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번식하게 두면 온갖 망상과 불안과 고통을 만듭니다. 반대로 생각을 멈추려고 억제하면 더 힘있게 올라옵니다. 명상의 첫 단계는 생각을 막지도 않고 따라가지도 않고, 단지 지켜보는 것입니다.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듯이 그저 지켜보는 것입니다. 자연스럽게 담담하게 알아차리면서 그저 지켜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마음을 자연스러운 평화에 녹이는 것입니다.
If you let thoughts proliferate, they create all sorts of delusion, hallucinations, paranoia, and suffering. Conversely, if you try to stop the thoughts, they arise with greater intensity. The first step of Meditation is to not follow thoughts and not try to stop them, but become aware of them. To allow them to subside naturally. By watching the thoughts with disinterest, we allow them to dissolve into the natural state of mind, which is peaceful.
[출처] 용수비구 포스팅 (용수비구는 '스님되는 중'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재미교포 출신의 티벳불교 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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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사람은 자기 자신을 주관과 객관으로 분리할 수 있다. 사람의 이런 능력(?)은 자기 자신을 혐오하고 파괴하는 자살(자신을 살해함)로 이끌 수도 있고... 자기 자신을 해탈(자신으로부터 벗어남, 모든 괴로움과 속박으로부터 벗어남)로 이끌 수도 있다.
부처님이..... 자기 자신의 몸과 마음...몸과 마음의 작용...몸과 마음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몸과 마음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신체감각(오감각; 물질감각)과 정신감각(생각, 기억, 감정 등)을... 객관적으로 사띠함(마음챙겨 알아차림)으로써... 궁극적으로 번뇌와 고통의 뿌리를 제거할 수 있고...정각(해탈, 열반)을 증득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신 것은 실로 놀라운 발견이다.
부처님은 정각을 증득하시고 나서, 자신의 수행 경험을... 시행착오를 빼고 '경험적+합리적'(=과학적)으로 정리하여... '정각으로 가는 여덟 부분으로 이루어진 바른 길(팔정도)을 계발하는(닦는) 수행'(팔정도 바와나)이라고 이름 짓고 사람들에게 가르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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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정도를 닦는 수행을 실實수행(실제 수행)으로 좁혀 가면...
사띠sati와 사마디samādhi가 남는다.
남방에서 수행의 부류에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사마디를 약하게 하고 사띠를 강조하는 것.
다른 하나는 사마디를 강조해서 자나jhana..색계 사마디(삼매), 즉 선정에 들어가는 것....그렇게 선정에 들어갔다 나온 후에 더욱 강력해진 사띠로 이어보면서[anupassi; 이어서 사띠하면서] 깊이 관찰하는 것.
한 가지 대상에 대한 사띠의 고요한 집중은 선정에 들어가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리고 선정에 들어갔다 나온 후에 극도로 고요히 집중된 사띠는... 몸과 마음, 몸과 마음의 작용, 그리고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여러 가지 현상을 사띠하여 이어보면서 통찰(깊이 관찰)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이 있다.
그래서 사마디를 약하게 하고 사띠를 강조하는 수행으로는.... 부처님이 이룬 정각(해탈, 열반)에 이르게 하는... 상수멸(멸진 또는 누진)... 실상과 진리를 여실히(있는 그대로) 깨닫고, 사성제 전체를 완전히 깨닫는 삼명三明(세 가지 밝은 지혜).....이런 것에 도달하기가 불가능하다.
사마디를 약하게 하고 사띠로 관찰하는 것을 강조하는 수행이..... 그것을 가르치는 사람들이 말하는 순수(?) 위빠사나 수행이다.....찰나삼매(또는 근접삼매), 찰나사마디를 이용한다는 위빠사나 수행.......
이 방법이든, 저 방법이든.... 결국 다 사띠가 중요한 것이다.......
사띠는 불법佛法(부처님 가르침) 수행..8정도를 닦는(계발하는) 수행의 기초이자 토대다.
