 말씀하셨을 때 불을 섬기는 바라문 바라드바자는 스승께 말했다.

“훌륭한 말씀이십니다, 고타마시여. 훌륭한 말씀이십니다, 고타마시ㅣ여. 마치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 주듯이, 덮인 것을 벗겨 주듯이, 길 잃은 이에게 길을 가르쳐 주듯이, 또는 ‘눈이 있는 사람은 빛을 볼 것이다’하고 어듬속에서 등불을 비춰 주듯이, 당신 고타마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진리를 밝혀 주셨습니다. 저는 당신께 귀의합니다. 그리고 진리와 도를 닦는 수행자의 모임에 귀의합니다. 당신 고타마께서는 저희들을 재가 수행자로서 받아 주십시오. 오늘부터 목숨이 다할 때까지 귀의하겠습니다.”


 


 자비



 143.

사물에 통달한 사람이 평화로운 경지에 이르러 해야 할 일은 다음과 같다. 유능하고 정직하고, 말씨는 상냥하고 부드러우며, 잘난 체하지 말아야 한다.


 144.

만족할 줄 알고 많은 것을 구하지 않고, 잡일을 줄이고 생활을 간소하게 하며, 모든 감각이 안정되고 지혜로워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으며, 남의 집에 가서도 욕심을 내지 않는다.


 145.

현명한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살 만한 비열한 행동을 결코해서는 안 된다.살아 있는 모든 것은 다 행복하라. 평안하라. 안락하라.


 146.

어떠한 생물일지라도, 약하거나 강하거나 굳세거나, 그리고 긴 것이건 짧은 것이건 중간치건, 굵은 것이건 가는 것이건, 또는 작은 것이건 큰 것이건,


 147.

눈에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것이나, 멀리 살고 있는 것이나, 가까이 살고 있는 것이나, 이미 태어난 것이나 앞으로 태어날 것이나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다 행복하라.


 148.

어느 누구도 남을 속여서는 안된다. 또 어디서나 남을 경멸하여서도 안 된다. 남을 곯려 줄 생각으로 화를 내어 남에게 고통을 주어서도 안된다. 


 149.

마치 어머니가 목숨을 걸고 외아들을  지키듯이, 모든 살아있는 것에 대해서 한량 없는 자비심을 발하라.


 150.

또한 온 세계에 대해서 무한한 자비를 행하라. 위로 아래로 옆으로, 장애도 원한도 적의도 없는 자비를 행하라,


 151.

서 있을 때나 길을 갈 때나 앉아 있을 때나 누워서 잠들지 않는 한, 이 자비심을 굳게 가지라. 이 세상에서는 이러한 상태를 신선한 경지라 부른다.


 152.

온갖 빗나간 생각에 흔들리지 말고, 계율을 지키고 지혜를 갖추어 모든 욕망에 대한 집착을 버린 사람은 다시는 인간의 모태에 드는 일이 없을 것이다.

註) 모태에 드는 일이 없을 것이라는 말을 윤회가 없다는 뜻이다.


 


 설산에 사는 자



 153.

칠악 야차가 말했다.

“오늘은 보름, 포살 날이다. 눈부신 밤이 가까워졌다. 자,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스승 고타마를 만나러 가자.”

註) ‘야차’는 범어 약사yaksa에서 음역된 말인데, 본래는 신적 존재, 영적 존재를 의미했다. 그러나 후기에는 공중을 날아다니는 포악한 귀신의 일종으로 생각되었다. 사람의 마음을 어지럽히고 생명을 앗아가기도 하는 귀신의 한 가지다. ‘포살’은 범어 우포사타uposata에서 온 말로, 한 달에 보름과 그믐 두 차례 출가 수행자들이 불전에 모여 계율을 읽고 지은 허물이 있으면 참회하는 것을 말한다.


 154.

설산 야차가 말했다.

“그의 마음은 모든 살아 있는 것들에 대해서 편히 안정되어 있을까. 그리고 좋아하는 것이나 좋아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그의 생각은 스스로를 자제할 수 있을까.”


 155.

칠악 야차는 대답했다.

“그분의 마음은 모든 살아 있는 것에 대해서 편히 안정되어 있다. 그리고 좋아하는 것이나 좋아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그분의 생각을 스스로를 잘 자제할 수 있다.


 156.

설산 야차가 말했다.

“그는 주지 않는 것은 가지려 하지 않을까. 그는 살아 있는 것을 죽이려 하지 않을까. 그는 게으르지 않을까. 그리고 그는 명상을 멈추고 있지 않을까.”


 157.

칠악 야차는 대답했다.

“그분은 주지 않는 것은 가지려 하지 않는다. 그분은 산 것은 죽이려 하지 않는다. 그분은 게으르지 않다. 눈을 뜬 사람은 명상을 멈추지 않는다.”


 158.

설산 야차가 말했다.

“그는 거짓말을 하지 않을까. 거친 욕설을 하지 않을까. 이간질을 하지 않을까.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을까.”


 159.

칠악 야차는 대답했다.

“그분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분은 거친 욕설을 하지 않는다. 그분은 이간질을 하지 않는다. 그분은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는다.”


 160.

설산 야차가 말했다.

“그는 욕망의 쾌락에 빠지는 일은 없을까. 그의 마음은 혼탁하지 않을까. 마음의 방황에서 벗어났을까. 그리고 모든 사물을 똑똑히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을까.”


 161.

칠악 야차는 대답했다.

 “그분은 욕망의 쾌락에 빠지지 않는다. 그분의 마음은 혼탁하지 않다. 모든 방황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모든 사물을 명확히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다.”


 162.

설산 야차가 말했다.

“그는 밝은 지혜를 갖추고 있을까. 그의 행동은 순수할까. 그는 온갖 번뇌의 때를 소멸해 버렸을까. 그는 이제 또다시 태어나는 일은 없을까.”


 163.

칠악 야차는 대답했다.

그분은 밝은 지혜를 갖추었다. 그분의 행동은 순수하다. 그분은 온갖 번뇌의 때를 소멸해 버렸다. 그리고 그분은 이제 다시는 세상에 태어나는 일이 없다.“


 163 - 1.

설산 야차가 말했다.

“성인의 마음은 행동과 말에 잘 나타나 있다. 밝은 지혜와 맑은 수행을 갖추고 있는 그를 그대가 찬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163 - 2.

성인의 마음은 행동과 말에 잘 나타나 있다. 밝은 지혜와 맑은 스행을 갖추고 있는 그를 그대가 기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164.

칠악 야차가 말했다.

“성인의 마음은 행동과 말에 잘 나타나 있다. 자, 그럼 우리는 밝은 지헤와 맑은 수행을 가지고 있는 고타마를 만나러 가자.”


 165.

설산 야차가 말했다.

“그 성인의 정강이는 영양과 같이 여위고 가늘다. 그분은 지혜롭고, 많이 먹지 않으며, 탐욕스럽지 않고, 숲속에서 조용히 사색하고 있다. 자, 우리는 고타마를 만나러 가자.

註) 깨달은 사람의 정강이가 영양과 같다는 말 속에는, 그 당시 수행자의 이상적인 신체 조건이 제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수행자는 살이 Wu서도 안 되며, 많이 먹어서도 안 된다. 


 166.

욕망을 돌아보는 일 없이 마치 사자처럼, 코끼리처럼 홀로 가는 그에게 우리는 물어보자. 죽음의 멍에에서 벗어나는 길을.“


 167

두 야차가 함께 말했다.

“열어 보이는 분, 풀어서 밝히는 분, 모든 사물의 궁극에 이르고 원망과 두려움을 초월하여 눈을 뜬 고타마께 우리는 물어보자.”


 168

설산 야차가 물었다.

“세상은 무엇으로 인해 생겨났습니까. 무엇으로 인해 사랑하게 됩니까. 세상 사람들은 무엇에 집착하고 있으며, 또 무엇에 괴로워하고 있습니까?”


 169.

스승은 대답하셨다.

“설산에 사는 자여, 여섯가지 것으로 인해 세상은 생겨 났고, 여섯 가지 것으로 인해 사랑하게 되고, 사람들은 여섯 가지 것에 접착하고 있으며, 또 그 여섯 가지 것에 괴로워하고 있다.”

註) 여섯 가지는 눈, 귀, 코, 혀, 몸, 뜻意志를 가리킨다. 이를 육근六根 또는 육입六入이라고 한다.


 170.

“세상 사람들이 괴로워한다는 그 집착이란 무엇입니까. 거기서 벗어나는 길을 말씀해 주십시오. 어떻게 하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까?”


 171.

“세상에는 다섯 가지의 욕망의 대상이 있고 의지의 대상은 그 여섯번째이다. 그런 것에 대한 탐욕에서 벗어난다면 곧 괴로움에서 벗어나리라.

註) 다섯 가지 욕망의 대상은 형태, 소리, 향기 , 맛, 감촉 등 오관五官의 대상이다.


 172.

이와 같이, 세상에서 벗어나는 길을 그대들에게 사실대로 밝혔다. 이 일을 나는 그대들에게 말했다. 이렇게 하면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된다고.“


 173.

“이 세상에서 어떤 사람이 거센 흐름을 건널 수 있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어떤 사람이 큰 바다를 건널 수 있겠습니까. 의지할 것도, 붙잡을 것도 없는 깊은 바다에 들어가면 어떤 사람이 가라앉지 않습니까?”

註) 거센 흐름은 윤회의 생존을 비유한 말이다. 때로는 바다에도 비유한다.


 174.

“항상 계율을 몸에 지니고 지혜가 있고 마음을 한곳에 모아 안으로 살피고 염원이 있는 사람, 그런 사람만이 건너기 어려운 거센 흐름을 능히 건널 수 있다.


 175.

관능의 욕망에서 떠나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고 쾌락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만이 깊은 바다에 가라 앉지 않을 수 있다.“


 176.

설산 야차는 자기 동료들에게 말했다.

“지혜가 깊고 심오한 뜻을 깨닫고 아무것도 갖지 않고 육체의 욕망에 집착하지 않으며 모든 구속에서 벗어나 천상의 길을 가는 저 위대한 선인을 보라.

註) 천상의 길은 진리의 길을 말한다.


 177.

명성이 높고 심오한 뜻을 깨닫고 지혜를 가르쳐 주고 욕망의 집착에서 벗어나 모든 것을 알고 거룩한 길을 가는 저 위대한 선인을 보라.


 178.

오늘 우리는 눈부신 태양을 보고, 아름다운 새벽을 만나 상쾌한 기분으로 새날을 맞이했다. 거센 흐름을 건너 번뇌의 때가 묻지 않은, 깨달은 사람을 만났기 때문이다.


 179.

여기 1천이나 되는 야차의 무리들은 초능력이 있고 명성도 가지고 있지만, 우리들은 모두 당신께 귀의합니다. 당신은 우리들의 더 없는 스승이기 때문입니다.


 180.

우리들은 마을에서 마을로, 산에서 산으로 돌아다니겠습니다. 깨달은 분과 진리의 위대함에 예배드리면서.“


 


 알라바카 야차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거룩하신 스승께서는 알라비국 알라바카 야차의 처소에 머물고 계셨다. 그때 알라바카 야차가 밖에서 돌아와 스승에게 말했다.

“사문이여, 나가 주시오.”

“좋다, 친구여.”

스승은 나가셨다.

또 야차는 말했다.

“사문이여, 들어오시오.”

“좋다, 친구여.”

스승은 들어가셨다.

또다시 알라바카 야차가 말했다.

“사문이여, 나가주시오.”

“좋다, 친구여.”

스승은 다시 나가셨다.

또 야차가 말했다.

“사문이여, 들어오시오.”

“좋다, 친구여.”

스승은 또 들어가셨다.

세 번째 또 알라바카 야차가 스승에게 말했다.

“사문이여, 나가주시오.”

“좋다, 친구여.”

스승은 나가셨다.

또다시 야차는 말했다.

“사문이여, 들어오시오.”

“좋다, 친구여.”

스승은 들어가셨다.

네 번째 또 알라바카 야차가 말했다.

“사문이여, 나가주시오.”

그러자 스승은 대답하셨다.

“나는 더 나가지 않겠다. 네 할 일이나 해라.”

야차가 말했다.

“사문이여, 제가 당신에게 묻겠습니다. 만일 당신이 내게 대답을 못한다면, 당신의 마음을 어지럽히고 당신의 심장을 찢은 뒤, 두 다리를 붙잡아 갠지스 강 건너로 내 던지겠소.”

스승은 대답하셨다.

“친구여, 신, 악마, 범천을 포함한 세계에서, 그리고 사문, 바라문, 신, 인간을 망라한 모든 살아 있는 것 중에서 내 마음을 어지럽히고 내 심장을 찢은 뒤, 두 다리를 붙잡아 갠지스 강 건너로 내던질 만한 자를 나는 아직 보지 못했노라. 친구여, 그대가 묻고 싶은 것이 있거든 무엇이든 물어보라.”

알라바카 야차는 스승에게 다음의 시로써 여쭈었다.


 181.

이 세상에서 사람에게 으뜸가는 재산은 무엇입니까.

어떠한 선행이 안락을 가져옵니까.

맛 중에서 참으로 맛있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그리고 어떻게 사는 것을 최상의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182.

스승은 대답하셨다.

“이세상에서 믿음이 으뜸가는 재산이다.

덕행이 두터우면 안락을 가져오고,

진실이야말로 맛 중의 맛이며,

지혜롭게 사는 것이 최상의 삶이라 할 수 있다.“


 183.

“사람은 무엇으로 생사의 거센 흐름을 건넙니까. 무엇으로 바다를 건너며, 무엇으로 고통을 극복합니까? 그리고 무엇으로 완전히 맑고 깨끗해 질 수 있습니까?”


 184.

“사람은 신앙의 힘으로 거센 흐름을 건너고, 정진으로 바다를 건너며, 근면으로써 고통을 극복할 수 있고, 지혜로서 완전히 맑고 깨끗해진다.”


 185.

사람은 어떻게 해서 지혜를 얻습니까. 어떻게 해서 재물을 얻고, 어떻게 해서 명성을 떨치며, 어떻게 해서 친구를 사귑니까. 또 어떻게 하면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갔을 때 걱정이 없겠습니까?“


 186.

“성자들이 열반을 얻는 이치를 믿고 부지런히 배우면 그 가르침을 들으려는 열망에 의해서 지혜를 얻는다.


 187.

적절하게 일을하고 참을성 있게 노력하면 재물을 얻는다. 성실을 다 하면 명성을 떨치고, 베품으로써 친구를 사귄다.


 188.

깊은 신앙심을 가지고 가정생활을 하는 사람에게 성실과 자재와 인내와 베품, 이 네가지 덕이 있으면, 그는 저 세상에 가서도 걱정이 없을 것이다.


 189.

만일 이세상에 성실과 자재와 인내와 베품보다 더 나은 것이 있다면, 그것을 널리 사문이나 바라문에게 물어 보라.“


 190.

야차가 말했다.

“무엇 때문에 다시 사문이나 바라문에게 널리 물을 필요가 있겠습니까. 저는 오늘 이 세상에 이익 되는 일을 깨달았습니다.


 191.

아, 깨달은 분께서 알라비에 살러 오신 것은, 저를 이롭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오늘 저는 남에게 베풀면 어째서 위대한 열매가 얻어지는가를 알았습니다.


 192.

저는 시골에서 시골로 도시에서 도시로 돌아다니겠습니다. 깨달은 분과 진리의 위대함에 예배드리면서.“


 


 극복



 193.

걷거나 서고, 앉거나 눕고, 몸을 구부리거나 편다. 이것은 육체의 동작이다.


 194.

이 몸은 뼈와 힘줄로 연결되어 있고 살과 살갗으로 덮여 있어, 있는 그대로 볼 수는 없다.


 195.

이 몸의 내부는 위와 장과 간, 방광, 심장, 폐장, 신장, 비장으로 가득차 있다.


 196.

그리고 콧물, 침, 땀, 지방, 피, 관절액, 담즙, 기름 등이 있다.


 197.

또 이 몸의 아홉 구멍에서는 끊임없이 오물이 나온다. 눈에서는 눈곱, 귀에서는 귀지.“

註) 아홉 구멍은 양쪽 눈, 양쪽 귀, 양쪽 콧구멍, 입, 항문, 생식기를 가리킨다. 


 198.

코에서는 콧물, 입에서는 침과 가래, 그리고 온몸에서는 땀과 때가 나온다.


 199.

또 머릿속의 빈 곳은 뇌수로 가득 차 있다. 그런데 어리석은 사람들은 무지에 이끌려서 이런 육신을 깨끗한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200.

또 죽어서 쓰러졌을 때는 몸이 부어서 검푸르게 되고, 무덤에 버려져 친척도 그것을 돌보지 않는다.


 201.

개나 여우, 늑대, 벌레들이 파먹고, 까마귀나 독수리 같은 날짐승이 쪼아먹는다.


 202.

이 세상에서 지혜로운 수행자는, 깨달은 사람의 말씀을 듣고 그곳을 완전히 이해한다. 왜냐하면 그는 있는 그대로 보기 때문이다.


 203.

‘저 죽은 시체도 얼마 전까지는 살아 있는 내 몸뚱이와 같은 것이었다. 살아 있는 이 몸도 언젠가는 죽은 저 시체처럼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알고 안팍으로 몸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야 한다.


 204.

이 세상에서 육체의 욕망을 떠난 지혜로운 수행자는 죽지 않고, 평화롭고 멸하지 않는 열반의 경지에 도달한다.


 205.

인간의 이 몸은 부정하고 악취를 풍기므로, 꽃이나 향으로 은폐되어 있다. 그렇지만 온갖 오물로 가득 차 있어 여기저기서 그것이 흘러나오고 있다.


 206.

이런 몸뚱이를 지니고 있으면서 스스로 잘난 체하거나 남을 무시한다면, 그는 눈먼 소경이 아니고 그 무엇이겠는가.


 


 성인



 207.

친한 데서 두려움이 생기고 가정 생활에서 더러운 먼지가 낀다. 그러므로 친함도 없고 가정 생활도 없다면 그것이 바로 성인의 생활이다.“

註) 성인의 원어는 무니muni, 즉 침묵을 지키면서 수행하는 성자를 가리킨다. 석가모니는 사캬sakya족 출신의 성인이라는 뜻이다.


 208.

이미 돋아난 번뇌의 싹을 잘라 버리고 새로 심지 않고 지금 생긴 번뇌를 기르지 않는다면, 이 홀로 가는 사람을 성인이라 부른다. 저 위대한 성인은 절대 평화의 경지를 본 것이다.“


 209.

모든 번뇌가 일어나는 근본을 살펴 그 원인을 헤아려 알고 그것에 집착하는 마음을 기르지 않는다면, 그는 참으로삶과 죽음을 뛰어넘은 절대 평화의 세계를 바라본 성인이다. 그는 이미 망상을 초월했기 때문에 미궁에 빠진 자의 무리속에 끼지 않는다.


 210.

모든 집착이 일어나는 곳을 알아 아무 것도 바라지도 않고, 탐욕을 떠나 욕심이 없는 성인은 무엇을 하려고 따로 구하지 않는다. 그는 이미 절대 평화의 세계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211.

모든 것을 이기고 모든 것을 알며, 지극히 지혜롭고 여러 가지 사물에 더럽혀지지 않으며, 모든 것을 버리고 집착을 끊어 해탈한 사람, 현자들은 그를 성인으로 안다.


 212.

지혜의 힘이 있고 계율과 맹세를 잘 지키고, 마음이 한곳으로 집중되어 있고 명상을 즐기며, 생각이 깊고 집착에서 벗어나 거칠지 않고, 번뇌의 때가 묻지 않은 사람, 현자들은 그를 성인으로 안다.


 213.

홀로 걸어가고, 게으르지 않으며, 비난과 칭찬에도 흔들리지 않고, 소리에 놀리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남에게 이끌리지 않고 남을 이끄는 사람, 현자들은 그를 성인으로 안다.


 214.

남들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거나 욕을 하더라도 목욕하는 강가의 기둥처럼 태연하고, 육체의 욕망을 떠나 모든 감각을 잘 다스리는 사람, 현자들은 그를 성인으로 안다.

註) ‘목욕하는 강가의 기둥’은, 강이나 연못 등 사람들이 목욕을 하는 곳에 네모와 팔모의 기둥이 있어, 그 기둥에 대고 몸을 문지르며 씻는데, 이 기둥은 귀한 사람이 오거나 천한 사람이 오거나 조금도 우쭐거리지도 않고 비굴하지도 않다.


 215.

베를 짜는 북처럼 곧고 편안하게 서서 모든 악한 행위를 싫어하고, 바른 것과 바르지 않은 것을 잘 알고 있는 사람. 현자들은 그를 성인으로 안다.


 216.

스스로 자재하여 악을 행하지 않고, 젊었을 때나 중년이 되어서도 자신을 억제한다. 그는 남을 괴롭히지 않고 남한테서 괴로움을 받지도 않는다. 현자들은 그를 성인으로 안다.


 217.

남이 주는 것으로 생활하고, 새 음식이거나 먹던 음식이거나 또는 먹고 남은 찌꺼기를 받더라도 먹을 것을 준 사람을 칭찬하지도 않고 화를 내어 욕하지도 않는 사람. 현자들은 그를 성인으로 안다.


 218.

성의 접촉을 끊고 어떤 젊은 여성에게도 마음을 빼앗기지 않으며, 교만하지도 태만하지도 않은, 그래서 속박에서 벗어난 사람. 현자들은 그를 성인으로 안다.


 219.

세상을 잘 알고 최고의 진리를 보고 거센 흐름과 바다를 건넌 사람, 속박을 끊어버리고 어디에도 의존하지 않으며 번뇌의 때가 묻지 않은 사람. 현자들은 그를 성인으로 안다.


 220.

출가한 이와 집에 있는 이는 거처와 생활 양식이 같지 않다. 집에 있는 이는 처자를 부양하지만, 계율을 잘 지키는 이(출가자)는 무엇을 보아도 내 것이라는 집착이 없다. 집에 있는 이는 남의 목숨을 해치고 절제하기 어렵지만, 성인은 자제하고 항상 남의 목숨을 보호한다.


 221.

마치 하늘을 나는 목이 푸른 공작새가 아무리 애를 써도 백조를 따를 수 없는 것처럼, 집에 있는 이는 세속을 떠나 숲 속에서 명상하는 수행자에게 미치지 못한다.


二. 작은 장


 


 보배



 222.

모든 살아있는 것들이여, 지상에 사는 것이건 공중에 사는 것이건 다들 기뻐하라. 그리고 마음을 가다듬고 내 말을 들으라.


 223.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이여, 귀를 기울이라. 밤낮으로 재물을 바치는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어라. 함부로 대하지 말고 그들을 지키라.


 224.

이 세상과 저 세상의 그 어떤 부라 할지라도, 천상의 뛰어난 보배라 할지라도, 우리들의 완전한 스승에게 견줄 만한 것은 없다. 이 뛰어난 보배는 눈 뜬 사람 안에 있다.

이 진리에 의해서 행복하라.


 225.

마음의 통일을 얻은 스승은 번뇌와 욕망과 죽음이 없는 경지에 도달한다. 그 이치와 견줄 만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이 뛰어난 보배는 그 이치 속에 있다. 이 진리에 의해서 행복하라,


 226.

가장 뛰어난 부처가 찬탄해 마지않는 맑고 고요한 마음의 안정을 사람들은 ‘빈틈없는 마음의 안정’이라고 한다. 이 마음의 안정과 견줄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 뛰어난 보배는 그 이치 속에 있다. 이 진리에 의해서 행복하라,


 227.

착한 사람들이 칭찬하는 여덟 지위를 가진 사람은 이러한 네 쌍의 사람이다. 그들은 행복한 사람(부처님)의 제자이며 베품을 받을 만한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베푼 사람은 커다란 열매를 얻는다. 이 뛰어난 보배는 승단 안에 있다. 이 진리에 의해서 행복하라.

註) ‘여덟 지위’란 불교의 성자를 예류預流, 일래一來, 불환不還, 아라한阿羅漢의 넷으로 나누는데, 이 것을 네 쌍四雙이라 한다. 그 하나하나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지위位=向와 도달한 경지果로 나누기 때문에 모두 여덟 자리八輩가 있는 셈이다.


 228.

고타마의 가르침에 따라 굳은 결심으로 부지런히 일하고 욕심을 버리면, 죽음이 없는 곳에 들어가고 도달해야 할 경지에 이르며 평안의 즐거움을 누리게 된다. 이 뛰어난 보배는 승단 안에 있다. 이 진리에 의해서 행복하라.


 229.

성문 밖에 선 기둥이 땅 속 깊이 박혀 있으면 거세게 불어오는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성스런 진리를 관찰하는 착한 사람은 이와 같다고 나는 말한다. 이 뛰어난 보배는 승단 안에 있다. 이 진리에 의해서 행복하라.


 230.

깊은 지혜를 가진 사람이 말씀하신 거룩한 진리를 분명하게 아는 사람들은, 어떤 커다란 잘못에 빠지는 일이 있다 할지라도 여덟 번째 생존을 받지는 않는다. 이 뛰어난 보배는 승단 안에 있다. 이 진리에 의해서 행복하라.

註) ‘여덟번째 생존’이란 예류과豫流果를 얻은 성자가 죽은 후 생존을 거듭할지라도 일곱번째는 열반에 들어가기 때문에 여덟번째 생존에 이르는 일이 없다.


 231.

자신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는 견해와 의심과 형식적인 신앙. 이 세 가지가 조금 남아 있다 해도, 진리를 깨닫는 순간 그것들은 사라진다. 그는 네 가지 악한 곳을 떠나, 여섯 가지 큰 죄를 다시는 범하지 않는다. 이 뛰어난 보배는 승단 안에 있다. 이 진리에 의해서 행복하라.

註) ‘네 가지 악한 곳’은 지옥, 축생, 아귀, 아수라를 말한다. ‘여섯 가지 큰 죄’는 부모와 아라한을 죽이고 부처의 몸에 피를 내고, 승단의 화합을 깨뜨리고, 이교의 교리를 추종하는 것이다.


 232.

또 그가 몸과 말과 생각으로 사소한 나쁜 짓을 했을지라도 그는 그것을 감출 수가 없다. 절대 평화의 세계를 본 사람은 감출 수가 없다. 이 뛰어난 보배는 승단 안에 있다. 이 진리에 의해서 행복하라.


 233.

초여름의 더위가 숲속의 나뭇가지에 꽃을 피우듯이, 눈 뜬 사람은 평안을 이르는 방법을 가르치셨다. 이 뛰어난 보배는 눈 뜬 사람 안에 있다. 이 진리에 의해서 행복하라.


 234.

뛰어난 것을 알고, 뛰어난 것을 주고, 뛰어난 것을 가져오는 위없는 이가 으뜸가는 진리를 설했다. 이 보배는 눈 뜬 사람 안에 있다. 이 진리에 의해서 행복하라.


 235.

묵은 업은 이미 다 했고, 새로운 업은 이제 생기지 않는다. 그 마음은 미래의 생존에 집착하지 않고, 집착의 싹을 없애고, 그 성장을 원치 않는 현자들은 들불처럼 꺼져 열반에 든다. 이 뛰어난 보배는 승단 안에 있다. 이 진리에 의해서 행복하라.


 236.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이여, 지상에 사는 것이건 공중에 사는 것이건, 신과 인간이 다 같이 섬기는 완성된 눈 뜬 사람에게 예배하자, 행복하라.


 237.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이여, 지상에 사는 것이건 공중에 사는 것이건, 신과 인간이 다 같이 섬기는 완성된 진리에 예배하자, 행복하라.


 238.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이여, 지상에 사는 것이건 공중에 사는 것이건, 신과 인간이 다 같이 섬기는 완성된 승단에 예배하자, 행복하라.


 


 비린 것



 239.

팃사 바라문이 과거의 부처님인 캇사파에게 말했다. 

“성인은 수수, 딩굴라카, 치나카 콩, 야채, 구근, 덩굴 열매를 선한 사람한테서 바르게 얻어먹으며 욕심 부리지 않고 거짓말을 안 합니다.

註) 딩굴라카는 식물의 일종


 240.

맛있게 잘 지어진 밥을 남한테 얻어서 입맛을 다시며 먹는 사람은 비린 것을 먹는 것입니다. 캇사파여.

註) 캇사파는 전생에서 부처님이 구도자였을 때를 말한다.


 241.

범천의 친족(바라문)인 당신은 잘 요리된 닭고기와 함께 쌀밥을 맛있게 먹으면서도 ‘나는 비린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캇사파여, 나는 그 의미를 당신에게 묻습니다,


 242.

캇사파는 말했다.

“산 것을 죽이는 일, 때리고 자르고 묶는 일, 훔치고 거짓말하는 일, 사기 치고 속이는 일, 그릇된 것을 배우는 일, 남의 아내와 가까이하는 일. 이것이 바로 비린 것이지 고기를 먹는 것이 비린 것이 아니다.


 243.

이 세상에서 욕망을 억제하지 않고 맛있는 것을 탐내고 부정한 생활에 어울리고 허무론을 가지고 바르지 못한 행동을 하는 어리석은 사람들. 이것이 비린 것이지 고기를 먹는 것이 비린 것이 아니다.


 244.

난폭하고 잔혹하며 험담을 하고 친구를 배신하고 무자비하며 몹시 오만하고 인색해서 아무 것도 남에게 주지 않는 사람들. 이것이 비린 것이지 고기를 먹는 것이 비린 것은 아니다.


 245.

성내고 교만하고 고집스럽고, 반항심과 속임수, 질투, 허풍이 많고, 더없이 오만하고 불량배와 어울리는 사람들. 이것이 비린 것이지 고기를 먹는 것이 비린 것이 아니다.


 246.

성질이 나쁘고 빚을 갚지 않고 밀고를 하고, 재판정에서는 위증을 하며, 정의를 가장하여 사악한 짓을 하는 등 이 세상에서 가장 몹쓸 사람들. 이것이 비린 것이지 고기를 먹는 것이 비린 것이 아니다.


 247.

살아 있는 것을 마음대로 죽이고, 남의 것을 빼앗으면서 도리어 그들을 해치려하고, 성미가 나빠 욕심 많고 난폭하며 무례한 사람들. 이것이 비린 것이지 고기를 먹는 것이 비린 것이 아니다.


 248.

살아 있는 것을 마음대로 지배하고 배반하고 부당한 행동을 하고 항상 나쁜 짓을 하는 자는, 죽어서는 암흑에 빠지며 머리를 거꾸로 처박고 지옥에 떨어진다. 이 같은 사람들이 비린 것이지 고기를 먹는 것이 비린 것은 아니다.


 249.

생선이나 고기를 먹지 않는 것도, 단식, 나체, 삭발, 결발, 먼지, 거치른 사슴가죽을 입는 것도, 불의 신을 섬기는 것도, 또는 불사의 생명을 얻기 위한 고행도, 베다의 주문, 공양, 제사나 계절에 따른 고행도 모두 의심을 넘어서지 않으면 그 사람을 청정하게 할 수 없다.


250.

감각을 지키고 다스리며 행동하라. 진리를 확립하고, 바르고 솔직한 것을 즐기고, 집착을 떠나 모든 고통을 버린 어진 이는 보고 듣는 것으로 더렵혀지지 않는다.“


 251.

이와 같은 이야기를 거룩한 스승(과거 캇사파 부처님)께서는 되풀이해 말했다. 베다의 신주에 통달한 사람(바라문)은 그것을 알았다. 비린 것을 떠나 아무것에도 걸림이 없는, 그리고 뒤따르기 힘든 성인(부처님)은 여러 가지 시구로써 그것을 말했다.


 252.

눈 뜬 사람이 가르치신-비린 것을 떠나 모든 고통을 제거하라는-훌륭한 말씀을 듣고, 바라문은 겸허한 마음으로 완전한 이에게 절하고, 그 자리에서 출가할 것을 원했다.


 


 부끄러움



 253.

부끄러움을 잊어버리고 또 싫어해서 ‘나는 당신의 친구다’라고 말하면서도 도움을 주지 않는 사람. 그는 내 친구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254.

친구들에게 실천이 없이 말만 앞세우는 사람은 ‘말만 하고 실천하지 않는 사람’임을 어진 이는 알고 있다.


 255.

우정이 끊어질까 염려하여 듣기 좋은 말을 하면서도 친구의 결점만을 보는 사람은 진정한 친구가 아니다. 아기가 엄마의 품에 안기듯이 그 사람을 의지하고, 다른 사람 때문에 그 사이가 멀어지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친구다.


 256.

일의 성과를 바라는 사람은 인간으로서 지고 가야 할 짐을 지고 기쁨을 낳고 칭찬을 받으며 안락을 가져올 터전을 닦는다.


 257.

멀어지고 떠나는 맛과 평안해지는 맛을 알고 진리의 기쁨을 마시는 사람은 고뇌를 떠나고 악을 멀리한다.


 


 더 없는 행복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날 거룩한 스승께서는 사밧티의 제타 숲, 외로운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 주는 장자의 동산에 계셨다. 그때 모습이 아름다운 신이 한밤중이 지나 제타 숲을 두루 비추며 스승께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 예의를 갖춰 절한 뒤, 한쪽에 서서 시로써 물었다.


 258.

“많은 신과 사람들은

행복을 바라고 있습니다.

으뜸가는 행복을 말씀해 주십시오.“


 259.

“어리석은 사람들을 가까이하지 말고 어진 이와 가깝게 지내며 존경할 만한 사람을 존경하는 것. 이것이 더 없는 행복이다. 


 260.

분수에 알맞는 곳에 살고 일찍이 공덕을 쌓고 스스로 바른 서원을 하는 것. 이것이 더 없는 행복이다.


 261.

지식과 기술을 쌓고 그 위에 말솜씨가 뛰어난 것. 이것이 더 없는 행복이다.


 262

부모를 섬기고 아내와 자식을 사랑하고 보호하는 것. 일에 질서가 있어 혼란스럽지 않은 것. 이것이 더 없는 행복이다.


 263.

남에게 베풀고 이치에 맞게 행동하며 적을 사랑하고 보호하는 것. 비난을 받지 않게 처신하는 것. 이것이 더 없는 행복이다.


 264.

악을 싫어해 멀리하고 술을 절제하고 덕행을 소홀히 하지 않는 것. 이것이 더 없는 행복이다.


 265.

존경과 겸손과 만족과 감사와, 때로는 가르침을 듣는 것. 이것이 더 없는 행복이다.


 266.

인내하고 온화하게 말하고 수행자를 만나고, 때로는 진리에 대한 가르침을 받는 것. 이것이 더 없는 행복이다.


 267.

수행을 하고 깨끗하게 행동하고 거룩한 진리를 깨닫고 열반의 경지를 실현하는 것. 이것이 더 없는 행복이다.


 268.

세상일에 부딪혀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걱정과 티가 없이 편안한 것. 이것이 더 없는 행복이다.


 269.

이러한 일을 한다면 어떤 일이 닥쳐도 실패하지 않는다. 어느 곳에서나 행복할 수 있다. 이것이 더 없는 행복이다.“


 


 수칠로마 야차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날 거룩한 스승께서는 가야의 탕기타 석상에 있는 수질로마 야차의 집에 계셨다. 그때 두 야차가 스승이 계신 근처를 지나가고 있었다. 카라 야차가 수칠로마 야차에게 말했다.

“그는 수행자이다.”

그러나 수칠로마 야차는 이렇게 말했다.

“그가 진정한 수행자인지, 엉터리 수행자인지 내가 알때까지는 그를 수행자로 인정할 수 없다.”

수칠로마 야차는 스승께 가까이 갔다. 그러나 스승은 몸을 피하셨다. 그는 스승께 여쭈었다.

“수행자여, 당신은 나를 두려워하고 있군요.”

“친구여, 나는 그대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대와 부딪히는 것은 좋지 않다.”

“수행자여 당신에게 묻겠소. 만약 당신이 내 질문에 대답을 못한다면, 당신의 마음을 어지럽히고 당신의 심장을 찢은 뒤, 두 다리를 붙잡아 갠지스 강 건너로 내던지겠소.”

“친구여, 신, 악마, 범천을 포함한 세계에서 사문, 바라문, 신, 인간을 망라한 모든 살아 있는 것 중에서 내 마음을 어지럽히고 내 심장을 찢은 뒤, 내 두 다리를 붙잡아 갠지스 강 건너로 내던질 만한 자를 나는 아직 보지 못했노라. 친구여, 그대가 묻고 싶은 것이 있거든 무엇이든 물어보라.”

수칠로마 야차는 스승께 다음의 시로써 물었다.

註) 가야Gaya는 힌두교도들에게는 바라나시와 마찬가지로 성스러운 도시로 알려져 있다.


 270.

“탐욕과 혐오는 어디에서 생기는 것입니까.

