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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DDHISM/담마코리아_고엔카지

고엔카 수행법과 대념처경(大念處經)


고엔카 수행법과 大念處經

-호흡에 대한 알아차림(入出息念)과 감각에 대한 관찰(受念處)을 중심으로-

  출처 :  2002년 홍원사 대념처경 학술대회 자료

Ⅰ. 서 론

Ⅱ. 고엔카의 위빠사나 수행법

1. 미얀마의 수행전통: 레디 사야도에서 고엔카까지

2. 고엔카 수행법의 교리적 근거

3. 고엔카 수행법에서 vedanā의 위치

4. 고엔카의 위빠사나 수행법

Ⅲ. 고엔카 수행법과 대념처경의 해석

1. 대념처경 서론의 해석

2. 신념처의 入出息念에 대한 해석

3. 수념처에 대한 해석

4. 대념처경 결론에 대한 해석

IⅤ. 결 론

<참고문헌>


일중(一中)*

* 88년 운문승가대학 졸업. 89년 은해사 백흥암에서 동안거 지냄. 90년 스리랑카로 유학, 96년 스리랑카 켈라니아 대학교 불교철학과(빨리어 부전공) 졸업. 97년 미얀마 파옥, 마하시 센터에서 우안거 지냄. 2001년 인도 델리대학교 불교대학원 빨리학 석사(M.A.) 졸업. 2002년 현재 동 대학원 박사 예비(M.Phil.)과정 재학 중. 논문으로 「스리랑카 승가의 교학체계와 수행체계 조사연구」,『세계 승가공동체의 교학체계와 수행체계』圖書出版 伽山文庫, 1997. 「대념처경에 나타난 신념처 연구」2002. 석사논문으로「A Study of Satipaṭṭhāna based on the Mahāsatipaṭṭhāna Sutta」2002가 있음. 93년 처음 고엔카 수행법을 익힌 후 매년마다 코스에 참가해 수행하여 왔으나, 집중적인 수행을 하게 된 것은 97년 미얀마에서 우안거를 난 이후부터이다.

 

Ⅰ. 서 론 

만약 45년간 붓다의 설법들이 담긴 三藏(Tipitaka)을 축약해서 핵심들만 추출한다면, 37 조도품이 될 것이다. 이 37 조도품(bodhipakkhiya-dhammā)은 삼장의 핵심을 이룬다. 만약 이것을 좀더 축약한다면 7 淸淨(satta-visuddhi)이 될 것이고, 이 7청정을 다시 축약하면 계정혜 三學이 될 것이다. 붓다의 유산은 교단의 유산이며 또한 법의 유산이다. 그럼 붓다가 후학들에게 물려주신 法의 유산(Dhamma-dāyajja)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3학, 7청정, 그리고 37 조도품이다. 초기불교 혹은 상좌 불교에서 수행을 한다고 했을 때, 이 세 가지는 직접적이고도 긴밀하게 상호 연관성을 갖는다. 그럼 붓다의 이러한 유산을 상속받을 수 있는 법의 상속자(dhamma-dāyāda)는 누구인가? 바로 삼학을 실천하는 수행자가 아니겠는가?

남방 상좌 불교국 중에서 수행전통을 가장 잘 계승하고 있는 나라는 미얀마이다. 미얀마의 수행 전통을 크게 두 계통으로 나눌 때, 하나는 레디 사야도(Ledi Sayadaw) 계통이고, 다른 하나는 마하시 사야도(Mahasi Sayadaw) 계통이다. 본 논문에서 필자는 레디 사야도 계통을 잘 계승하고 있는 고엔카(Goenka)의 수행법을 살펴보고자 한다. 고엔카는 호흡에 대한 마음챙김(入出息念) 수행과 감각에 대한 관찰(受念處) 수행을 중심으로 가르치기 때문에, 본 논문에서도 이 두 가지를 중심으로 다룰 것이다. 고엔카의 수행법은 초심자들(new students)을 위한 10일 코스를 중심으로 정리하고, 초기 경전『大念處經(Mahāsatipaṭṭhāna Sutta)』과의 관련성을 논하는 장에서는 고엔카의 사띠빳타나나숫따(念處經) 코스의 법문집을 바탕으로 정리할 것이다. 그래서 현재 고엔카가 지도하는 이 위빠사나 수행법이 초기불교의 『대념처경』과는 어떤 관련성이 있는가 밝히고자 하는 것이 본 논문의 목적이다.