재가자들은 일상생활에서 사띠(마음챙겨 알아차림)를 하는 것에 즐거움..기쁨과 행복감을 발견해야 한다.....
그러한 연구를 해야 한다. 어떻게 사띠를 하는 것에 재미를 붙여서 조금이라도 더 사띠를 할 수 있을까?...하는 연구를 해봐야 한다..... 사띠하는 것에 재미를 붙여서 습관을 들이는 방법을... 심도 있게 연구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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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띠란 결국 지켜보기다........
무엇을 지켜보는가?..... 대상은 자신의 몸과 마음이다.......
어떻게 지켜봐야 하는가?......... 자신의 몸과 마음의 행동, 말, 생각 등을... 영화를 보듯이 다른 사람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지켜봐야 한다.
사띠란...결국... 자기 자신을 행위자와 관찰자로 나누어서 지켜보는 것이다.
🌳'행위자를 관찰자가 지켜보는 것이다'........
행위자의 행行...즉 행동身(숨쉬기/호흡, 행주좌와 시의 모든 행동), 말口, 의도意... 감각, 생각, 감정을.....관찰자가 지켜보는 것이다.....
행行하는 것은 다 오온이다.....단지 나는 지켜보는 자로 만족하자.
행동, 말, 의도, 감각, 생각, 감정은 다 오온의 작용(行)이다.........
관찰자 역시 오온에 속하지만, 일단은 순수한(오염되지 않은, 청정한, 善한; 쿠살라善한, 해탈에 도움이 되는) 마음이라고 해두자.
일상에서의 사띠가 발전되면..... 좌선과 행선으로 이어지게 된다.
처음에는 의도적으로 행위자를 지켜보게 해야 한다.....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을 것이다.....
행위하는 자는 내가 아니다...라는 관점으로 지켜보는 것이다.....
지켜보는 자가 행위하는 자에 함몰되면..... 영화 속 주인공을 지켜보는 관객이 되지 않고... 영화 속 주인공에 함몰되어 같이 눈물 흘리며 울고 웃고 성내게 된다.......
관찰자가 행위자에 함몰되는 순간이 올 때마다..... 사띠(마음챙겨 알아차림)를 놓쳤군...행위자에 함몰되었군...하면서 다시 처음의 그 위치에 다시 관찰자를 둔다............
그러다 보면..... 자신의 신구의身口意 일거수일투족을 세심하게 살펴보는 관찰자가 서서히 분리하게 된다.
처음에는 의도적으로 관찰자를..... 행위자인 몸과 마음, 오온에서 분리해놓고 본다.......그러다가 관찰자가 행위자에 함몰되면... 관찰하는 것을 망각하고 같이 아프고 슬프고 웃고 성내고 그런다........
그럴 때 ‘놓아버리기’를 하는 것이다..... 난 관찰자이지 행위자가 아닌데, 내가 아플 필요가 무엇인가?... 행위자가 아픈 것이지, 관찰자인 내가 아픈 것이 아니지 않는가?... 하는 작은 지혜가 생겨나게 된다.
이것이 집성제의 실천인 ‘놓아버리기’....... 즉, 몸과 마음의 감각(물질감각과 정신감각)에 대한 갈망과 혐오의 갈애...그러한 갈애에 대한 집착을 ‘놓아버려라'...라는 집성제 실천의 초기단계다.
내가 아픈 것이 아니다.....난 관찰자이다, 관찰하는 내가 아플 이유가 없다....... 행위자가 아픈 것이다........행위자가 아픈데, 관찰자가 같이 따라가서 아픈 것은 멍청한 짓이다........이런 작은 지혜가 수행의 체험으로 생기게 되면서, 관찰자가 행위자로부터 자연적으로 분리되기 시작한다.
그것이 놓아버리기..방하착의 연습이고.....거창하게 이야기하면, 사성제 중의 집성제의 실천...갈애에 대한 집착을 버려라...라는 실천이다..... 그것이 갈애의 연기를 끊고 소멸시켜 가는 초기단계의 과정이다.