좋고 싫은 것, 소름끼치는 일은 어디에서 생기는 것입니까.

또 온갖 망상은 어디에서 일어나 우리를 방심케 합니까,

마치 어린아이들이 잡았던 까마귀를 놓아버리는 것처럼.“


 271.

탐욕과 혐오는 자신에게서 생긴다. 좋고 싫은 것과 소름끼치는 일도 자신으로부터 생긴다. 온갖 망상도 자신에게서 생겨 방심케 된다. 마치 어린아이들이 잡았던 까마귀를 놓아버리는 것처럼.


 272.

그것들은 집착에서 생겨나고 자신에게서 일어난다. 마치 바냔 나무의 어린 싹이 가지에서 생기듯이. 널리 모든 욕망에 집착해 있는 덩굴이 숲속에 뻗어 있는 것과 같다.


 273.

야차여 듣거라. 번뇌가 어디에서 일어나는 것인지 아는 사람들은 번뇌를 버릴 수 있다. 그들은 건너기 어렵고, 아직 아무도 건넌 사람이 없는 이 거센 흐름을 건너서 다시는 사람의 몸을 받는 일이 없다.

註) ‘다시는 사람의 몸을 받는 일이 없다’는 말은, 모든 욕망과 번뇌를 초월했기 때문에 다시는 태어날 필요가 없음을 뜻한다.


 


 이치에 맞는 행동



 274.

이치에 맞는 행동과 깨끗한 행동. 이것을 더 없는 보배라고 한다. 비록 집을 떠나 출가의 몸이 되었을지라도.


 275.

만일 거친 말을 하고 남을 괴롭히기 좋아하며 짐승 같은 짓을 한다면, 그 사람의 삶은 사악해지고 더러워질 것이다.


 276.

논쟁을 좋아하고 어리석음을 깨닫지 못하는 수행자는, 눈 뜬 사람의 설법을 알아듣지 못한다.


 277.

그는 무지에 이끌려 수양을 쌓은 사람들을 괴롭히고 번뇌가 지옥으로 가는 길임을 알지 못한다.


 278.

이러한 수행자는 고난의 장소에 태어나고 사람의 모태에서 다른 모태로, 암흑에서 암흑으로 전생하며 죽은 후에도 고통을 받게 된다.


 279.

마치 똥구덩이가 세월이 지나면 똥으로 가득 차듯이, 불결한 사람은 깨끗해지기가 어렵다.


 280.

수행자들이여! 이와 같은 출가 수행자는, 사실은 집에 기대고 있는 사람이고, 빗나간 욕망에 사로잡혀 있으며 그릇된 생각과 행동을 하면서 나쁜 곳에 있는 사람인 줄을 알아라.


 281.

그대들은 힘을 합해 그런 사람을 물리치라. 쌀겨처럼 그를 키질하여 티끌처럼 날려버려라.


 282.

그리고 사실은 수행자가 아니면서 수행자인체 하는 ‘쌀겨’들도 날려 버려라. 빗나간 욕망에 사로잡혀 있고 그릇된 행동을 하며 나쁜 곳에 있는 그들을 날려 버려라.


 283.

스스로 깨끗한 이가 되고, 서로 이해하고 맑고 깨끗한 사람들과 함께 살도록 하라. 그곳에서 사이좋게 지혜롭게, 그리고 고통과 번뇌를 없애도록 하라.


 


 바라문에게 어울리는 일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날 거룩한 스승께서는 사밧티의 제타 숲, 외로운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주는 장자의 동산에 계셨다. 그때 코살라국에 사는, 큰 부자인 바라문들이―그들은 늙어 쇠약해 있었지만―스승이 계신 곳에 가까이 와서 인사를 하였다. 서로 기억에 남을만한 즐거운 인사를 나누더니 한쪽에 가서 앉았다.

큰 부자인 바라문들은 스승께 물었다.

“고타마시여, 지금의 바라문들은 옛날 바라문들이 지켜온 바라문의 법을 따르고 있는 것일까요?”

“바라문들이여, 지금의 바라문들은 옛날 바라문들이 지켰던 법을 따르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고타마시여, 별 지장이 없으시다면, 옛날 바라문들이 지켜 온 바라문의 법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그러면 바라문이여, 명심해 잘 들으시오. 내가 말을 해 드리리다.”

“듣겠습니다. 어서 말씀해 주십시오.”

스승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284.

옛 성인들은 자신을 다스리는 고행자였소. 그들은 다섯가지 욕망의 대상을 버리고 자기의 이상을 실천하였소,


 285.

바라문들에게는 가축도 없었고, 황금도 곡식도 없었소. 그러나 그들은 베다 경전 외는 것을 재산으로 삼고 곡식으로 삼아, 브라만의 창고를 지켰던 것이오.


 286.

사람들은 그들을 위해 문간에 음식을 마련해 놓았소.


 287.

아름답게 물들인 옷가지와 이불과 집을 가진 시골의 잘 사는 사람들과 도시 사람들은 모두 바라문을 찾아왔소.


 288.

바라문들은 법의 보호를 받았기 때문에 그들을 죽이거나 굴복시켜서도 안되었소. 그들이 문간에 서있는 것을 아무도 막을 수 없었소,


 289.

옛날의 바라문들은 사십 팔 년 동안 순결한 몸을 지켰소. 그들은 지혜와 덕행을 추구했던 것이오.


 290.

바라문들은 다른 종족의 여자를 얻지 않았소. 또 그들은 아내를 사지도 않았소. 그들은 서로 사랑하면서 함께 살고 화목해하며 즐거워하였소.


 291.

함께 살면서 즐거워했지만, 바라문들은 월경 때문에 아내를 멀리 해야 할 때도 결코 다른 여자와의 성 접촉을 갖지 않았소.


 292.

그들은 순결과 계율, 정직, 온화함, 고행, 부드러움과 자비와 관용을 칭찬했소.


 293.

그들 중에서 용맹하고 으뜸가는 바라문들은 끝까지 순결을 지켰소.


 294.

이 세상에 있는 지혜로운 사람들은 그들의 행동을 본받아 순결과 계율과 인내를 찬양했소.


 295

쌀과 이불과 옷가지, 가구, 기름을 시주받아 그것으로 제사를 지냈소. 그들은 제사를 지낼 때 결코 소를 잡지 않았소.


 296.

부모 형제 또는 다른 친척들과 마찬가지로 소는 우리들의 선량한 벗이오. 소한테서는 여러 가지 이익이 생기오.


 297.

소에서 생긴 약은 식료품이 되어 우리에게 기운을 주고 피부를 윤택하게 하며 또 즐거움을 주오. 소한테 이러한 이익이 있음을 알아 그들은 소를 죽이지 않았던 것이오.


 298.

바라문들은 손발이 부드럽고 몸이 크며 외모가 단정하고 명성이 있으며, 자기 의무에 충실하여 할 일은 하고 해서 안 될 일은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소. 그들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 이 세상 사람들은 행복하고 번영했소.


 299.

그런데 그들의 생각이 바뀌게 되었소. 점점 왕자의 부귀영화와 곱게 단장하고 화려하게 입은 여인들을 보게됨에 따라,


 300.

또는 준마가 이끄는 훌륭한 수레, 아름다운 옷, 여러 가지로 설계되어 잘 지어진 집을 보기 시작하면서,


 301.

바라문들은 많은 가축을 소유하고 미녀에 둘러싸여 인생의 즐거움을 누리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히고 말았소.


 302.

그래서 그들은 베다의 주문을 편찬하고, 저 감자왕에게 가져가서 말했소. ‘당신은 곡식도 재산도 풍성합니다. 제사를 지내십시오. 당신의 재산은 많습니다. 제사를 지내십시오. 당신의 재산은 많습니다.’

註) 감자왕은 석가족의 시조라고도 한다.


 303.

그래서 수레와 군사의 주인인 왕은 바라문들의 권유로 ―말에 대한 제사, 인간에 대한 제사, 화살과 창에 대한 제사, 소에 대한 제사, 아무에게나 공양하는 제사―이러한 온갖 제사를 지내고 재물을 바라문들에게 주었소.


 304.

소, 이불, 옷가지, 아름답게 꾸민 여인과 준마가 이끄는 훌륭한 수레며, 아름답게 수놓인 옷들,


 305.

쓸모있게 잘 설계된 훌륭한 집에 여러 가지 곡식을 가득 채워 바라문에게 주었소. 


 306.

이와 같이 해서 그들은 재물을 얻었는데, 이번에는 또 그것을 저장하고 싶은 생각이 났던 것이오. 그들은 욕심에 사로잡혀 많은 것을 갖고 싶어했소. 그래서 그들은 또 베다의 주문을 편찬하여 다시 감자왕을 찾아갔소.


 307.

‘물과 땅과 황금과 재물과 곡식이 살아가는데 필수품이듯이, 소도 사람들의 필수품입니다. 제사를 지내십시오, 당신의 재산은 많습니다. 제사를 지내십시오. 당신의 재산은 많습니다.’


 308.

그래서 수레와 군사의 주인인 왕은 바라문들의 권유로 수백 수천 마리의 소를 제물로 잡게 되었소.


 309.

튼튼한 다리와 날카로운 뿔을 갖고도 결코 우리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소는 양처럼 유순하고, 항아리가 넘치도록 젖을 짤 수 있었소.


 310.

칼로 소를 찌르자, 모든 신들과 조상의 신령과 제석천, 아수라, 나찰들은 ‘불법한 짓이다!’라고 소리쳤소. 


 311.

예전에는 탐욕가 굶주림과 늙음, 이 세 가지 병밖에는 없었소. 그런데 제사를 지내기 위해 많은 가축들을 죽인 까닭에 아흔여덟 가지나 되는 병이 생긴 것이오.

註) 아흔여덟 가지나 되는 병이라는 이 문장으로 짐작해 보면 당시 의학 수준이 꽤 발달했음을 알 수 있다. 부처님 당시 기바耆婆라는 의사는 금칼로 안과 수술을 할 정도였으며, 그 이름이 멀리 중국에까지 알려졌다.


 312.

이와 같이 살생의 몽둥이를 부당하게 내려치는 일은 그 옛날부터 시작해서 지금에 이르렀소.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는 소를 죽인 것이오. 제사를 지내는 사람은 도리를 거스르고 있는 것이오.


 313.

이와 같이 예전부터 내려온 이 좋지 못한 풍습은 지혜로운 이의 비난을 받아 왔소. 사람들은 이러한 일을 볼 때마다 제사지내는 일을 비난하게 되었소. 

註) 여기서 ‘이러한 일’이란 제사를 지내기 위해 짐승을 죽이는 장면을 말한다.


 314.

이렇게 법이 무너질 때, 노예와 서민이 둘로 나뉘었고, 여러 왕족이 흩어졌고, 아내는 남편을 경멸하게 되었소.


 315.

왕족이나 범천의 친족 또는 제도에 의해 지켜지고 있던 다른 사람들도 생명의 존엄성을 버리고 욕망에 사로잡히고 만 것이오.“

註) 범천의 친족이란 바라문을 일컫는다.


이와 같이 말씀하시자, 큰 부자인 바라문들은 스승께 말했다.

“훌륭한 말씀입니다, 고타마시여. 훌륭한 말씀입니다, 고타마시여. 마치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 주듯이, 덮인 것을 벗겨 주듯이, 길 잃은 이에게 길을 가르쳐 주듯이, 또는 ‘눈이 있는 사람은 빛을 볼 것이다’하고 어둠 속에서 등불을 비춰 주듯이, 당신 고타마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진리를 밝혀 주셨습니다. 저희들은 당신께 귀의합니다. 그리고 진리와 수행자의 모임에 귀의합니다. 당신 고타마께서는 저희들을 재가 수행자로서 받아 주십시오. 오늘부터 목숨이 다할 때까지 귀의하겠습니다.”


 


 배



 316.

만일 남한테서 배워 진리를 알게 되었다면, 그 사람 섬기기를 마치 신들이 인드라신 섬기듯 해야 한다. 배움이 깊은 사람은 존경을 받으면 기뻐하며 진리를 보인다.


 317.

어진 이는 그것을 이해해서 듣고, 그 진리를 실천한다. 이러한 사람을 가까이하고 부지런히 배운다면 지혜로운 이, 분별할 줄 아는 이, 현명한 이가 된다.


 318.

아직도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질투심만 있는 소인배나 어리석은 이를 가까이한다면, 이 세상에서 진리를 알지 못하고 의심을 버리지 못한채 죽음에 이른다.


 319.

마치 물이 많고 물결이 거센 강에 빠지면, 사람이 물결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것과 같다. 그런 이가 어찌 남을 건네 줄 수 있겠는가.


 320.

그와 마찬가지로, 진리를 알지도 못하고 배움이 깊은 사람에게서 듣지도 않는다면 스스로도 모르고 의문도 풀 수 없다, 그가 어찌 남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겠는가.


 321.

튼튼한 배를 타고 거기 노와 키가 있다면, 배를 저을 줄 아는 경험자는 다른 많은 사람들을 태워서 강을 건네 줄 수 있다.


 322.

베다에 통달하고 자신을 수양하고 많은 것을 배워 동요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이 알고 있기 때문에 가르침을 듣고 따르려는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323.

그러므로 정말 지혜롭고 배움이 깊은 성실한 사람과 가까이하라. 사물의 이치를 알고 실천하면서 진리를 깨달은 사람은 평화를 얻으리라.


 


 어떠한 도덕을 가질까



 324.

사람들이 바르게 살고 최상의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도덕을 지키고, 어떠한 행동을 하며, 어떠한 행위를 부지런히 해야 할 것인가.


 325.

손위의 사람을 공경하고 시기하지 말며 스승을 만나 진리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기회를 얻어서 열심히 설법을 들으라.


 326.

고집을 버리고 겸허한 태도로 때를 맞추어 스승을 찾아가라. 진리와 절제와 맑고 깨끗한 행동을 늘 마음에 두고 이를 실천하라.


 327.

진리를 즐기고 진리를 기뻐하며 진리에 머무르고 진리의 길을 알며 진리를 비방하는 말을 입에 담지 말라. 훌륭하게 설해진 진리에 따라 생활하라.


 328.

웃음, 농담, 울음, 혐오, 거짓말, 사기, 탐욕, 오만, 격분, 난폭, 더러움, 탐닉을 버리고 교만을 떠나 자신을 안정시켜 행동하라.


 329.

훌륭한 설법을 듣고 이해하면 힘이 된다. 듣고 안 것을 실천하면 힘이 된다. 사람이 성급하거나 게으르면 지혜도 배움도 늘지 않는다.


 330.

성인이 말씀하신 진리를 기뻐하는 사람들은 말과 생각과 행동이 가장 뛰어나게 된다. 그들은 부드러움과 온화함과 명상 속에 머무르면서 배움과 지혜의 본질에 이른 것이다.


 


 배움



 331.

일어나 앉으라. 잠을 자서 그대들에게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화살에 맞아 고통받는 이에게 잠이 웬 말인가.

註) 일어나 앉으라는 것은, 좌정을 하고 앉아 선정을 닦으라는 뜻이다.


 332.

일어나 앉으라. 평안을 얻기 위해 열심히 배우라. 그대들이 게으르면 ‘죽음의 왕’이 그대들을 힘으로 굴복시키고, 그대들을 헤메게 만들 것이다.


 333.

신과 인간은 집착에 얽매여 무엇인가를 갖고자 한다. 이 집착에서 벗어나라. 짧은 세월을 헛되이 보내지 말라. 짧은 세월을 헛되이 보낸 자는 지옥에 떨어져 한탄한다,


 334.

게으름은 때와 같은 것. 때는 게으름 때문에 생긴다. 애써 닦음으로써, 또한 밝은 지혜로써 그대의 영혼에 박힌 화살을 뽑으라.


 


 라훌라



 335.

스승께서 말씀하셨다.

“라훌라야, 늘 가까이 함께 있기 때문에 너는 어진 이를 가볍게 어기는 것은 아니냐. 모든 사람을 위해 횃불을 비춰 주는 사람을 너는 존경하고 있느냐?”

註) 라훌라는 부처가 출가하기 전에 낳은 아들.


 336.

라훌라는 대답했다.

“늘 함께 있다고 해서 어진 이를 가볍게 여기는 일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을 위해 횃불을 비춰 주는 사람을 저는 항상 존경하고 있습니다.”


 337.

“사랑스럽고 즐거움이 되는 다섯 가지 욕망의 대상을 버리고 믿음으로 집을 떠나 고통을 없애는 사람이 되라.


 338.

선한 친구와 사귀라. 마을을 떠나 깊숙하고 고요한 곳에서 머물라. 그리고 음식의 양을 절제할 줄 아는 사람이 되라.


 339.

옷과 음식과 병자를 위한 물건과 거처. 이런 것에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된다. 다시는 세속으로 돌아가지 말라.


 340.

계율을 지키고 다섯가지 감각을 지켜 네 몸을 살피라. 참으로 이 세상에 대한 미련을 버려라.


 341.

육체의 욕망 때문에 아름답게 보이는 겉모양을 떠나서 생각하라. 육신은 부정한 것이라고 마음에 새겨 두고 마음을 하나로 집중시키라.


 342.

마음에 자취를 두지 말라. 마음에 도사린 오만을 버려라. 오만을 없애면 그대는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리라.“


참으로 거룩한 스승은 라훌라 존자에게 이와 같은 시로써 되풀이해 가르치셨다.


 


 수행자 방기사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거룩한 스승께서는 알라비에 있는 악갈리바 나무 밑에 계셨다. 그때는 방기사 존자의 스승인 니그로다캅파라는 장로가 그 나무 밑에서 죽은 지 얼마 안 되어서였다. 방기사 존자는 홀로 앉아 명상에 잠겨 있다가 이런 생각을 하였다.

‘우리 스승은 정말로 돌아가신 것일까, 그렇지 않으면 아직 살아 계실까?’

방기사 존자는 저녁때가 되자 명상에서 깨어나 스승(부처님)이 계신 곳으로 갔다. 거룩한 스승께 절한 뒤 한 쪽에 앉아 절한 뒤 한쪽에 앉아 여쭈었다.

“거룩하신 스승이시여, 제가 홀로 앉아 명상에 잠겨 있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스승은 정말로 돌아가신 것일까, 그렇지 않으면 아직 살아 계시는 것일까’라고요.”

방기사 존자는 일어서서 가사를 왼쪽 어깨에 걸치고 스승께 합장하더니, 다음과 같은 시로써 말했다.

註) 승복을 왼쪽 어깨에 걸치는 것은 고대 인도의 예법이다.


 343.

“이 세상에서 모든 의심을 끊고 더 없는 지혜를 가지신 스승께 묻겠습니다. 세상에 널리 알려지고 명망 높고 마음이 평안의 경지에 들어간 수행자가 악갈라바에서 돌아가셨습니다.


 344.

스승이시여, 당신께서는 그 바라문에게 ‘니그로바캅파’라는 이름을 주셨습니다. 오로지 진리만을 보시는 분이시여, 그는 당신을 존경하고 따랐으며 해탈을 위해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345.

석가여, 널리 보시는 분이여, 저희들은 당신의 제자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저희 귀는 들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저희 스승이십니다. 당신은 가장 뛰어난 분이십니다.


 346.

저희의 의혹을 풀어주십시오. 이것을 말씀해주십시오. 지혜 많은 분이시여, 그가 아주 죽었는지 아닌지를 저희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천 개의 눈을 가진 제석천이 신들에게 말하듯이. 널리 보시는 분이시여!


 347.

이 세상에는 여러 가지 속박이 있고, 그것은 미혹으로 가는 길이고 무지와 의혹으로 인해 있는 것이지만, 완전한 사람을 만나면 그런 것은 다 사라지고 맙니다. 그 눈은 인간 중에서 으뜸가는 눈이기 때문입니다.


 348.

바람이 구름을 걷어버리듯, 이분(부처님)이 번뇌의 티끌을 털어 버리지 않는다면, 온 세상은 어둠으로 뒤덮일 것입니다. 빛을 가진 사람들도 빛을 내지 못할 것입니다.

註) 빛은 지혜의 빛을 뜻한다.


 349.

지혜로운 이들은 세상을 비추는 분입니다. 지혜로운 이여, 저는 당신을 그런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는 당신이야 말로, 있는 그대로를 보는 분으로 알고 이렇게 찾아온 것입니다. 대중 앞에서 저희들을 위해 니그로다캅타에 대한 일을 밝혀 주십시오,


 350.

원컨데 선하고 미묘한 음성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백조가 목을 늘이고 천천히 우는 것처럼, 잘 다듬어진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저희는 명심해서 듣겠습니다.


 351.

삶과 죽음을 뛰어넘고, 맑고 깨끗한 몸이 되신 분께 청하여 가르침을 들읍시다. 보통 사람들은 알고 싶고 말하고 싶은 것을 다 할 수 없지만, 완전한 사람은 마음 먹은대로 다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352.

이 완전한 예언이 올바른 지자인 당신으로 인해 잘 보전되어 있는 것입니다. 저희는 최후의 합장을 드립니다. 스스로는 잘 알면서도 말씀하지 않음으로써 저희들을 헤메게 하지 마십시오. 지혜로운 분이시여!


 353.

거룩한 진리를 알고 계시면서 저희를 헤메게 하지 마십시오. 정진에 뛰어나신 분이여! 한여름 더위에 지친 사람이 물을 찾듯이, 저희는 당신의 말씀을 갈구합니다. 말씀의 비를 내려 주십시오.


 354.

캅파가 깨끗한 수행으로 이루려 했던 목적은 헛된 것이었습니까, 또는 해탈한 사람처럼 사라진 것입니까, 아니면 생존의 근원을 남겨 둔 것입니까. 저희는 그것을 알고 싶습니다.


 355.

스승은 대답하셨다.

“그는 이 세상의 이름과 형태에 대한 집착을 끊어 버린 것이다. 오랫동안 빠져 있던 검은 악마의 흐름을 끊어 버린 것이다.” 

다섯 사람 중 가장 뛰어난 스승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註) 부처님이 성도한 후 바라나시의 녹야원에서 처음으로 법을 설할 때 다섯 수행자가 그 가르침을 받고 제자가 되었다.


 356.

“일곱 번째 현자여, 당신의 말씀을 듣고 저는 기뻐합니다. 제 물음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당신께서는 저를 헤메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註) ‘일곱번째 현자’란, 석가모니 부처를 말한다.


 357.

눈 뜬 사람의 제자인 니그로다캅파는 말한 대로 실행하여, 사람을 속이는 죽음의 악마가 펼친 질긴 그물을 찢어버렸습이다.


 358.

스승이시여, 캅파는 집착의 뿌리를 보았습니다. 아아, 캅파는 가장 건너기 어려운 죽음의 영토를 건넌 것입니다.“


 


 올바른 수행



 359.

“지혜가 많고, 강을 건너 피안에 도달하고 완전한 열반에 들어 마음이 평화로운 성인께 여쭙니다. 출가하여 여러 가지 욕망을 없앤 수행자는, 어떻게 해야 이 세상을 바르게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360.

스승은 말씀하셨습니다.

“온갖 점을 치는 일이나 해몽, 관상 보는 일을 완전히 버리고, 길흉화복의 판단을 버린 수행자는 세상에서 바르게 살아갈 것이다.


 361.

수행자가 삶과 죽음을 초월하고 진리를 깨달아 인간계와 천상의 모든 향락에 대한 욕심을 버린다면, 그는 세상에서 바르게 살아갈 것이다.


 362.

수행자가 거짓말을 버리고 분노와 인색을 버리고 순리와 역리의 생각을 떠난다면, 그는 세상에서 바르게 살아갈 것이다.


 363.

좋아하는 것이나 좋아하지 않는 것이나 다 버리고 아무 것에도 집착하거나 매이지 않고 온갖 속박에서 벗어난다면, 그는 세상에서 바르게 살아갈 것이다.


 364.

생존을 이루고 있는 요소 가운데 영원한 것은 없음을 알고 모든 집착과 탐욕을 버리며 얽메임이 없이 아무것에도 이끌리지 않는다면, 그는 세상에서 바르게 살아갈 것이다.

註) ‘생존을 이루고 있는 요소’는 번뇌, 업karma, 무지avidya로부터 발생하는 제약 조건이다.


 365.

말과 행동이 거슬리지 않고 바르게 법을 알아 열반의 경지를 구한다면, 그는 세상에서 바르게 살아갈 것이다.


 366.

수행자가 ‘사람들이 나를 존경한다’라고 하면서 거만해하지 않고, 욕을 먹더라도 마음에 두지 않으며, 남에게서 대접을 받았다고 해서 교만해지지 않으면, 그는 세상에서 바르게 살아갈 것이다.


 367.

수행자가 탐욕과 삶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다른 살아 있는 것을 자르거나 묶지 않고, 의혹을 넘어서 번뇌의 화살을 뽑아 버린다면, 그는 세상에서 바르게 살아갈 것이다.


 368.

수행자가 자기 분수를 알고, 세상에서 아무것도 해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진리를 안다면, 그는 세상에서 바르게 살아갈 것이다.


 369.

어떤 숨은 집착도 없고 악을 뿌리채 뽑아 버리고, 바라는 것도 구하는 것도 없다면, 그는 바르게 세상에서 살아갈 것이다.


 370.

번뇌의 때를 털어 버리고 거만한 생각을 버리고 모든 탐욕을 넘어 스스로 절제하고 평안에 이르러 마음의 안정을 얻는다면, 그는 바르게 세상에서 살아갈 것이다.


 371.

믿음이 있고 배움이 있는 지혜로운 이가 궁극의 경지에 이르는 분명한 길을 보고, 무리들 사이에 있으면서도 무리에 맹종하지 않으며 탐욕과 혐오와 분노를 삼킨다면, 그는 바르게 세상에서 살아갈 것이다.


 372.

맑고 깨끗한 수행으로 번뇌를 이기고, 덮여 있는 것을 벗겨 모든 사물을 지배하고, 피안에 이르러 흔들리지 않고, 생존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를 잘 인식한다면, 그는 바르게 세상에서 살아갈 것이다.


 373.

과거와 미래에 대해서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않고 지극히 깨끗한 지혜가 있어 모든 변화하는 현상의 영역에서 벗어나 있으면, 그는 바르게 세상에서 살아갈 것이다.


 374.

궁극의 경지를 알고 진리를 깨달아 번뇌의 때를 씻고 생존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를 없애버린 까닭에, 그는 바르게 세상에서 살아갈 것이다.“


 375.

“거룩한 스승이시여, 참으로 그렇습니다. 그와 같이 생활하고 스스로 절제하는 수행자는 모든 속박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그는 바르게 세상에서 살아갈 것입니다.”


 


 제자 담미카의 물음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날 거룩한 스승께서는 사밧티의 제타 숲, 외로운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 주는 장자의 동산에 계셨다. 그때 담비카라는 재가 신도가 오백 명의 신도들과 같이 스승께 와서 예의를 갖춰 절한 뒤, 시로써 물었다.


 376.

“지혜가 넓으신 고타마시여, 당신께 묻겠습니다. 가르침을 받으려는 사람은 출가하는 것과 집에서 믿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좋을까요.


 377.

당신께서는 신들을 포함한 이 세상의 모든 추한 것과 아름다운 것과 궁극의 목적을 알고 계십니다. 깊은 진리를 보는 데는 당신을 따를 자가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당신을 훌륭하고 눈 뜬 분이라고 부릅니다.


 378.

당신께서는 널리 깨달으시고, 살아 있는 모든 것을 불쌍히 여겨, 진리를 말씀하십니다. 널리 보는 분이시여, 당신께서는 세상에 덮인 것을 벗겨 주시고, 티 없이 온 세상을 비추십니다.


 379.

에라바나라고 부르는 코끼리 왕은 당신이 승리자임을 듣고 당신께 왔었습니다. 그도 당신의 말씀을 듣고 ‘참 좋구나’하면서 기뻐 돌아갔습니다.


 380.

비사문 천왕인 쿠베라도 가르침을 듣고자 당신께 왔었습니다. 어지신 분이여, 그가 물었을 때도 당신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도 또한 당신의 말씀을 듣고 기뻐했습니다.

註) 비사문 천왕인 쿠베라는 신demigod의 하나로, 이 신은 부富를 관장하는 신이다.


 381.

아지바카 교도이건 자이나 교도이건 논쟁을 즐기는 어떤 이교도일지라도, 모두 지혜로는 당신을 따를 수 없습니다. 마치 서 있는 사람이 달리는 사람을 따를 수 없는 것처럼.


 382.

논쟁을 즐기는 어떤 바라문일지라도, 그가 노년이건 중년이건 또는 청년인 바라문일지라도, 또는 ‘나야말로 논객이다’라고 자부하는 사람들조차도 다들 당신의 도움을 얻고자 합니다.


 383.

스승이시여, 당신께서 말씀하신 진리는 오묘하고 또한 평화를 가져다 줍니다. 원컨데 저희들에게도 설해 주십시오. 더 없이 눈 뜬 분이시여.


 384.

출가 수행자들과 재가 수행자들은 눈 뜬 분의 말씀을 들으려고 여기 모였습니다. 티 없는 분(눈 뜬 분)이 깨닫고 가르치는 진리를 듣기 위해서. 마치 신들이 인드라신의 말을 듣는 것처럼.“


 385.

스승께서 말씀하셨다.

“수행자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번뇌를 없애는 이치를 그대들에게 말하겠노라. 그대들은 모두 그것을  잘 지키라. 뜻을 보는 지혜로운 이는 출가한 사람에게서 그 행동을 배우고 따르라.


 386.

수행자는 제때가 아닌 때는 돌아다니지 말라. 정해진 시각에 탁발을 하러 마을에 가라. 때는 아닌데 다니는 것은 집착에 얽매인 것이다. 그러므로 눈 뜬 사람들은 제때가 아닌 때에는 나다니지 않는다.

註) 수행자는 불교의 승려로, 비구를 말한다. 제때가 아닌 때란 낮 12시가 지난 시간을 말한다. 비구는 낮 12시 이후에는 밥을 얻지도 먹지도 못하게 되어 있다. 정해진 시각은 낮 12시 이전을 말한다. 눈 뜬 사람은 부처님을 말한다.


 387.

모든 빛, 소리, 냄새, 맛, 촉감은 사람을 도취시킨다. 이 다섯 가지 욕망을 삼가고 정해진 시각에 아침밥을 얻으러 마을에 들어가라. 


 388.

그리고 수행자는 정해진 때에 얻은 밥을 가지고 홀로 그늘에 앉으라. 자신을 다스리고 안으로 돌이켜, 마음이 밖으로 쏠리게 해서는 안 된다.


 389.

만일 가르침을 듣고자 하는 사람이 있거나 다른 수행자들과 함께 이야기할 일이 있거든, 그 사람에게 훌륭한 진리를 보여 주어라. 이간하는 말이나 헐뜯는 말을 해서는 안된다.


 390.

사실 어떤 사람들은 비방하는 말에 반발한다. 그처럼 옹졸한 사람을 우리는 칭찬하지 않는다. 논쟁의 집착이 이곳 저곳에서 일어나 그들을 속박하므로 방심하게 된다.


 391.

지혜가 뛰어난 제자는 행복한 사람(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음식과 거처와 침구와 가사를 세탁할 물을 조심해서 사용하라.


 392.

그러므로 수행자는 음식을 씻고 침구와 가사를 세탁할 물 같은 것에 집착하여 더럽히는 일이 없다. 마치 연꽃잎에 구르는 물방울처럼. 


 393.

다음은 재가자가 해야 할 일을 말하리라. 이와 같은 사람은 좋은 가르침을 듣고 배워서 따르라. 순수한 출가 수행자에 대한 규율을, 소유의 번거로움이 있는 사람이 지키기는 어려울 것이다.


 394.

살아 있는 것을 직접 죽여서는 안 된다. 또 남을 시켜 죽여서도 안 된다. 그리고 죽이는 것을 보고 묵인해도 안 된다. 난폭한 짓을 두려워하는 모든 생물에 대해서 폭력을 거두어야 한다.


 395.

그리고, 가르침을 받는 사람은 주지 않는 것은 무엇이든지 또 어디에 있든지 그것을 가지지 말라. 남을 시켜 가지거나 남이 가지는 것을 묵인하지도 말라. 주지 않는 것은 무엇이든지 가져서는 안 된다.


 396.

슬기로움 사람은 음행을 회피하라. 타오르는 불구덩이를 피하듯. 만일 불음을 닦을 수가 없더라도 남의 아내를 범해서는 안 된다.


 397.

둘이 있든 여럿이 함께 있든, 누구도 남에게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 남에게 거짓말을 시켜서도 안 된다. 또 남이 거짓말하는 것을 묵인해도 안 된다. 모든 허망한 말을 하지 말라.


 398.

또 술을 마셔서는 안 된다. 이 가르침을 기뻐하는 재가 수행자는 남에게 술을 마시게 해도 안 된다. 남이 술을 마시는 것을 묵인해도 안 된다. 술은 마침내 사람을 취하게 하고 미치게 하는 것임을 알라.


 399.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들은 취함으로써 나쁜 짓을 하고, 또한 남들로 하여금 게으르게 하고 나쁜 짓을 하게 한다. 이 불행의 원인을 회피하라. 그것은 사람을 취하게 하고 미치게 하며 어둡게 하는 것인데, 어리석은 사람들은 이를 즐기고 있다.


 400.

첫째, 살아 있는 것을 해치지 말라. 둘째, 주지 않는 것을 가지지 말라. 셋째, 거짓말을 하지 말라. 넷째, 술을 마시지 말라. 다섯째, 부정한 짓을 하지 말라. 여섯째,밤에는 음식을 먹지 말라.


401.

일곱째, 화려하게 치장하지 말고 향수를 쓰지 말라. 여덟째, 땅 위에 마련된 자리에서만 자라. 이것이야말로 여덟가지 부분으로 된 재계이다. 고뇌를 없애버린 부처가 가르친 바이니라.

註) 여덟 부분으로 된 재계란, 원래는 인도의 소치기들 사이에서 소를 치기 위한 준비 기간을 말하는데 이후에 이 관습이 불교에 들어와서는 몸을 근신하고 자신을 반성하는 참회 행사로 바뀌었다.


 402.

그리고 각각 보름 동안 제8일, 제14일, 제15일에 우포사타를 행하라. 또 특별한 달에는 여덟 부분으로 된 원만한 재계를 맑은 마음으로 행하라.

註) (책에는 28번 註를 참고하라고 되어 있다. 28번 註를 옮기면) ‘포살’은 범어 우포사타uposata에서 온 말로, 한 달에 보름과 그믐 두 차례 출가 수행자들이 불전에 모여 계율을 읽고 지은 허물이 있으면 참회하는 것을 말한다.


 403.

재계를 행한 지혜로운 사람은 고요하게 가라앉은 마음으로 기뻐하며, 이튿날 아침 일찍 수행자에게 음식을 베풀어 주어라.


 404.

법답게 얻은 재물을 가지고 부모를 섬기라. 떳떳한 장사를 하라. 이와 같이 열심히 살고 있는 재가자는 죽은 후 ‘저절로 빛이 난다’는 신들 곁애 태어나리다.“

註) 떳떳한 장사란 무기 판매, 고기 판매, 살아 있는 생명의 매매, 술의 판매, 독극물 판매, 이 다섯 가지 직업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직업을 말한다.


 


 


三. 큰 장


 


 출가



 405.

눈이 있는 사람은 어째서 출가를 했는지, 그는 무엇을 생각한 끝에 출가를 선택했는지, 그의 출가에 대해서 나는 이야기하리라.


 406.

‘집에서 사는 생활은 비좁고 번거로우며 먼지가 쌓인다. 그러나 출가는 널찍한 들판이며 번거로움이 없다.’고 생각해 출가한 것이다.


 407.

출가한 다음에는 몸으로 짓는 나쁜 행위를 멈추었다. 말로 짓는 악행도 버리고 아주 깨끗한 생활을 하였다.


 408.

눈 뜬 사람은 마가다국의 서울 산으로 둘러싸인 왕사성으로 갔다. 수려한 모습을 가진 그는 탁발하기 위해 그곳으로 간 것이다.

註) 왕사성의 현재 이름은 라지기르Rajigir로, 산 위에는 아직도 돌로 쌓은 옛 성곽의 일부가 남아 있다. 


 409.

마가다 왕 빔비사라는, 높은 다락 위에서 그를 보았다. 수려한 모습을 가진 그를 보고 신하들에게 말했다.


 410.

“그대들은 저 사람을 보아라. 아름답고 건장하고 깨끗할 뿐 아니라 , 당당하게 앞만을 본다.


 411.

그는 눈을 아래에 두고 정신을 모으고 있다. 저 사람은 천한 집 출신이 아닌 것 같다. 그대들이여 뛰어가 그를 따르라. 저 수행자는 어디로 가는가.“


 412.

왕의 신하들은 그의 뒤를 따라갔다.