본 논문에서 필자는 빈번하게 쓰여지는 몇 개의 용어들은 원어를 그대로 표기했다. 예를 들면, sati, vedanā, ānāpānasati와 같은 말인데, 원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도 한가지 좋은 공부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본 논문의 중점이 고엔카의 수행법과 『대념처경』과의 관련성이기 때문에, 원전에 근거한 용어의 세부적인 해석과 비교검토는 생략하고, 이미 한국에서 익숙하게 쓰여지고 있는 용어들을 큰 무리가 없는 한 그대로 사용했다. 

 

Ⅱ. 고엔카의 위빠사나 수행법 

1. 미얀마의 수행 전통 : 레디 사야도에서 고엔카까지

고엔카는 미얀마의 레디 사야도 계통의 수행법을 전승하고 있다고 했다. 그럼 레디 사야도 계통의 수행법이란 무엇인가? 마하시 수행법이 선정수행을 전제 조건으로 하지 않는 순수 위빠사나 수행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반해서, 레디 사야도 계통의 수행법은 사마타(samatha ,禪定)수행을 먼저 닦은 후에 위빠사나(vipassana,智慧)를 닦는 수행으로 분류할 수 있다. 그리고 레디 사야도 계통의 수행 센터들은 기본적으로 호흡을 관찰하는 入出息念(ānāpānasati)을 수행하며, 입출식념에 의해서 마음의 집중을 얻은 후에 감각(vedanā)을 관찰하는 위빠사나 수행을 닦는다. 이러한 레디 사야도 계통의 수행법은 미얀마에서 모곡(Mogok) 사야도, 순룬(Sunlun) 사야도 같은 출가자에 의해서 전해질뿐만 아니라, 우 바 킨 (U Ba Khin)같은 재가자에 의해서도 잘 계승되고 있다. 그럼 여기서 레디 사야도에서 고엔카에 이르는 수행전통의 한 맥을 간략히 살펴보도록 하겠다.

레디 사야도(1846-1923)는 근 현대 미얀마에서 가장 뛰어난 불교 학승이자 저술가의 한 사람이다. 그의 수많은 책들은 그의 광대한 학문의 세계와 수행경험으로부터 나온 깊은 통찰을 보여준다. 20세에 비구계를 받은 뒤 불교학 센터로 가장 유명한 만달레이의 한 사원에서 San-Kyaung 사야도에게 8년간 삼장, 주석서, 복주 등 빨리(Pāli) 문헌들을 공부했다. 빨리어 강사가 되어 8년간 가르치다가 36세에 고향으로 와서 낮에는 가르치고 저녁에는 강 건너에서 수행생활을 했다. 40세에 우안거를 나러 Ledi 숲으로 가서 사원을 만들게 되자, 레디 사야도란 명칭이 생기게 되었다. 그 후 10년 뒤부터 책들이 출판되기 시작하면서, 미얀마에서 가장 학식 있는 비구로 명성을 얻었으며, 미얀마 전국을 다니면서 아비담마(論)코스와 수행코스를 지도하며 센터들을 만들었다. 교학과 수행 두 방면에 모두 뛰어난 그는 76권의 Manual (Dīpanī)들이 있고, 주석서, 복주, 에세이, 등 그의 총 저술들은 100권이 넘는다. 73세에 시력을 잃은 뒤부터는 수행과 수행지도에만 전념하다가 77세로 열반에 들었다.