그러나 무의식적인 미세한 자아식, 에고식은 아라한에 가서 완전히 끊어진다..... 아나함에서는 감각적 욕망은 사라졌지만, 미세한(무의식적인, 잠재의식적인) 자아식, 에고식이 아직 남아있는 것이다. 또한 미세한 우월의식인 아만, 존재하려는 무의식적인 미세한 욕구 등이 아직 남아 있는 것이다.
행위자....이놈의 행동, 말, 생각 등을 관찰자가 지켜보는 것에서.......특별한 노력 없이도 관찰자가 분리되어 행위자를 지켜보게 될 때, 때로는 아무 의도 없이 행동하고 있는 자기를 빤히 지켜보는 자가 있다고 느껴질 때...........사띠가 강력해지는 것이다.
아직 다 소멸되지 않은 무의식적인(잠재의식적인) 습관의 경향성(업業)은... 관찰자가 행위자에 무의식적으로 함몰되어 우비고뇌하면서 허우적거리게 만든다...무의식적으로 행위자에 끌려가게 만든다...
그렇지만 꾸준한 지켜보기 연습, 훈련, 수련, 수행을 통해서... 이 관찰자에게 무의식적으로 작은 지혜의 싹이 트게 된다........아직 원하는 궁극의 지혜는 아니지만..... 작은 지혜가 무의식적으로 관찰자에게서 싹이 터서... 행위자에게 함몰되는 관찰자를 제어하게 된다......
이것이 사띠sati(마음챙겨 알아차림)와 삼빠자냐sampajañña(지혜/빤냐로 알아차림/앎)는 결국 함께 간다...라는 의미이다.
수행의 힘이 약한 상태에서는 탐심이 있다는 것을 알아도 그 탐심을 다루는 법에 능숙하지 못하므로 탐심이라는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있게 된다. 하지만 수행의 힘을 어느 정도 갖추고 있다면... 탐심이 일어나는 순간 탐심을 분명하게 알아차리고... 수행에 의해 어느 정도 길러지고 무의식(잠재의식/심층의식)에 새겨진 지혜의 힘으로 탐심의 진행은 차단된다.
이것이 수행에 의해 길러진 사띠의 힘과 수행에 의해 길러지고 무의식(잠재의식/심층의식)에 새겨진 지혜의 힘에 의해서 번뇌가 무의식적으로 제어되는 과정이다.
사띠 수행(연습, 훈련, 수련)을 하다보면..... 거친(rough, 투박한, 무딘, 흐릿한, 얕은, 느린, 미숙한) 사띠에서부터... 점점 더 세밀한(fine, 섬세한, 정밀한, 미세한, 예리한, 또렷한, 분명한, 깊은, 고요한, 빠른, 능숙한) 사띠에 이르기까지..... 여러 수준의 사띠가 있음을 알게 된다. 또한 거친(rough, 투박한, 무딘, 흐릿한, 얕은, 미숙한) 지혜에서부터... 점점 더 세밀한(fine, 예리한, 깊은, 능숙한) 지혜에 이르기까지 여러 수준의 지혜가 있음을 알게 된다.
일상생활에서 사띠의 연습, 훈련, 수련, 수행은 매우 중요하다..... 하면 한만큼 드러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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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구체적인 행선이나 좌선으로 연결시켜 본다.
좌선을 한다......
자신을 지켜본다.......난 관찰자.................다리에 통증이 생긴다...아프다.
아픈 것은 행위자..........
관찰자가 행위자에 함몰되면 아픈 다리를 풀게 한다.......
그러나 무의식적으로 작은 지혜가 생겨서.......아픈 것은 몸과 마음, 즉 오온이지, 즉 행위하는 놈들이지... 관찰자가 아픈 것은 아니지 않은가?...하는 지혜가 무의식적으로 일어남으로 다리 푸는 것을 막게 한다.