‘저 수행자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그는 어디에 사는 것일까?’하면서.


 413.

그는 모든 감각을 억제하고 잘 다스리고 바르게 깨닫고 조심하면서 집집마다 음식을 빌어 잠깐 동안에 바리때를 채웠다.


 414.

거룩한 분은 탁발을 끝내고 그 도시 밖으로 나와 판다바 산으로 향했다. 아마 그는 그곳에 살고 있는 모양이다.

註) 판다바 산은 왕사성 둘레에 있는 다섯 산의 하나.


 415.

고타마가 자기의 처소에 가까이 이른 것을 보자, 왕의 신하들은 그에게로 가까이 갔다. 그리고 한 신하는 왕궁으로 돌아가 왕에게 사뢰었다.


 416.

“대왕이시여, 그 수행자는 판다바 산 앞쪽에 있는 굴 속에 호랑이나 황소처럼, 그리고 사자처럼 앉아 있습니다.”


 417.

신하의 말을 듣자 빔비사라 왕은 화려한 수레를 타고 판다바 산으로 길을 재촉했다.


 418.

왕은 수레로 갈 수 있는 곳까지 달려간 뒤 수레에서 내려 걸어 올라가 그 곁에 앉았다.


 419.

왕은 기뻐하면서 인사를 나눈 후 이렇게 말했다.


 420.

“당신은 젊음이 넘치는 인생의 봄입니다. 용모도 수려한 것으로 보아 귀한 왕족 태생인 것 같습니다.


 421.

코끼리 떼를 앞세운 날쌘 군대를 당신께 선물로 드리겠으니 그것을 받아 주십시오. 나는 당신의 태생을 알고 계십시오.


 422.

“왕이여, 저쪽 히말리야 기슭에 한 정직한 민족이 있습니다. 예전부터 코살라국의 주민으로 부와 용기를 갖추고 있습니다.


 423.

성은 ‘태양의 후예’라 하고, 종족은 ‘석가족’이라 합니다. 왕이여, 나는 그런 집에서 출가했습니다. 욕망을 채우기가 위해서가 아닙니다.


 424.

모든 욕망에는 근심이 있고, 출가는 평화롭다는 것을 알아 힘써 정진합니다. 내 마음은 이것을 즐기고 있습니다.


 


 정진



 425.

네란자라 강 기슭에서 평안을 얻기 위해 힘써 수행하고 명상하는 나에게,

註) 네란자라 강은 한역으로는 니련선하尼蓮禪河, 보드가야 곁으로 흐른다.


 426.

악마 나무치가 위로의 말을 건네며 다가왔다.

“당신은 여위였고 안색이 나쁩니다. 당신은 죽음에 임박해 있습니다.


 427.

당신이 죽지 않고 살 가망은 천에 하나입니다. 당신은 살아야 합니다. 생명이 있어야만 착한 일도 할 수 있지 않습니까.


 428.

당신이 베다를 배우는 사람으로서 맑은 수행을 하고 성화에 재물을 올리는 공덕을 쌓는다 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429.

힘써 정진하는 길은 가기 힘들고 행하기 힘들며 도달하기도 어렵습니다.“

이같은 시를 읊으면서 악마는 눈 뜬 분 곁에 섰다.


 430.

악마가 이렇게 말하자, 스승(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게으름뱅이 친구여. 악한 자여! 그대는 세속의 선업을 구해서 여기에 왔지만,


 431.

내게는 세속의 선업을 찾아야 할 필요가 털끝만큼도 없다. 악마는 선업의 공덕을 구하는 자에게 가서 말하라.


 432.

내게는 믿음이 있고 노력이 있고 지혜가 있다. 이처럼 정진하는 나에게 너는 어찌하여 삶의 집착을 말하는가.

註) 내게는 믿음이 있다는 것은, 열광적이며 미신적인 신앙이 아니라 진리만이 진실이라는 것을 굳게 믿는 것을 뜻한다.


 433.

힘써 정진하는데서 일어나는 이 바람은 강물도 마르게 할 것이다. 그러니 오로지 수행에만 정진하는 내 몸의 피가 어찌 마르지 않겠는가.

註) 바람은 고행으로 인해서 생기는 격렬한 호흡을 말한다.


 434.

몸의 피가 마르면 쓸개도 가래침도 마를 것이다. 살이 빠지면 마음은 더욱더 밝아지리라. 내 생각과 지혜와 하나된 마음은 더욱더 편안하게 될 것이다. 


 435.

나는 이토록 큰 고통을 받으면서도 이토록 편안히 살고 있다. 그러므로 내 마음은 어떤 욕망도 돌아보지 않는다. 보라, 이 마음과 몸의 깨끗함을!

註) ‘큰 고통’은 고행중이므로 큰 고통을 받고 있다고 한 것.


 436.

너의 첫째 군대는 욕망이고, 둘째 군대는 혐오이며, 셋째 군대는 굶주림, 넷째 군대는 집착이다,.


 437.

다섯째 군대는 권태와 수면, 여섯째 군대는 공포, 일곱째 군대는 의혹, 여덟째 군대는 겉치레와 고집이다.


 438.

그릇된 방법으로 얻은 이득과 명성과 존경과 명예와, 또한 자기를 칭찬하고 남을 경멸하는 것.


 439.

나무치여, 이것들이 바로 너의 군대이다. 검은 악마의 공격군이다. 용감한 사람이 아니면 너를 이겨낼 수가 없지만, 용감한 사람은 너를 이겨서 즐거움을 얻는다,


 440.

내가 문자풀을 입에 물 것 같은가? 나에게 목숨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나는 굴욕적으로 사는 것보다는 싸워서 죽는 편이 오히려 낫겠다,

註) 문자풀을 입에 문다는 것은 적에게 항복한다는 뜻.


 441.

어떤 수행자나 바라문들은 너의 군대에게 패배하여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덕 있는 사람들조차 갈 길을 알지 못한다.


 442.

악마의 군대가 코끼리를 타고 사방을 포위하고 있으니, 나는 그들을 맞아 싸우리라. 나를 이곳에서 물러나게 하지는 못하리라.


 443.

신들도 세상 사람도 너의 군대를 꺽을 수 없지만, 나는 지혜를 가지고 그것을 깨뜨린다. 마치 굽지 않은 흙단지를 돌로 깨뜨려 버리듯.


 444.

자유롭게 생각하고 굳은 신념을 가지고 이 나라 저 나라로 두루 다닐 것이다. 여러 제자들을 거느리고.


 445.

그들은 내 가르침을 실천하면서 게으르지 않게 노력하고 있다. 그들은 근심할 것이 없고 욕망이 없는 경지에 도달하리라.“


 446.

악마는 말했다.

“우리는 칠년 동안이나 당신을 한걸음 한걸음 따라다녔다. 그러나 항상 조심하고 있는 정각자에게는 뛰어들 틈이 없었다.


 447.

까마귀가 기름을 발라 놓은 바위 둘레를 맴돌며 ‘이곳에서 말랑말랑한 것을 얻을 수 없을까. 맛좋은 먹이가 없을까’하며 날아다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448.

그곳에서 맛있는 것을 얻을 수 없었기 때문에 까마귀는 날아가 버렸다. 바위에 가까이 가 본 그 까마귀처럼, 우리는 지쳐서 고타마를 떠나간다.


 449.

근심에 잠긴 악마의 옆구리에서 비파가 뚝 떨어졌다. 그만 그 야차는 기운 없이 그 자리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훌륭하게 말해진 것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날 거룩한 스승께서는 사밧티의 제타 숲, 외로운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 주는 장자의 동산에 계셨다. 그때 스승은 여러 사문들을 불렀다.

“사문들이여.”

“거룩한 스승이시여.”

사문들은 스승께 대답했다.

“사문들이여, 네 가지의 특징을 갖춘 말은 훌륭하게 설해져 조금도 잘못되지 않았다. 모든 지혜로운 이들이 보아도 결점이 없어 비난받지 않을 것이다.

그 네 가지란 무엇인가. 수행자가 훌륭하게 설한 것만을 말하고 잘못 설해진 것은 말하지 않으며, 진리만을 말하고 진리 아닌 것은 말하지 않으며, 좋은 것만 말하고 좋지 않은 것은 말하지 않으며, 진실만을 말하고 거짓된 것은 말하지 않는다고 하자. 이 네 가지 특징을 갖춘 말은 훌륭하게 설해진 말이다. 모든 지혜로운 이들이 보아도 결점이 없어 비난받지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이 말씀하신 후, 행복한 사람인 스승께서는 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450.

“훌륭한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가장 옳은 말을 하라. 이것이 첫째다. 진리를 말하고 진리 아닌 것은 말하지 말라. 이것이 둘째다. 좋은 말을 하고 좋지 않은 말은 하지 말라. 이것이 셋째다. 진실을 말하고 거짓을 말하지 말라. 이것이 넷째다.”


이때 방기사 장로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왼쪽 어께에 걸치고 스승이 계신 곳을 향해 합장하고 말했다.

“문득 생각나는 일이 있습니다. 행복한 분이시여.”

“어디 말해 보라, 방기사여.”

스승은 말씀하셨다. 방기사 장로는 스승 앞에서 알맞은 시로써 스승을 찬양했다.


 451.

“‘자기를 괴롭히지 않고 남을 해하지 않는 말만을 하여라.’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잘 설해진 말씀입니다.


 452.

‘좋은 말만 하여라.’ 이것은 기꺼이 환영받을 말입니다. 느낌이 나쁜 말을 쓰지 않고 기분 좋은 말만을 하는 것입니다.


 453.

진실은 참으로 불멸의 말입니다. 이것은 영원한 법칙입니다. 착한 사람들은 진실에, 사물에, 또는 이치에 안주하고 있습니다.


 454.

절대 평화에 이르기 위해서, 고통을 끝내기 위해서, 부처님이 설하신 말씀은 여러 말 가운데서 가장 뛰어난 것입니다.“


 


 불을 섬기는 사람 순다리카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코살라국 순다리카 강변에 살고 계셨다. 마침 그때 바라문인 순다리카 바라드바자는 순다리카 강변에서 성스러운 불을 만들어 공양을 올리고 있었다. 그런데 바라문인 그는 불 공양이 끝나자 자리에서 일어나 사방을 두루 살피면서 말했다. 

“이 남은 음식을 누구에게 줄까?”

그는 멀지 않은 곳에 거룩한 스승이 나무 아래서 머리까지 가사를 둘러쓰고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왼손에는 남은 음식을 들고, 바른손에는 물병을 들고 스승에게 갔다. 스승은 그의 발소리를 듣고 머리에 둘렀던 것을 벗었다.

순다리카 바라드바자는 ‘이 분은 머리를 깍은 분이다. 이 분은 삭발한 분이다’하며 되돌아가려고 했다. 그러다가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설사 머리를 깎았다 할지라도 어떤 사람은 바라문일 수도 있다. 가까이 가서 그의 출신을 물어 보리라.’

그는 스승께 가까이 가서 물었다.

“당신의 출신은 무엇입니까?”

스승은 바라문인 순다리카 바라드바자에게 시로써 말씀하셨다.

註) 여기 이 표현에서처럼 부처님은 삭발을 한 승려의 모습이었다. 머리를 깎는 풍습은 당시 새롭게 등장한 수행자들인 자유사상가Suramana, 사문沙門의 공통된 모습이었다.


 


 455.

“나는 바라문도 아니고 왕족도 아니오. 나는 바이샤족 사람도 아니고 다른 아무것도 아니오. 나는 어떤 계급에도 속하지 않고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지만, 깊은 생각을 하며 세상을 두루 다니오.

註) 바이샤족은 인도의 서민.


 456.

나는 가사를 걸치고 집이 없으며, 수염과 머리를 깎고 마음을 편안히 하고, 세상 사람들에게 누를 끼치지 않고 다니고 있소. 바라문이여, 당신이 내게 출신을 묻는 것은 당치 않소.“


 457.

“바라문이 바라문을 만났을 때는 ‘당신은 바라문이 아닙니까’라고 묻는 법입니다.”

“만일 당신이 자신이 바라문이거든 바라문이 아닌 내게 대답하시오. 나는 당신에게 세 구절 스물 넉자로 된 저 사비트리 찬가를 묻겠소.”

註) 사비트리는 ‘리그 베다’에 나오는 시로, 태양신 사비트리에 대한 찬탄의 노래다. 수도승들 사이에는 이 노래가 신성시되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아침마다 읊어진다. 


 458.

“이 세상에서 성자나 왕족, 바라문이나 일반인들은 무엇 때문에 신에게 여러 가지 공물을 바치는 것입니까?”

스승께서는 대답하셨다.

“베다에 통달한 궁극에 이른 사람이 제사 때 어떤 세속인의 공물을 받는다면, 그 제사는 의미있는 것이오.”


 459.

바라문이 말했다.

“나는 베다에 뛰어난 사람을 이렇게 보았기 때문에, 그 사람에 대한 나의 공물은 성취된 것입니다. 이전에는 당신같은 사람을 만나지 못해 다른 사람이 남은 음식을 먹었습니다.”


 460.

스승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바라문이여, 당신은 의로운 사람이며 의를 구해 왔으니 가까이 와서 물으시오. 아마도 이곳에서 평안하고 성냄이 없고, 괴로움과 욕심이 없는 지혜로운 사람을 만날 것이오.”


 461.

“고타마시여, 저는 제사를 즐기고 있습니다. 제사를 지내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제대로 알지를 못합니다. 제게 가르쳐 주십시오. 어디에 바치는 공물이 효과가 있는가를.”

“그럼 바라문이여, 귀를 기울이시오. 나는 당신에게 진리를 설하리라.


 462.

출생을 묻지 말고 행위를 물으시오. 불은 온갖 섶에서 일어나는 것. 천한 집에 태어난 사람이라도 믿음이 깊고 부끄러워할 줄 알고 뉘우치는 마음으로 행동을 삼가면 고귀한 사람이 되는 것이요.


 463.

진실을 가지고 자제하고 모든 감각을 절제하며 베다의 뜻에 통달하고 깨끗이 수행하는 사람들. 그들에게 때때로 공양을 바치시오. 복과 덕을 구하는 바라문은 그들을 공양해야 합니다.


 464.

모든 욕망을 버리고 집 없이 살아가며, 자기 분수를 잘 알아 절제하고, 베틀의 북처럼 곧은 사람들. 그들에게 때때로 공양을 바치시오. 복과 덕을 구하는 바라문은 그들을 공양해야 합니다.


 465.

탐욕을 떠나 모든 감각을 조용히 다스리고, 달이 라후의 손길에서 벗어나듯이 걸림이 없는 사람들. 그들에게 공양을 바치시오. 복과 덕을 구하는 바라문은 그들을 공양해야 합니다.

註) 라후는 인도 신화에 나오는 귀신의 이름으로, 이 귀신이 달과 해를 삼키기 때문에 월식과 일식이 있다고 생각했었다.


 466.

집착하는 일 없이 항상 마음을 다스려 내 것이라고 고집했던 모든 것을 버리고 세상을 거니는 사람들, 그들에게 때때로 공양을 바치시오. 복과 덕을 구하는 바라문은 그들을 공양해야 합니다.


 467.

모든 욕망을 버리고 욕심을 이겨 생사의 끝을 알고 평안에 돌아가, 맑고 시원하기가 호수처럼 완전한 사람(如來)은 공양을 받을 만합니다.


 468.

완전한 사람은 평등한 자(과거에 눈이 열린 사람들, 여러 부처님들)와 같고, 평등하지 않은 사람과는 멀리 떨어져 있소. 그는 끝없는 지혜를 가지고 이 세상에서도 저 세상에서도 때가 묻지 않소. 완전한 사람은 공양을 받을 만합니다.


 469.

거짓과 교만과 탐욕을 떠나 내 것이라고 집착하거나 욕망과 성냄이 없고, 마음이 고요하여 근심의 때를 버린 바라문인 완전한 사람은 공양을 받을 만 합니다.


 470.

마음의 집착을 끊고 아무 것에도 붙들리지 않으며, 이 세상에서나 저 세상에서나 걸림이 없는 완전한 사람은 공양을 받을 만합니다.


 471.

마음을 한결같이 안정시켜 거센 흐름을 건너고 가장 뛰어난 지혜로써 진리를 알고 번뇌의 때를 소멸해 최후의 몸을 가지고 있는 완전한 사람은 공양을 받을 만 합니다.


 472.

생존의 더러움과 거친 말씨도 모두 버렸소. 그는 베다에 통달한 사람이고, 모든 일에 해탈하였소. 완전한 사람은 공양을 받을 만합니다.


 473.

집착을 뛰어넘어 집착함이 없고, 교만한 마음이 가득한 사람들 가운데 있으면서 교만한 마음이 없으며, 밭이나 땅과 함께 괴로움을 잘 알고 있는 완전한 사람은 공양을 받을 만합니다.

註) 밭이나 땅은 고통이 생기는 인연, 다시 말해 업과 번뇌를 가리킨다.


 474.

욕망에 끌리지 않고 진리를 찾아 멀리 떠나고 남들이 가르치는 다른 견해를 초월하여 아무 것에도 걸리지 않는 완전한 사람은 공양을 받을 만합니다.


 475.

모든 사물의 이치를 깨달아 이미 그것으로 인한 고통이 존재하지 않소. 평안에 돌아가 집착을 버리고 해탈한 완전한 사람은 공양을 받을 만합니다.


 476.

번뇌의 속박과 이 세상에 태어남이 멸해 버린 궁극의 경지를 보고 육체의 욕망을 남김없이 끊고, 맑고 고요해서 티가 없이 투명하고 완전한 사람은 공양을 받을 만합니다.


 477.

자기 자신을 깊이 관찰하고 마음이 안정되고 신체가 곧아 스스로 편히 머물러 동요되지 않으며, 마음이 거칠지 않고 의혹이 없는 완전한 사람은 공양을 받을 만 합니다.


 478.

어리석음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장애가 아무 것도 없고 모든 것에 대해 알고 있으며 마지막 인간의 몸을 가지고 더 없이 완벽한 깨달음을 얻은 ― 이것만으로도 사람은 깨끗해진다 ― 완전한 사람은 공양을 받을 만합니다.


 479.

“당신과 같은 베다에 뛰어난 사람을 만났으니, 저의 공양은 참 공양이 될 수 있습니다. 하늘의 신께서 증인이 되어 살펴주십시오, 스승이시여, 원컨데 저의 공양을 받아 주십시오. 스승이시여, 저의 공양을 받아주십시오.”


 480.

“시를 읊어 얻은 것을 나는 먹을 수 없습니다. 바라문이여, 이것은 바르게 보는 사람들의 법이 아닙니다. 시를 읊어 얻은 것을 눈 뜬 사람들은 받지 않습니다. 바라문이여, 이것이 눈 뜬 사람들의 생활 태도입니다.


 481.

완전에 이른 사람, 위대한 성자, 번뇌의 더러움을 없애고 나쁜 행위를 소멸시킨 사람에게는 다른 음식을 바치시오. 그것이야말로  공덕을 바라는 이의 복밭이오.“


 482.

“스승이시여! 보시를 받을 수 있는 사람, 제사 때 찾아가 공양을 드릴 사람을, 당신의 가르침을 통해 알고 싶습니다.”


 483.

“격정을 떠나 마음에 흐림이 없고, 모든 욕망에서 벗어나 근심을 없앤 사람,


 484.

한계의 끝(번뇌)을 눌러 생사를 다 알고 성인의 덕을 몸에 갖춘 그러한 성인이 제사 때 찾아오면


 485.

찌푸리지 말고 그에게 합장하여 인사하시오. 음식을 가지고 그를 공양하시오. 이러한 보시는 뜻을 이루게 하고 많은 보답을 가져올 것이오.“


 486.

“눈을 뜬 당신을 공양을 받기에 마땅합니다. 당신은 으뜸가는 복밭이고 온 세상의 보시를 받으실 분입니다. 당신께 드린 공양은 많은 보답을 가져올 것입니다.”


바라문 순다리카 바라드바자는 스승께 말씀드렸다.

“훌륭하십니다. 고타마시여. 훌륭하십니다, 고타마시여. 마치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 주듯이, 가려진 것을 벗겨 주듯이, 길을 잃은 자에게 길을 가르켜 주듯이, 그리고 ‘눈 있는 이는 빛을 보리라’하면서 암흑 속에서 등불을 비춰주듯이, 고타마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법을 보여 주셨습니다. 저는 고타마 당신께 귀의합니다. 그리고 진리와 도를 닦는 수행자의 모임에 귀의합니다. 저는 고타마께 출가하여 완전한 계율을 받겠습니다.”

그리하여 바라문 순다리카 바라드바자는 스승께 출가하여 완전한 계율을 받았다. 그러더니 얼마 후에 이 장로 순다리카 바라드바자는 홀로 멀리 떠나 게으르지 않고 힘써 정진한 끝에 더 없이 맑고 깨끗한 행의 궁극을 ―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얻기 위해 집을 떠나 집 없는 상태가 된 것인데 ―이 생에서 스스로 깨달아 이를 증명하고 실천하면서 세월을 보냈다.

‘태어나는 일은 이제 끝났다. 맑고 깨끗한 수행은 이미 완성 되었다. 할 일을 다 마쳤다. 이제 두 번 다시 이런 생사를 받지 않는다’라고 깨달았다. 그래서 순다리카 바라드바자 장로는 성인의 한 사람이 되었다.


 


 젊은 마가의 물음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날 스승께서는 왕사성의 수리봉에 계셨다. 그때 마가 청년은  스승이 계신 곳으로 가서 인사를 드렸다. 기쁘고 기억에 남을 만한 인사를 나눈 뒤 곁에 앉아 스승께 말했다.

“고타마시여, 저는 보시를 실행하는 시주이며 누구에게나 구하는 대로 베풉니다. 법에 따라 재물을 벌어들이고 법에 의해서 얻은 재물을 한 사람에게도 주고 두 사람에게도 주고 세 사람, 네 사람, 다섯 사람, 여섯 사람, 일곱, 아홉, 열 사람, 스무 사람, 서른, 마흔, 쉰 사람에게도 주고 백 사람에게도 주며 더 많은 사람에게도 나누어줍니다. 고타마시여, 내가 이렇게 주고 이와 같이 바친다면 얼마나 많은 복과 덕을 얻겠습니까?”

“젊은이여 그대가 참으로 주고 그와 같이 바친다면 많은 복과 덕을 얻게 될 것이다. 누구든지 진정으로 나누어주는 시주이거나, 관대하여 구하는 대로 베풀며, 정당하게 재산을 얻고 그 재산을 한 사람 내지는 백 사람에게 나누어 주며, 더 많은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사람은 많은 복과 덕을 얻게 될 것이다.”

마가 청년은 시로서 물었다,


 


 487.

마가 청년이 말했다.

“가사를 입고 집없이 다니는 너그러우신 스승 고타마께 저는 묻겠습니다. 보시를 구하는 이에게 보시하는 사람, 복과 덕을 구하고 복과 덕을 위해 공양을 바치는 사람이 남에게 음식을 베풀 때 누구에게 바치는 재물이 가장 깨끗합니까?”


 488.

스승은 대답하셨다.

“마가여, 보시를 구하는 사람에게 보시하는 사람, 복과 덕을 구하고 복과 덕을 위해 공양을 바치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남에게 음식을 베풀 때 그것을 받는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어야 한다.”


 489.

마가 청년이 말했다.

“보시를 구하는 사람에게 보시하는 사람, 복과 덕을 구하고 복과 덕을 위해 공양을 바치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남에게 음식을 베풀 때 마땅히 보시받을 사람이 누구인지 말씀해 주십시오, 스승이시여.”


 490.

“참으로 집착 없이 세상을 걸어가고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이 자기를 다스리는 완전한 사람, 그들에게 때때로 공양을 바치라. 복과 덕을 구하는 바라문은 그들을 공양하라.”


 491.

모든 속박을 끊고 자재하고 해탈하여 괴로움과 욕심이 없는 사람들. 그들에게 때때로 공양을 바치라. 복과 덕을 구하는 바라문은 그들을 공양하라.


 492.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 자재하고 해탈하여 괴로움과 욕심이 없는 사람들. 그들에게 때때로 공양을 바치라. 복과 덕을 구하는 바라문은 그들을 공양하라.


 493.

탐욕과 혐오와 어리석음을 버리고 번뇌의 더러움에서 벗어나 깨끗한 수행을 하는 사람들. 그들에게 때때로 공양을 바치라. 복과 덕을 구하는 바라문은 그들을 공양하라.


 494.

거짓도 없고 교만도 없고 탐욕을 떠나 내 것이라고 집착하지도 않고 욕망을 가지지도 않은 사람들. 그들에게 때때로 공양을 바치라. 복과 덕을 구하는 바라문은 그들을 공양하라.


 495.

참으로 온갖 집착에 붙잡히지 않고 이미 거센 흐름을 건너 내 것이라는 집착이 없이 다니는 사람들. 그들에게 때때로 공양을 바치라. 복과 덕을 구하는 바라문은 그들을 공양하라.


 496.

이 세상이나 저 세상이나 어떠한 세상에 있어서도 갖가지 생존에 대한 집착이 없는 사람들. 그들에게 때때로 공양을 바치라. 복과 덕을 구하는 바라문은 그들을 공양하라.


 497.

모든 욕망을 버리고 집 없이 다니며 자신을 절제하고 베틀의 북처럼 똑바른 사람들. 그들에게 때때로 공양을 바치라. 복과 덕을 구하는 바라문은 그들을 공양하라.


 498.

탐욕을 떠나 모든 감각기관을 안정시켜 달이 월식에서 벗어나듯이 붙들리지 않는 사람들. 그들에게 때때로 공양을 바치라. 복과 덕을 구하는 바라문은 그들을 공양하라.


 499.

마음이 평화롭고 탐욕을 떠나 성내지 않으며 이 세상에서 생존의 모든 요소를 버리고 갈 곳이 없는 사람들. 그들에게 때때로 공양을 바치라. 복과 덕을 구하는 바라문은 그들을 공양하라.


 500.

생과 사를 남김없이 버리고 모든 의혹을 넘어선 사람들. 그들에게 때때로 공양을 바치라. 복과 덕을 구하는 바라문은 그들을 공양하라.


 501.

자기를 의지처로 하여 세상을 다니고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이 모든 것으로부터 해탈한 사람들. 그들에게 때때로 공양을 바치라. 복과 덕을 구하는 바라문은 그들을 공양하라.


 502.

‘이것이 마지막 생존이고 다시는 생을 받지 않는다’라고 이 세상에서 분명히 알고 있는 사람들. 그들에게 때때로 공양을 바치라. 복과 덕을 구하는 바라문은 그들을 공양하라.


 503.

베다를 잘 알고 고요한 마음을 즐기며 생각이 깊고 깨달음을 얻어 많은 사람을 귀의시킨 사람들. 그들에게 때때로 공양을 바치라. 복과 덕을 구하는 바라문은 그들을 공양하라.


 504.

“참으로 제 질문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보시받을 사람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스승이시여, 당신께서는 이 모든 일들을 이 세상에서 분명히 알고 계십니다. 당신께서는 이 이치를 잘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505.

마가 청년이 다시 말했다.

“보시를 구하는 이에게 보시하는 사람, 복과 덕을 구하고 복과 덕을 위해 공양을 바치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남에게 음식을 베풀 때 완전한 제사가 어떤 것인지를 저에게 가르쳐 주십시오, 스승이시여.”


 506.

거룩한 스승은 대답하셨다,

“마가여, 제사를 지내라. 제사를 지내는 사람은 어떤 경우라도 마음을 깨끗이 하라. 제사 지낼 사람이 전념할 일은 오로지 제사뿐이다. 그는 편안히 머물러 사악함을 버린다.


 507.

그는 탐욕에서 떠나 사악함을 누르고 한없는 자비심을 일으켜 밤낮으로 게으르지 않아서 그 마음이 사방에 가득 차게 한다.“


 508.

“누가 깨끗해지고 해탈하는 것입니까. 누가 붙들려 얽매이는 것입니까, 무엇으로 인해 사람은 스스로 범천계이 이릅니까? 성인이시여, 몰라서 묻는 것이니 일러 주십시오. 스승이시여, 저는 지금 범천을 눈앞에 보았습니다. 진실로 당신은 범천과 같은 분이십니다. 밝은 빛을 지니신 분이여, 어떻게 하면 범천계에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


 509.

스승은 대답하셨다.

“마가여, 세 가지 조건을 갖춘 완전한 제사를 지낼 수 있는 사람은 보시받는 사람들을 기쁘게 한다. 보시를 베푸는 사람이 이처럼 바르게 제사를 지낸다면 범천계에 태어날 것이다.”

註) 세 가지 조건이란 보시하기 전에 기뻐하고, 보시할 때 마음을 맑게 하고, 보시하고 나서 만족하는 것을 말한다.



이와 같이 말씀하셨을 때, 마가 청년은 스승께 아뢰었다.

“훌륭한 말씀입니다, 고타마시여. 훌륭한 말씀입니다, 고타마시여. 마치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 주듯이, 덮인 것을 벗겨 주듯이, 길 잃은 이에게 길을 가르쳐 주듯이, 또는 ‘눈이 있는 사람은 빛을 보리라’하고 어둠 속에서 등불을 비춰 주듯이, 당신 고타마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진리를 밝혀 주셨습니다, 저는 당신께 귀의합니다. 그리고 진리와 도를 닦는 수행자들의 모임에 귀의합니다. 당신 고타마께서는 저희들을 재가 수행자로서 받아주십시오. 오늘부터 목숨이 다할 때까지 귀의하겠습니다.”


 


 방랑하는 수행자 사비야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날 거룩한 스승께서는 왕사성 죽림원에 있는 다람쥐 사육장에 머물고 계셨다. 그때 방랑하는 수행자 사비야에게 한 신이 말했다.

“사비야여, 사문이건 바라문이건 그대가 질문을 했을 때 분명히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있거든 그대는 그 밑에서 깨끗한 수행을 닦아라.”

방랑하는 수행자 사비야는 그 신에게 그와 같은 말을 듣고 다음의 여섯 스승을 찾아가 물었다. 즉 푸라나 캇사파, 막카리 고사라, 아지타 케사캄바리, 파쿠다 캇차야나, 베랏티족의 아들인 산자야, 나타족의 아들 니간타 등인데, 그들은 사문이나 바라문으로서 많은 무리들을 이끄는 단체의 스승이었다. 명성이 있는 교파의 지도자이며 많은 사람들로부터 성인이라고 숭배를 받고 있었다.

그들은 방랑하는 수행자 사비야에게 질문을 받았지만, 만족스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뿐 아니라 화를 내고 혐오와 근심의 빛을 감추지 못했으며, 도리어 사비야에게 반문을 했다. 그래서 사비야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 사문과 바라문들은 많은 무리를 이끄는 단체의 스승이며 명성이 있는 교파의 지도자로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내게서 질문을 받고도 만족스러운 대답을 못했다. 뿐만 아니라 화를 내고 혐오와 근심의 빛을 감추지 못했으며, 내게 도리어 반문을 했다. 나는 그만 집으로 돌아가 세속적인 욕망이나 누릴까 보다.’

그러다가 사비야는 다시 이렇게 생각했다. 

‘여기 계신 사문 고타마도 많은 무리를 이끄는 단체의 스승이며 명성이 있는 교파의 지도자로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성인이라 숭배받고 있다. 고타마를 찾아가 물어봐야겠다.’

그러면서 사비야는 이런 생각도 했다.

‘여기 있는 사문과 바라문들은 모두 장로이고 경험을 많이 쌓았으며 출가한 지도 퍽 오래되었다. 그런데도 내게 해답을 주지 못했는데, 어찌 사문 고타마가 내 물음에 똑똑히 답해 줄 수 있을까. 사문 고타마는 아직 젊고 출가한 지도 오래되지 않았는데.....’

그러다가 사비야는 또 이렇게 생각했다.

‘사문이 젊다고 해서 그를 우습게 보거나 경멸해서는 안 된다. 그는 젊지만 사문이다. 그에게는 큰 신통과 위력이 있다. 나는 고타마에게 가서 물어보리라,’ 

그리하여 사비야는 왕사성을 향해 길을 떠났다. 죽림원 다람쥐 사육장에 계시는 거룩한 스승을 뵈었다. 기쁘고 기억에 남을 만한 인사를 나눈 뒤 한쪽에 앉아 스승께 시로써 물었다.

註) 죽림원은 왕사성에 있던 최초의 불교 사원. 빔비사라 왕이 부처님께 기증했다.


 


 510.

“의문이 있어 질문하고자 이곳이 왔습니다. 저를 위해 그 의문을 풀어 주십시오, 제가 물으면 차례대로 법에 따라 분명하게 대답해 주시겠습니까?”


 511.

스승은 대답하셨다.

“당신은 질문을 하려고 멀리서 왔소. 당신을 위해 그것을 풀어 주리다. 당신이 물으면 차례대로 법에 따라 분명히 대답해 주겠소.


 512.

사비야여, 무엇이든지 마음에 있는 것을 물어 보시오. 나는 낱낱이 물음에 대답해 드리리다.“

이때 사비아는 생각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정말 희한안 일이다. 내가 다른 사문이나 바라문에게서는 들을 기회조차 얻지 못했는데, 사문 고타마께서는 그 기회를 주시는구나.’

그는 기뻐하면서 스승께 물었다.


 513.

사비야가 물었다.

“어떤 사람을 수행자라 부릅니까. 어떤 사람을 온화한 사람이라 할 수 잇습니까? 어떤 사람을 자신을 절제한 사람이라 할 수 잇습니까? 어떤 사람을 눈뜬 사람이라 부릅니까. 스승이시여 이것을 제게 설명해 주십시오.”


 514.

스승은 대답하셨다.

“사비아여, 스스로 도를 닦아 완전한 평화에 이르고 의혹을 뛰어넘고 생과 사를 버리고 청정한 수행을 하며 이 세상에 거듭 태어나지 않는 사람. 그를 ‘수행자’라 합니다.


 515.

모든 일에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혀 이 세상 아무 것에도 해를 끼치지 않으며 거센 흐름을 건너 세속의 때에 더렵혀지지 않고 육체적 욕망이 일어나지 않는 사문. 그를 ‘온화한 사람’이라 합니다.


 516.

온 세상에서 안팎으로 모든 감각을 잘 다스리고 이 세상과 저 세상이 싫어 멀리하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수양하는 사람, 그는 자기를 ‘절제한 사람’입니다.


 517.

모든 시간과 윤회와 목숨이 있는 것의 생과 사, 그 두 가지를 분별하고 티끌을 털어 버리고 깨끗하게 생을 멸한 사람, 그를 ‘눈 뜬 사람’이라 합니다.“

그때 사비야는 스승의 말씀을 듣고 몹시 기뻐하며 환희에 찬 마음으로 다시 스승께 물었다.


 518.

사비야가 물었다,

“어떤 사람을 바라문이라 합니까. 어떤 사람을 사문이라 합니까. 어떤 사람을 목욕하는 사람이라고 부릅니까. 어떤 사람을 용이라고 부릅니까? 스승이시여, 제 물음에 대답해 주십시오.”


 519.

스승은 말씀하셨다.

“사비야여, 모든 악을 물리치고 때묻지 않고, 마음을 잘 가라앉혀 스스로 안정시키며, 윤회를 넘어서 완전한 자가 되어 걸림이 없는 사람, 그를 ‘바라문’이라 합니다.


 520.

절대 평화의 세계에 들어가 선과 악을 버리고 때묻지 않으며,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알고 생과 사를 초월한 사람, 이런 사람이야말로 ‘사문’입니다.


 521.

온 세상에서 안팎으로 모든 죄악을 씻어 버리고, 시간의 지배를 받는 신과 인간 속에 살면서도 시간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 그를 ‘목욕하는 사람’이라 부릅니다.


 522.

세속에 있으면서 어떠한 죄악도 짓지 않고 온갖 얽힘을 풀어 버리고 모든 것을 해탈한 사람, 이런 사람을 ‘용’이라 부릅니다.“

그때 방랑하는 수행자 사비야는 스승의 말씀을 듣고 몹시 기뻐하며 환희에 차서 또다시 스승께 물었다.


 523.

사비야는 물었다.

“무엇 때문에 밭의 승리자라 부릅니까. 무엇 때문에 뛰어난 사람이라 부릅니까. 무엇 때문에 현자라 부릅니까. 무엇 때문에 성인이라 부릅니까? 스승이시여, 제 물음에 대답해 주십시오.”


 524.

스승은 대답하셨다.

“사비야여, 하늘의 밭, 사람의 밭, 범천의 밭 등 모든 밭을 분별하고 모든 밭의 근본인 속박에서 벗어난 사람, 이런 사람이 바로 그 때문에 ‘밭의 승리자’라고 불립니다.


 525.