사야 텟지(Saya Thetgyi: 1873-1945)는 23세에 처음으로 入出息念(ānāpānasati)를 배워 7년간 수행했다. 30세에 콜레라로 아들과 딸, 친척들이 죽는 충격으로 집을 떠나 스님과 재가 스승들을 찾아다니며 공부하다가 레디 사야도에게 가서 수행하라는 권유를 받고 사야도 밑에서 7년간 수행했다. 41세에 처음으로 사람들을 가르치다가, 일년 뒤 70세의 레디 사야도를 뵈러 가서 인가를 받았다. 레디 사야도는 “오늘부터 앞으로 6천명에게 Nāma-rūpa의 법을 가르쳐야만 한다”고 하면서 “내 사원에서 시작하여 내 자리에서 법의 깃발을 높이 들어 올려라.”라고 했다. 이때부터 그는 사야(teacher) 텟지로 알려져 많은 사람들이 수행하러 왔는데, 우 바 킨도 그 중 한사람이었다. 30년간 수행을 지도하다가 72세로 세상을 떠났다.

우 바 킨(U Ba Khin: 1899-1971)은 38세에 처음으로 수행을 시작했다. 사야 텟지의 한 제자가 우 바킨을 방문하여 수행에 대해 설명해주자, 일주일 뒤 사야 텟지의 센터를 찾아가 수행을 했다. 북부 미얀마에 가서 웨부 사야도(Webu Sayadaw)를 만났을 때 사야도는 사람들을 가르치라고 권했으며, 사야 텟지 또한 우 바 킨에게 가르치기를 권유했다. 1948년 미얀마가 독립하자 회계청장이 된 그는 1950년(51세) 위빠사나 모임을 창설하고, 2년 뒤 국제수행센터(IMC)를 양곤에 설립했다. 마얀마 사람은 물론이고 많은 외국인들이 수행지도를 받았다. 정부의 여러 부서 직책을 동시에 맡으면서도 수행지도를 계속했으며, 위빠사나를 인도에 전파하고자 하는 발원을 가졌다. 고엔카에 의해서 많은 인도인들이 소개되었고, 소수이긴 하지만 서양의 불교지도자, 학자 그리고 외교관들도 수행을 했다. 은퇴한 뒤 4년간 센터에서 계속 머물며 수행을 지도하다가, 1971년 72세로 세상을 떠났다.

고엔카(S. N. Goenka: 1924- )는 인도인이지만 미얀마에서 태어나 사업가로 활동했다. 31세(1955년)에 우바킨을 만나 위빠사나 수행을 시작했다. 14년간 스승의 지도를 받으며 수행하는 동안, 10년간 스승의 말을 힌디어로 통역했다. 45세가 되던 1969년 어머니를 위해 인도 봄베이로 와서 위빠사나 코스를 처음 개설했는데, 계속 이어지는 요청으로 인도 각처를 옮겨다니며 수행을 지도했다. 인도인뿐만 아니라 점차 외국인들, 다른 여러 종교인들도 참석하기 시작했다. 1971년 “U Ba Khin Memorial Trust"를 결성했고, 1976년 봄베이에서 140km 떨어진 이가뜨뿌리에 담마기리(Dhammagiri) 수행센터와 위빠사나 국제아카데미를 설립했다. 2002년 현재 인도 국내에 34개, 외국에 35개의 위빠사나 수행센터들이 있어 일년 내내 다양한 코스들이 활기 있게 진행되고 있다. 20세기 후반, 미얀마 수행전통의 한 맥이 고엔카를 통해서 인도로 다시 들어와 확고하게 뿌리를 내린 뒤, 다시 세계로 전파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와 같이 고엔카는 사야텟지에서 우바킨으로 이어지는 재가인 스승들을 통해 레디 사야도 전통의 수행법을 이어받았지만, 현재 고엔카 자신이 가르치는 수행은 ’우바킨 전통에서의 위빠사나 수행’이라고 표현한다.