이러한 것이 책을 통해 얻은 지식과 구별되는... 수행으로서 얻은 무의식(잠재의식/심층의식)에 새겨진 지혜의 차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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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정신(마음)은 수.상.행.식 무더기(온)로 이루어져 있다.........문제를 일으키는 마음은 거의다가 행온이다.....즉 움직이게 하는 것들은 거의다가 행온이다....... 이것의 대표적인 것이 오개다..다섯 가지 장애...감각적 욕망, 악의, 나태와 혼침, 들뜸과 후회, 회의적 의심.
사띠의 일차 목적은 고요함이다.........
고요해지기 위해서는 몸과 마음이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
움직이지 않기 위해서 행위자와 관찰자가 분리되어야 한다.
관찰자가 행위자에게 함몰되어.....몸이나 마음이 움직이게 하려는 충동이 생길 때..... 이것을 멈추게 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무의식(잠재의식/심층의식)에 새겨진 작은 지혜다.
즉 사띠와 삼빠자냐는 같이 간다.
몸이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요소인...다섯 가지 장애(오개)는... 다 행위자인 것이다....... 관찰자가 지켜보면서.....움직임이 멈춰지고..... 대표적인 다섯 가지 행위자인 오개가 사라질 때 선정에 드는 것이다........ 움직이게 하는 요소들, 즉 행위자는 마음에서 사라져 버렸다.
이때 행위자(doer)는 없다............오직 관찰자(knower)만 있다.
의도(또는 의지; 위딱까-위짜라)가 제2선정에서 완전히 사라진다.
초선정에서 관찰자...사띠의 대상은 지복(삐띠와 수카)이다........나중에 제4선정에서 평정(우빽카)으로 연결된다... 이것의 완성이 8정도의 정정正定(바른 삼매) 중에서 색계(물질을 집중대상으로 한) 삼매인 자나(선나..선禪; 선정禪定)의 완성이다.
자신의 몸과 마음...달리 표현하면 6근('안이비설신의'근)이... 어느 정도 청정하지 못하면, 결코 선정에 들어갈 수 없다.....
설사 스킬로 선정에 들어가더라도... 금방 튕겨 나온다.
색계 삼매의 완성인 제4선정에 이르렀을 때..... 마음의 힘...고요하게 집중된 사띠의 힘이 매우 강력하게 된다........ 이것이 8정도의 정견과 정사유를 더 강하게 하는 역할을 해준다.
그러다가 최종목적지...상수멸(멸진 또는 누진)...에서는.......마지막 붙잡고 있는 관찰자마저도 사라지게 된다.....
그것을 열반이라고 한다....그것을 언어도단言語道斷, 언어로 표현할 길이 끊어졌다..머리로는, 지식으로는 알 수 없다고 하고... 체험한다고 한다.
결국 마음이 족쇄에서 풀려난다.....마음이 집착하지 않는다.....마음에서 번뇌가 사라진다.......탐진치나 갈애가 생길 건덕지조차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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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實수행(실제 수행), 특히 재가자의 실수행은 우선... 행위자와 관찰자를 분리해서 사띠하는 힘을 키우는 것이다.
행위자가 아픈 것이지, 관찰자인 내가 아픈 것이 아니다........
행위자에 함몰되지 않고 사띠가 이어보면서 지속되면........ 행위자에게 통증이 일어나고...지속되고...사라지고........행위자에게 감각, 생각, 감정이 일어나고...지속되고...사라지고...........를 알아차리게 된다................
행위자에 함몰되지 않고 계속 깊은 사띠가 이어보면서 지속되면........ 행위자 역시 일어나고 사라지고....사라지고....붕괴되고.........를 알아차리게 된다................이것이 무상에 대한 지견이 지혜로서 생기는 초기 단계의 과정인 것이다.
자, 내가 아프다....내 다리가 아프다......이것이 에고의식, 자아의식이다...
나라고 여겨지는 다리가 아픈 것이지, 관찰자가 아플 이유가 없다........