하늘의 곳간, 사람의 곳간, 범천의 곳간 등 모든 곳간을 분별하고 모든 곳간의 근본인 속박에서 벗어난 사람, 이런 사람이 바로 그 때문에 ‘뛰어난 사람’이라 불립니다.


 526.

안팎으로 흰 것을 알고 맑고 깨끗한 지혜가 있고 흑과 백을 초월한 사람, 이런 사람은 바로 그 때문에 ‘현자’라 불립니다.

註) 흰 것은 선한 것을 말한다.


 527.

안팎으로 바른 것과 그른 것을 알고 인간과 신의 숭배를 받아 집착의 그물을 벗어난 사람, 이런 사람은 바로 그 때문에 ‘성인’이라 불립니다.“

그때 방랑하는 수행자 사비야는 스승의 말씀을 듣고 몹시 기뻐하며 환희에 차서 또다시 스승께 물었다.


 528.

사비야가 물었다.

“어떤 사람을 베다에 통달한 사람이라 부릅니까. 어떤 사람을 달관한 사람이라 부릅니까. 어떤 사람을 힘써 노력하는 사람이라 부릅니까. 태생이 좋은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스승이시여, 이것들을 저에게 가르쳐 주십시오.”


 529.

스승은 대답하셨다.

“사비야여, 사문이나 바라문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베다를 잘 이해해서 감수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그 감수마저 초월한 사람, 그를 ‘베다에 통달한 사람’이라 부릅니다.


 530.

안팎으로 이름과 형태의 헛됨을 알아서 모든 병의 근원인 속박에서 벗어난 사람, 그런 사람을 바로 ‘달관한 사람’이라 부릅니다,


 531.

이 세상에서 모든 죄악을 떠나 지옥의 고통을 초월하고 부지런히 노력하는 사람, 힘을 다해 정진하는 현자, 그런 사람을 ‘힘써 노력하는 사람’이라 부릅니다.


 532.

안팎으로 집착의 근원인 모든 속박을 잘라버리고 모든 집착의 근원인 속박에서 벗어난 사람, 그러한 사람을 바로 그 때문에 ‘태생이 좋은 사람’이라 부릅니다.“

그때 방랑하는 수행자 사비야는 스승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환희에 가득 차서 또다시 스승께 물었다.


 533.

사비야가 물었다.

“어떤 사람을 배움이 깊은 사람이라 부릅니까. 어떤 사람을 거룩한 사람이라 부릅니까. 어떤 사람을 행行이 갖추어진 사람이라 부릅니까. 방랑하는 수행자란 도대체 어떤 사람입니까? 스승이시여, 저에게 가르쳐 주십시오."


 534.

스승은 말씀하셨다. 

“사비야여, 가르침을 듣고 나서는 세상의 옳고 그른 모든 이치를 잘 알고 모든 일을 정복하는 사람, 의혹이 없는 사람, 해탈한 사람, 괴로움이 없는 사람을 ‘배움이 깊은 사람’이라 부릅니다.


 535.

모든 더러움과 장애를 끊은 지혜로운 이는 사람의 모태에 들지 않습니다. 세 가지 생각과 더러움을 털어버리고 망상 분별을 하지 않는, 그런 사람을 ‘거룩한 사람’이라 부릅니다.


 536.

이 세상에서 여러 가지 할 일을 다하고 항상 이치를 알며 어떤 일에도 집착하지 않고 해탈하여 성냄이 없는 사람, 그를 ‘행이 갖추어진 사람’이라 부릅니다.


 537.

위로나 아래로, 또는 옆으로나 가운데로 모름지기 괴로움이 생기는 행위를 피하고, 법을 잘 알아 그대로 행동하고, 거짓과 교만한 마음과 탐냄과 성냄과 이름과 형태를 없애버리고, 얻을 것을 얻은 사람, ‘그를 방랑하는 수행자‘라 부릅니다.



그때 방랑하는 수행자 사비야는 스승의 말씀을 듣고 몹시 기뻐하며 환희에 가득 차서 자리에 일어나 옷을 왼쪽 어께에 걸치고, 스승께 합장하며 다음과 같은 시로써 스승을 찬양하였다.


 538.

“사문들이 논쟁하고 있는 이름과 문자에 의해 생겨난 예순 세 가지 다른 생각을 이기고, 지혜 많은 분은 거센 흐름을 건너셨습니다.”

註) 예순 세 가지 다른 생각이란 부처님 당시 인도 수행자, 바라문, 사제, 학자들 사이에서 일어난 63종의 각기 다른 철학적인 주장들을 일컫는다.


 539.

당신은 괴로움을 모두 없애고 피안에 이른 분입니다. 당신은 참사람이고 깨달은 분입니다. 당신은 번뇌의 때를 씻어 버린 분입니다. 당신에게는 빛이 있고 이해가 있고 지혜가 많이 있습니다. 괴로움을 없앤 분이시여, 당신은 저를 구해주셨습니다.


 540.

당신은 저에게 의혹이 있는 것을 아시고 저를 의혹에서 건져 주셨습니다. 저는 당신께 예배 드립니다. 성인이시여, 성인의 길을 다하신 분이여, 마음이 거칠지 않은 태양의 후예시여, 당신은 인자하십니다.


 541.

제가 품었던 의문을 당신은 분명히 밝혀 주셨습니다. 눈이 있는 이여, 성인이시여, 참으로 당신은 깨달은 분입니다. 당신에게는 아무 것도 장애 되는 것이 없습니다.


 542.

당신의 번민은 모두 사라졌습니다. 당신은 시원스럽고  잘 절제하고 흔들리지 않으며 성실하게 사는 분입니다.


 543.

코끼리 중에 왕이시며 위대한 영웅이신 당신께서 말씀하실 때 모든 신들은 나라다와 팝바타들과 함께 기뻐합니다.


 544.

고귀하신 분이시여, 당신께 예배드립니다. 가장 뛰어난 분이시여, 당신께 예배드립니다. 신들을 포함한 온 세상에서 당신에게 견줄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545.

당신은 깨달은 분입니다. 당신은 스승이십니다. 당신은 악마를 정복한 분이며 현자이십니다. 당신은 번뇌의 숨은 힘을 끊고, 스스로 거센 흐름을 건너셨고 또 사람들을 건네 주십니다. 


 546.

당신은 속박을 뛰어넘었고 모든 번뇌의 더러움을 없앴습니다. 당신은 집착하지 않고 두려워 떨지 않는 사자입니다.


 547.

아름다운 흰 연꽃이 더러운 물에 물들지 않듯이, 당신은 선과 악 어느 것에도 물들지 않습니다. 용감한 분이시여, 두 발을 뻗으십시오. 사비야는 스승께 예배드립니다.“ 

방랑하는 수행자 사비야는 거룩한 스승의 두 발에 머리를 숙이고 절을 하며 말했다.



“훌륭한 말씀입니다, 고타마시여. 훌륭한 말씀입니다, 고타마시여. 마치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 주듯이, 덮인 것을 벗겨 주듯이, 길 잃은 이에게 길을 가르쳐 주듯이, 또는 ‘눈이 있는 사람은 빛을 보리라’하고 어둠 속에서 등불을 비춰 주듯이, 당신 고타마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진리를 밝혀 주셨습니다. 저는 당신께 귀의합니다. 그리고 진리와 도를 닦는 수행자들의 모임에 귀의합니다. 저는 고타마 곁에 출가하여 완전한 계율을 받겠습니다.”



“사비야여, 과거에 이교도였던 이가 내 가르침과 계율에 따라 출가하여 완전한 계율을 받고자 한다면, 그는 넉 달 동안 따로 살아야 합니다. 넉 달이 지난 후 괜찮다고 생각한다면, 여러 수행자는 그를 출가시키고 완전한 계율을 받게 해서 수행자가 되게 합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 사람에 따라 그 기간에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거룩한 스승이시여. 그러시다면 저는 넉 달이 아니라 네 해 동안이라도 따로 살겠습니다. 그래서 사년이 지나 이제는 괜찮다고 생각하신다면, 여러 수행자들은 저를 출가시키고 완전한 계율을 받게 하여 수행자가 되게 해주십시오.”



이렇게 해서 방랑하는 수행자 사비야는 그때 바로 스승 앞에서 출가하여 완전한 계율을 받았다. 그후 얼마 되지 않아 이 장로 사비야는 사람들을 멀리하고 홀로 부지런히 정진하여, 마침내 수행의 최종적인 목표를 ―많은 사람들은 바로 그것을 얻기 위해 집을 떠나 집 없는 상태가 된 것인데―이 생에서 깨달아 증명하고 실천하며 살았다. ‘태어나는 일은 이제 끝났다. 수행은 이미 완성되었다. 할 일을 다 마쳤다. 이제 또다시 이런 생사를 받지 않는다.“라고 깨달았다. 그리하여 사비야 장로는 성인의 한 사람이 되었다.


 


 바라문 세라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날 스승께서는 수행자 천이백오십 인과 함께 앙굿타라파를 두루 다니시다가 아파나라고 하는 앙굿타라파의 한 마을에 들어가셨다. 머리를 땋은 수행자 케니야는 생각했다.

‘석가족의 아들인 사문 고타마는 석가족의 집에서 출가하여, 수행자 천이백오십 인의 큰 무리를 이끌고 다니다가 아파나에 이르렀다, 그 고타마에게는 다음과 같은 좋은 평판이 있다. 즉 그는 참사람, 깨달은 사람 지혜와 덕행을 갖춘 사람, 행복한 사람, 세상을 알아 버린 사람, 더 없이 완벽한 사람, 사람들을 길들이는 이, 신과 인간의 스승, 눈 뜬 사람, 거룩한 스승이라고 불린다. 그는 스스로 진리를 깨닫고 증명하여 신, 악마, 범천을 포함한 이 세계와 사문, 바라문, 신, 인간을 포함하는 모든 살아있는 것들에게 가르침을 베푼다, 그는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마지막도 좋고, 말과 뜻이 잘 갖추어진 가르침과 원만하고 청정한 수행을 설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토록 훌륭하고 존경받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영광스런 일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머리를 닿은 수행자 케니야는 스승이 계신 곳으로 가서 인사를 드렸다. 기쁘고 기억에 남을 만한 인사를 나눈 후에 한쪽에 가 앉았다. 스승께서는 머리를 땋은 수행자 케니야에게 법에 대한 말씀을 하시고 용기를 주어 기쁘게 해주셨다.

케니야는 스승께 이같이 말씀드렸다.



“고타마께서는 수행자의 무리와 함께 내일 제가 올리는 음식을 받아 주십시오.”

이 말을 듣고, 스승은 케니야에게 말씀하셨다.

“케니야여, 수행자의 무리는 많아서 천이백오십 인이나 됩니다. 또 당신은 바라문들을 섬기고 있지 않습니까?”

케니야는 거듭 스승께 여쭈었다.

“고타마시여, 수행자의 무리는 많아서 천이백오십 인이나 되며, 또 저는 바라문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고타마께서는 수행자들과 함께 내일 제가 올리는 음식을 받아 주십시오.”

스승은 케니야에게 거듭 말씀하셨다.

“케니야여, 수행자의 무리는 많아서 천이백오십 인이나 되며, 당신은 바라문들을 섬기고 있지 않습니까?”

케니야는 세번째로 스승께 여쭈었다.

“고타마시여, 수행자의 무리는 많아서 천이백오십 인이나 되며, 또 저는 바라문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고타마께서는 그들과 함께 오셔서 제가 올리는 음식을 받아 주십시오.”

스승께서는 침묵으로써 승낙하셨다. 케니야는 스승께서 승낙하신 것을 알고 자리에서 떠나 자기의 암자로 갔다,

그리고는 친구와 친척들에게 말했다.

“여러분, 내 말을 들으십시오. 나는 사문 고타마를 그 수행자의 무리와 함께 내일 식사에 초대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나를 도와 주십시오.”

케니야의 친구와 친척들은 승낙하고, 어떤 이는 솥을 걸고 장작을 패며, 어떤 이는 그릇을 씻고 독에 물을 길어다 붓고 혹은 자리를 준비했다. 그리고 케니야 자신은 천막을 쳐서 식당을 만들었다. 

이때 세라 바라문이 아파나에 살고 있었는데, 그는 3베다의 깊은 뜻을 깨달아 어휘, 활용론, 음운론, 어원론과 제4의 아타르바 베다와 제5 고담(古譚)의 어구와 문법에 통달하고, 순세론(順世論)과 위인의 관상에 통달했으며, 삼백 명의 소년에게 베다를 가르치고 있었다. 케니야는 세라 바라문을 따르고 있었던 것이다. 마침 그때 세라 바라문은 삼백 명의 소년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그는 오랫동안 앉아 있었기 때문에 생긴 피로를 풀기 위해 여기저기 산책을 하다가 케니아의 암자에 가까이 가게 되었다.



세라 바라문은 케니야의 암자에 사는 머리를 땋은 친구와 친척들이 어떤 이는 솥을 걸고 장작을 패며, 그릇을 씻고 독에 물을 길어다 붓고 혹은 자리를 준비하며, 케니야는 몸소 천막을 쳐서 식당을 만들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그는 케니야에게 물었다.

“케니야여, 당신 아들이 장가라도 가는 것입니까. 또는 딸이 시집이라도 가는 것입니까. 아니면 큰 제사가 있습니까. 또는 마가다 왕 세니야 빔비사라가 군대를 이끌고 내일 식사라도 하러 오게 돼 있습니까?”

“세라여, 저는 아들을 장가 보내지도 않고 딸을 시집 보내지도 않으며, 또 마가다 왕 세니야 빔비사라를 초대하지도 않았습니다. 다름아니라 제게는 머지않아 큰 공양이 있습니다, 석가족의 아들인 사문 고타마가 석가족의 집에서 출가하여 앙굿타라파를 두루 다니다가 그를 따르는 수행자 천이백오십 인과 함께 아파나에 오셨습니다. 그 고타마에게는 이런 좋은 평판이 있습니다. 즉 그는 참 사람, 깨달은 사람, 지혜와 덕행을 갖춘 사람, 행복한 사람, 세상을 알아 버린 사람, 더 없이 완벽한 사람, 사람을 길들이는 이, 신과 인간의 스승, 눈 뜬 사람, 거룩한 스승이라고 불립니다. 저는 그분을 수행자들과 함께 내일 식사에 초대했습니다.”

“케니야여, 당신은 그를 눈 뜬 사람이라고 부릅니까?”

“세라여, 나는 그를 눈 뜬 사람이라 부릅니다.”

“케니야여, 당신은 그를 눈 뜬 사람이라고 부릅니까?”

“세라여, 나는 그를 눈 뜬 사람이라 부릅니다.”



그때 세라 바라문은 생각했다.

‘눈 뜬 사람이란 이 세상에서 그 목소리를 듣기조차 힘든 일이다. 그런데 우리들 성전 속에 위인의 상이 서른두가지 전해지고 있다. 그것을 갖추고 있는 위인에게는 단 두 가지 길이 있을 뿐 다른 길은 있을 수 없다. 만일 그가 세속의 생활을 한다면, 그는 전륜왕이 되어 정의를 지키는 법왕, 세상의 정복자로서 나라와 백성을 안정시키고 일곱 가지 보배를 갖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그에게는 바퀴, 코끼리, 말, 구슬, 여자, 재산 그리고 지휘자라는 보배가 따를 것이다. 또 그에게는 천 명 이상의 아들이 있어 모두가 용감무쌍하며 적을 쳐부순다. 그는 이 대지를 사해의 끝에 이르기까지 무력을 쓰지 않고 정의로써 정복하고 지배한다. 그러나 그가 만일 집을 떠나 출가자가 된다면 참사람, 깨달은 사람이 되어 이 세상 온갖 번뇌를 없앨 것이다.

註) 전륜왕은 전세계를 통일한다는 이상적인 황제로, 인도인들 사이에서 예로부터 전해져 오고 있는 인물이다.



세라는 케니야에게 물었다.

“케니야여, 그럼 그 참사람, 깨달은 사람인 고타마께서는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케니야는 바른팔을 들어 세라 바라문에게 말했다. 

“세라여, 저쪽으로 가면 푸른 숲이 있습니다. 그분은 그곳에 계십니다.”

그리하여 세라 바라문은 삼백 명의 소년들과 함께 스승이 계신 곳으로 갔다. 그때 세라 바라문은 같이 온 바라문 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천천히 걸어 소리를 내지 말고 따라오너라, 모든 스승은 사자처럼 홀로 거니는 분이며 가까이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사문 고타마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너희들은 중간에 끼어 들어서는 안 된다. 내 말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세라 바라문은 거룩하신 스승이 계신 곳으로 갔다. 스승께 절을 하고 나서 기쁘고 기억에 남을 만한 인사를 나눈 뒤 한쪽에 가 앉았다. 그리고 세라 바라문은 스승의 몸에 서른 두 가지 위인의 상이 있는지 살폈다. 그는 스승의 몸에서 단 두 가지 상을 빼고는 서른두 가지 위인의 상이 거의 갖추어져 있음을 보았다. 그는 그 두 가지 상이 과연 스승께 있는지 없는지 의심되어 ‘눈 뜬 사람’이라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그 두 가지란 몸의 막 속에 들어 있는 음부와 광장설상이었다. 

그때 스승은 생각하셨다.

‘이 세라 바라문은 내 몸에 있는 서른두 가지 위인의 상을 거의 보았지만, 단 두 가지는 보지 못했다. 몸의 막 속에 들어 있는 음부와 광장설이라는 두 위인상이 과연 내게 있는지 없는지 의심하고, 눈 뜬 사람임을 믿지 않는구나.’

그래서 스승께서는 세라 바라문이 몸의 막 속에 들어 있는 음부를 볼 수 있도록 신통력을 보이셨다. 그리고 혀를 내밀어 혓바닥으로 양쪽 귓속을 아래위로 핥으시고, 양쪽 콧구멍을 아래위로 핥으시며, 또 이마를 핥으셨다.

註) 바라문 세라가 몸의 안에 들어 있는 음부를 볼 수 있도록 신통력을 나타내셨다는 말은 서른두 가지 특징 가운데 제27번째의 특징을 말한 것으로, 부처님의 성기性器는 말의 성기처럼 보통 때는 성기가 몸 속에 들어가 있기 때문에 밖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또 혀로 양쪽 귓속을 아래위로 핥으시고, 양쪽 콧구멍을 아래위로 핥으시며, 또 이마를 핥으셨다는 말은, 서른두 가지 특징 가운데 제12번째의 특징인 ‘혀가 긴 것’을 말한다.


세라 바라문은 이렇게 생각했다.

‘사문 고타마는 서른두 가지 위인상을 완전히 갖추고 계시다. 그러나 나는 그가 부처님인지 아닌지는 아직 모르겠다. 다만 나는 늙고 나이가 많아, 스승이나 또는 그의 스승인 바라문들이, 모든 존경받는 사람과 깨친 사람은 자기가 칭찬 받았을 때는 자신을 나타낸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럼, 나는 적당한 시로써 사문 고타마를 그 앞에서 찬양하리라.’

그래서 세라 바라문은 적당한 시로써 스승의 앞에서 찬양하였다. 


 


 548.

“스승이시여, 힘이 넘치는 이여, 당신의 몸은 완전하고 빛이 나며 보기에도 아름답습니다. 금빛으로 빛나며 이는 아주 하얗습니다. 


 549.

그리고 훌륭한 사람의 특성은 모두 위인의 상으로서 당신 몸에 갖추어져 있습니다.


 550.

당신의 눈은 맑고 얼굴도 보기 좋으며 몸집은 크고 단정하며, 수행자들 속에서도 태양처럼 빛납니다.


 551.

당신은 보기에도 아름다운 수행자로 피부는 황금빛입니다. 이렇듯 용모가 훌륭한데 어찌 수행자가 되었습니까?


 552.

당신은 전륜왕이 되어 군대를 거느리고 천하를 정복하여 잠주부(인도)의 통치자가 되셔야 합니다.


 553.

왕족이나 시골의 왕들은 당신께 충성을 맹세할 것입니다. 고타마시여, 왕 중의 왕으로서, 인류의 제왕으로서 세상을 다스리십시오.“


 554.

스승은 대답하셨다. 

“세라여, 나는 왕이로되 더없는 진리의 왕입니다. 진리로써 바퀴를 굴리는 것입니다. 거꾸로 돌 수 없는 바퀴를.”


 555.

세라 바라문이 말했다.

“당신은 정각자라고 스스로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고타마시여, 당신은 ‘더없는 진리의 왕이고, 진리로써 바퀴를 굴린다’고 말씀하십니다.


 556.

그렇다면 누가 당신의 장군입니까. 당신을 이어받을 제자는 누구입니까. 누가 당신의 뒤를 이어 이 진리의 바퀴를 굴릴 것입니까?“


 557.

스승은 대답하셨다.

“세라여, 내가 굴린 더없는 진리의 바퀴를 사리풋타가 굴릴 것입니다. 그는 완전한 사람을 따라 나타난 사람입니다.


 558.

나는 알아야 할 것을 이미 알았고 닦아야 할 것을 이미 닦았으며 끊어야 할 것을 이미 끊어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부처입니다.


 559.

나에 대한 의혹을 푸십시오. 바라문이여. 그리고 나를 믿으십시오. 깨달은 사람들을 만나기란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560.

그들(눈 뜬 사람)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을 그대들은 보기 어려운 일인데, 나는 바로 그 정각자입니다. 바라문이여, 나는 번뇌의 화살을 꺽어 버린 더없이 완벽한 사람입니다.


 561.

나는 신성한 사람이며, 비길 데가 없고, 악마의 군대를 물리쳤으며, 모든 적을 항복시켰고, 아무 것에도 두려움 없이 기뻐합니다.“


 562.

세라는 제자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눈이 있는 이의 말씀을 들으라. 그는 번뇌의 사슬을 끊어 버린 사람이며 위대한 영웅이시다. 마차 사자가 숲 속에서 포효하는 것과 같다.


 563.

신성한 분, 비길 데가 없고, 악마의 군대를 물리친 분을 보고 누가 믿지 않을 것인가. 피부가 검은 종족 출신이라도 믿으리라.


 564.

따르고 싶은 자는 나를 따르라. 그리고 따르고 싶지 않은 자는 떠나가거라. 나는 뛰어난 지혜를 가진 분에게 출가하겠다. 


 565.

세라의 제자들이 말했다.

“만일 스승님께서 깨달은 분의 가르침을 기뻐하신다면, 저희들도 또한 뛰어난 지혜를 가진 분에게 출가하겠습니다.”


 566.

세라가 스승께 말했다.

“저희들 삼백 명의 바라문은 합장하고 부탁합니다. 스승이시여, 저희들은 당신 곁에서 깨끗한 수행을 닦겠습니다.”


 567.

스승이 말씀하셨다. 

“세라여, 깨끗한 수행은 잘 설해져 있습니다. 그것은 눈 앞에 당장 열매를 가져옵니다. 도를 닦는 사람이 게으르지 않고 출가하여 깨끗한 수행을 닦는 것은 헛된 일이 아닙니다.”



세라 바라문은 제자들과 함께 스승 곁에 출가하여 완전한 계율을 받았다. 

한편 머리를 땋은 수행자 케니야는 그날 밤이 지나자 자기 암자에 여러 가지 맛있는 음식을 차려 놓고 스승께 시간이 된 것을 알렸다. 

“고타마시여, 시간이 되었습니다. 공양 준비가 되었습니다.”

스승은 오전 중에 속옷과 겉옷을 입고 바리때를 드시고 머리를 땋은 수행자 케니아의 암자로 가셨다. 그리고 수행자의 무리와 함께 미리 마련된 자리에 앉으셨다. 케니야는 부처님과 수행자들에게 손수 맛좋은 음식을 나르면서 마음껏 들도록 권했다. 그리고 케니야는 스승께서 공양을 마치시고 바리때에서 손을 떼시자 스승의 발치에 앉았다. 스승은 다음과 같은 시로써 케니아에게 감사의 말씀을 하셨다.


 568.

“불에 대한 공양은 공양 중에도 가장 으뜸입니다. 사비트리는 베다의 시구 중에서 으뜸이고, 왕은 사람 중에서 으뜸이며, 큰 바다는 모든 강 중에도 으뜸입니다.

註) 불에 대한 공양이란 소마soma라 하여, 바라문 수행자들은 성스런 불을 피운 다음 그 불 속에 음식과 버터 등을 던져서 신에게 바쳤다.


 569.

달은 별들 중에서 으뜸이며, 태양은 빛나는 것 중에서 으뜸이고, 수행자들은 복과 덕을 바라고 공양하는 사람들 중에서 가장 으뜸입니다.“



스승은 이러한 시를 읊어 케니야에게 감사의 뜻을 말씀하시고 자리에서 일어나 돌아가셨다. 

세라 장로는 자기를 따르던 무리들을 떠나 홀로 부지런히 정진하여 마침내 수행의 최종적인 목표를-많은 사람들은 바로 그것을 얻기 위해 집을 떠나 집 없는 상태가 된 것인데- 이 생에서 깨달아 증명하고 실천하며 살았다. ‘태어나는 일은 이제 끝났다. 수행은 이미 완성되었다. 할 일을 다 마쳤다. 이제 또 다시 이런 생사를 받지 않는다’라고 깨달았다. 그리하여 세라 장로는 그의 무리와 함께 성인의 한 사람이 되었다.

그후 세라 장로는 그의 무리와 함께 성인의 한 사람이 되었다.

그후 세라 장로는 그의 무리들과 함께 스승이 계신 곳으로 갔었다. 그리고 옷을 왼쪽 어깨에 걸치고, 스승께 합장하며 다음의 시로써 여쭈었다.


 


 570.

“스승이시여, 눈이 있는 분이시여, 오늘부터 여드레 전에 우리는 당신께 귀의했습니다. 그리고 일곱 밤을 지나 우리는 당신의 가르침 속에서 안정을 얻었습니다. 


 571.

당신은 깨달은 분이십니다. 당신은 스승이십니다. 당신은 악마를 정복한 분이시며 현자이십니다. 당신은 번뇌의 숨은 힘을 끊고 스스로 거센 흐름을 건너셨고, 또 사람들을 건네 주십니다.


 572.

당신은 속박을 뛰어넘었고 모든 번뇌의 더러움을 없앴습니다. 당신은 집착하지 않고 두려워 떨지 않는 사자입니다.


 573.

이들 삼백 명의 수행자는 합장하고 서 있습니다. 용감한 분이시여, 두 발을 뻗으십시오. 여러 용들에게 스승께 예배 드리도록 하렵니다.“

註) 용은 수행자를 말한다.


 


 화살



 574.

사람의 목숨은 정해져 있지 않아 얼마를 살지 아무도 모른다. 사람의 삶은 애처롭고 짧으며 고뇌로 엉켜 있다.


 575.

태어난 것은 죽음을 피할 길이 없다. 늙으면 죽음이 찾아 온다. 생이 있는 자의 운명은 실로 이런 것이다.


 576.

익은 과일은 빨리 떨어진다. 그와 같이 한번 태어난 자는 죽지 않으면 안 된다. 그들에게는 항상 죽음의 두려움이 있다.


 577.

이를테면 옹기장이가 만든 질그릇이 마침내는 모두 깨어지고 말 듯이 사람의 목숨도 또한 그러하다.


 578.

젊은이도, 늙은이도, 어리석은 이도, 지혜로운 이도 모두 죽음에는 굴복하고 만다. 모든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


 579.

그들은 죽음에 붙잡혀 저 세상으로 가지만, 아비도 그 자식을 구하지 못하고 친척도 그 친척을 구하지 못한다.


 580.

보라, 친척들이 애타는 마음으로 지켜보지만, 사람들은 하나씩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사라져 간다.


 581.

이렇듯 세상 사람들은 죽음과 늙음으로 인해서 고통받는다. 그러나 지혜로운 이는 이것의 참 모습을 알고 슬퍼하지 않는다.


 582.

그대는 온 사람의 길을 모르고, 간 사람의 길도 모른다. 그대는 생과 사 양쪽 끝을 보지 못하고 부질없이 슬피 운다.


 583.

어리석음에 붙들려 자기 몸을 해치는 사람이 슬피 울어서 무슨 이익이라도 생긴다면, 지혜로운 사람도 이미 그렇게 했을 것이다.


 584.

슬피 우는 것으로는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는 없다. 다만 괴로움만 깊어지고 몸만 여윌 따름이다.


 585.

괴로워할수록 몸은 여위고 추하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것도 아니므로 슬피 우는 것은 아무 이득도 없는 일이다.


 586.

슬픔을 버리지 않는 사람은 점점 더 괴로워질 뿐이다. 죽은 사람 때문에 우는 것은 슬픔에 사로잡힌 것이다.


 587.

자신이 지은 업에 따라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라. 또 살아 있는 자는 죽음에 붙잡혀 떨고 있지 않은가.


 588.

사람들이 어떤 것을 희망할지라도 결과는 다르게 나타난다. 기대에 어긋나는 것도 이와 같느니라. 보라, 세상의 저 모습을!


 589.

사람이 백 년을 살거나 그 이상을 산다 할지라도 결국은 친족들을 떠나 이 세상에서의 생명을 버리게 된다,


 590.

그러므로 존경하는 사람의 말씀을 듣고, 죽은 사람을 보았을 때에는 ‘그에게는 이미 내 힘이 미치지 못하게 되었구나’라고 깨달아 슬퍼하거나 탄식하지 마라.


 591.

집에 불이 난 것을 물로 꺼버리듯, 지혜로운 사람들은 걱정이 생기면 이내 지워 버린다. 마치 바람이 솜털을 날려 버리듯이.


 592.

진정한 즐거움을 구하는 사람은 슬픔과 욕심과  걱정을 버리라. 번뇌의 화살을 뽑으라.


 593.

번뇌의 화살을 뽑아 버리고 마음의 평안을 얻는다면, 모든 걱정을 초월하여 근심 없는 자, 절대 평화의 세계에 들어간 자가 될 것이다.


 


 젊은이 바셋타.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날 거룩한 스승께서는 잇차낭갈라 숲에 살고 계셨다. 그때 재산이 많고 유명한 바라문들이 그곳에 많이 살고 있었다. 즉 찬킨 바라문, 타루카 바라문, 폭카라사티 바라문, 자눗소니 바라문, 토데야 바라문, 이밖에 저명한 바라문들이었다.

그때 바셋타와 바라드바자라고 하는 두 젊은이가 오랫동안 앉아 있었기 때문에 생긴 피로를 풀기 위해 여기저기 거닐면서 논쟁을 벌였다.

“도대체 바라문이란 어떤 것인가?”

바라드바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버지와 어머니 양쪽이 다 칠 대의 조상에 이르기까지 혈통에 대해서 지탄이나 비난을 받은 일이 없는 순수한 모태에서 태어난 사람, 이런 사람을 바라문이라 합니다.”

바셋타는 말했다.

“계율을 지키며 덕행을 갖추고 있는 사람, 바로 이런 사람이 바라문입니다.”

바라드바자는 바셋타를 설득할 수 없었고, 바셋타도 바라드바자를 설득할 수 없었다. 그래서 바셋타는 바라드바자에게 말했다. 

“바라드바자여, 석가족의 아들인 사문 고타마는 출가하여 이곳 잇차낭갈라 숲에 살고 있습니다. 그 고타마에게는 다음과 같은 좋은 평판이 있습니다. 즉 그는 참사람, 깨달은 사람, 지혜와 덕행을 갖춘 사람, 행복한 사람, 세상을 알아 버린 사람, 더없이 완벽한 사람, 사람들을 길들이는 이, 신과 인간의 스승, 눈 뜬 사람, 거룩한 스승이라고 불립니다. 사문 고타마에게 가 봅시다. 거기 가서 그분에게 이것을 물어 봅시다. 그의 대답에 따라 그것을 믿읍시다.”

그들은 스승이 계신 곳으로 찾아갔다. 스승께 절하고 나서, 기쁘고 기억에 남을 만한 인사를 나눈 뒤 한쪽에 앉았다. 바셋타 바라문은 다음과 같은 시로써 스승께 여쭈었다.


 594.

“우리 두 사람은 3베다의 학자라고 스승도 인정하고 스스로도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저는 폭카라삿티의 제자이고 이 사람은 타루카의 제자입니다.

註) 폭카라사티, 타루카 이 두 사람은 모두 잇차낭갈라 마을에 살던 부유한 바라문 사제들이다.


 595.

3베다에 씌여 있는 모든 것을 우리는 완전히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베다의 어구와 문법에 통달했고 독송도 스승에게 견줄 만 합니다.


 596.

고타마시여 그러한 우리가 태생에 대한 논쟁을 했습니다. ‘태생에 따라 바라문이 된다.’고 바라드바자는 말합니다. 그러나 저는 ‘행위에 따라 바라문이 된다.’라고 주장합니다. 눈이 있는 분이시여, 이런 사정임을 알아 주십시오.


 597.

우리 두 사람은 서로 상대방을 설득시킬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눈 뜬 사람으로 널리 알려진 스승께 물으러 온 것입니다.


 598.

사람들이 보름달을 향해 합장하고 절하듯이, 세상 사람들은 고타마를 향해 절합니다.


 599.

세상의 눈으로 출현하신 고타마께 우리는 묻습니다. 태생에 따라 바라문이 됩니까, 행위에 따라 바라문이 됩니까? 알지 못하는 우리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바라문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도록.“


 600.

스승은 대답하셨다.

“바셋타여, 그대들을 위해 모든 생물에 대한 구별을 설명해 주리라. 그들에게 여러 가지 종류가 있는 것은 태생이 여러 가지로 다르기 때문이다.


 601.

풀이나 나무에도 종류와 구별이 있음을 알아라. 그러나 그것들은, ‘우리는 풀이다’라든가 ‘우리는 나무다’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들의 특징은 태생에 따르고 있는데, 그들의 태생이 여러 가지로 다르기 때문이다.


 602.

또 구더기나 귀뚜라미로부터 개미에 이르는 것들에도 종류의 구별이 있음을 알아라. 그들의 특징은 태생을 따르고 있는데, 그들의 태생이 여러 가지로 다르기 때문이다.


 603.

작은 것이나 큰 것이나 네 발 달린 짐승에게도 종류의 구별이 있음을 알아라. 그들의 특징은 태생을 따르고 있는데, 그들의 태생이 여러 가지로 다르기 때문이다.


 604.

배로 기어다니는 길이가 긴 것들에도 종류와 구별이 있음을 알아라, 그들의 특징은 태생을 따르고 있는데, 그들의 태생이 여러 가지로 다르기 때문이다.


 605.

물에서 태어나 물에서 사는 물고기들도 종류의 구별이 있음을 알아라. 그들의 특징은 태생을 따르고 있는데, 그들의 태생이 여러 가지로 다르기 때문이다.


 606.

그리고 날개를 펴고 하늘을 나는 새들에도 종류의 구별이 있음을 알아라. 그들의 특징은 태생을 따르고 있는데, 그들의 태생이 여러 가지로 다르기 때문이다.


 607.

이와 같이 생물에 있어서는 태생에 다른 특징이 여러 가지로 다르지만, 사람에게는 그 특징이 다를 수 없다.


 608.

머리카락이나 머리, 귀, 눈, 코, 입술이나 눈썹에 대해서도.


 609.

목이나 어깨, 배, 등, 엉덩이, 가슴, 음부에 대해서도,


 610.

손이나 발, 손가락, 손톱, 종아리, 허벅지, 피부색이나 음성에 대해서도, 다른 생물처럼 태생에 따른 특징의 구별이 사람에게는 결코 없다.


 611.

몸을 가지고 태어난 생물 사이에는 각기 구별이 있지만, 인간에게는 그런 구별이 없다. 인간 사이에서 구별이 있는 것은 다만 그 이름뿐이다.


 612.

인간 가운데서 소 치는 것으로 사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농부라 부르지 바라문이라 부르지 않음을 알아라. 바셋타여.


 613.

인간 가운데서 여러 가지 기술로 생활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기술자라 부르지 바라문이라 부르지 않음을 알아라. 바셋타여.


 614.

인간 가운데서 사고 파는 것으로 생활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상인이라 부르지 바라문이라 부르지 않음을 알아라. 바셋타여.


 615.

인간 가운데서 남의 일을 해주는 것으로 생활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고용인이라 부르지 바라문이라 부르지 않음을 알아라. 바셋타여.


 616.

인간 가운데서 훔친 것을 가지고 생활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도둑이라 부르지 바라문이라 부르지 않음을 알아라. 바셋타여.

註) ‘주지 않는 것을 가지고 생활하는 사람’이란 ‘도둑’과 ‘통치자’를 동시에 말하고 있다. 둘 다 선량한 사람들에게 폭력을 써서 무엇인가를 빼앗아 가기 때문이다.


 617.

인간 가운데서 무술로 생활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무사라 부르지 바라문이라 부르지 않음을 알아라. 바셋타여.


