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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봄이 두렵다.


어느 페친님의 글이 심금을 울린다. 

- 오는 봄이 두렵다.  2018. 3. 6

어제 노모를 요양원에 보내고 나서 마음이 계속 심란하다. 그전의 심적 갈등과는 또 다른 양상이다. 이리저리 바람 불고 아직은 을씨년스런 겨울 뒷자락. 시설이 좋고 간호 요양사도 충분한 것 같아 안심은 되나 다른 한편으로는, 이제 조금씩 이별의 벼랑으로 다가감을 부정할 수 없다. 고독이 몰려온다. 피할 수 없는 숙명인 것을. 그 동안 때로 고함치고 험한 말을 한 자신이 한심스럽다. 당장 내 처지가 불편하고 노인 때문에 내 앞날이 볼모가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앞세웠던 타락한 내 영혼이 부끄럽다. 언젠가는 닥칠 내 자신의 죽음 앞에서는 나는 편안하고 자유로울 수 있을까? 무거운 마음으로 오늘 아침 요양원으로 노인을 방문한다. 복도에 앉아 있는 모습이 편안한 듯이 보여 다소 안심이 된다. 손을 만져본다. 아주 따뜻하다. 몇 마디 물음에 잘 대답한다. 복잡하고도 이상한 만감이 교차한다. 내가 좀 더 진지하게 나의 삶을 경영하였더라만 좋았을 것을......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는 것은 수 억겁의 시절 인연 뒤에 온다는데 모자(母子)의 인연으로 만난 것, 인고의 세월과 고통을 조금도 갚지 못하고 이렇게 종착지 요양원으로 보내어 마음 무겁기만 하다. 때로 ‘이렇게 살다가 가실 바에는 그냥 적당히 돌아가시는 게 나을 텐데......’ 라고 생각하기도 했던 것, 자주 마음을 괴롭힌다. 돌이킬 수 없는 번뇌다. 앞으로 사시는 동안 나에 대한 ‘억울함’과 불편함이 없도록 도와 드리리라. 부차적인 것, 비본질적인 것에 시험받지 않도록 노력하리라. 최소한 그래야만 궁극에는 나의 번뇌 망상의 업보를 하나라도 덜 것이 아닌가.

아직 봄다운 4월의 봄은 멀리 있건만 오지도 않은 그 봄이 벌써 두렵다. 다투어 피고 돋아나는 저 꽃들과 생명들을 또 어찌 맨 정신으로 맞이할 수 있을지. 먼 산 들녘으로 울긋불긋 진달래가 퍼져가는 때가 내게는 가장 슬프고 고독하다. 모든 생명 있는 존재의 삶은 아침이슬 같고 뜬구름 같이 짧고 허무하거늘. 이탈리아의 시인 파솔리니는 고독을 사랑하려면 강해져야 하고 튼튼한 다리가 있어야 하며 감기에 걸려도 안 된다고 하였는데 변함없이 슬픔과 고독이 내재되어 있는 이 봄도 마음 준비를 단단히 하지 않으면 마음이 다칠 것 같다. 사람의 마음 작용은 하루에도 순간순간 어찌 이리도 복잡하고 종잡을 수 없는지. 한 시도 머물러 있지 않고 시시각각 걷잡을 수 없이 변전하는 이 마음의 작용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나. 도대체 이 끝없는 불안의 근원과 대상은 무엇인가? 땅속 깊이 흐르는 수맥처럼 때를 가리지 않고 육신과 영혼을 흔들어대는 내 존재의 허무감, 허망감, 언젠가는 소멸된다는 이 슬픔과 두려움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사람들은 하루하루를 감사하며 즐겁게 살다가 때가 되면 가는 것이 인생이라고 평범하게 말하지만 분명 우리는 매 순간 순간 죽음과 소멸을 어떤 식으로든 ‘의식’하고 두려워하며 그것을 잊으려 애쓰고 있지 않은가? 

꽃이 마구 피기 전에 생사해탈의 지혜를 찾아 또 어디론가 떠나 가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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