이 관찰자가 행위자인 아픈 다리에 함몰되지 않고 계속 사띠하여 이어보면서 지켜보면..... 그 행위자 역시 일어나고 사라짐을 알게 된다.......이러면서 행위자에 대해서 집착함을 버리게 된다.......
이러한 것들이 4성제 중의 하나인 집성제 실천의 시작인 것이다........집착을 버려라.......놓아버려라......방하착 해라............
이러한 것들 역시, 자기가 자기 것으로 만들지 않으면.....다 공염불일 뿐이다.
실수행 없는 지혜는 지식일 뿐이다.
재가자의 실수행은.....
일상생활에서의 사띠 수행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수행은 출가한 비구들만의 전유물이 될 수 없다.
비구들보다도..... 오히려 힘든 현실을 살아가는 세속인들에게... 마음의 중심을 잡아주는...수행이란 정신적 훈련이 더 필요할지도 모른다.
불법佛法(부처님 가르침)은 교학과 수행이란 두 개의 축으로 되어 있다.
이 두 개의 축은 힘든 현실을 살아가는 재가자에게... 더욱 절실히 적용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출처] 진흙속의연꽃 포스팅(http://blog.daum.net/bolee591/16156243) 中에서 발췌 및 일부 수정 보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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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자들이여, 무엇이 'dukkha-nirodha-gāminī paṭipadā ariya-saccaṃ'(고苦dukkha의 소멸nirodha로 가는 길걸음paṭipadā의 고귀한 진리; 고멸도성제苦滅道聖諦 또는 도성제道聖諦)인가?
그것은 바로 'ariyo aṭṭhaṅgiko magga'(여덟 부분으로 이루어진 고귀한 길magga; 팔지성도八支聖道 또는 팔정도八正道)이니, 여덟 부분은
정견正見[sammā diṭṭhi; 바른 봄/관찰/통찰, 앎/이해/견해],
정사유正思惟[sammā saṅkappo; 바른 생각/사유],
정어正語[sammā vācā; 바른 말과 글],
정업正業[sammā kammanto; 바른 (신구의身口意) 행위],
정명正命[sammā ājīvo; 바른 삶/생활],
정정진正精進[sammā vāyāmo; 바른 노력/정진],
정념正念[sammā sati; 바른 사띠],
정정正定[sammā samādhi; 바른 삼매]이다.
『마하 사띠빳타나 숫따(대념처경大念處經)』 中에서
<각주 : 『대념처경大念處經(마하 사띠빳타나Sati-Patthāna 숫따; 사띠 확립에 대한 큰 경), D22』과 『념처경念處經(사띠빳타나Sati-Patthāna 숫따; 사띠 확립 경), M10』은 팔정도를 닦는(계발하는) 수행의 실實수행(실제 수행, 본격적인 수행; 사마타-위빠사나 수행)에 있어서 매우 (가장) 중요한 경전이다.
부처님은 일상생활에서 신수심법身受心法을 사띠하는 수행과 사마타(호흡에 대한 사띠를 확립하여 선정 삼매를 계발하는 수행)와 위빠사나(선정 삼매에서 계발된 극대화된 고요집중의 사띠와 평점심을 사용해서 신수심법을 '사띠하여 이어보면서 머무는' 수행)을 모두 포괄한, "신수심법 네(四) 가지에 대한 사띠(念) 확립(빳타나; 處-정착) 수행"(이른바 사념처四念處 수행) 방법을 이 경전으로 설(설명)하셨다.
부처님이 설(설명)하신 '사념처四念處 수행'은 아나빠나사띠(호흡에 대한 사띠) 수행을 기초 토대로하여 지관겸수止觀兼修(사마타-위빠사나 상호의존) 방식으로 신수심법身受心法에 대한 사띠(Sati; 念)를 확립(Patthāna; 處-정착)하는 수행이다.