 618.

인간 가운데서 제사 지내는 것으로 생활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제관이라 부르지 바라문이라 부르지 않음을 알아라. 바셋타여.


 619.

인간 가운데서 마을이나 나라를 차지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왕이라 부르지 바라문이라 부르지 않음을 알아라. 바셋타여.


 620.

나는 바라문의 어머니에게서 태어났기 때문에 그를 바라문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그는 ‘그대여, 라고 불리는 사람’이라 불린다. 그는 무엇인가 소유물에 걸려 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고 집착이 없는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註) 바라문들은 서로 ‘그대여bho'라는 말로 부른다. 초기 불교에서도 이상적인 수행자를 바라문이라고 불렀다. 


 621.

모든 속박을 끊고 두려움이 없으며, 집착을 초월하고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는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22.

고삐와 함께 가죽끈과  가죽줄을 끊어 버리고 어리석음을 없애 눈을 뜬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23.

죄 없이 욕을 먹고 구타나 구속을 참고 견디며, 인내력이 있고 마음이 굳센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24.

성내지 않고 도덕을 지키며 계율에 따라 욕심을 부리지 않고 몸을 잘 다스려 ‘최후의 몸’에 이른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25.

연꽃 위의 이슬처럼, 송곳 끝의 겨자씨처럼, 온갖 욕정에 더럽혀지지 않는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註) ‘송곳 끝의 겨자씨’란, 집착하는 마음이 없음을 말한다. 송곳 끝에 아무리 작은 겨자씨를 올려놓아도 곧 떨어지는 것처럼.


 626.

이 세상에서 이미 자기의 고뇌가 소멸된 것을 알고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걸림이 없는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27.

지혜가 깊고 현명하며 온갖 길에 통달해 최고의 목적에 도달한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28.

재가자나 출가자 누구하고도 섞이지 않고, 집 없이 두루 다니며 욕심이 없는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29.

힘세거나 약한 어느 생물에게도 폭력을 쓰지 않고, 또 죽이거나 죽이도록 하지도 않는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30.

적의를 품은 자들과 함께 있으면서도 그들에게 적의를 품지 않고, 폭력을 휘두르는 자와 함께 있으면서도 마음이 온화하며, 집착하는 자들과 함께 있으면서도 집착하지 않는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31.

겨자씨가 송곳 끝에서 떨어지듯이, 집착과 증오와 오만과 거짓을 털어 버린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32.

거칠지 않고 사연을 전하는 데 진실한 말을 하며 말로써 남의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는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33.

이 세상에서 길거나 짧거나, 가늘거나 굵거나, 깨끗하거나 더러운 것을 막론하고 주지 않은 것은 어떤 것이라도 갖지 않는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34.

현세도 내세도 바라지 않고, 욕심도 걸림도 없는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35.

집착이 없고 완전히 깨달아 의혹이 없고 불사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36.

이 세상의 재앙이나 복과 덕, 그 어느 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근심과 티가 없이 깨끗한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37.

구름에 가리지 않은 달처럼, 깨끗하고 맑아 환락의 생활을 끝낸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38.

이 힘들고 어려운 길, 윤회와 헤맴을 넘어 피안에 이르고, 깊이 명상하여 욕망도 집착도 없이 마음이 고요한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39.

이 세상에 대한 욕망을 끊고 집을 떠나 두루 다니며 집착의 생활을 끝낸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40.

이 세상에 대한 집착을 끊고 집을 떠나 두루 다니며 집착의 생활을 끝낸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41.

인간의 인연을 끊고 천상의 인연도 끊어 모든 굴레를 벗어 던진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註) ‘모든 굴레’는 시간의 지배를 벗어나지 못한 것을 말한다.


 642.

쾌락도 쾌락 아닌 것도 버리고, 맑고 께끗해져 얽매임 없이 세상을 이겨낸 영웅,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43.

모든 살아 있는 생물의 생사를 알고 집착 없이 행복한 사람, 깨달은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44.

신도 귀신(간다르바)도 인간도 그 행방을 알 수 없는 사람, 번뇌의 더러움을 씻어버린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45.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단 하나의 물건도 갖지 않고 집착하지 않는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46.

황소처럼 늠름하고 기품 있는 영웅, 위대한 성자, 도의 승리자, 욕망 없는 사람, 목욕하는 사람, 깨달은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47.

삶의 모든 일을 알고 천국과 지옥을 보며 생존을 멸해버린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48.

세상에서 쓰는 이름이나 성은 부르기 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이 태어나는 그때마다 임시로 붙여지는 것이다.


 649.

이름이나 성이 임시로 붙여진 것임을 모르는 사람은 그릇된 선입견을 오래 가지게 된다. 모르는 사람은 말한다, ‘태생에 의해서 바라문이 된다’고


 650.

태생에 의해 바라문이 되는 것은 아니다. 태생에 의해 바라문이 안 되는 것도 아니다. 행위로 인해 바라문이 되기도 하고, 행위로 인해 바라문이 안 되기도 하는 것이다.


 651.

행위에 의해 농부가 되고, 행위에 의해 기술자가 되며, 행위에 의해 상인이 되고, 또한 행위에 의해 고용인이 된다.


 652.

행위에 의해 도둑이 되고, 행위에 의해 무사가 되며, 행위에 의해 제관이 되고, 행위에 의해 왕이 된다.


 653.

현자는 이와 같이 행위를 있는 그대로 본다. 그들은 ‘연기(緣起)’를 보는 자이며, 행위와 그 결과를 잘 알고 있다.


 654.

세상은 행위에 의해 존재하며, 사람들도 행위에 의해서 존재한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행위에 매여 있다. 마치 달리는 수레바퀴가 축에 매여 있듯이.


 655.

고행과 청정한 수행과 감각의 절제와 자제, 이것으로 바라문이 된다. 이것이 으뜸가는 바라문이다.


 656.

지식인들이 볼 때 3베다를 갖추고 마음이 편안하여 다시는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는 사람이 범천이며 제석천이다. 바셋타여, 이러한 줄을 알아라.“



이와 같은 말씀을 듣고 바셋타와 바라드바자 청년은 스승께 말씀드렸다.

“훌륭한 말씀이십니다, 고타마시여. 훌륭한 말씀이십니다, 고타마시여. 마치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 주듯이, 덮인 것을 벗겨 주듯이, 길 잃은 이에게 길을 가르쳐 주듯이, 또는 ’눈이 있는 사람은 빛을 볼 것이다’ 하고 어둠속에서 등불을 비춰 주듯이, 당신 고타마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진리를 밝혀 주셨습니다. 저희는 당신께 귀의합니다. 그리고 진리와 도를 닦는 수행자의 모임에 귀의합니다. 당신 고타마께서는 저희들을 재가 수행자로서 받아 주십시오. 오늘부터 목숨이 다할 때까지 귀의하겠습니다.”


 


 비난하는 사람 코칼리야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날 거룩한 스승께서는 사밧티의 제타 숲, 외로운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 주는 장자의 동산에 계셨다. 그때 수행자 코칼리야는 스승께 가가이 다가왔다. 그리고 예의를 갖춰 절한 뒤, 한쪽으로 가서 앉아 말씀드렸다.

“거룩한 스승이시여, 사리풋타와 목갈라나는 그릇된 생각을 가지고 나쁜 욕망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註) 사리풋타와 목갈라나는 부처님의 10대 제자 가운데 그 중추 역할을 하던 두 제자를 가리킨다.


이말을 들은 스승은 수행자 코칼리야에게 일렀다.

“코칼리야여, 그렇게 말하지 말아라. 코칼리야여, 그렇게 말하지 말아라. 사리풋타와 목갈라나는 선량한 사람들이다.”

코칼리야는 거듭 말씀드렸다.

“거룩한 스승이시여, 저는 스승을 믿고 의지하고 있습니다만, 사리풋타와 목갈라나는 그릇된 생각을 가지고 나쁜 욕망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스승은 다시 수행자 코칼리야에게 말씀하셨다.

“코칼리야여, 그렇게 말하지 말아라, 사리풋타와 목갈라나를 믿고 사랑하여라. 그들은 선량한 사람들이다.”

코칼리야는 세 번째로 말씀드렸다.

“거룩하신 스승이시여, 저는 스승을 믿고 의지하고 있습니다만, 사리풋타와 목갈라나는 그릇된 생각을 가지고 나쁜 욕망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스승께서는 세 번 같은 말씀을 하셨다.

“코칼리야여, 그렇게 말하지 말아라, 그들을 믿고 사랑하여라. 그들은 선량한 사람들이다.”


그러자 수행자 코칼리야는 자리에서 일어나 스승께 절하고 바른쪽으로 돌아 나가버렸다. 그는 나가자마자 온몸에 겨자씨만한 종기가 생겼다. 처음에는 겨자싸만하던 것이 차차 팥알만해졌다. 팥알만하던 것이 또 콩알만해졌다. 그러더니 대추씨만해지고 대추알만해졌다. 이와같이 감자만해지고 덜 익은 모과 열매만해지고 익은 모과만하던 것이 마침내 터져서 고름과 피가 되어 흘렀다. 코칼리아는 마침내 그 병 때문에 죽고 말았다. 그리고 그는 사리풋타와 목갈라나에게 적의를 품었기 때문에 죽어서 홍련지옥에 떨어지게 되었다.


그때 사바세계의 주인인 범천은 한밤중이 지났을 무렵, 아름다운 얼굴로 제타 숲을 두루 비추며 스승이 계신 곳으로 찾아갔다. 스승께 예를 갖춰 인사를 드린 뒤, 한쪽에 서서 말했다.

“거룩하신 스승이시여, 수행자 코칼리야는 죽었습니다. 거룩하신 스승이시여, 수행자 코칼리야는 사리풋타와 목갈라나에게 적의를 품었기 때문에 죽어서 홍련지옥에 떨어졌습니다.”

사바세계의 주인인 범천은 이렇게 말하며 스승께 절하고 바른편으로 돌아 사라졌다.


날이 밝자 스승은 여러 수행자에게, 어젯밤에 범천이 왔던 일을 말씀하셨다. 그때 한 수행자가 이렇게 말했다. 

“거룩한 스승이시여, 홍련지옥의 수명은 얼마나 됩니까?”

“수행자여, 홍련지옥의 수명은 길다, 그것을 몇 년이라든가, 몇백 년, 몇천 년, 몇만 년이라고 헤아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거룩한 스승이시여, 그렇지만 비유로써 설명하실 수는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 그렇게는 말할 수 있다.”

하시면서 스승께서는 말씀하셨다.

“수행자여, 이를 테면 코살라국의 말로 되어서 스무 카리카(한 수레분)의 깨가 있는데, 그것을 꺼낸다고 하자. 한 사람이 백 년마다 한 알씩 꺼내는 방법으로 스무 카리카의 깨를 다 꺼낸다하면 그것이 한 압부다지옥이다. 그리고 스무 압부다지옥은 한 니랍부다지옥과 같다. 또 스무 니랍부다지옥은 한 아바바지옥이며, 스무 아바바지옥은 한 아하하지옥, 스무 아하하지옥은 한 아타타지옥이며, 스무 아타타지옥은 한 황련지옥과 같으며, 스무 황련지옥은 한  백수련지옥과 같으며, 스무 백수련지옥은 한 청련지옥, 스무 청련지옥은 한 백련지옥, 스무 백련지옥은 한 홍련지옥에 해당된다. 수행자들이여, 그런데 코칼리야는 사리풋타와 목갈라나에게 적의를 품었기 때문에 홍련지옥에 떨어진 것이다.

행복한 사람인 스승은 다시 말씀을 이으셨다.



 657.

사람이 태어날 때는 그 입 안에 도끼를 가지고 나온다. 어리석은 자는 욕설을 함으로써, 그 도끼로 자신을 찍고 만다.


 658.

비난받을 사람을 칭찬하고 또 칭찬해야 할 사람을 비난하는 사람, 그는 입으로 죄를 짓고 그 죄 때문에 즐거움을 누리지 못한다.


 659.

도박으로 재산을 잃은 자는, 자기 자신까지 포함해 모든 것을 잃는다 하더라도 그 불행이 오히려 적다. 그러나 완전한 경지에 이른 사람에게 악의를 품는 사람의 죄는 아주 무겁다.

註) 자기 자신까지 포함한다는 말은, 노름꾼들은 노름판에 걸 돈이 없으면 자기 자신을 걸어 놓고 노름을 하는 경우가 있음을 뜻한다.


 660.

나쁜 말 또는 나쁜 뜻을 가지고 성인을 비방하는 사람은, 십만삼십육 니랍부다지옥과 압부다지옥에 떨어진다.


 661.

거짓말하는 자는 지옥에 떨어진다. 또 했으면서 안 했다고 하는 자도 마찬가지다. 둘 다 똑같이 행동이 비열한 사람들이라, 죽은 후에는 똑같이 지옥에 떨어진다,


 662.

남을 해칠 마음이 없고 깨끗하고 더럽혀지지 않은 사람을 미워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그러한 나쁜 과보가 되돌아온다. 바람을 거슬러서 먼지가 날아오는 것처럼.


 663.

여러 가지 탐욕에 빠져 믿음도 없고 인색하며 불친절하고 이기적이며 이간질을 하는 사람은 말로써 남을 때리는 것과 같다.


 664.

입이 더럽고 불성실하며 천한 자여, 산 것을 죽이고 사악한 행위를 하는 자여, 야비하고 불량하며 덜된 자여, 말을 함부로 하지 말아라. 그대는 지옥에 떨어지리라.


 665.

그대는 먼지를 뿌려서 세상을 더럽히고 착한 사람들을 비난하여 죄를 지으며 온갖 나쁜 일을 하여 오랫동안 깊은 구렁(지옥)에 빠진다.


 666.

그 어떤 업도 그대로 없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반드시 그 임자에게 되돌아온다. 어리석은 자는 이 세상에서 죄를 짓고 저 세상에서 그 괴로운 죄가를 받는다.


 667.

지옥에 떨어진 자는 쇠꼬쟁이에 꿰이고, 날카로운 철창에 찔린다. 또한 불에 달군 쇳덩이를 속세에서 지은 업만큼 먹어야 한다.


 668.

지옥의 옥졸들은 ‘잡아라!’ ‘때려라!’ 소리칠 뿐 부드러운 말을 하지 않으며 상냥한 얼굴로 대해 주지 않고 의지가 되어 주지 않는다. 지옥에 떨어진 자는 숯불 위에 앉아야 하며 뜨거운 불길 속에 들어가야 한다.


 669.

또한 지옥의 옥졸들은 지옥에 떨어진 사람들을 철망에 몰아넣은 후 쇠망치로 내려친다. 그리고 새까만 암흑 속에 가두는데, 그 어둠은 안개처럼 끝없이 퍼져 있다.


 670.

또 다음에는 펄펄 끓어오르는 가마솥에 들어가야 한다. 오랫동안 그 끓는 가마솥 안에서 삶기면서 몸은 떴다 가라앉았다 한다.


 671.

피고름이 가득 찬 솥이 있어, 죄를 지은 자는 그 속에서 삶긴다. 그는 어디로 가든지 피고름 때문에 더렵혀진다.


 672.

구더기가 우글거리는 가마솥이 있어, 죄를 지은 자는 그 안에서 삶긴다. 나오려 해도 붙잡을 것이 없다, 그 솥은 안으로 굽고 둘레가 모두 한결같기 때문이다.


 673.

날카로운 칼날로 된 숲이 있어, 지옥에 떨어진 자는 그 속에서 팔다리가 잘린다. 지옥의 옥졸들은 꼬쟁이로 혀를 꿰어 잡아당기면서 괴롭힌다.


 674.

또 지옥에 떨어진 자는 예리한 면도칼이 흐르는 베다라니 강에 이른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나쁜 일을 하고 죄를 지음으로써 그곳에 떨어진다.

註) 베다라니 강은 사자死者들이 건너는 강으로, 이 강을 건너서 염라국, 저승에 이르게 된다, 힌두교 신화에 따르면 이 강은 지상 세계와 지하 세계 사이에 가로놓인 강으로, 심한 악취를 풍긴다고 한다.


 675.

그곳에는 검은 개와 늑대와 여우들이 있어 울부짖는 사람들을 뜯어먹는다. 또 독수리와 까마귀들도 살을 쪼아먹는다.


 676.

죄를 지은 자가 살아야 하는 지옥에서의 삶은 실로 비참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생명이 남아 있는 동안 해야 할 일을 하고 헛되이 지내지 말아야 한다,


 677.

홍련지옥에 떨어진 자의 수명은 수레에 실은 깨알의 수만큼 된다고 지혜로운 사람들은 헤아렸다. 즉 그 햇수는 오조 년과 오천만 년이다.


 678.

그 기간 동안은 여기서 말한 지옥의 고통을 받으면서 지옥에 머물러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맑고 깨끗하고 어질고 착한 미덕을 위해 항상 말과 마음을 지켜야 한다.


 


 홀로 가는 수행자 나라카



 679.

아시타 현자는 한낮의 휴식 때에, 깨끗하고 단정한 옷을 입고 서른 명이나 되는 신들이 기뻐하고 즐거워하면서 옷을 벗어 흔들며 제석천을 극구 찬양하는 것을 보았다.


 680.

기뻐서 뛰노는 신들을 보고 현자는 조심스레 물었다.

“신들이 기뻐하고 있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왜 당신들은 옷을 벗어 흔들고 있습니까?


 681.

만일 아수라와의 싸움에서 신들이 이기고 아수라가 졌다 할지라도 몸의 털을 곤두세울 만큼 그토록 기뻐할 수는 없을 터인데, 어떤 희귀한 일이 있기에 그처럼 기뻐하고 있습니까?

註) 아수라란 신과 인간의 중간적 존재로, 언제나 신들을 상대로 싸움을 하는 무리를 말한다.


 682.

당신들은 소리 높여 노래하고 악기를 연주하고 손뼉을 치면서 춤을 추고 있습니다. 나는 수미산 꼭대기에 살고 있는 당신들께 묻습니다. 존경하는 분들이여, 제 궁금증을 어서 풀어 주십시오.“

註) 수미산은 인도의 우주 신화에 나오는 산으로, 이 세계의 중앙에 있다는 가상의 산이다.


 683.

신들은 대답했다.

“비할 데 없이 뛰어난 보배인 저 보살이 모든 사람의 이익과 평안을 위해 인간 세계에 태어났습니다. 석가족 마을 룸비니 동산에. 그래서 우리는 이토록 기뻐하고 있는 것입니다.

註) 여기서 보살이란 미래의 부처를 말한다.


 684.

무릇 살아 있는 자 가운데 가장 으뜸가는 사람, 가장 높은 사람, 황소 같은 사람이, 머지않아 성인들이 모이는 숲에서 진리의 바퀴를 굴릴 것입니다. 용맹스런 사자가 다른 모든 짐승들을 제압하고 포효하듯이.“

註) 진리의 바퀴를 굴리는 것은 설법을 가리킨다.


 685.

현자는 그 말을 듣고 급히 안간 세계로 내려왔다. 그리고 숫도나다 왕의 궁전에 가서 석가족에게 이렇게 말했다.

“왕자는 어디에 있습니까. 나도 한 번 뵙고 싶습니다.”

註) 숫도나다는 부처님의 아버지이다.


 686.

그리하여 석가족의 사람들은 솜씨 좋은 금세공이 만든 황금처럼 반짝이며 행복에 빛나는 거룩한 아기의 얼굴을 아시타 현자에게 보였다.


 687.

불꽃처럼 빛나고 하늘의 달처럼 밝으며 구름을 헤치고 비치는 가을 태양처럼 환한 아기를 보고 아시타 현자는 환희에 넘쳐 몹시 기뻐했다.


 688.

신들은 천 개의 둥근 고리가 달린 양산을 공중에 펼쳤다. 또 황금자루가 달린 불자를 위 아래로 흔들었다. 그러나 그들의 모습이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註) 양산은 왕자의 증표


 689.

아시타 현자는 얼굴을 흰 양산으로 가리고 빨간 담요에 싸여 있는 황금 보물 같은 아기를 보고 기뻐서 가슴에 안았다.


 690.

관상과 베다에 통달한 그는, 황소같이 훌륭한 석가족의 아기를 안고 그 남다른 상을 살피더니 환호성을 질렀다.

“이 아기는 최고로 뛰어난 사람,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합니다!”


 691.

그러더니 현자는 자기의 얼마 남지 않은 삶을 생각하고,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 현자가 우는 것을 보고 석가족의 사람들은 물었다.


 692.

석가족의 사람들이 걱정하는 것을 보고 현자는 말했다. 

“왕자에게 어떤 불길한 상이 있어 그런 것은 아닙니다. 이분은 평범한 상이 아닙니다. 정성껏 길러 주십시오.


 693.

이 왕자는 깨달음의 최고 경지에 이를 것입니다. 이 아기는 가장 으뜸가는 맑고 순수함을 볼 것이며 모든 사람들에게 이익을 주고 그들을 불쌍히 여긴 나머지 진리의 바퀴를 굴릴 것입니다. 그의 청정한 덕행은 널리 퍼져나갈 것입니다.

註) ‘가장 으뜸가는 맑고 순수함’이란, 열반을 의미한다.


 694.

그러나 이 세상에서의 내 삶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제 곧 내게는 죽음이 찾아올 것입니다. 나는 비할 데 없이 큰 힘을 가진 이분의 가르침을 듣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슬퍼하는 것입니다.“


 695.

청정한 수행자 아시타 현자는 석가족의 사람들에게 커다란 기쁨을 안겨 주고 궁전을 떠나갔다.


 696.

“네가 나중에 ‘눈 뜬 사람이 깨달음을 펴고 진리의 길을 간다.’는 말을 듣거든, 그때 그곳으로 가서 그분의 가르침을 따라 그 밑에서 청정한 수행을 닦아라.”


 697.

미래에 으뜸가는 순수함을 지닌 분이 온다는 것을 예견한 그 현자의 가르침을 받고 나라카는 온갖 선업을 쌓고 자신의 감각을 다스리며 승리자를 기다렸다.


 698.

훌륭한 승리자가 진리의 바퀴를 굴린다는 소문을 듣고, 아시타 현자가 일러 준 대로 가장 지혜로운 분을 보고 기뻐하며 거룩한 성인에게 수행의 길을 물었다.(이상으로 서문의 시구는 끝났다)


 699.

나라카가 말했다.

“아시타가 들려 준 말이 진실임을 잘 알았습니다. 그러니 고타마시여, 모든 것에 통달하신 당신께 묻겠습니다.


 700.

저는 출가하여 탁발의 수행을 쌓으려 하오니, 성자의 경지와 최상의 경지를 말씀해 주십시오,“


 701.

스승은 말씀하셨다.

“그대에게 성자의 경지를 일러 주리라. 이것은 행하기 어렵고 이루기 힘들다. 이제 그대에게 그것을 알려 줄 것이니 마음을 굳게 가지도록 하라.


 702.

세상 사람들에게 욕을 먹던지 절을 받던지 한결같은 태도로 대하라 욕을 먹더라도 성내지 말며 절을 받더라도 우쭐대지 말고 무심하라.


 703.

동산의 숲 속에 있더라도 불꽃처럼 여러 가지 유혹이 나타난다. 부녀자는 수행자를 유혹한다. 부녀자로 하여금 유혹하지 못하도록 하라.


 704.

모든 육체적 즐거움을 버리라. 모든 욕망을 버리라. 약한 것이든 강한 것이든 모든 생명 있는 것을 미워하지 말고 좋아하지도 말라.


 705.

그들은 나와 같고 나도 그들과 같다고 생각하여, 살아 있는 것들을 죽여서는 안 된다. 또한 남들에게 죽이게 해서도 안 된다.


 706.

보통 사람은 욕망과 탐욕에 집착하지만 눈 있는 사람은 그것을 버리고 진리의 길을 가라. 그리하여 이 세상의 지옥을 벗어나라.

註) ‘이 세상의 지옥’이란 이 세상에서 잘못된 삶을 살면서 모든 것에 집착하는 것을 말한다.


 707.

배를 비우고 음식을 절제하여 욕심을 없애고 탐내지 말라. 욕망을 버리면 욕심이 없어 평안하다.


 708.

수행자는 탁발을 끝내고 숲에 돌아와 나무 아래 앉아야 한다.


 709.

그리고 정신을 안정시키고 나무 아래에서 명상함으로써 스스로 즐거움을 찾아야 한다.


 710.

날이 밝으면 마을로 내려가야 한다. 누구에게 식사 초대를 받거나 마을 사람들이 음식을 가져올지라도 결코 반겨서 안 된다.


 711.

그리고 마을에 이르러서는 이집 저집 조급하게 돌아다녀서는 안 된다. 입을 다물고, 음식을 구하는 말을 꺼내서는 안 된다.


 712.

‘음식을 얻어서 잘 됐다’ ‘얻지 못해서 잘됐다’ 생각하고, 어떤 경우라도 편안한 마음으로 돌아온다. 마치 과일을 주우려고 나무 밑에 간 사람이 과일을 줍거나 줍지 못하거나 편안한 마음으로 돌아오듯이.


 713.

바리때를 손에 들고 돌아다니는 그는 벙어리는 아닌데 벙어리처럼 보일 것이다. 시주 받은 것이 적다고 가볍게 여기지 말고, 시주한 사람을 업신여겨서도 안 된다.


 714.

스승은 피안에 이르는 여러 가지 수행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거듭 피안에 이르는 일은 없으나 단번에 이르는 일도 없다.”


 715.

윤회의 흐름을 끊은 수행자에게는 집착이 없다. 해야 할 선도, 하지 말아야 할 악도 버렸기 때문에 번뇌가 없다.“


 716.

스승은 다시 말씀 하셨다.

“그대에게 최상의 경지를 말하리라. 음식을 얻을 때에는 칼날의 비유를 생각하라. 혀를 입천장에 붙이고 스스로 배를 비우라.

註) 음식을 얻을 때는 면도날의 비유를 생각하라는 것은, 면도날에 묻은 꿀을 핥을 때는 혀가 베이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말이다. 다시 말해 시주 물건을 사용할 때 번뇌의 더럽힘이 없도록 주의하라는 뜻이다.


 717.

마음이 어두어서는 안 된다.또한 쓸데없이 많은 것을 생각해서도 안 된다. 비린내가 없이, 걸림이 없이, 청정한 수행을 궁극의 의지처로 삼으라.


 718.

홀로 있는 일을 배우라. 으뜸가는 수행은 홀로 있는 것이다. 홀로 있어야만 진정으로 즐거울 수 있다.


 719.

그렇게 하면 그는 온 세상에 빛나리라. 욕망을 버리고 명상하고 있는 그의 이름을 들으면, 내 제자는 더욱더 겸손해지고 믿음이 깊어질 것이다.


 720.

이것을 갚은 강물과 앝은 개울물의 비유로 알라. 바닥이 얕은 개울물은 소리내어 흐르지만, 깊은 강물은 소리 없이 흐르는 법이다.


 721.

모자라는 것은 소리를 내지만, 가득 찬 것은 아주 조용하다. 어리석은 자는 물이 반쯤 찬 항아리 같고, 지혜로운 이는 물이 가득 찬 연못과 같다.


 722.

사문이 의미 있는 말을 많이 하는 것은 스스로 알고 법을 설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알고서 많은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註) 여기서 사문은 부처님을 가르킨다.


 723.

그러나 스스로 알면서도 자제하여 많은 말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성인의 행동으로 볼 수 있다. 그는 성인으로서 성인의 행동을 보인 것이다.“


 


 두 가지 관찰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날 거룩한 스승께서는 사밧티의 동산에 있는 미가라 장자네 어머니의 누각 안에 계셨다.

그때 거룩한 스승은 달 밝은 보름밤에 수행자의 무리에 둘러싸여 집 밖에 계셨다. 거룩한 스승께서는 묵묵히 앉아있는 수행자들을 둘러보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행자들이여, 거룩하게 출가하여 깨달음에 이르는 여러 가지 진리가 있다. 그대들이 거룩하게 출가하여 깨달음에 이르는 여러 가지 진리를 듣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하고 누가 묻거든,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라. ‘두 가지 진리를 있는 그대로 보기 위해서’라고. 그렇다면 그대들이 말하는 두 가지란 무엇이냐고 한다면, ‘이것은 괴로움이다. 이것은 괴로움의 원인이다.’하는 것이 첫째 관찰이고 ‘이것은 괴로움의 그침이다. 이것은 괴로움을 그치게 하는 길이다’ 하는 것이 둘째 관찰이다. 수행자들이여, 이렇게 두 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는 수행자에게는 두 가지 열매 중 어느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즉 이 세상에서 지혜를 얻든가, 또는 번뇌가 남아 있는 이 윤회의 생존에 다시 돌아오지 않든가 하는 것이다.”

거룩한 스승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리고 행복한 스승은 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724.

“괴로움을 모르고 괴로움의 원인을 모르며, 괴로움의 그침을 모르고 괴로움을 그치게 하는 길도 모르는 사람들.


 725.

그들은 마음의 해탈을 얻지 못하고, 지혜의 해탈도 얻지 못한다. 그들은 윤회를 끊어 버릴 수가 없다. 그들은 생과 사를 계속 받는다.


 726.

그러나 괴로움을 알고 괴로움의 원인을 알고, 괴로움의 그침을 알고 또 괴로움을 그치게 하는 길을 아는 사람들.


 727.

그들은 마음의 해탈을 얻고, 지혜의 해탈도 얻는다. 그들은 윤회를 끊어 버릴 수가 있다. 그들은 생과 사를 더 이상 받지 않는다.


“수행자들이여, 또 다른 방법에 의해서도 두 가지 진리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가 하고 누가 묻거든 ‘있다’고 대답하라. ‘모든 괴로움은 업에 따라 생기는 것이다.’하는 것이 첫째 관찰이다. ‘그러나 업을 남김없이 끊어버리면 괴로움이 생기지 않는다.’하는 것이 둘째 관찰이다. 이렇게 두 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는 수행자들에게는, 두 가지 열매 중 어느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즉 이 세상에서 지혜를 얻든가, 또는 번뇌가 남아 있는 이 윤회의 생존에 다시 돌아오지 않든가 하는 것이다.”

거룩한 스승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리고 행복한 스승은 또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728.

“세상에 있는 모든 괴로움은 생존의 업에 따라 생긴다. 이것을 알지 못하고 그 생존의 업을 짓는 어리석은 자는 계속해서 괴로움을 받는다. 그러므로 이것을 분명히 알고 괴로움이 생기는 원인을 관찰해 업을 짓지 말라.”


“수행자들이여, 또 다른 방법에 의해서도 두 가지 진리를 볼 수 있는가 하고 누가 묻거든 ‘있다’고 대답하라. ‘모든 괴로움은 무지로 인해서 생긴다’하는 것이 첫째 관찰이다. ‘그러나 무지를 남김없이 없애버리면 괴로움은 생기지 않는다’ 하는 것이 둘째 관찰이다. 이렇게 두 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는 수행자들에게는, 두 가지 열매 중 어느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즉 이 세상에서 지혜를 얻든가, 또는 번뇌가 남아 있는 이 윤회의 생존에 다시 돌아오지 않든가 하는 것이다.”

스승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註) 업業이란 몸과 말과 뜻으로 짓는 선악善惡의 소행을 말하며, 이것이 미래에 선악의 결과를 가져오는 원인이 된다고 한다. 즉 전세前世의 소행에 의하여 현세現世에서 받는 선악의 응보應報를 말한다.


 729.

“이 삶에서 다른 삶으로 되풀이하여 윤회를 받는 사람들은 그 원인이 무지에 있다.


 730.

무지란 기나긴 헤멤인데, 이로 말미암아 오랜 윤회가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밝은 지혜에 이른 사람들은 다시는 생존을 받는 일이 없다.“


“수행자들이여, 또 다른 방법에 의해서도 두 가지 진리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가 하고 누가 묻거든 ‘있다’고 대답하라. ‘모든 괴로움은 물질로 인해 생긴다’하는 것이 첫째 관찰이다. ‘그러나 물질에 대한 집착을 남김없이 없애 버리면 괴로움은 생기지 않는다’하는 것이 둘째 관찰이다. 이렇게 두 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는 수행자들에게는 두 가지 열매 중 어느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즉 이 세상에서 지혜를 얻든가, 또는 번뇌가 남아있는 이 윤회의 생존에 다시 돌아오지 않든가 하는 것이다.”

스승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731.

“모든 괴로움은 물질로 인해 생긴다. 물질에 대한 집착을 남김없이 없애버리면 괴로움은 더 이상 생기지 않는다.


 732.

괴로움은 물질로 인해 생긴다는 것을 알아 모든 물질에 대한 집착을 없애고 욕망을 끊는다면, 괴로움은 없어지고 만다. 이것을 있는 그대로 알라.


 733.

있는 그대로를 보고, 있는 그대로를 아는 현자나 베다에 통달한 사람들은, 악마의 속박에서 벗어나 다시는 생존을 받지 않는다.“


“수행자들이여, 또 다른 방법에 의해서도 두 가지 진리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가 하고 누가 묻거든 ‘있다’고 대답하라. ‘모든 괴로움은 식별작용으로 인해서 생긴다’ 하는 것이 첫째 관찰이다. ‘그러나 식별 작용을 남김없이 없애 버리면 괴로움은 생기지 않는다.’ 하는 것이 둘째 관찰이다. 이렇게 두 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는 수행자에게는, 두 가지 열매 중 어느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즉 이 세상에서 지혜를 얻든가, 또는 번뇌가 남아 있는 이 윤회의 생존에 다시 돌아오지 않든가 하는 것이다.”

스승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734.

“모든 괴로움은 식별 작용으로 인해 일어난다. 식별 작용이 없어지면 괴로움은 생길 수 없다.”


 735.

괴로움은 식별 작용에 의해 생긴다는 것을 알아 식별 작용을 고요히 가라앉힌 수행자는, 쾌락에서 벗어나 평안에 이르게 된다.“


“수행자들이여, 또 다른 방법에 의해서도 두 가지 진리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가 하고 누가 묻거든 ‘있다’고 대답하라. ‘모든 괴로움은 접촉으로 인해서 생긴다’ 하는 것이 첫째 관찰이다. ‘그러나 접촉을 남김없이 없애버리면, 괴로움은 생기지 않는다’ 하는 것이 둘째 관찰이다. 이렇게 두 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는 수행자들에게는, 두 가지 열매 중 어느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즉 이 세상에서 지혜를 얻든가, 또는 번뇌가 남아 있는 이 윤회의 생존에 다시 돌아오지 않든가 하는 것이다.”

스승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736.

“접촉에 얽매이고, 생존의 물결에 휩쓸리며, 그릇된 길에 들어선 사람은 속박을 끊기 어렵다.


 737.

그러나 접촉을 잘 알아 평안을 즐기는 사람은, 실로 접촉을 없애 버렸기 때문에 쾌락에서 벗어나 평안에 이르게 된다.“


“수행자들이여, 또 다른 방법에 의해서도 두 가지 진리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가 하고 누가 묻거든 ‘있다’고 대답하라. ‘모든 괴로움은 느낌으로 인해서 생긴다’ 하는 것이 첫째 관찰이다. ‘그러나 느낌을 남김없이 없애버리면, 괴로움은 생기지 않는다’ 하는 것이 둘째 관찰이다. 이렇게 두 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는 수행자들에게는, 두 가지 열매 중 어느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즉 이 세상에서 지혜를 얻든가, 또는 번뇌가 남아 있는 이 윤회의 생존에 다시 돌아오지 않든가 하는 것이다.”

스승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738.

“즐겁든, 괴롭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든, 내적으로든, 외적으로든, 느낀 것은 모두


 739.

괴로움인 것을 알고, 없어지고 말 허망한 것을 느낄 때마다 그것의 소멸을 인정하고서야 느낌에 대한 집착을 버릴 수 있다. 느낌에 대한 집착을 버렸기 때문에 수행자는 쾌락에서 벗어나 평안에 이르게 된다.“


“수행자들이여, 또 다른 방법에 의해서도 두 가지 진리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가 하고 누가 묻거든 ‘있다’고 대답하라. ‘모든 괴로움은 망상으로 인해서 생긴다’ 하는 것이 첫째 관찰이다. ‘그러나 망상을 남김없이 없애버리면, 괴로움은 생기지 않는다’ 하는 것이 둘째 관찰이다. 이렇게 두 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는 수행자들에게는, 두 가지 열매 중 어느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즉 이 세상에서 지혜를 얻든가, 또는 번뇌가 남아 있는 이 윤회의 생존에 다시 돌아오지 않든가 하는 것이다.”

스승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740.

“망상을 벗 삼는 사람은 이 생에서 저 생으로 전전하며 윤회를 벗어나지 못한다,


 741.