 

2. 고엔카 수행법의 교리적 근거 

남방 상좌불교에서 위빠사나 수행의 대표적인 경전, 혹은 소의 경전이라 부를 수 있는 초기불교 Pāli 문헌이 있다면, 長部(Dīgha-Nikāya)의 22경인 『大念處經』을 들 수 있다. 이 경전은 마음 챙겨 알아차려야(sati) 할 대상을 身受心法(kāya, vedanā, citta, dhamma) 四念處로 보았다. 마하시 수행법이 四念處를 대부분 다 닦아 가는 수행법이라 한다면, 고엔카의 수행법은 身念處 受念處 두 가지를 중점적으로 선택하여 수행한다. 고엔카가 가르치는 위빠사나 수행의 주 관찰 대상은 감각(受,vedanā)이다. 그러니까 四念處 중에서 두 번째인 受念處가 바로 고엔카 수행법의 중심이 되는 것이다. Vedanā는 ‘느낌(feeling) 혹은 감각(sensation)’이란 뜻인데, 이 vedanā를 수행주제로 선택한 교리적 근거와 이론적 바탕은 붓다의 가르침 중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초기불교의 중심 사상인 12연기에서 그 근거를 살펴보고자 한다. 12연기의 고리는 다음과 같다.

* 無明 - 行 -  - 名色 - 六入 -  -  -  - 取 - 有 - 生 - 老死憂悲苦惱...

vedanā(느낌) 

위의 이 12연기 순관(anuloma)은 고통의 발생과정을 보여주고, 그리고 12연기의 역관(paṭiloma)은 고통의 소멸과정을 보여준다. 이 법칙에 의하면, 苦의 근원적인 원인은 無明(avijjā)으로부터 출발한다. 무명에 의해서 행이 일어나고, 의식, 명색, 육입(六入)이 일어난다. 육입이란 6근과 6경인데, 이 둘이 만날 때 6식이 일어난다. 이것을 접촉(phassa)이라고 한다. 접촉으로 인하여 느낌이 일어나고(phassa paccayā vedanā), 느낌으로 인하여 욕망이 일어나며(vedanā paccayā taṇhā), 욕망으로 인하여 집착이 일어난다. 이 집착으로 인하여 有, 生, 老病死... 등 갖가지 고통이 다 일어나게 된다. 그러니까 無明(avijjā)과 욕망(愛,taṇhā)으로 인해 태어난 존재에겐 苦(dukkha)는 불가피하게 따를 수밖에 없다. 사성제에선 苦의 원인(dukkha-samudaya)을 욕망(taṇhā)이라고 했다. 그럼 욕망의 근원적인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보통 욕망이 일어나도록 자극하는 외부의 대상에 있다고 여겨지나, 좀더 근원적인 차원에서 볼 때 욕망을 일으키는 바로 직전의 원인은 외부 대상이 아니라, 그 대상으로 인해 발생한 자기자신의 느낌과 감각(vedanā)에 있다. 12연기에서도 욕망(愛,taṇhā)이 일어나게 되는 직전의 원인은 바로 자신의 느낌과 감각(vedanā)이라 했다.