팔정도를 닦는 수행을 실實수행(실제 수행, 본격적인 수행; 사마타-위빠사나 수행)으로 좁혀가면 사띠와 사마디(삼매)가 남는다. 사마타가 호흡 등 한 가지 대상에 '사띠를 집중하는' 것이라면 위빠사나는 여러가지 대상(신수심법)을 '사띠하여 이어보는'(관찰하는) 것이다.>
<각주 : 길[magga; 道, path]과 길걸음[paṭipadā; 行道, 道跡, progress]
팔정도八正道[aṭṭhaṅgiko sammā magga]는 열반으로 가는 여덟 부분으로 이루어진 길[magga; 道]이면서, 동시에 그 길을 걸어감 즉 길걸음[paṭipadā; 行道]이다. 열반으로 향하는 길[magga; 道, path, way, road]이 있고, 바로 그 길을 걸어가는 길걸음[paṭipadā; 行道, 道跡, progress, practice, line of conduct]에 의해 열반으로 이끌리는 것이다. 열반으로 향하는 바로 그 길을 직접 걸어갈 때에만 비로소 열반으로 이끌리기 때문에, 부처님이 설하신 팔정도는 길이면서 동시에 길걸음인 것이다.
참고로 중도中道는 부처님이 사용하신 고대인도어 'majjhimā paṭipadā'를 한문(중국어)로 번역한 것이다. 'majjhimā paṭipadā'를 우리말로 번역하면 '양 극단 어느 것에도 치우치지 않는 길걸음(길을 걸어감)' 정도로 표현하면 그 의미가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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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은 팔정도를 바와나(bhavana; 계발 수행, 계발하는 수행, 닦는 수행)의 관점에서 실라(계戒; 정어·정업·정명), 사마디(정定; 정정진·정념·정정), 빤냐(혜慧; 정견·정사유) 세 부분으로 그룹핑하고, '사마디(정定) 바와나'를 사마타, '사마타 후에 하는 깊은 빤냐(혜慧; 통찰 지혜) 바와나'를 위빠사나라고 칭하셨다. ['실라(계戒) 바와나'는 실라]
부처님은 '팔정도를 계발하는(닦는) 수행, 즉 계(戒, 실라; 정어·정업·정명)-정(定, 사마디; 정정진·정념·정정)-혜(慧, 빤냐; 정견·정사유)를 닦는(계발하는) 수행, 계-정-혜 삼학, 실라-사마타-위빠사나, 팔정도 바와나'는 연기(조건에 따른 상호의존) 방식으로 완성된다고 누누이 강조하셨다.
요컨대, 팔정도를 닦는 수행의 맨 처음 단계(준비 단계; 교학 단계)인 '지식(교학) 차원의 혜(慧, 빤냐; 정견·정사유)를 닦는 수행'으로 계발된 지식(교학) 차원의 이해(견해, 또는 지혜)를 바탕으로, 5계 등의 계율을 지키는 실천을 포함한 ‘실라(계戒; 정어·정업·정명)를 닦는 수행’을 자발적으로(스스로) 실천하여 청정한 생활을 닦고 여섯 감각기관(6근)을 단속하여 어느 정도(바른 삼매-정정正定의 첫 단계인 초선정 삼매를 계발할 수 있을 정도) 6근('안이비설신의'근, 달리 표현하면 몸과 마음)을 청정하게 닦는다.
어느 정도 닦아진 실라(즉 초선정 삼매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청정해진 6근, 달리 표현하면 어느 정도 청정해진 몸과 마음)를 바탕으로 사마타가 계발(열리고 발전향상)되고, 사마타를 바탕으로 위빠사나가 계발된다. 발전향상된 사마타는 실라와 위빠사나를 더 발전향상시키고, 발전향상된 위빠사나는 사마타와 실라를 더 발전향상시키며, 발전향상된 실라는 다시 사마타와 위빠사나를 더 발전향상시킨다. 이렇게 팔정도를 계발하는 수행(팔정도 바와나; 실라-사마타-위빠사나)은 연기(조건에 따른 상호의존) 방식으로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