괴로움은 망상으로 인해 생긴다는 것을 알아, 수행자는 망상을 버리고 망상 없이 바른 생각을 가지고 정진해야 한다.“


“수행자들이여, 또 다른 방법에 의해서도 두 가지 진리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가 하고 누가 묻거든 ‘있다’고 대답하라. ‘모든 괴로움은 집착으로 인해서 생긴다’ 하는 것이 첫째 관찰이다. ‘그러나 집착을 남김없이 없애버리면, 괴로움은 생기지 않는다’ 하는 것이 둘째 관찰이다. 이렇게 두 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는 수행자들에게는, 두 가지 열매 중 어느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즉 이 세상에서 지혜를 얻든가, 또는 번뇌가 남아 있는 이 윤회의 생존에 다시 돌아오지 않든가 하는 것이다.”

스승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742.

“집착으로 인해 생존이 생긴다. 생존하는 자는 괴로움을 받는다. 태어난 자에게는 죽음이 따른다. 이것이 괴로움이 생가는 원인이다.


 743.

그러므로 현자들은 집착을 끊고 태어남을 멈출 수 있는 방법을 잘 알아 다시는 생존을 받지 않는다.“


“수행자들이여, 또 다른 방법에 의해서도 두 가지 진리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가 하고 누가 묻거든 ‘있다’고 대답하라. ‘모든 괴로움은 움직임으로 인해서 생긴다’ 하는 것이 첫째 관찰이다. ‘그러나 움직임을 남김없이 없애버리면, 괴로움은 생기지 않는다’ 하는 것이 둘째 관찰이다. 이렇게 두 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는 수행자들에게는, 두 가지 열매 중 어느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즉 이 세상에서 지혜를 얻든가, 또는 번뇌가 남아 있는 이 윤회의 생존에 다시 돌아오지 않든가 하는 것이다.”

스승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註) 움직임aramgha은 활동이지만, 여기서는 주로 나쁜 방향 쪽으로 활동하는 것을 일컫는다.


 744.

“모든 괴로움은 움직임으로 인해 생긴다. 모든 움직임이 없어지면 괴로움도 생기지 않는다.


 745.

괴로움은 움직임으로 인해 생긴다는 것을 알아 모든 움직임을 버리고, 움직임이 없는 상태로 해탈하라.


 746.

생존에 대한 집착을 끊고 마음이 고요한 수행자는 윤회를 벗어난다. 그는 다시 생존을 받지 않는다.“


“수행자들이여, 또 다른 방법에 의해서도 두 가지 진리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가 하고 누가 묻거든 ‘있다’고 대답하라. ‘모든 괴로움은 음식으로 인해서 생긴다’ 하는 것이 첫째 관찰이다. ‘그러나 음식에 대한 집착을 남김없이 없애버리면, 괴로움은 생기지 않는다’ 하는 것이 둘째 관찰이다. 이렇게 두 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는 수행자들에게는, 두 가지 열매 중 어느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즉 이 세상에서 지혜를 얻든가, 또는 번뇌가 남아 있는 이 윤회의 생존에 다시 돌아오지 않든가 하는 것이다.”

스승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747.

“모든 괴로움은 음식으로 인해서 생긴다. 음식에 대한 집착이 소멸되면 괴로움도 생기지 얺는다.


 748.

괴로움은 음식으로 인해 생긴다는 것을 알아, 모든 음식을 잘 알고 음식에 집착하지 않는다.


 749.

모든 번뇌의 때를 없애 버리면 병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바르게 알고, 반성하며 법에 따라 사는 베다의 달인은 어리석은 생존의 고리에 들어가지 않는다.“


“수행자들이여, 또 다른 방법에 의해서도 두 가지 진리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가 하고 누가 묻거든 ‘있다’고 대답하라. ‘모든 괴로움은 마음의 동요로 인해서 생긴다’ 하는 것이 첫째 관찰이다. ‘그러나 마음의 동요를 남김없이 없애버리면, 괴로움은 생기지 않는다’ 하는 것이 둘째 관찰이다. 이렇게 두 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는 수행자들에게는, 두 가지 열매 중 어느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즉 이 세상에서 지혜를 얻든가, 또는 번뇌가 남아 있는 이 윤회의 생존에 다시 돌아오지 않든가 하는 것이다.”

스승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註) 병이 생기지 않음은 열반, 다시 말해 높은 경지에 이르렀음을 말한다.


 750.

“모든 괴로움은 마음의 동요로 인해 생긴다. 모든 마음의 동요가 그치게 되면 괴로움도 생기지 않는다.

註) 집착, 교만, 망견, 번뇌의 동요에서 세속적인 모든 동요가 일어난다.


 751.

괴로움은 마음의 동요로 인해 생긴다는 것을 알아, 수행자는 마음의 동요를 버리고 모든 물질에 대한 집착을 버려서, 무동요 무집착으로 바른 생각을 가지고 정진해야 한다.“


“수행자들이여, 또 다른 방법에 의해서도 두 가지 진리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가 하고 누가 묻거든 ‘있다’고 대답하라. ‘구속이 있는 사람은 주저한다’ 하는 것이 첫째 관찰이다. ‘그러나 구속이 없는 사람은 주저하지 않는다’ 하는 것이 둘째 관찰이다. 이렇게 두 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는 수행자들에게는, 두 가지 열매 중 어느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즉 이 세상에서 지혜를 얻든가, 또는 번뇌가 남아 있는 이 윤회의 생존에 다시 돌아오지 않든가 하는 것이다.”

스승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752.

“구속이 없는 사람은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나 구속이 있는 사람은 이 생에서 저 생으로 전전하며 윤회를 벗어나지 못한다.


 753.

여러 가지 구속 속에 커다란 두려움이 있다는 것을 알아, 수행자는 구속 없고 집착 없이 바른 생각을 가지고 정진해야 한다.“


“수행자들이여, 또 다른 방법에 의해서도 두 가지 진리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가 하고 누가 묻거든 ‘있다’고 대답하라. ‘물질적 영역보다도 비물질적 영역이 더 고요하다’ 하는 것이 첫째 관찰이다. ‘비물질적 영역보다 소멸의 영역이 더욱 더 고요하다’ 하는 것이 둘째 관찰이다. 이렇게 두 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는 수행자들에게는, 두 가지 열매 중 어느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즉 이 세상에서 지혜를 얻든가, 또는 번뇌가 남아 있는 이 윤회의 생존에 다시 돌아오지 않든가 하는 것이다.”

스승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754.

“물질적 영역에 사는 모든 생물과 비물질적 영역에 사는 모든 생물들은 소멸을 모르기 때문에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난다.


 755.

그러나 물질적 영역을 잘 알고 비물질적 영역에 안주하며 소멸의 영역에 이른 사람들은 죽음에서 벗어난 것이다.” 


“수행자들이여, 또 다른 방법에 의해서도 두 가지 진리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가 하고 누가 묻거든 ‘있다’고 대답하라. 신과 악마가 공존하는 세계에서, 사문, 바라문, 신,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존자가 ‘이것은 진리다’라고 생각한 것을 성자들은 ‘이것은 허망하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를 가지고 본다. 이것이 첫째 관찰이다. 신과 악마가 공존하는 세계에서, 사문, 바라문, 신,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존자가 ‘이것은 허망하다’라고 생각한 것을, 성자들은 ‘이것은 진리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를 가지고 본다. 이것이 둘째 관찰이다. 이렇게 두 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는 수행자들에게는, 두 가지 열매 중 어느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즉 이 세상에서 지혜를 얻든가, 또는 번뇌가 남아 있는 이 윤회의 생존에 다시 돌아오지 않든가 하는 것이다.”

스승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756.

“보라, 신과 세상 사람들은 내가 아닌 것을 나라고 생각하고, 그 이름과 형태에 집착해 있으면서 ‘이것이야말로 진리다’라고 생각하고 있다.


 757

어떤 것에 대해서, 이렇게 저렇게 생각하더라도 그것은 사실과 다르다. 왜냐하면, 어리석은 자의 생각은 허망하기 때문이다. 지나가 버리는 것은 모두 허망한 것이므로.


 758.

그러나 해탈은 허망한 것이 아니다. 성자들은 이것을 진리로 알고 있다. 그들은 진리를 깨달았기 때문에, 쾌락에서 벗어나 평안에 들어간 것이다.“


“수행자들이여, 또 다른 방법에 의해서도 두 가지 진리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가 하고 누가 묻거든 ‘있다’고 대답하라. 신과 악마가 공존하는 세계에서, 사문, 바라문, 신,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존자가 ‘이것은 안락이다’라고 생각한 것을, 성자들은 ‘이것은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를 가지고 본다. 이것이 첫째 관찰이다. 신과 악마가 공존하는 세계에서, 사문, 바라문, 신,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존자가 ‘이것은 괴로움이다’라고 생각한 것을, 성자들은 ‘이것은 안락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를 가지고 본다. 이것이 둘째 관찰이다. 이렇게 두 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는 수행자들에게는, 두 가지 열매 중 어느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즉 이 세상에서 지혜를 얻든가, 또는 번뇌가 남아 있는 이 윤회의 생존에 다시 돌아오지 않든가 하는 것이다.”

스승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759.

“존재한다고 할 수 있는 것으로서 형상, 소리, 향기, 맛, 감촉, 그리고 생각할 수 있는 것으로서 한결같이 사랑스럽고 마음에 드는 것.


 760.

이런 것들을 신이나 세상 사람들은 ‘기쁨’이라고 생각한다. 또 그것이 사라질 때 그들은 그것을 ‘괴로움’이라고 생각한다.


 761.

그러나 성인들은 자기 몸에 대한 집착을 끊는 것을 ‘기쁨’이라고 생각한다. 바르게 보는 사람들의 생각은 세상의 사람들과는 정반대다.


 762.

세상 사람들이 ‘기쁨’이라 하는 것을 성자들은 ‘괴로움’이라고 말한다. 세상 사람들이 ‘괴로움’이라고 하는 것을 성자들은 ‘기쁨’이라고 생각한다. 알기 어려운 진리를 보라. 어리석은 사람들은 이것을 모르고 헤메게 된다.


 763

덮여있는 사람에게는 어둠이 있다. 바르게 보지 않는 사람에게는 암흑이 있다. 그러나 선량한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펼쳐 보여진다. 마치 볼 수 있는 사람에게 빛이 있는 것처럼, 진리가 무엇인지 모르는 짐승 같은 바보는 진리가 옆에 있어도 그것을 알아보지 못한다.


 764.

생에 대한 욕심에 사로잡히고 생존의 흐름에 떠내려가, 악마의 영토에 들어간 사람은 이 진리를 깨닫기 함들다.


 765.

성자들 말고 누가 이 경지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인가. 이 경지를 바르게 알면, 번뇌의 때가 묻지 않는 이가 되어 절대 평화의 세계에 들어가리라.“


 스승은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수행자들은 기뻐하면서 스승의 가르침을 받아들였다. 이 설법이 있을 때 육십 명의 수행자들은 집착을 없애, 마음이 더러움에서 해탈되었다.


 


 


四. 여덟 편의 시


 


 욕망



 766.

욕망을 이루고자 하는 사람이 욕망을 이루면, 그는 얻고자하는 것을 얻었기 때문에 기뻐한다.


 767.

욕망을 이루고자하는 사람이 욕망을 이루지 못하게 되면, 그는 화살에 맞은 사람처럼 괴로워하고 번민한다. 


 768.

뱀의 머리를 밟지 않으려고 조심하는 것처럼, 모든 욕망을 피하는 사람은 바른 생각을 가지게 되고 이 세상의 집착을 넘어서게 된다.


 769.

논밭, 집, 황금, 말과 소, 노비, 고용인, 여자, 친척, 그밖에 여러 가지를 탐내는 사람이 있으면,


 770.

온갖 번뇌가 그를 이기고 위험과 재난이 그를 짓밟는다. 마치 부서진 배에 물이 새어들듯이, 괴로움이 그를 따르게 된다.


 771.

그래서 사람은 항상 바른 생각을 지키고 모든 욕망을 피해야 한다. 배에 스며든 물을 퍼내듯이, 욕망을 버리고 거센 강을 건너 피안에 도달한 사람이 되라.


 


 동굴



 772.

동굴 속에 머무르며 집착하고 온갖 번뇌에 뒤덮여 어리석음에 빠져 있는 사람. 이러한 사람은 집착에서 벗어날 수 없다. 참으로 이 세상의 욕망을 버리기란 어렵기 때문이다.

註) 육신을 동굴에 비유한 것이다.


 773.

욕망에 따라 생존의 쾌락에 붙잡힌 사람들은 해탈하기 어렵다. 남이 그를 해탈시켜 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미래와 과거에 집착하면서 눈앞의 욕망에만 빠져든다. 


 774.

그들은 욕망을 탐하고 거기에 빠지며, 인색하고 옳지 못한 일에 친근하지만, 죽을 때는 괴로움에 짓눌려 슬퍼한다. 여기서 죽으면 나는 어떻게 될까 하고.


 775.

그러므로 사람들은 여기서 배워야 한다. 세상에서 옳지 못하다고 하는 그 어떤 일에도 휩쓸려서는 안 된다. 사람의 목숨이 짧은 것이라고 현자는 말하지 않았던가.


 776.

세상 사람들이 생존에 대한 집착에 붙들려 떨고 있는 것을 나는 본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여러 가지 생존에 대한 집착을 떠나지 못한 채 죽음에 직면해 울고 있다. 


 777.

무엇인가를 내것이라고 생각하며 집착하는 사람들을 보라. 그들의 모습은 물이 말라 가는 개울에서 허덕이는 물고기와 같다. 이 꼴을 보고 ‘내것’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여러가지 생존에 대해 집착을 버려야 한다.


 778.

현자는 양극단에 대한 욕망을 절제하고, 감각과 대상의 관계를 잘 알아서 탐하는 일이 없다. 자기 자신조차 비난할 만한 나쁜 짓을 하지 않고, 보고 듣는 일에 팔리지 않는다.


 779.

생각을 가다듬고 거센 강을 건너라. 성인은 소유하고자 하는 집착으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으며, 번뇌의 화살을 뽑아 버리고 열심히 정진하여 이 세상도 저 세상도 바라지 않는다.


 


 분노



 780.

마음으로부터 화를 내고 남을 비방하는 사람이 있다. 또 마음이 진실한 사람이라도 남을 비방하는 일이 있다. 비방하는 말을 들을지라도 성인은 그것에 흔들리지 않는다. 성인은 어떠한 일에도 마음이 거칠어지지 않는다.


 781.

욕심에 끌리고 소망에 붙들린 사람이 어떻게 자기의 생각을 뛰어 넘을 수 있을까. 그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고 또는 아는 대로 떠들어댈 것이다.


 782.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남에게 자기의 계율과 도덕을 자랑하는 사람, 스스로 자기 일을 떠들고 다니는 사람은 거룩한 진리를 지니지 못한 사람이라고, 진리에 도달한 사람들은 말한다.


 783.

마음이 평안하고 안정된 수행자가 계율에 대해, 나는 이렇게 하고 있노라 하면서 뽐내지 않고, 이 세상 어디에 있더라도 번뇌에 불타지 않는다면, 그는 거룩한 진리를 지닌 사람이라고, 진리에 도달한 사람들은 말한다.


 784.

때묻은 교법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 치우쳐서, 자기 안에서만 훌륭한 열매를 보는 사람들은 ‘흔들리는 평안’에 기대고 있는 것이다.


 785.

모든 사물의 본질을 확실히 알고 자기의 생각에 집착하지 않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만의 좁은 생각의 울타리 안에 갖혀 진리를 등지고 또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786.

사악함을 물리친 사람은, 이 세상 어디를 가든 모든 살아있는 것에 대한 편견을 보이지 않는다. 사악함을 물리친 사람은 교만과 거짓을 버렸거늘, 어찌 윤회에 떨어질 것인가. 그에게는 이미 의지할 것도, 가까이 할 것도 없다.


 787.

모든 일에 기대고 의지하는 사람은 비난을 받는다. 그러나 기대고 의지함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비난받을 수 있겠는가. 그는 집착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는다. 그는 이 세상에서 모든 편견을 없애버린 것이다. 


 


 청정



 788.

‘으뜸가고 청정한 사람을 나는 본다. 사람이 청정해지는 것은 그 견해에 달려 있다.’ 이와 같은 생각을 으뜸으로 알고 청정을 생각하는 사람은, 견해를 가장 높은 경지에 도달해서 얻은 지혜라고 생각한다.


 789.

만일 사람이 견해에 의해서 청정해질 수 있다면, 또 사람이 지식에 의해 괴로움을 버릴 수 있다면, 번뇌에 얽매인 사람이 바른길 이외의 다른 방법으로도 청정해 질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말하는 사람은 ‘편견이 있는 사람’이다. 


 790.

바라문은 바른길 이외에 본 것, 배운 것, 계율과 도덕, 생각한 것 중 어느 것도 청정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는 재앙과 복에 때묻지 않고 자아를 버려, 이 세상에서 재앙과 복의 원인을 만들지 않는다.

註) 참된 종교인을 여기서는 바라문으로 표현하고 있다.


 791.

옛 스승을 버리고 다른 스승을 의지하며, 번뇌에 따라 흔들리고 있는 사람은 집착을 뛰어 넘을 수 없다. 그들은 버렸다가 또 잡아 버린다. 원숭이가 나뭇가지를 잡았다가 다시 놓아 버리듯이.


 792.

스스로 맹세와 계율을 가진 사람은 생각이 많아 여러 가지 잡다한 일을 하려고 한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베다를 통해 진리를 알고 이해하며, 잡다한 일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793.

그는 모든 사물에 대해 보고 배우고 생각한 것을 다스리고 지배한다. 이렇게 관찰하고 걸림없이 행동하는 사람이, 어찌 이 세상에서 그릇된 생각을 할 수 있겠는가.


 794.

그들은 그릇된 생각을 하지 않고, 어떤 것을 남달리 소중하게 여기지도 않으며. ‘궁극의 청정’을 말하지도 않는다. 얽매인 모든 집착을 버리고 세상의 어떤 사물에 대해서도 더 이상 바라는 것이 없다.


 795.

바라문은 번뇌에 초월해 있다. 그가 무엇을 보거나 알아서 집착하는 일은 없다. 그는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고, 또 욕망을 거부하지도 않는다. 그는 자기가 세상의 으뜸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부질없이 집착하지 않는다. 

註) 욕망을 거부하지도 않는다는 것은 욕망에 사로잡히지도 않고, 또 무지하게 욕망을 없애 버리려고 한 결과, 욕망을 없애버리려는 생각에 사로잡혀 버리는 일도 없음을 뜻한다.


 


 으뜸가는 것



 796.

세상사람들이 훌륭하다고 보는 것들을 ‘으뜸가는 것’이라 생각하고, 그 생각에 붙들려 그 밖의 다른 것들은 모두 ‘뒤떨어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여러 가지 논쟁을 뛰어 넘을 수가 없다.


 797.

그는 본 것, 배운 것, 계율과 도덕, 사색한 것에 대해서 혼자서 어떤 결론을 내리고, 그것에 집착한 나머지 그 밖의 다른 것은 모두 뒤떨어진 것으로 안다. 


 798.

사람이 어느 한가지만 중요하다고 여긴 나머지 그 밖의 다른 것은 모두 가치 없다고 본다면, 그것은 커다란 장애라고, 진리에 도달한 사람들은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수행자는 본 것, 배운 것, 사색한 것, 또는 계율과 도덕에 붙잡혀서는 안 된다.


 799.

지혜에 대해서도, 계율이나 도덕에 대해서도 편견을 가져서는 안 된다. 자기를 남과 동등하다거나 남보다 못하다거나 남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


 800.

그는 가지고 있던 견해를 버리고 집착하지 않으며, 지혜에도 특별히 의지하지 않는다. 그는 실로 여러 가지 다른 견해로 분열된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서도 어느 한 쪽을 따르는 일이 없고, 어떤 견해일지라도 그대로 믿는 일이 없다.


 801.

그는 양극단에 대해서, 여러 생존에 대해서, 이 세상에 대해서도 저 세상에 대해서도 원하는 바가 없다. 모든 사물에 대해 단정하는 편견이 그에게는 조금도 없다.


 802.

그는 이 세상에서 본 것, 배운 것, 또는 사색한 것에 대해 티끌만한 편견도 가지지 않는다. 어떠한 견해에도 집착하지 않는 바라문이 이 세상에서 어찌 그릇된 생각을 하겠는가.


 803.

그는 그릇된 생각을 하지 않고, 그 어느 한 견해만을 특별히 존중하지도 않는다. 그는 모든 가르침을 원하지도 않는다. 바라문은 계율이나 도덕에 이끌리지도 않는다. 이러한 사람은 피안에 이르러 다시는 이 세상에 돌아오지 않는다.


 


 늙음



 804.

아, 짧도다 인간의 생명이여.

백 살도 못 되어 죽어 버리는가.

아무리 오래 산다 해도 결국은 늙어서 죽는 것을.


 805.

사람은 내것이라고 집착하는 물건 때문에 근심한다. 자기가 소유한 것은 영원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세상 것은 모두 변하고 없어진다는 것을 알아, 집착과 욕망의 집에 머무르지 말라.


 806.

사람이 내것이라고 생각하는 물건, 그것은 그 사람이 죽음으로써 잃게 된다. 나를 따르는 사람은 현명하게 이 이치를 깨달아, 내것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히지 말라.


 807.

이를테면, 잠이 깬 사람은 꿈 속에서 만난 사람을 다시 볼 수 없듯이, 사랑하는 사람도 죽어 이 세상을 떠나면 다시는 만날 수 없다,


 808.

권세가 있던 사람도 한 번 죽은 후에는 그 이름만이 남을 뿐이다.


 809.

내것이라고 집착하여 욕심을 부리는 사람은, 걱정과 슬픔과 인색함을 버리지 못한다. 그러므로 평안을 얻은 성인들은 모든 소유를 버리고 떠난 것이다.


 810.

세상에서 물러나 수행을 닦는 사람은 멀리 떨어진 곳을 즐겨 찾는다. 그가 생존의 영역 속에 자기를 집어넣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에게 어울리는 일이다. 


 811.

성인은 어떤 곳에도 머무르지 않고, 사랑하거나 미워하지도 않는다. 또 슬픔도 인색함도 그를 더럽히지 않는다. 마치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812.

연꽃잎에 물방울이 묻지 않듯이, 성인은 보고 배우고 사색한 어떤 것에도 더럽혀지지 않는다. 


 813.

사악함을 털어 버린 사람은 보고 배우고 생각한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다. 그는 다른 것에 기대어 깨끗해지려고 하지 않는다. 그는 탐내지 않고 탐욕에서 떠나려 하지도 않는다.


 


 구도자 팃사 마이트레야



 814.

구도자 팃사 마이트레야가 말했다. 

“스승이시여, 성교에 빠지는 자의 파멸을 말씀해 주십시오. 당신의 가르침을 듣고 우리도 멀리할 것을 배우겠습니다.”


 815.

스승께서는 대답하셨다.

“마이트레야여, 성교에 빠지는 자는 가르침을 잃고 그 수행은 그릇되고 나쁘다. 이것은 그들 안에 있는 천한 요소이다.


 816.

지금까지는 순결하게 살다가 나중에 성교에 빠지는 자는 길에서 벗어난 수레와 같다. 세상 사람들은 그를 천한 범부라 부른다. 


 817.

지금껏 그가 쌓았던 명예와 명성을 다 잃게 된다. 이것을 알고 성교를 끊도록 힘쓰라.


 818.

그는 온갖 욕망에 사로잡혀 굶주린 사람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 그리고 남의 비난을 듣고 부끄러워진다.


 819.

그는 남에게 욕을 먹으면 날카롭게 반응하고 거짓말을 한다. 이것이 그의 커다란 결점이다.


 820.

순결을 지키고 있을 때는 지혜로운 분이라고 존경받던 사람도, 성교에 빠지면 어리석은 사람처럼 괴로워한다.


 821.

성자는 이 세상에서 언제든 이러한 재난이 있을 수 있음을 알아, 굳게 순결을 지키고 성교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822.

속된 일에서 떠나는 것을 배우라. 이것은 모든 성자에게 있어 으뜸가는 일이다. 그렇지만 이것만으로 자기가 최상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다만 평안에 가까워졌을 뿐이다.


 823.

성자는 온갖 욕망을 거들떠보지 않으며, 이를 떠나 수행하고 거센 흐름을 건넜기 때문에, 온갖 욕망에 속박되어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를 부러워한다.“


 


 파수라



 824.

어떤 사람들은 ‘이것만이 청정하다’고 고집하면서, 다른 가르침은 청정하지 않다고 말한다. 자기가 따르고 있는 것만을 진리라 하면서, 서로 다른 진리를 고집하고 있다.


 825.

그들은 토론을 좋아하고, 토론장에 나가 서로 상대방을 어리석은 자라고 비방하며, 스승을 등에 업고서 논쟁을 벌인다. 자신이 논쟁에서 이기고자 스스로를 진리에 도달한 사람이라 하면서.


 826.

논쟁을 하는 사람은 이기고자 애를 쓴다. 그리고 패배하면 풀이 죽어 상대방의 결점을 찾다가 남에게 비난을 받고 화를 낸다.


 827.

다른 사람들이 그에게 ‘그대는 패배했다. 논파당했다’라고 하면, 논쟁에 패배한 자는 슬피 울고 ‘저 사람이 나를 이겼노라’며 비탄에 잠긴다.


 828.

이러한 논쟁이 수행자들 사이에 일어나면, 이들 가운데에는 이기는 사람이 있고 지는 사람이 있다. 사람들은 이것을 보고 논쟁을 하지 말아야 한다. 논쟁에서 이겨도 잠시 칭찬을 받는 것 이외에 아무런 이익도 없기 때문이다.


 829.

또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기 의견을 말하고 그것으로 칭찬을 받으면 속으로 기대했던 이익을 얻어 그 때문에 기뻐 우쭐해진다.


 830.

우쭐해진다는 것은 오히려 그를 해치는 일이다. 그는 교만해지고 허세를 부리게 된다. 그러므로 논쟁을 해서는 안 된다. 지혜로운 사람은 누구도 논쟁으로 깨끗함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831.

이를테면, 국왕의 병사가 적의 병사를 보고 달려가는 것과 같다. 병사여, 그 적이 있는 곳으로 가라. 그러나 우리가 싸워야 하는 적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832.

자기만의 철학적 견해를 가지고 논쟁하며 ‘이것만이 진리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대는 그들에게 말하라. ‘논쟁이 일어나도 그대를 상대해 줄 사람은 여기는 없다’고


 833.

또 번뇌의 군대를 물리치고, 바른 견해가 모든 편견과 부딪히지 않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대는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으려 하는가. 파수라여, 오랫동안 ‘으뜸가는 것’이었다 해서변하지 않는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834.

그런데 그대는 ‘나야말로 승리를 거두리라’ 생각하며, 마음속에 여러 가지 편견을 가지고 사악함을 물리친 사람과 같이 걸어가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진리에 이르지 못한다.


 


 마간디야



 835.

스승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예전에 도를 닦을 때에 집착과 혐오와 탐욕이라는 세 마녀를 보고도 그녀들과 어울리고 싶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그 여자들은 도대체 무엇인가. 오줌똥으로 가득 찬 그녀들에게 나는 발을 대기조차 싫었다.”

註) 마간디야라는 이름의 바라문이 아름다운 자기 딸을 데리고 와서 부처님께 아내로 삼아 달라는 권유를 하자, 이때 부처님께서 하신 설법이다.


 836.

마간디야가 말했다.

“만약 당신이 여러 왕들이 원했던 여자나 보물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면, 당신은 어떠한 견해, 어떠한 계율이나 도덕, 생활법, 그리고 어떠한 생존 상태로 태어나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837.

스승께서 대답하셨다.

“마간다여, ‘나는 이런 것을 말한다’고 정해 놓은 것이 없다. 모든 사물에 대한 집착을 분명히 알고, 모든 견해에는 과오가 있음을 보고 어느 한 견해를 고집하는 일이 없이, 안으로 살피면서 마음의 평안을 알았노라.”


 838.

마간디야가 말했다.

“성인이시여, 당신께서는 생각하고 정해놓은 것을 고집하지 않으며 ‘마음의 평안’이란 말씀을 하시는데, 그것을 다른 현인들은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839.

스승은 대답하셨다. 

“마간디야여, 견해나 학문에 의해서, 지식이나 계율, 또는 도덕에 의해서 깨끗해 질 수 있다고 나는 말하지 않는다. 견해와 학문과 지식이 없이도, 계율과 도덕 없이도 깨끗해 질 수 있다고도 말하지 않는다. 그것들을 버리고 고집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으며, 덧없는 생존을 원하지도 않는다. 이것이 ‘마음의 평안’이다.”


 840.

마간디야가 말했다.

만약 견해나 학문에 의해, 지식이나 계율 또는 도덕에 의해서도 깨끗해 질 수 없다 하고, 또 무견해, 무학, 무식에 의해서도, 계율과 도덕 없이도 깨끗해 질 수 없다고 한다면, 그것은 사람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가르침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견해에 의해 깨끗해 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841.

스승은 대답하셨다.

“마간디야여, 그대는 그대의 소견에 의지하여 물어 보기 때문에 집착에 빠진 것이다. 그대는 이 마음의 평안에 대해서 조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래서, 그대는 나에게 사람을 혼란하게 만든다고 말하는 것이다.


 842.

‘뛰어나다’든가 ‘동등하다’든가 혹은 ‘뒤떨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 그는 그런 생각 때문에 흔들릴 것이다. 그러니 이 세 가지에 대해서 흔들리지 않는 사람. 그에게는 ‘뛰어나다’든가 ‘동등하다’든가 혹은 ‘뒤떨어진다’는 생각이 없다.


 843.

그런 바라문이 무엇 때문에 ‘내 말은 진실하다’고 하겠는가. 또 ‘네 말은 거짓이다‘라고 하며 누구와 논쟁하겠는가. 같다든가 같지 않다는 분별이 없어진 사람이 누구와 논쟁을 벌이겠는가.


 844.

집을 버리고 거처 없이 방랑하며 마을 사람들과 친교를 갖지 않는 성인은, 온갖 욕망을 떠나 미래에 희망을 두어서는 안 되며, 또한 군중들에게 이론을 내세워 논쟁을 벌여서도 안 된다. 


 845.

용은 모든 편견을 떠나 세상을 두루 다니며 수행하기 때문에, 고집을 부리며 논쟁해서는 안 된다. 수련이나 연꽃이 물이나 진흙에 더렵혀지지 않듯이, 성인은 평안을 말하는 사람이므로 탐내지 않고, 욕망에도 세속에도 더렵혀지지 않는다.

註) 용은 수행의 완성자, 즉 부처님을 말한다.


 846.

베다에 통달한 사람은 견해나 사색에 있어서 교만하지 않다. 그의 본성은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업에도 학문에도 이끌리지 않는다. 그는 어떤 집착하는 것에도 끌려 들어가지 않는다. 


 847.

생각을 떠난 사람에게는 얽매임이 없다. 지혜에 의해서 해탈한 사람에게는 어리석음이 없다. 그러나 생각과 견해를 고집하는 사람들은 남과 충돌하면서 세상을 방황한다.“


 


 죽음이 오기 전에



 848.

“무엇을 보고 어떤 계율을 지키는 사람을 ‘평안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고타마여, 그 가장 훌륭한 사람을 제게 말씀해 주십시오.”


 849.

스승은 대답하셨다.

“죽기 전에 집착을 떠나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현재에 대해서도 이것저것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는 미래에 대해서도 별로 걱정할 것이 없다.


 850.

그는 화내지 않고, 두려워 떨지 않고, 교만하지 않고, 후회하지 않으며, 주문을 외거나 경박하게 굴지 않고, 말을 삼간다. 


 851.

미래를 원하지도 않고, 과거를 추억하며 우울해 하지도 않는다. 감각에 닿는 모든 대상에서 멀리 떨어질 것을 생각하며, 어떤 견해에도 이끌리는 일이 없다.


 852.

탐욕에서 멀리 떠나 거짓이 없고 욕심 내지 않으며, 인색하거나 거만하지 않으며, 미움 받지 않고 두 가지 말을 하지 않는다. 


 853.

쾌락에 빠지지 않고 거만하지 않으며, 부드럽고 상냥하게 말하며, 어떤 것을 무조건 믿는 일도 없고 욕심을 버리는 일도 없다.


 854.

이익을 기대하거나 배우는 것이 아니다. 이익이 없을지라도 성내지 않는다. 집착 때문에 남을 미워하지 않으며 맛있는 음식을 탐내지도 않는다. 


 855.

항상 침착하고 바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남을 자기와 같다고도, 또 자기가 뛰어나거나 못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에게는 더 이상 번뇌의 불이 타오르지 않는다. 


 856.

걸림이 없는 사람은 진리를 알아 걸림이 없는 것이다. 그에게는 생존을 위한 집착도, 생존을 끊어버리려는 집착도 없다. 


 857.

모든 욕망을 돌아보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이야말로 ‘평안한 사람’이라고 나는 말한다. 그에게는 더 이상 얽매임이 없고, 이미 모든 집착을 뛰어 넘었다. 


 858

그에게는 자식도 가축도 논밭도 집도 없다. 이미 얻은 것도, 아직 얻지 못한 것도 그에게서는 찾아 볼 수 없다. 


 859.

범부와 사문 또는 바라문들이 그를 비난하여 탐욕의 허물이 있다고 하겠지만, 그는 탐욕 같은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여러 가지 논쟁에도 동요되지 않는다.


 860.

성인은 탐욕을 떠나 인색하지 않으며 ‘나는 뛰어나다’든가 ‘나는 동등하다’든가 ‘나는 뒤떨어진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는 이런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에, 그릇된 생각에도 빠지지 않는다. 


 861.

그는 세상에서 가진 것이 없다. 또 무소유를 걱정하지도 않는다. 그는 어떠한 사물에도 이끌리지 않는다. 그는 참으로 ‘평안한 사람’이라 할 만하다.“


 


 투쟁



 862.

“투쟁, 논쟁, 근심, 슬픔, 인색, 오만, 거친 말은 어디서 일어나는 것인지 그것을 말씀해 주십시오.”


 863.

“투쟁, 논쟁, 근심, 슬픔, 인색, 오만, 거친 말은 사랑하고 좋아하는 데서 일어난다. 투쟁과 논쟁에는 인색이 따르고, 논쟁이 일어나면 거친 말이 나온다.”


 864.

“세상에서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은 무엇에서 일어납니까. 또 세상에 널리 퍼져 있는 욕심은 무엇에서 일어나며, 사람이 내세에 대해서 갖는 희망과 그 성취는 무엇에서 일어납니까?"


 865.

"세상에서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과 욕심은 욕망에서 일어난다. 또 사람들이 내세에 대해 갖는 희망과 성취도 이것에서 일어난다.“


 866.

“그러면 욕망은 또 무엇에서 일어납니까. 또 형이상학적인 단정은 무엇에서 일어납니까. 분노와 거짓말과 의혹과 사문이 말하는 일은 무엇에서 일어납니까?”


 867.

“세상에서 유쾌, 불쾌라고 하는 감정에서 욕망이 일어난다. 모든 물질적 존재에 있어 생기고 소멸하는 것을 보고 세상 사람들은 외적인 사물에 사로잡혔다고 단정을 내린다.


 868.

분노와 거짓말과 의혹, 이런 것도 유쾌, 불쾌의 두 가지 감정이 있을 때 일어난다. 의혹이 있는 자는 지혜의 길에서 배우라. 사문은 알고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일을 말하는 것이다.“


 869.

“유쾌, 불쾌는 무엇에서 일어납니까. 또 무엇이 없을 때 이것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생기고 소멸하는 뜻과 그 원인이 되는 것을 말씀해 주십시오.”


 870.

“유쾌, 불쾌는 접촉에서 일어난다. 접촉이 없을 때는 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생기고 소멸하는 뜻과 그 원인이 되는 감촉을 나는 너에게 말한다.”


 871.

“감촉은 무엇에서 일어납니까. 집착은 무엇에서 일어납니까. 무엇이 없을 때 집착이 없어집니까. 또 무엇이 없을 때 접촉이 없어집니까?”


 872.

“접촉은 이름과 형태에서 일어난다. 모든 집착은 요구에서 일어난다. 요구가 없을 때는 집착도 없어지며, 형태가 없을 때는 접촉도 없어진다.”


 873.

“어떻게 수행하는 자에게 형태가 소멸됩니까? 소멸되는 모습을 말씀해 주십시오. 나는 그것을 알고자 합니다. 나는 이같이 생각했습니다.”


 874.

“바르게 생각하지도 말고 잘못 생각하지도 말며, 생각을 가지지도 말고 생각을 없애지도 말라. 이렇게 수행하는 자에게 형태가 소멸된다. 그러나 의식은 생각을 인연으로 넓어지는 것이다.”


 875.

“우리가 당신께 물은 것은 당신께서는 잘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또 다른 것을 당신께 묻겠으니 그것을 말씀해 주십시오. 이 세상에서 어떤 현자들은 이 상태야말로 사람의 가장 청정한 경지라고 말합니다. 혹시 이보다 더 청정한 경지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까?”


 876.

“이 세상의 어떤 현자들은 이 상태야말로 가장 청정한 경지라고 말한다. 또 그 가운데 어떤 사람은 단멸을 말하며, 정신도 육체도 남김없이 소멸하는 데에 가장 청정한 경지가 있다고 말한다.


 877.

그러나 생각이 깊은 성인은, 이 사람들은 ‘걸림이 없다’는 것, 여러 가지 걸림을 알고 ‘현자는 덧없는 생존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 해탈한 사람은 논쟁에 끼어 들지 않는다.“


 


 문답 - 첫째



 878.

세상 학자들은 저마다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자기야말로 진리에 도달한 사람이라 하면서 여러 가지 주장을 한다. ‘이것을 아는 사람은 진리를 아는 사람이다. 이것을 비난하는 사람은 완전한 사람이 아니다’라고.


 879.

그들은 이렇듯 다른 견해를 가지고 논쟁하며 ‘저 사람은 어리석어 진리에 이르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들은 모두 자기야말로 진리에 이른 사람이라 생각하며 그렇게 말하는데, 그들 중 누구의 말이 진실한 것일까?


 880.

만약 남의 가르침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어리석고 저속하며 지혜가 뒤떨어진 자라면, 그들은 각자의 견해만을 고집하고 있기 때문에 어리석고 지혜가 뒤떨어진 것이다.


 881.

또 만약 자기의 견해로 인해 깨끗해지고, 완전한 지혜를 가진 자, 진리를 터득한 자, 밝은 지혜를 지닌 자가 된다면, 그들의 견해는 그런 점에서 똑같이 완전하기 때문에 그들 가운데 지혜가 뒤떨어진 자는 없을 것이다.


 882.

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서로 비방하는 말을 듣기만 할뿐, ‘이것이 진실이다’고 그들에게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각자의 견해만을 진실이라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남을 ‘어리석은 자’라고 보는 것이다. 


 883.

어떤 사람들이 ‘진리다, 진실하다’고 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은 ‘거짓이다. 허황하다’고 말한다. 이와 같이 그들은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지고 논쟁한다. 어째서 사문들은 똑같은 것을 똑같이 말하지 않는 것일까.


 884.

진리는 하나일 뿐, 둘은 없다. 그 진리를 안 사람은 다투는 일이 없다. 그들은 각기 다른 진리를 찬양하고 있다. 그러므로 사문들은 똑 같은 것을 똑같이 말하지 않는다.


 885.

스스로 진리에 이르렀다고 생각하며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어째서 여러 가지 다른 진리를 내세우는 것일까. 그들은 여러 가지 다른 진리를 남에게 들은 것일까. 아니면, 자기의 사색에 의한 것일까.


 886.

세상에 여러 가지 다른 진리가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영원할 것으로 상상할 뿐이다. 그들은 자기만의 편견에 사로잡혀 사색하고 탐구한 나머지 ‘내 말은 진리다’ ‘다른 사람의 말은 허황하다’라고 두 가지로 말한다.


 887.

오래 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견해나 학문, 계율, 서원, 사색 등 남의 말에 기대어, 자기 학설만을 고집하며 ‘반대하는 자는 어리석은 사람이다. 진리에 이르지 못한 사람이다’라고 한다.


 888.

반대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보는 동시에, 자기는 진리에 이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스스로 자기는 진리에 이른 사람이라 하면서 다른 사람을 무시한다.


 889.

그는 그릇된 생각으로 차 있고 교만에 넘쳐 있다. 자기를 완전하다고 생각하고, 최고의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견해는 자신이 볼 때 그처럼 완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890.

만약 남이 자기를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말한다고 해서 정말 어리석은 사람이 된다면 그렇게 말하는 사람 자신도 상대방과 함께 어리석은 사람이 될 것이다. 또한 스스로를 베다에 통달한 사람, 지혜로운 사람이라 부를 수 있다면, 여러 사문 중에 어리석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891.

‘내 학설 이외의 가르침을 말하는 사람들은 청정하지 않으며 완전한 사람이 아니다’라고 이교도들은 흔히 말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견해에 빠져, 때가 끼어 있는 것이다. 


 892.

자기 학설만을 청정하다 하고, 남의 가르침은 청정하지 않다고 한다. 이교도의 무리들은 이와 같은 집착에 빠져 자기의 학설만을 완고히 내세운다.


 893.

자기의 학설을 완고히 내세우고 있지만, 어느 누구를 어리석은 사람이라 볼 수 있을 것인가. 남의 가르침을 어리석다거나 옳지 않다고 한다면, 그는 스스로 옹고집이 되고 말 것이다.


 894.

학설의 결정에 있어 스스로 잘 헤아리면서도 그는 다시 세상에서 논쟁을 만들게 된다. 모든 철학적 단정을 버렸다면 사람들은 고집을 부리지 않을 것이다.


 


 문답 - 둘째



 895.

이렇게 자신의 견해를 고집하면서 ‘이것만이 진리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그들은 모두 다른 사람으로부터 비난을 받는다. 다만 그를 따르는 일부 사람들의 칭찬을 받을 뿐.


 896.

가령 칭찬을 받는다 할지라도 그것은 순간이어서 평안을 얻지 못한다. 논쟁의 결과는 칭찬과 비난 두 가지 뿐이다. 이것을 보고 그대들은 논쟁이 없는 절대 평화의 경지를 알아 논쟁을 하지 마라.


 897.

대게 저속한 무리들이 갖는 이러한 세속적인 견해를 지혜로운 사람은 가까이하지 않는다. 그는 보고 듣는 일에 대해 ‘이것이다’라고 단정하지 않기 때문에 걸림이 없다. 그가 무엇에 걸릴 것인가.


 898.

계율을 으뜸가는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은 ‘계율을 지킴으로써 청정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며 계율을 받는다. ‘이 가르침을 따르자, 그러면 청정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면서, 진리에 이르렀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덧없는 생존에 유혹되고 있는 것이다.


 899.

만약 계율이나 도덕을 깨뜨리게 되면 그는 두려워 떨 것이다. 그는 ‘이곳에만 청정이 있다’라며 그것을 바랄 것이다. 카라반에서 떨어진 상인이 카라반을 찾고, 집을 떠난 나그네가 집을 찾듯이.


 900.

모든 계율과 맹세를 버리고, 세상에서 죄가 있든 없든 모든 행위를 다 버리고, 청정하다거나 청정하지 않다고 하면서 어떤 것을 구하는 일도 없이, 그것들에 얽매이지 말고 수행하라. 물론 평안을 고집하지도 말고.


 901.

하기 싫은 고행을 하고, 또는 보고 배우고 생각한 것을 가지고 목청을 높여 청정을 찬양하는 이는, 덧없는 생존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한 것이다.


 902.

원하고 구하는 이에게는 욕심이 따른다. 또 계획을 짜는 이에게는 두려움이 따른다. 이 세상에서 생도 사도 없는 사람, 그가 무엇을 두려워하며 무엇을 원하고 구할 것인가.


 903.

어떤 사람은 ‘가장 뛰어난 것’이라고 하는 가르침을 다른 사람들은 ‘천박한 것’이라고 한다. 그들은 저마다 자기야말로 진리에 이른 사람이라고 하는데, 누구의 말이 진실한 것일까.


 904.

그들은 자기의 가르침만을 완전하다 하고, 남의 가르침을 천박하다고 한다. 그들은 이렇게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지고 논쟁하며, 저마다 자기의 가르침을 진리라고 말한다.


 905.

만약 남이 천박하다고 비난한다고 정말 천박해진다면 모든 가르침 가운데서 뛰어난 것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 가르침만 고집하고, 남의 가르침은 불완전하다고 하기 때문이다.


 906.

그들은 스스로 자기의 길을 찬양하는 것처럼, 자기의 가르침을 존중하고 있다. 그렇다면 세상의 모든 가르침은 진실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그 가르침은 모두가 청정하기 때문이다.


 907.

바라문들은 남에게 이끌리지 않는다. 또한 여러 가르침에 대해서 단정을 내리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그들은 모든 논쟁을 초월해 있으며, 남의 가르침을 가장 훌륭하다고 보지도 않는다.


 908.

‘우리는 안다, 우리는 본다, 이것은 사실이다’라는 견해에 의해 청정해질 수 있다고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비록 그가 보았다 하더라도 그것이 그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는 바른길에서 벗어난 채, 다른 것에 의해 청정해질 수 있다고 하는데.


 909.

보는 사람은 이름과 형태를 본다. 보고 나서는 그것들이 영원하며, 즐거움을 주고, 실재로 존재한다고 믿는다. 보고 싶은 사람은 많든 적든 그렇게 볼 것이다. 그러나 진리에 도달한 사람들은 그렇게 봄으로써 청정해진다고 말하지 않는다.


 910.

집착하여 말하는 사람은 자신의 견해만 존중하므로 그를 인도하기란 매우 어렵다. 자기가 믿고 있는 것만을 옳다고 하며, 그것에 의해서만 청정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그와 같이 하나만을 본다.


 911.

바라문은 바르게 알고 그릇된 생각을 하지 않는다. 자기 소견에 휩쓸리지 않고 지식에 기대지도 않는다. 그는 범속한 모든 견해를 알고 있지만 어느 것에도 마음을 두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은 거기 집착하고 있지만.


 912.

성자는 이 세상에서 모든 속박을 버리고, 논쟁이 벌어졌을 때에도 어느 한쪽에 가담하지 않는다. 그는 불안한 사람들 가운데 있으면서도 평안하고 집착이 없다.


 913.

지나간 허물은 버리고 새로운 허물은 짓지 않으며, 욕심부리지 않고 논쟁에 집착하는 일도 없다. 현자는 모든 견해에서 벗어나 세상에 물들지 않으며 자책할 일도 없다.


 914.

현자는 보고 배우고 생각한 어떤 일에 대해서도 맞서지 않는다. 그는 모든 짐을 벗어 버렸다. 그는 계략을 꾸미지 않고, 쾌락에 빠지지 않으며,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빠름



 915.

“태양의 후예이신 위대한 성인께 세속에서 멀리 떠나는 일과 평안의 경지에 대해 묻겠습니다. 수행자는 어떻게 해야 세상의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평안에 들 수 있겠습니까?”


 916.

스승은 대답하셨다.

“나는 존재한다는 의식을 모두 잘라 버리고, 내 안에 도사리고 있는 온갖 집착까지도 눌러 버리도록 항상 열심히 배우라.


 917.

안으로든 밖으로든, 진리를 알기 위해 노력하라. 그렇다고 마음이 교만해져서는 안 된다. 진리에 도달한 사람은 그것을 평안이라고 하지 않는다.


 918.

이로 말미암아 ‘나는 뛰어나다’든가 ‘나는 뒤떨어진다’ 또는 ‘나는 동등하다’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여러 가지 질문을 받더라도 자기가 뛰어나다고 망령되이 생각하지 말라.


 919.

수행자는 마음이 평안해야 한다. 밖에서 고요함을 찾지 말라. 안으로 평안하게 된 사람은 고집할 것이 없다. 하물며 버릴 것이 있으랴.


 920.

바다 깊은 곳에는 파도가 일지 않고 잔잔하듯이, 고요히 멎어 움직이지 말라. 수행자는 어떤 욕심도 내서는 안 된다.“


 921.

“눈을 뜨신 분께서는 직접 체험하신 위험과 재난을 극복하는 방법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바른길을 일러 주십시오. 계율이나 정신을 안정시키는 방법도 함께 말씀해 주십시오.”


 922.

“눈으로 보는 것을 탐내지 말라. 저속한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말라. 맛에 빠져 들지 말라. 세상에 있는 어떤 것도 내것이라고 고집하지 말라.


 923.

고통을 겪을 때도 수행자는 결코 비탄에 빠져서는 안 된다. 생존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무서운 것을 만났을 때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924.

음식이나 옷을 얻더라도 너무 많아서는 안 된다. 또 그런 것을 얻을 수 없다고 해서 걱정해서도 안 된다.


 925.

마음을 안정시켜라. 흔들려서는 안 된다. 후회하지 말라. 게으르지 말라. 그리고 수행자는 한가하고 고요한 앉을 자리와 누울 곳에서 살아야 한다.


 926.

잠을 많이 자서는 안 된다. 부지런하고 늘 깨어 있어야 한다. 게으름과 수다와 이성의 사귐과 겉치레를 버리라.


 927.

내 제자는 꿈을 해몽하거나 관상을 보거나 점을 쳐서는 안 된다. 그리고 임신술이나 의술을 행해서도 안 된다.


 928.

수행자는 비난을 받더라도 걱정해서는 안 된다. 칭찬을 받더라도 우쭐거려서는 안 된다. 탐욕과 인색과 성냄과 욕설을 멀리해야 한다.


 929.

수행자는 장사를 해서는 안 된다. 결코 남을 비방해서는 안 되고 마을 사람들과 가까이 사귀어서도 안 된다. 이익 때문에 사람들을 만나서는 안 된다.


 930.

또 수행자는 거만해서는 안 된다. 자기의 이익을 위해 말을 꾸며서도 안 된다. 거만하거나 불화를 가져올 말을 해서도 안 된다.


 931.

거짓말을 피하라. 남을 속이지 않도록 하라. 그리고 생활에 대해서나 지혜에 대해서, 혹은 계율이나 도덕에 대해서 자기가 남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932.

출가 수행자는 말많은 세속인들한테 욕을 먹거나 불쾌한 말을 듣더라도 거친 말로 대꾸해서는 안 된다. 진정한 수행자는 적대적인 대답을 하지 않는다.


 933.

수행자는 이 이치를 알아, 깊이 생각하고 늘 조심해서 배우라. 모든 번뇌가 소멸된 상태가 ‘평안’임을 알고, 고타마의 가르침을 게을리 하지 말라.


 934.

그는 스스로 이기거나 남에게 지는 일이 없다. 남에게서 전해 들은 것이 아니고 스스로 깨달은 진리를 보았다. 그러므로 스승의 가르침에 게으르지 말고, 항상 예배하고 따라 배우라.“


이와 같이 스승은 말씀하셨다.


 


 무기를 드는 일



 935.

서로 죽이려고 싸우는 사람들을 보라. 무기를 드는 데서 두려움이 생긴다. 내가 어떻게 해서 그것을 멀리했는지, 멀리한 일에 대해서 말하리라.


 936.

물이 말라 가는 개울의 물고기처럼 두려워 떨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또 서로 미워하는 사람들을 보고 나는 두려워졌다.


 937.

이 세상 어느 곳도 견고하지는 않다. 어느 곳이나 모두 흔들리고 있다. 나는 내가 의지해야 할 곳을 찾았지만, 이미 죽음과 고통에 사로잡히지 않은 곳은 없었다.


 938.

모든 살아 있는 것이 결국 죽어가는 것을 보고 나는 불안해졌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마음속에 차마 볼 수 없는 번뇌의 화살이 박혀 있는 것을 보았다. 


 939.

이 화살이 박힌 자는 사방을 헤맨다. 이 화살을 뽑아 버리면 헤매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다.


 940.

세상에서는 여러 가지 학문을 배운다. 그러나 그 여러 가지 속박의 굴레에 빠져서는 안 된다. 모든 욕망을 완전히 알고 나서 평안을 배우라. 


 941.

성자는 성실해야 한다. 오만하지 않고, 더러운 탐욕과 인색을 초월해야 한다.


 942.

마음의 평안을 얻고자 하는 사람은, 잠과 권태와 우울을 이겨내야 한다. 게을러서는 안 된다. 교만해서도 안 된다.


 943.

거짓말을 피하라. 아름다운 겉모양에 집착하지 말라. 또 교만한 마음을 잘 알라. 포악하지 말라.


 944.

낡은 것을 좋아하지 말라. 새로운 것에 매혹당하지도 말라. 사라져 가는 것을 슬퍼하지 말라. 잡아 끄는 것에 불잡히지 말라.


 945.

나는 잡아 끄는 것을 탐욕, 거센 흐름, 빨아들이는 욕망이라고 부르며, 또는 계략, 넘기 힘든 욕망의 진흙탕이라고도 한다.


 946.

성자와 바라문은 진실에서 떠나지 않고, 확실한 언덕 위에 서 있다. 그는 모든 것을 버리고 ‘평안에 이른 사람’이라 불린다.


 947.

그는 지혜로운 사람이고 베다에 통달한 사람이다. 그는 진리를 알아 걸림이 없다. 그는 세상에서 바르게 행동하고, 이 세상에서 어떤 것도 부러워하지 않는다.


 948.

이 세상에서 모든 욕망을 초월하고, 극복하기 어려운 집착을 넘어선 사람은 거센 흐름에 떠내려가지도 않고 얽매이지도 않는다. 걱정하지 않고 누군가를 좋아해 애태우지도 않는다.


 949.

과거에 있었던 것(번뇌)을 지워 버리라. 미래에는 아무것도 없게 하라. 중간(현재)에도 아무 일에도 집착하지 않는다면 그대는 평안해지리라. 


 950.

이름과 형태에 대해서 내것이라는 생각이 전혀 없는 사람, 또는 무엇인가 없다고 해서 근심하지 않는 사람, 그는 참으로 늙지 않는다.


 951.

‘이것이 내것이다’ 또는 ‘이것은 남의 것이다’ 하는 생각이 없는 사람, 그는 내것이라는 관념이 없음으로, 내게 없다고 해서 슬퍼하지 않는다. 


 952.

시시하지 않고, 탐내지 않으며, 마음이 흔들려 괴로워하지 않고, 만물에 대해 평등하며,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에 대해 묻는 이가 있거든, 나는 그의 아름다운 점을 이렇게 말하리라.


 953.

지혜가 있는 사람은 마음이 흔들려 괴로워하지 않고, 그에게는 어떠한 거짓도 있을 수 없다. 그는 꾸밈에서 벗어나 가는 곳마다 평안을 본다.


 954.

성자는 자기가 대등한 사람들 속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못난이들 속에 있다거나 잘난 사람들 속에 있다고도 하지 않는다. 그는 평안에 들어가 인색하지 않으며, 어떤 것도 가지거나 버리지 않는다.


 


 제자 사리풋타



 955.

제자 사리풋타가 물었다.

“중생의 주인이신 스승께서 도솔천에 내려오시어 그와 같이 훌륭하게 설법하신 것을 저는 아직 본 일도 없고 누구에게서 들은 일도 없습니다.

註) 도솔천은 투시타 하늘. 불교 우주론에 나오는 28개의 하늘 가운데 하나. 전설에 따르면 부처님은 룸비니에 탄생하기 전에 이곳 도솔천에 머물러 있었다고 한다.


 956.

눈 있는 사람은 신과 세상사람들이 보는 것처럼, 모든 어둠을 벗겨버리고 홀로 진리의 즐거움을 얻으셨습니다.


 957.

걸림 없이, 거짓 없이 오신 스승, 눈 뜬 사람인 당신께 번뇌에 쌓인 많은 사람들을 위해 묻습니다.


 958.

수행자는 세상이 싫어 사람이 없는 곳이나 나무 아래, 혹은 묘지나 산골짜기의 동굴 속을 거처로 합니다. 

註) 부처님 당시의 수행자들은 공동묘지나 화장터를 명상하기 가장 좋은 장소로 여겼다. 생과 사에 대해 가장 강렬하게 생각할 수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959.

그리고 이런 곳에서는 얼마나 무서운 일이 생길지 모릅니다. 수행자는 소리 없는 곳에서 지내더라도 무서워해서는 안됩니다. 


 960.

아무도 가 보지 않은 곳으로 갈 때는 위험이 따르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수행자는 외딴곳에 살더라도 그러한 위험을 이겨 내야 합니다.


 961.

부지런히 정진하는 수행자에게는 어떠한 위험이 있습니까. 그의 행동은 어떠해야 합니까. 그의 계율이나 맹세는 어떠해야 합니까?


 962.

마음을 안정시켜 바르게 생각하는 어진 사람은 어떠한 학문을 몸에 지녀서 자기에게 묻은 때를 씻어 버립니까? 마치 대장장이가 은의 때를 벗겨 버리듯.“


 963.

스승은 대답하셨다.

“사리풋타여, 세상이 싫어 사람이 없는 곳에서 살고 깨달음을 구하는 사람들이 즐기는 경지와, 법에 따라 실천해야 하는 것들을 내가 아는 대로 그대에게 말하리라.


 964.

똑바로 정신을 차리고 분수를 지키는 지혜로운 수행자는 다섯 가지 두려움에 떨어서는 안 된다. 즉 쇠파리, 모기, 뱀, 도둑을 만나는 일과 네 발 가진 짐승들이다.


 965.

이교도들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아무리 그들에게 두려워할 것이 많이 있을지라도. 또한 진리를 추구하며 다른 모든 위험과 재난을 이겨내라.


 966.

병이나 굶주림, 추위나 더위를 견뎌야 한다. 저 집 없는 사람은 그런 것들이 닥쳐와도 용기를 가지고 굳세게 살아야 한다.


 967.

도둑질을 하지 말라. 거짓말을 하지 말라. 약한 것이나 강한 것이나 모든 생물을 자비로운 마음으로 대하라. 마음의 혼란을 느꼈을 때는 ‘악마의 무리’라 생각하고 이것을 물리치라.


 968.

분노와 교만에 지배되지 말라. 그것을 뿌리째 뽑아 버리라. 또 유쾌한 것이나 불쾌한 것이나 모두 극복해야 한다.


 969.

지혜를 가장 소중히 여기고 선을 좋아하여 위험과 재난을 물리치라. 거친 땅에 눕는 불편함을 참으라. 다음 네 가지 걱정을 극복해야 한다.


 970.

‘나는 무엇을 먹을까?’

‘나는 어디서 먹을까?’

‘어젯밤 나는 잠을 편히 자지 못했다.’

‘오늘밤 나는 어디서 잘 것인가?’

집을 버리고 진리를 배우는 사람은, 이러한 네 가지 걱정을 극복하라.


 971.

적당한 때 음식과 옷을 얻고, 그 양이 적더라도 만족할 줄 알라. 옷과 음식에 욕심을 부리지 말고, 마을을 지날 때는 조심하여 욕을 먹더라도 거친 말로 대꾸해서는 안된다.


 972.

눈을 아래로 두고, 여기저기 두리번거리지 말며, 깊이 생각하고 언제나 깨어 있으라. 마음을 고요히 하고 정신을 하나로 모아 집착과 욕망과 회환을 끊어 버리라.


 973.

남에게 충고를 받았을 때는 반성하고 감사하라. 함께 수행하는 사람에게 거친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된다, 좋은 말을 하고 때에 맞지 않은 말을 해서는 안 된다. 남을 비방해서도 안 된다.


 974.

또 세상에는 다섯 가지 티끌이 있다. 주의깊은 사람은 그것을 절제할 것을 배우라. 즉 형상, 소리, 냄새, 맛, 접촉에 대한 욕망을 이겨 내라.


 975.

수행자는 온전히 자유로운 마음을 가지고 이런 것에 대한 욕망을 절제하라. 그는 적당한 때에 법을 바르게 살피고 마음을 통일시켜 어둠을 없앤다.“


이와 같이 스승은 말씀하셨다.


 


 


五. 피안에 이르는 길.


 


 서



 976.

베다에 통달한 바라문(바바린)이 무소유의 경지에 이르고자 코살라족의 아름다운 도시에서 남국으로 내려왔다.


 977.

그는 앗사카와 아리카 두 나라 중간을 흐르는 고다바리 강변에 살고 있었다. 이삭을 줍고 나무 열매를 먹으면서.


 978.

그 강변 가까이 커다란 마을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얻은 것을 가지고 그는 큰 제사를 지냈다.


 979.

그가 제사를 끝내고 자기 암자로 돌아왔을 때 바라문 한 사람이 찾아왔다.


 980.

그의 발은 상했고 목은 검게 탔으며 이는 더럽고 머리는 먼지로 뒤덮여 있었다. 그는 암자 안의 바바린에게 가까이 와서 금화 오백 냥을 구걸하였다.


 981.

바바린은 그를 보자 앉을 자리를 권하고 그의 안부와 건강을 물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982.

“내가 가지고 있던 것은 다 베풀어 주었습니다. 바라문이여, 용서해 주시오. 내게는 금화 오백 냥이 없습니다.”


 983.

“내가 구걸하는데도 당신이 베풀어 주지 않는다면, 지금부터 이레 후에 당신의 머리는 부서져 일곱 조각이 날 것이오.”


 984.

거짓말을 한 그 바라문은 주문을 외우며 무서운 저주를 퍼부었다. 그 말을 듣고 바바린은 괴로워했다. 


 985.

그는 걱정의 화살을 맞아 음식도 먹지 못하고 풀이 죽어 있었다. 이런 사람은 정신의 안정을 누릴 수 없는 법이다.


 986.

바바린이 두려워하고 괴로워하고 있는 것을 본, 암자를 지키는 여신이 그의 곁에 와서 이렇게 말했다. 


 987.

“그는 머리를 알지 못합니다. 그는 재물을 탐내는 사기꾼입니다. 그는 머리도, 머리가 부서지는 것도 알지 못합니다.”


 988.

“그럼 당신은 알고 있겠군요. 바라건데, 머리와 머리가 부서지는 것을 내게 가르쳐 주십시오. 나는 당신의 말을 듣고 싶습니다.”


 989.

“나는 그것을 알지 못합니다. 그것에 대한 지식이 내게는 없습니다. 머리와 머리가 부서지는 것도 모든 승리자(부처님)가 알고 계십니다.”


 990.

“그럼 이 세상에서 머리와 머리가 부서지는 것은 누가 알고 있습니까. 여신이여, 그것을 내게 말해 주십시오.”


 991.

“예날 카필라 성에서 태어난 세상의 지도자가 계십니다. 그는 감자왕의 후예이고 석가족의 아들로서, 세상을 비추고 있습니다.


 992.

바라문이여, 그는 참으로 눈을 뜬 사람이고 모든 것에 통달해 있습니다. 온갖 신통력을 가지고 있고 모든 것을 꿰뚤어 보는 눈을 가졌습니다. 온갖 것을 소멸한 경지에 이르렀고 번뇌를 멸해 해탈했습니다. 


 993.

그 눈 뜬 분, 거룩한 스승, 눈 있는 분은 세상에서 법을 설하십니다. 당신은 그분께 가서 물으십시오. 그분은 말씀해 주실 것입니다.“


 994.

‘눈 뜬 분’이란 말을 듣고도 바바린은 몹시 기뻐했다. 근심은 가벼워졌고 기쁨이 넘쳤다.


 995.

바바린은 기뻐하며 여신에게 물었다.

“세상의 지도자는 어느 마을, 어느 거리, 어느 집에 계십니까? 그곳에 가서 가장 뛰어난 정각자에게 나는 예배 드리겠습니다.”


 996.

“승리자, 지혜가 많은 사람, 티 없는 사람, 머리가 부서지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 우왕牛王 같은 사람, 저 석가족의 아들은 코살라의 서울인 사밧티에 계십니다.”


 997.

그래서 그는 베다에 통달한 제자 바라문들에게 말하였다.

“바라문들이여. 나는 너희들에게 알리노니, 내 말을 들으라.


 998.

세상에 출현하기 어려운 고귀한, 저 눈 뜬 분이 지금 세상에 나타나셨다. 너희들은 어서 사밧티로 가서 그 뛰어난 분을 뵈어라.“


 999.

“그러면 스승이시여, 우리가 그분을 보고 ‘눈 뜬 분’임을 어떻게 알아볼 수 있는지 가르쳐 주십시오. 우리는 알 수가 없습니다.”


 1000.

“베다에 서른두 가지 완전한 위인의 상이 전해지고 있고, 차례로 설명되어 있다.


 1001.

몸에 그런 서른두 가지 위인의 상이 있는 사람, 그의 앞에는 두 가지 길이 있을 뿐, 셋째 길은 없다.


 1002.

만약 그가 집에 머문다면 이 천하를 정복하리라. 형벌이나 무기에 의존하지 않고 진리로 통치한다.


 1003.

또 그가 집을 나와 집 없는 사람이 된다면 덮여 있는 것을 벗기고, 더없이 높은 눈 뜬 사람, 존경받는 사람이 된다.


 1004.

내가 태어난 해와 이름과 모습의 특징과 제자들과 머리와 머리가 부서지는 것을 마음속으로만 그에게 물으라.


 1005.

만약 그가 진정 눈 뜬 사람이라면, 마음속으로 물은 질문에 말로써 대답할 것이다.“


 1006.

바바린의 말을 듣고 제자인 열여섯 명의 바라문들. 아지타와 팃사 메티야, 푼나카, 그리고 멧타구,


 1007.

도타카, 우파시바, 난다, 헤마카, 토디야, 캅파, 현자 자투칸닌,


 1008.

바드라우다, 우다야, 포사라 바라문과 지혜로운 모가라자와 위대한 수행자 핑가야 등.


 1009.

그들은 저마다 무리들을 이끌고 있었으며 온 세상에 이름을 떨치고 정신이 안정된 이들이며, 평안한 마음을 즐기고 현명하며 전생에 온갖 선한 일을 했던 사람들이다.


 1010.

머리를 땋고 염소 가죽을 걸친 그들은 모두 바바린에게 예를 갖춰 절하고, 또 바른편으로 돌아 나가 북쪽으로 떠났다.


 1011.

무라카의 서울 파티타나에 들어갔고, 옛날의 서울인 마힛사티로, 또 웃제니, 고낫다, 베디사, 바나사라는 곳으로,


 1012.

그리고 코삼비, 사케타, 최고의 도시 사밧티로 갔다. 그리고 세타비야, 카필라밧투, 쿠시나라의 궁전으로 들어갔다.


 1013.

그리고 향락의 도시 파바로, 베사리로, 마가다국의 서울 라자그라하로 가서, 아름답고 상쾌한 돌의 영지靈地에 이르렀다.


 1014.

목마른 사람이 냉수를 찾듯이, 또 상인이 큰 이익을 구하듯이, 더위에 지친 사람이 나무 그늘을 찾듯이 그들은 서둘러 거룩한 스승이 계신 산으로 올라갔다.


 1015.

거룩한 스승은 그때 여러 수행자들 앞에서 사자가 숲속에서 포효하듯 법을 설하고 계셨다.


 1016.

빛을 비추는 태양 같고 둥근 보름달 같은 눈 뜬 사람을 아지타는 보았다.


 1017.

그때 아지타는 부처님 몸에 위인의 상이 있는 것을 보고 기뻐하면서 한쪽에 서서 마음속으로 이렇게 물었다.


 1018.

‘저의 스승 바바린의 태어난 해를 말하시오. 이름과 모습의 특징을 말하시오. 제자는 몇 명이나 가르치고 있는 지 말해 보시오.’


 1019.

“그의 나이는 백스무 살이다. 그의 이름은 바바린이고 몸에는 세 가지 특징이 있으며 그는 3베다의 깊은 뜻에 통달해 있다.


 1020.

위인의 특징과 전설과 어휘와 의례에 통달하고, 5백 명의 제자를 가르치며 자기 교설의 극치에 도달해 있다.“


 1021.

‘집착을 끊어 버린 으뜸가는 분이시여, 바바린이 가진 모든 특징을 자세히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의심을 갖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1022.

“그는 혀를 가지고 자기 얼굴을 덮을 수 있다. 그의 양미간에는 흰털이 있고 음부는 감추어져 있다. 바라문이여, 그의 세 가지 특징은 이러하니라.”


 1023.

질문자가 아무것도 묻지 않았는데 부처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시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감격하고 합장하고 생각했다.


 1024.

‘누구일까, 신일까, 범천일까, 혹은 제석천일까. 도대체 누구에게 대답을 하신 것일까?’ 모두들 마음속으로 이와 같이 생각하였다.


 1025.

“바바린은 머리와 머리가 부서지는 것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스승이시여, 그것을 설명해 주십시오. 성인이시여, 우리들의 의문을 풀어 주십시오.”


 1026.

“무지가 머리인 줄 알라. 신앙과 생각과 명상과 욕심과 노력에 연결되어 있는 밝은 지혜가 머리를 깨어 부수는 것이다.” 


 1027.

그래서 그 바라문은 크게 감동하여 뛸 듯이 기뻐하며, 염소 가죽으로 만든 옷을 왼쪽 어깨에 걸치고, 부처님의 발 밑에 머리를 숙이고 절하였다.

註) 옷을 벗어 왼쪽 어깨에 걸치고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뒤 발에 머리를 대고 절하는 것이 당시의 정중한 인사법이었다.


 1028.

아지타가 말했다.

“거룩한 분이시여, 바바린 바라문은 그의 여러 제자들과 함께 기뻐하며 거룩한 스승의 발 밑에 예배드립니다. 눈이 있는 분이시여.”


 1029.

스승은 대답하셨다.

“바바린 바라문은 여러 제자들과 함께 기뻐하라. 바라문이여, 그대도 또한 기뻐하라. 오래 살라.


 1030.

바바린이나 그대들은 모든 의문이 풀렸을 것이다. 마음속에 묻고자 하는 것이 있거든 무엇이든 물으라.“


 1031.

눈 뜬 분에게서 허락을 받았으므로 아지타는 합장하고 앉아서 완전한 사람에게 첫째 질문을 하였다.


 


 아지타의 질문



 1032.

아지타가 물었다.

“세상은 무엇에 덮여 있습니까. 세상은 무엇 때문에 빛을 내지 않습니까. 세상을 더럽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세상의 가장 커다란 두려움은 무엇입니까? 그것을 말씀해 주십시오.”


 1033.

스승은 대답하셨다.

“아지타여, 세상은 무지에 덮여 있다. 세상은 탐욕과 게으름 때문에 빛을 내지 않는다. 욕심은 세상의 더러움이며, 고뇌는 세상의 가장 커다란 두려움이라고 나는 말한다.”


 1034.

아지타가 물었다.

“번뇌의 흐름은 어느 곳에나 있습니다. 그 흐름을 막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 흐름을 막고 그치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을 말씀해 주십시오.”


 1035.

스승은 대답하셨다.

“아지타여, 세상에서 모든 번뇌의 흐름을 막는 것은 조심하는 일이다. 그것이 번뇌의 흐름을 막고 그치게 한다. 그 흐름은 지혜로서 막을 수 있는 것이다.”


 1036.

아지타가 물었다.

“지혜와 조심하는 일과 이름과 형태는 어떤 때 소멸합니까? 그것을 말씀해 주십시오.”


 1037.

“아지타여, 그대의 질문에 답하리라. 식별 작용이 없어질 때 이름과 형태가 남김없이 사라진다.”


 1038.

“이 세상에는 진리를 찾아 밝힌 사람도 있고, 배우고 있는 사람도 있으며 범부도 있습니다. 바라건데, 현자께서는 그들의 행동을 말씀해 주십시오.”


 1039.

“수행자는 여러 가지 욕망에 빠져서는 안 된다. 마음이 혼탁해서는 안 된다. 모든 사물의 본질을 깨달아 정신을 차리고 수행해야 한다.”


 


 팃사 멧티야의 질문



 1040.

팃사 메티야가 물었다.

“이 세상에서 만족하고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흔들리지 않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양극단을 통달하고 깊이 생각해 양극단이나 중간에도 더럽혀지지 않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당신은 누구를 위인이라 부릅니까. 이 세상에서 만나는 여인(번뇌)를 초월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1041.

스승은 대답하셨다.

“멧티야여, 모든 욕망에 대해서 청정한 수행을 지키고 집착을 떠나 항상 조심하고 깊이 살펴 생각하고 평안에 들어간 수행자. 그에게는 흔들림이 없다.


 1042.

그는 양극단을 통달하고 깊이 생각해 양극단이나 중간에도 더렵혀지지 않는다. 그를 나는 위인이라 부른다. 그는 이 세상에서 만나는 모든 여인(번뇌)를 초월해 있다.“


 


 푼나카의 질문



 1043.

푼나카가 물었다.

“흔들리지 않는 근본을 깨달은 당신께 여쭙고자 이렇게 왔습니다. 성인이나 무사나 왕족이나 바라문들은 무엇 때문에 널리 신들에게 제물을 바쳤습니까? 스승이시여, 당신께 묻사오니 제게 말씀해 주십시오.”


 1044.

스승은 대답하셨다.

“푼나카여, 대게 성인이나 무사나 왕족아너 바라문들이 세상에서 널리 신들에게 재물을 바친 것은, 늙고 병들면서 현재 우리들이 가진 이러한 생존 상태(윤회)를 다시 희망하기 때문에 제물을 바친 것이다.”


 1045.

푼나카가 물었다.

“스승이시여, 대게 이 세상에서 성인이나 무사나 왕족이나 바라문들이 모두 신들에게 재물을 바쳤습니다만, 제사에 게으르지 않았던 그들은 생과 늙음을 초월한 것입니까? 스승이시여, 당신께 묻사오니 그것을 제게 설명해주십시오.”


 1046.

스승은 대답하셨다.

“푼나카여, 그들은 희망하고 찬양하고 열망하여 제물을 바친다. 이득을 얻고 욕망을 달성하고자 희망한다. 제물 바치기에 몰두하는 사람들은 이 세상의 생존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않는다. 그들은 생과 늙음을 초월하지 못했다고 나는 말한다.”


 1047.

푼나카가 물었다.

“만약 제물 바치기에 몰두해 있는 그들이 제사로써도 생과 늙음을 초월하지 못했다면, 신과 인간의 세계에서 생과 늙음을 초월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스승이시여, 당신께 묻사오니 그것을 제게 말씀해 주십시오.”


 1048.

스승께서 말씀하셨다.

“푼나카여, 세상에서 이런 저런 상태를 깊이 살펴 아무 것에도 흔들리지 않고, 평안에 머물러 나쁜 연기도 고뇌도 욕망도 없는 사람, 이런 사람이 생과 늙음을 초월했다고 나는 말한다.”


 


 멧타구의 질문



 1049.

멧타구가 물었다.

“스승이시여, 당신께 묻겠습니다. 이것을 제게 말씀해 주십시오. 당신은 베다에 통달한 분, 마음을 수양한 분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 세상에 있는 갖가지 괴로움은 도대체 어디에서 생겨난 것입니까?”


 1050.

스승은 대답하셨다.

“멧타구여, 그대는 내게 괴로움이 생기는 원인을 물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을 그대에게 말하리라. 세상의 온갖 괴로움은 집착에서 생긴다.


 1051.

집착을 만드는 어리석은 사람은 어리석음 때문에 또다시 괴로움에 다가선다. 그러므로 괴로움이 생기는 것을 본 지혜로운 사람은 집착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1052.

“우리가 당신에게 물은 바를 당신은 우리에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다른 것을 또 묻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현자들은 번뇌의 흐름, 생과 늙음, 근심과 슬픔을 초월할 수 있습니까? 성인이시여, 그것을 제게 설명해 주십시오. 당신은 그것을 분명히 알고 계십니다.”


 1053.

스승은 대답하셨다.

“메타구여, 전해 들은 것이 아닌 이 진리를 나는 그대에게 말하겠다. 이것을 명심해서 듣고 잘 수행하여 세상의 집착을 초월하라.”


 1054.

“위대한 현자시여, 저는 그 으뜸가는 진리를 받아 그지없이 기쁩니다. 그 진리대로 행하여 세상의 집착을 초월하겠습니다.”


 1055.

스승은 말씀하셨다.

“멧타구여, 상하 좌우 중간 어느 곳에서나, 그대가 아는 어떤 것이라도, 그것에 대한 기쁨과 집착과 식별을 버리고 덧없는 생존 상태에 머무르지 말라.


 1056.

이렇게 조심하고 게으르지 않는 수행자는 내것이라고 고집했던 것을 버리고, 생과 늙음, 근심과 슬픔을 버리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 이 세상의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나리라.“


 1057.

“위대한 성인의 말씀을 듣고 저는 기쁩니다. 고타마시여, 번뇌의 요소가 없는 경지를 잘 설명해 주셨습니다. 확실히 스승께서는 괴로움을 버리셨습니다. 당신께서는 이 진리를 바르게 알고 계십니다.


 1058.

성인이시여, 당신께서 가르치고 이끌어 주신 사람들은 곧 괴로움을 버리게 될 것입니다. 용이시여, 그럼 당신께 가까이 가서 예배 드리겠습니다. 스승이시여, 저를 가르치고 이끌어 주십시오.“


 1059.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고 생존의 욕망에 집착하지 않는 바라문, 베다에 통달한 사람이라고 그대가 아는 사람, 그는 확실히 이 번뇌의 흐름을 건넜다. 그는 피안에 이르러 마음이 평안하고 의혹도 없다.


 1060.

또 그는 이 세상에서는 지혜로운 사람이고 베다에 통달한 사람이며, 여러 가지 생존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고뇌도 없고 희망도 없다. 그는 생과 늙음을 뛰어넘었다.“


 


 도타카의 질문



 1061.

도타카가 물었다.

“스승이시여, 당신께 묻겠습니다. 제게 말씀해 주십시오. 위대한 스승이시여, 저는 당신의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당신의 음성을 듣고 평안을 배우겠습니다.”


 1062.

스승은 말씀하셨다.

“도타카여, 그러면 이 세상에서 부지런히 수행하고 정진하라.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을 듣고 평안을 배우라.”


 1063.

“당신이야말로 신과 인간의 세계에서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고 행동하는 바라문입니다. 널리 보는 분이시여, 저는 당신께 예배드립니다. 석가시여, 저를 온갖 의혹에서 벗어나게 해주십시오.”


 1064.

“도타카여, 나는 이 세상에서 어떤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를 의혹에서 벗어나게 해주지는 못한다. 다만 그대가 으뜸가는 진리를 안다면, 그것으로 인해 그대는 스스로 번뇌의 흐름을 건너게 되리라.”


 1065.

“스승이시여, 자비를 베풀어 그 초월의 진리를 가르쳐 주십시오. 저는 그것을 알아야만 하겠습니다. 저는 마치 허공처럼 변함 없는 모습으로, 고요하고 걸림 없이 수행하겠습니다.”


 1066.

스승은 말씀하셨다.

“도타카여, 전해 들은 것이 아닌 이 평안을 그대에게 말하겠다. 이것을 명심해서 듣고 잘 수행하여 세상의 집착을 뛰어넘으라.”


 1067.

“위대한 성인이시여, 저는 그 으뜸가는 평안에 대한 가르침 앞에 그지없이 기쁩니다. 그것을 알고 열심히 수행하여 세상의 집착을 뛰어넘겠습니다.”


 1068.

스승께서 말씀하셨다.

“도타카여, 상하 좌우 중간 어느 곳에서나 그대가 아는 무엇이건, 그것을 세상의 집착이라고 알고 생존에 대한 집착을 가져서는 안 된다.”


 


 우파시바의 질문



 1069.

우파시바가 물었다.

“석가시여, 저는 아무것에도 의지하지 않고 혼자서 큰 번뇌의 흐름을 건널 수는 없습니다. 제가 의지해 건널 수 있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널리 보는 분이시여.”


 1070.

거룩한 스승은 대답하셨다.

“우파시바여, 무소유에 의지하면서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다’라는 생각으로써 번뇌의 흐름을 건너라. 모든 욕망을 버리고 의혹에서 벗어나 집착의 소멸을 밤낮으로 살피라.”


 1071.

우파시바가 물었다.

“모든 욕망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무소유에 의해 모든 것을 버리고, 모든 생각으로부터 해탈한 사람. 그는 물러남 없이 거기에 편안히 머무를 수 있겠습니까?”


 1072.

“우파시바여, 모든 욕망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무소유에 의해 모든 것을 버리고, 가장 높은 상념의 해탈에 도전한 삶. 그는 물러남 없이 거기에 편안히 머무르리라.


 1073.

“널리 보는 분이시여, 만약 그가 물러남 없이 여러 해 동안 거기에 머무른다면, 그는 해탈하여 청량하게 되겠습니까. 그리고 그러한 사람에게는 식별 작용이 있습니까?”


 1074.

“우파시바여, 사나운 바람이 불면 불씨는 꺼져 버려 불이 되지 않는 것처럼, 성인은 몸과 마음에서 해탈해 없어지고,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1075.

“번뇌를 소멸해 버린 그는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까, 혹은 여전히 존재하는 것입니까? 성인이시여, 그것을 제게 말씀해 주십시오. 당신은 이것을 있는 그대로 알고 계십니다.”


 1076.

스승은 대답하셨다.

“우파시바여, 번뇌를 소멸해 버린 자에게는 그것을 헤아릴 기준이 없다. 이렇다 저렇다 말할 만한 기준이 그에게는 없다. 모든 것이 깨끗이 끊어지면 논리의 길도 완전히 끊어져 버린다.”


 


 난다의 질문



 1077.

난다가 물었다.

“세상에는 여러 성자가 있다고 합니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지식이 깊은 사람을 성자라고 합니까, 아니면 행적이 뛰어난 사람을 성자라고 합니까?”


 1078.

스승은 대답하셨다.

“난다여, 진리에 도달한 사람은 견해나 학문이나 지식을 가지고 성자라고 하지는 않는다. 번뇌를 깨뜨려 고뇌가 없고 욕망이 없이 행동하는 사람들, 그들이야말로 성자라고 나는 말한다.”


 1079.

난다가 물었다.

“대게 사문이나 바라문들은 견해나 학문에 의해서 청정해질 수 있다고 합니다. 계율이나 도덕에 의해서도 청정해질 수 있다고 합니다. 이밖에 여러 가지 방법에 의해서 청정해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스승이시여, 그들은 이런 것을 가지고 스스로 절제하고 있지만, 과연 생과 늙음을 초월한 것입니까? 존경하는 스승이시여, 당신께 묻사오니 그것을 제게 가르쳐 주십시오.”


 1080.

스승은 대답하셨다.

“난다여 대게 사문이나 바라문들은 견해에 의해 청정해지고, 계승된 학문에 의해서도 청정해진다고 말한다. 그리고 계율이나 도덕에 의해서도 청정해진다고 한다. 이밖에 여러 가지 방법에 의해서 청정해진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이 그러한 것을 가지고 절제한다 할지라도, 생과 늙음을 초월한 것은 아니라고 나는 말한다.”


 1081.

난다가 물었다.

“대게 사문이나 바라문들은 견해나 학문에 의해서, 또는 계율이나 도덕에 의해서 청정해진다고 합니다. 이밖에 여러 가지 방법에 의해서 청정해진다고 합니다. 성인이시여, 만일 당신께서 ‘그들은 아직도 번뇌의 흐름을 건너지 못했다’고 하신다면, 신과 인간의 세계에서 생과 늙음을 초월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스승이시여, 당신께 묻사오니 그것을 제게 말씀해 주십시오.”


 1082.

스승은 대답하셨다.

“난다여, 나는 모든 사문이나 바라문들이 생과 늙음에 갇혀 있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이 세상에서 견해나 학문, 사색이나 계율, 혹은 도덕을 다 버리고, 또 여러 가지 방법을 다 버리고, 집착을 깊이 살펴 그 본질을 깨닫고, 마음에 때가 묻지 않은 사람들. 그들이야말로 참으로 ‘번뇌의 흐름을 건넌 사람들’이라고 나는 말한다.”


 1083.

“위대한 현자의 말씀을 듣고 저는 한없이 기쁩니다. 고타마시여, 번뇌의 요소가 없는 경지를 훌륭하게 밝혀 주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견해, 학문, 사색, 계율, 도덕을 모두 버리고, 또 여러 가지 방법을 다 버리고, 집착을 깊이 살펴 그 본질을 깨닫고, 마음에 때가 묻지 않은 사람들. 그들이야말로 참으로 ‘번뇌의 흐름을 건넌 사람들’이라고 저도 생각합니다.”


 


 해마카의 질문



 1084.

해마카가 물었다.

“고타마 이전의 옛 사람들이 ‘이전에는 이러했다. 미래는 이렇게 되리라’하고 제게 말해 준 것은 모두 전해들은 바에 불과합니다. 그것은 모두 내 사색을 혼란시킬 뿐입니다.


 1085.

저는 그들의 말을 즐겨하지 않습니다. 성인이시여, 집착을 끊어버리는 방법을 말씀해 주십시오. 그것을 듣고 잘 수행해서 세상의 집착을 뛰어넘겠습니다.“


 1086.

“헤마카여, 이 세상에서 보고 듣고 생각하고 식별한 아름다운 사물에 대해서 탐욕을 없애는 것이 영원한 열반의 경지이다.


 1087.

이것을 잘 알고 명심해 이 세상에서 번뇌를 완전히 벗어버린 사람은 항상 평안에 들어가 있다. 세상의 집착을 뛰어 남은 것이다.“


 


 토디아의 질문



 1088.

토다야가 물었다.

“모든 욕망에 머무르지 않고 집착을 없애고 온갖 의혹을 초월한 사람, 그는 어떤 해탈을 구하면 좋겠습니까?”


 1089.

스승은 대답하셨다.

“토다야여, 모든 욕망에 머무르지 않고 집착을 없애고 온갖 의혹을 초월한 사람, 그에게는 따로 해탈이 없다.”


 1090.

“그는 소원이 없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무언가를 소원하고 있는 것입니까. 그는 지혜를 가진 사람입니까, 아니면 지혜로써 무엇을 꾸미는 사람입니까? 석가시여, 그가 성인임을 제가 알 수 있도록 말씀해 주십시오. 널리 보는 분이시여.”


 1091.

“그는 아무 소원도 없는 사람이다. 그는 아무것도 소원하지 않는다. 그는 지혜를 가진 사람이지만, 지혜로써 무엇을 꾸미지 않는다. 토디야여, 성인은 이러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라. 그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으며, 생존의 욕망에 집착하지도 않는다.”


 


 캅파의 질문



 1092.

캅파가 물었다.

“거센 물결이 밀려왔을 때 호숫가에 있는 사람들, 늙음과 죽음에 짓눌려 있는 사람들을 위해 의지할 만한 섬을 말씀해 주십시오. 이 괴로움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피난처를 제게 보여 주십시오.”


 1093.

스승은 대답하셨다.

“캅파여, 아주 거센 물결이 밀려왔을 때 호숫가에 있는 사람들, 늙음과 죽음에 짓눌려 있는 사람들을 위한 섬을 너에게 말해 주리라.


 1094.

어떤 소유도 없고 집착도 없고 취할 것도 없는 것, 이것이 바로 의지할 만한 섬이다. 그것을 열반이라고 한다. 그것은 늙음과 죽음의 소멸이다.


 1095.

이것을 분명히 알고 명심해 이 세상에서 번뇌를 완전히 떠난 사람들은 악마에게 굴복하지 않는다. 그들은 악마의 종이 되지 않는다.“


 


 자투칸닌의 질문



 1096.

“저는 용사로, 욕망이 없는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듣고 거센 흐름을 건넌 사람에게 ”욕망 없는 것“에 대해 묻고자 이곳에 왔습니다. 평안의 경지를 말씀해 주십시오. 눈이 있는 분이시여, 스승이시여, 그것을 있는 그대로 말씀해 주십시오.


 1097.

거룩한 스승께서는 모든 욕망을 다스리며 사십니다. 마치 빛나는 태양이 그 빛으로 대지를 이기는 것과 같습니다. 지혜 많은 분이시여, 지혜가 적은 저에게 법을 설해 주십시오. 저는 그것을 알고자 합니다. 이 세상에서 생과 늙음을 버리는 일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1098.

스승은 대답하셨다.

“자투칸닌이여, 모든 욕망에 대한 집착을 버리라. 버림을 평안으로 보라. 그대에게는 취할 것도 버릴 것도 있어서는 안된다.


 1099.

과거에 있었던 것(번뇌)을 지워 버리라. 미래에는 그대에게 아무것도 없게 하라. 중간(현재)에도 아무 일에도 집착하지 않는다면 그대는 평안해지리라.


 1100.

바라문이여, 이름과 형태에 대한 집착을 떠난 사람에게는 여러 가지 번뇌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그는 죽음에 지배되지 않는다.“


 


 바드라우다의 질문



 1101.

바드라우다가 물었다. 

“집착의 주소를 버리고 집착을 끊어 괴로움이나 흔들리는 일 없이, 즐거움을 버리고 거센 흐름을 건너 이미 해탈한 현명한 당신께 원합니다.


 1102.

스승이시여, 당신의 말씀을 듣고자 많은 사람이 여러 지방에서 모여들었습니다. 당신의 말씀을 듣고 나서야 사람들은 이곳에서 물러날 것입니다. 그들을 위해 말씀해 주십시오. 당신께서는 진리를 있는 그대로 알고 계십니다.“


 1103.

거룩한 스승은 대답하셨다.

“바드라우다여, 상하 좌우 중간 어느 곳에서나 집착을 없애라. 세상에 있는 어느 것에라도 집착하면, 그것 때문에 악마가 따라다니게 된다.


 1104.

그렇기 때문에 수행자는 이것을 바르게 알고 명심해서, 세상에 있는 어느 것에도 집착해서는 안 된다. 죽음에 영역에 집착하는 이런 사람들을 ‘집착하는 사람들’이라 보아라.“


 


 우다야의 질문



 1105.

우다야가 물었다.

“이 세상의 티끌과 때를 벗고 명상에 잠겨 할 일을 다 마치고, 번뇌의 더럽힘 없이 모든 사물의 피안에 도달한 스승께 묻고자 이곳에 왔습니다. 무지를 깨뜨리는 일과 사물에 대한 이해에 의한 해탈을 말씀해 주십시오.”


 1106.

거룩한 스승은 대답하셨다.

“우다야여, 욕정과 근심, 이 두가지를 버리는 것, 침을한 기분을 없애는 것, 후회하지 않는 것.


 1107.

고요한 마음과 깨끗한 생각과 진리에 대한 사색을 먼저하는 것. 이것이 무지를 깨뜨리는 일이며, 사물에 대한 이해에 의한 해탈이라고 나는 말한다.“


 1108.

“세상사람들은 즐거움에 속박되어 있다. 생각이 세상사람들을 움직이게 한다. 집착을 끊어버림으로써 평안에 이른다고 말한다.”


 1109.

“세상 사람들은 즐거움에 속박되어 있다. 생각이 세상사람들을 움직이게 한다. 집착을 끊어 버림으로써 평안에 이른다고 말한다.”


 1110.

“깊이 생각하며 열심히 수행하는 사람의 식별 작용은 어떻게 없애는 것입니까? 그것을 스승께 묻고자 저는 왔습니다. 당신의 그 말씀을 저는 듣고 싶습니다.”


 1111.

“안으로나 밖으로나 감각적 느낌을 기뻐하지 않는 사람, 이와 같이 깊이 생각하며 수행하는 사람의 식별 작용은 소멸되는 것이다.”


 


 포사라의 질문



 1112.

포사라가 물었다.

“과거의 일들에 얽매이지 않고 괴로워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으며 모든 의혹을 끊고 모든 사물의 피안에 이른 스승께 묻고자 이곳에 왔습니다.


 1113.

몸과 마음을 모두 버리고, 안으로나 밖으로나 ‘아무것도 없다.’고 보는 사람의 지혜를 저는 묻고 싶습니다. 석가시여, 어떻게 그러한 사람은 인도될 수 있습니까?“


 1114.

거룩한 스승은 대답하셨다.

“포사라여, 모든 식별 작용의 상태를 알아 버린 완전한 사람은 그가 존재하는 모양도 알고 있다. 즉, 그는 해탈하여 거기에 서 있는 것이다.


 1115.

무소유가 필요한 까닭, 즉 ‘기쁨은 속박이다’는 것을 알아 그것에 대해 조용히 생각한다. 안정된 바라문에게는 이와 같은 분명한 지혜가 있다.“


 


 모가라자의 질문



 1116.

모가라자가 물었다.

“저는 지난날 두 번이나 물었지만 대답해 주시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신선(부처님)은 세 번째에는 설명해 주신다고 들었습니다.


 1117.

이 세상도, 저 세상도, 신과 함께 있는 범천의 세계도, 명망이 높은 고타마의 견해는 다 헤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1118.

이와 같이 뛰어난 분께 묻고자 이곳에 왔습니다. 세상을 어떻게 보면 죽음의 왕에게 보이지 않겠습니까?“


 1119.

스승께서는 대답하셨다.

항상 조심하며 자기가 고집하는 편견을 버리고, 세상을 빈 것으로 보라. 그러면 죽음을 넘어설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세상을 보는 사람을 죽음의 왕은 보지 못한다.


 


 핑기야의 질문



 1120.

“나는 나이를 먹어서 기력도 없고 빛도 바랬습니다. 눈도 제대로 보이지 않고 귀도 잘 들리지 않습니다. 내가 헤매다가 이대로 죽지 않도록 하여 주십시오. 원컨대, 진리를 말씀해 주십시오, 이 세상에서 생과 늙음을 버리는 길을 알고 싶습니다.


 1121.

스승은 대답하셨다.

“핑기야여, 몸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늙어 가는 것을 볼 수 있고, 몸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병에 시달린다. 핑기야여, 그러므로 당신은 몸에 대한 집착을 버려 다시는 삶을 받아 이 세상에 돌아오지 않도록 하시오.


 1122.

“사방과 그 사이와 위아래 등, 이 시방十方 세계에서 당신에게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생각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원컨대, 법을 설해 주십시오. 이 세상에서 생과 늙음을 버리는 길을 저는 알고 싶습니다.”


 1123.

스승은 대답하셨다.

“핑기야여, 사람들은 집착에 빠져 고뇌하고 늙음에 쫓기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당신은 집착을 끊어 다시는 삶을 받아 이 세상에 돌아오지 않도록 하시오.”


 


 열여섯 바라문들의 질문에 대한 결론



스승께서는 마가다국 파사나카 사당에 계실 때 위와 같은 설법을 하시고, 바바린의 제자인 열여섯 바라문의 질문에 따라 대답하셨다. 만약 그 질문 하나 하나의 의미와 이치를 알고 그것에 따라 실천한다면, 늙음과 죽음이 없는 피안에 이를 것이다. 이 가르침은 ‘피안에 이르는 길’이라 부른다.


 1124.

아지타와 틱사 멧티야, 푼나카, 멧타구, 도타카, 우파시바, 난다, 그리고 헤마카,


 1125.

토디야와 캅파와, 현자 자투칸닌, 바드라우다, 우다야, 포사라 바라문과 지혜로운 모가라자와 위대한 수행자 핑가야 등.


 1126.

이들은 수행이 갖추어진 눈 뜬 분께 가까이 갔다. 여러 가지 질문을 하면서 그들은 부처님께 다가갔다. 


 1127.

그들의 질문에 따라 눈 뜬 분은 있는 그대로 대답을 하셨다. 성인은 모든 질문에 대해 시원스런 대답을 했기 때문에 바라문들은 매우 만족하였다.


 1128.

그들은 태양의 후예인 눈 뜬 분, 눈이 있는 분에게 만족하여 뛰어난 지혜인 밑에서 청정한 수행을 했다.


 1129.

하나하나의 질문에 대해서는 눈 뜬 분의 말씀을 그대로 실천하는 사람은, 차안此岸에서 피안彼岸에 이를 것이다.


 1130.

으뜸가는 길을 닦는 사람은 차안에서 피안으로 갈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피안에 이르는 길이다. 그러므로 ‘피안에 이르는 길’이라고 한 것이다.


 1131.

핑기야가 바바린에게 돌아가 들은 대로 말했다.

“‘피안에 이르는 길’을 외우겠습니다. 티가 없고 지혜가 많은 분께서는 스스로 본 대로 말씀하셨습니다. 욕심이 없고 번뇌의 숲이 없어진 분께서 어찌 허망한 말씀을 하시겠습니까.


 1132.

더러움과 어리석음에서 벗어나고, 교만과 거짓을 버린 사람을 저는 찬양하겠습니다. 


 1133.

바바린이시여, 암흑을 지워버린 눈 뜬 사람, 널리 보는 사람, 세상의 궁극에 이른 사람, 모든 생존 상태를 초월한 사람, 티 없는 사람, 모든 괴로움을 버린 사람, 그는 참으로 ‘눈 뜬 사람’이라고 불리기에 마땅한 사람입니다. 저는 그분을 가까이 모셨습니다.


 1134.

새들이 엉성한 숲을 떠나 열매가 풍성한 숲에 깃들이듯이, 저도 또한 소견이 좁은 사람들을 떠나 백조처럼 넓은 바다에 이르렀습니다.


 1135.

고타마 이전의 옛 사람들이 ‘이전에는 이러했다, 미래에는 이렇게 되리라’하고, 저에게 말해 준 것은 전해 들은 바에 불과합니다. 그것은 모두 내 사색을 혼란시킬 뿐입니다.


 1136.

그는 홀로 번뇌의 암흑을 지워 버리고 앉아, 빛으로 비치고 있습니다. 고타마는 지혜가 많은 분입니다. 그는 지혜가 넘치는 분입니다.


 1137.

그 즉시 효과가 있는, 시간을 초월한 진리, 즉 번뇌가 없는 집착의 소멸을 제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분에게 견줄 사람은 아무 데도 없습니다.“


 1138.

바바린이 말했다.

“핑기야여, 그대는 지혜가 많은 고타마, 지혜가 넘치는 고타마 곁에서 잠시라도 떨어져 살 수 있겠는가?


 1139.

그가 그대에게 설해 준 그 즉시 효과가 있는, 시간을 초월한 진리, 즉 번뇌가 없는 집착의 소멸을 내게도 설해 주었다. 그에게 견줄 사람은 아무데도 없다고 했는데.“


 1140.

핑기야가 말했다.

“바라문이시여, 저는 지혜가 많은 고타마, 지혜가 넘치는 고타마 곁은 떠나서는 한시도 살 수 없습니다. 


 1141.

그 즉시 효과가 있는, 시간을 초월한 진리, 즉 번뇌가 없는 집착의 소멸을 제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분에게 견줄 사람은 아무 데도 없습니다.


 1142.

바라문이시여, 나는 게으르지 않게 밤낮으로 마음의 눈을 가지고 그 분을 보고 있습니다. 그분을 예배하면서 밤을 보냅니다. 그러므로 나는 그 분을 떠나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1143.

내 믿음과 기쁨과 마음과 생각은 고타마의 가르침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지혜 많은 분이 어느 쪽으로 가거나 그곳을 향해 나는 예배하겠습니다. 


 1144.

나는 이제 늙어서 기력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내 몸은 그곳으로 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생각은 항상 그곳에 가 있습니다. 바라문이시여, 내 마음은 그분과 맺어져 있습니다. 


 1145.

나는 더러운 흙탕물에 누워 여기저기 떠다녔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거센 흐름을 건넌, 티 없이 깨끗한 분을 만났습니다,“


 1146.

이때 거룩한 스승께서 나타나 말씀하셨다.

“박카리와 바드라우다 또는 알라비 고타마가 믿음에 의해 깨달은 것처럼, 당신도 믿음에 의해 깨달으십시오. 당신은 죽음의 영역에서 벗어날 것입니다. 핑기야여.”


 1147.

핑기야가 말했다.

“저는 성인의 말씀을 듣고 더욱더 믿게 되었습니다. 깨달은 사람은 번뇌의 덮임에서 벗어나 마음이 거칠지 않고 말솜씨가 있는 분입니다.


 1148.

신들은 초월했다는 법을 잘 알아 이것저것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스승께서는 의심을 가지고 묻는 사람들의 질문에 분명한 대답을 해주셨습니다.


 1149.

아무 데도 비할 바 없고, 빼앗기지 않으며, 흔들리지 않는 경지에 저는 틀림없이 도달할 것입니다. 이것에 대해서 제게는 조금도 의심이 없습니다. 제 마음이 이와 같이 믿고 알고 있는 것을 인정해 주십시오.“


 

[해설]

이 책은 <남전대장경南傳大臧經>에 수록되어 있는 <숫타니파타Suttanipata>를 완역한 것이다. ‘숫타Sutta'는 ’말의 묶음經‘, ’니파타nipata'는 ‘모음集’이란 뜻으로, 두 단어가 합쳐져 ‘말의 모음집’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 숫타니파타는 경전을 모은 것이라는 뜻이다. 불교의 많은 경전 중에서도 가장 초기에 이루어진 경전이라는 점에서 그 중요성과 의미가 크다.

이 경전이 이루어진 배경은 이러하다. 부처님이 돌아가신 후 제자들은 스승의 가르침을 간추려 간결한 산문의 형태로 묶었다. 암송하기 쉽게 하여 구전되었기 때문에 원형 그대로 후세에까지 전해질 수 있었다. 최초에는 부처님이 즐겨 쓰던 마가다어(북인도 마가다 지방에서 그는 진리를 깨달아 부처가 됐다)로, 또는 마가다어의 영향력이 큰 속어의 일종으로 구송되다가 그후 팔리어로 정착됐다. 현재는 팔리어 성전聖典(남전대장경)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경전처럼 시와 짧은 글귀로 결집되어 전해진 또 하나의 경전이 <담마파다Dammapada> 다시 말해 <진리의 말씀(법구경)>이다. 이러한 경전들은 대개 아쇼카 왕(기원전 268년에 즉위 232년까지 다스림) 이전에 성립된 것으로 보는데, 그 중에서도 숫타니파타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제4장 ‘여덟 편의 시’와 제5장 ‘피안에 이르는 길’은 다른 장보다도 더 일찍 이루어진 것이라고 학계에서는 평가한다. 물론 맨 처음부터 숫타니파타(經集)로 한데 묶여 형성된 것은 아니다. 각 장이 따로따로 독립된 경전으로 전해지다가 어떤 시기에 와서 하나의 ‘경집經集‘으로 묶여진 것이다. 여승女僧에 대한 말이 한 마디도 없는 걸 보아도 이 경전이 가장 초기의 불교 형태를 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숫타니파타>는 모두 1,149수의 시를 70경에 정리, 이것을 다섯 장으로 나누고 있다. 그 다섯 장이 ‘뱀의 비유蛇品’ 작은 장小品‘ ’큰 장大品‘ ’여덟 편의 시義品‘ ’피안에 이르는 길彼岸道品‘로 이 중에서 ’여덟 편의 시‘와 ’피안에 이르는 길‘ 등 세 장은 처음에는 독립된 경전으로 유포되었던 가장 오래된 불교 경전이다. 

첫째, ‘뱀의 비유’는 열두 개의 경으로 되어 있다. 그중 제1경에 ‘수행자는 이 세상도 저 세상도 다 버린다.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 버리듯’이라는 구절이 되풀이 되어 있어 사경蛇經이라고 부른다. 제2경은 소치는 다니야 대목으로 16편의 시구로 된 경이다. 제3경에는 독신수행자를 위해 모든 집착을 버리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유명한 구절의 반복이 있다.

둘째, ‘작은 장’은 비교적 짧은 경 열네 개를 담고 있다. 제11경은 8편의 시로 되어 있고, 부처님의 아들인(출가하기 전에 낳은 아들) 라훌라를 위해 말씀하신 부분이다. 부처님의 아들이라고 해서 함께 있는 승단의 선배들을 가볍게 보거나 교만한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타이르는가 하면, 다시는 세속에 돌아가지 말라고 간곡히 당부하고 있다.

셋째, ‘큰 장’에는 상당히 긴 열두 개의 경이 실려 있다. 제1 ‘출가경’ 제2 ‘정진경’ 제11 ‘나라카경’ 등 세 경은 부처님의 전기에 대한 가장 오래된 자료다. 제9 ‘비셋타경’에서는 출신 성분에 의해 바라문(제1계급)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그가 하는 행위에 의해 바라문도 될 수 있고 천민도 될 수 있다고, 사성四姓 평등의 이치를 여러 가지 비유를 들어서 설명하고 있다, 또한 제12 ‘두 가지 관찰’은 소박한 형식으로 모든 사물의 기원이나 유래를 설명하고 있다. 

넷째, ‘여덟 편의 시’는 전부 여덟 편의 시로 이루어진 경이 많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특히 두 번째의 ‘동굴’과 세 번째의 ‘분노’등은 여덟 편의 시로 이루어져 있다. 일찍부터 16경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한역 ‘의품경義品經’은 바로 이 경이다.

다섯째, ‘피안에 이르는 길’은 앞의 경전들과는 달리 전체가 통일성을 지니고 있다. 열여섯 바라문들이 한 사람씩 부처님께 물으면 대답해 주는 문답식 16절과 서序와 결結을 합해 18절로 되어 있다.

팔리어로 된 성전 중에는 수 많은 숫타가 있는데 하필 이 경만을 ‘경집‘이라 부른 까닭은, 다른 경전에는 그 나름의 특정한 이름이 있지만 이 경에는 그러한 이름이 없어 경집이라 불리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경집에는 ’닛데사 Niddesa'라는 오래된 주석서가 붙어 있다. ‘닛데사’는 ‘의미의 해석’이란 뜻이다. 이 주석서는 4장과 5장, 그리고 1장 제3경에 대한 주석이다. 이 닛데사의 성립시대인 아쇼카 왕 시대에는 아직도 경집 전체가 정리되지 않았던 것 같다.

이 경전은 다섯 장 중에서 제4장만 일찍이 한역되어 대장경(한문으로 번역된 것을 말함) 안에 수록되었고 전체의 번역은 없었다. 한역은 불설의족경<佛說義足經> 두 권인데, 쿠샤나 왕조(1세기 후반에서 3세기 전반에 걸쳐 융성했던 인도의 통일 왕조) 치하 서북 인도의 재가신자在家信者인 지겸支謙이 중국에 와서 오吳나라 초기(223~253)에 번역한 것이다.

 우리나라와 같은 한역 불교권에서 이 경전이 알려지지 않았던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 어떤 경전보다도 최초에 성립되고 역사적인 실존 인물로서의 부처, 그 육성에 가까운 원초적인 설법임에도 우리에게 일찍이 소개되지 않았던 것은 단순히 언어의 장벽에만 그 까닭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이른바 소승불교라 해서 무조건 얕잡아 거들떠보지도 않으려 했던 중국적인 배타성과 아집에 있었던 것이다. 초기 불교에 대한 충분한 이해도 없이 대승 불교에 접근했던 그 결과는 여러 면에서 부정적인 현상을 낳았고, 오늘날 승단의 혼미에까지 그 영향이 미치고 있다.

<숫타니파타> 가운데는 발전, 수정되기 전의 소박하고 단순한 초기의 불교가 그대로 심어져 있다. 여기서는 후기에 이루어진 경전처럼 현학적이고 번거로운 교리는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부처님은 그와 같이 단순하고 소박하게 인간으로서 가야 할 길을, 모순과 갈등으로 이루어진 이 세계에서 해탈의 저 세계彼岸에 이르는 길을 말씀하신 것이다. 진리란 간단 명료한 것임을 우리는 이 경전을 통해서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경을 읽는 독자들은 그 단순한 형식이 먼저 눈에 띌 것이다, 어떤 때는 지리하리만큼 같은 말이 반복되기도 한다. 우리는 여기서 초기 경전의 소박한 형태를 알 수 있다. 그리고 구절마다 눈을 뜬 사람의 인간미가 배어 있는 점에 주의하게 될 것이다. 이런 점은 후기 경전에서는 거의 볼 수 없다. 가르침을 듣고자 찾아와 묻는 사람들에게 부처님은 알아듣기 쉬운 표현으로 피안에 이르는 길을 차근차근 말씀하신 것이다.

이 경전의 중요한 부분은 본래 운문인 시의 형식으로 되어, 읽히기보다는 읊어졌다. 시가 지닌 아름다움을 언어의 구조가 다른 말로 옮긴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아예 의미를 정확하게 전달하려는 데 치중해 한결같이 산문으로 옮겼다. 그러면서도 이 경전이 지니고 있는 의도적인 표현만은 다치지 않으려고 주의를 기울였다.

대승 경전만을 읽다가 이 경에서 풀어 쓴 듯한 용어를 만나면 오히려 생소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이 지금까지 알고 있던 불교 용어로 굳어진 것은 후기의 일이고, 초기에는 단순한 표현으로 썼다는 것을 이 경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일반 독자들에게는 용어로 굳어지기 이전의 용어가 접근하기 쉬울 것 같아 본래의 표현을 그대로 살린 것이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간결한 주를 달았다. 

이 경에 대한 번역본이 유럽에서는 19세기 이래 여러 차례 출간되었는데, 그 중 자주 인용되는 것만 하더라도 3종의 영역英譯과 2종의 독역獨譯이 있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5종의 번역이 있는 걸로 안다. 우리나라에서는 역자의 번역으로 <한글대장경>에 수록 소개된 바 있고, 정음문고正音文庫로도 펴낸 적이 있다. 번역의 대본은 <남전대장경>을 사용했고, 나카무라 하지메中村元 교수의 번역에 힘입은 바 컸음을 아울러 밝힌다.

끝으로 이 책을 읽을 독자에게 미리 당부할 말이 있다. 모든 경전이 다 그렇듯이 지혜의 책인 이 경전도 소설이나 일반 산문과는 달리 흥미 있는 글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몇 구절씩 음미하듯 읽어 가면서 현재 자기 자신의 삶을 ‘이 거울’에 비춰 본다면 새로운 인식과 깨달음의 지평이 열릴 줄 믿는다. 그리고 이 경전을 읽어 가는 동안 순수한 초기 불교의 모습과 그 무렵 종교와 사상계의 흐름을 짐작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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