그래서 고엔카는 욕망과 혐오가 시작되는 곳도 vedanā이며, 그것들이 제거되어야만 할 곳도 또한 vedanā에 놓여있다고 한다. 그래서 vedanā를 수행의 대상으로 다루지 않는 한, 마음의 심층에선 여전히 vedanā에 반응하는 고질적인 습성이 계속된다. 그러나 평정한 마음으로 감각들을 알아차리며 관찰한다면, 반응하는 습성을 멈출 수 있고, 점차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된다고 말한다. 이와 같이 “vedana는 두 길이 시작되는 중요한 지점이다. 苦가 계속 발생되는 길(dukkha-samudaya-gāminī paṭipadā)이거나, 苦가 완전하게 소멸되는 길(dukkha- nirodha-gāminī paṭipadā)도 된다. 붓다는 모든 반응, 모든 상카라(sankhāra,行)가 단지 감각의 느낌에서 발생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러니까 12연기의 고리에서 vedanā는 수행자에게 아주 중요한 지점이다. 고엔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금 여기, vedanā에서 그 연결고리를 부셔버릴 수 있습니다. 전에는 모든 vedanā가 강한 욕망이나 혐오를 일어나게 했고, 그래서 큰 불행으로 이끄는 좋아함, 싫어함의 반응이 일어나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vedanā에 반응하는 대신, 수행자는 “이것 또한 변할 것이다” 라고 무상(anicca)을 이해하면서 평정심으로 단지 관찰하는 것만을 배웁니다. 이렇게 vedanā는 단지 무상을 이해하여 지혜가 일어나도록 합니다. 그때 수행자는 굴러가는 고통의 수레바퀴를 멈추고, 해탈을 향하여 반대방향으로 굴려가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왜 고엔카 수행법에서 vedanā를 자꾸 강조하는가의 이유이다. 中部의 149경인 Mahā saḷāyatanika Sutta는 vedanā로 인해서 어떻게 苦와 속박이 발생하는지, 그리고 vedanā에 正見을 가질 경우 어떻게 苦가 발생하지 않는지를 잘 설명하고 있다. vedanā를 수행주제로 삼고있는 고엔카 수행법의 경전적 근거 설명이 되어주는 자료라고도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정리하자면, 수행 상에서 vedanā에 마음 챙겨 관찰할 때, 12연기 상에서는 두 가지 과정이 시작된다. 첫째는 12연기 순관의 진행에서 새로운 업의 생성과정이 vedanā에서 멈추고, 둘째는 12연기의 역관이 vedanā에서부터 진행된다. 즉 vedanā로 인한 욕망이 없음으로 집착도 없고(taṇhā nirodhā upādana nirodho), 집착이 없으므로 유도 없고, ....생노병사우비고뇌도 없다. 그러므로 고엔카 수행법의 교리적 근거와 바탕은 초기불교의 핵심교리인 12연기에서 직접적으로 찾아볼 수 있으며, 사성제, 8정도, 3법인과도 긴밀하게 상호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3. 고엔카 수행법에서 Vedanā의 위치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고엔카 수행법은 vedanā를 무척 강조한다. 그러면 vedanā는 법의 분류에서 볼 때, 마음의 현상(名nāma)에 속하는가 물질의 현상(色rūpa)에 속하는가? 인간의 총체라고 할 수 있는 五蘊(pañcaskhandha)에서 지수화풍 4대로 이루어진 色(몸)은 물질(rūpa)에 속하고, 受(vedanā)는 想行識(saññā, sankhāra, viññāṇa) 함께 四蘊을 이뤄 마음(nāma)에 속한다. 이와 같이 오온에서의 vedanā는 분명하게 마음(nāma)의 영역에 속한다. 아비담마(Abhidhamma)의 법 분류에서도 vedanā의 위치를 살펴볼 수 있다. 4 가지 궁극적 실체를 다루는 것이 아비담마 이론인데, 그것은 심(citta), 심소(cetasikā), 물질(rūpa), 열반(nibbāna)이다. 여기서 vedanā는 두 번째 심소에 포함되어 있다. 심소는 마음(心)이 일어나는 곳마다 동시에 따라 일어나는 마음의 작용으로 phassa, vedanā, saññā, cetanā ...등이 있다. 여기서도 vedanā는 분명하게 물질(rūpa)의 영역이 아니라 마음(nāma)의 영역에 위치하고 있다.

그런데 고엔카는 왜 vedanā를 몸의 감각(bodily sensation)이라고 해석하는가? 의식(viññāṇa)으로 인해서, 혹은 접촉(phassa)으로 인해서 vedanā가 일어나지만 ‘몸의 감각’이라고 해석하는 vedanā는 지수화풍 四大로 이루어진 물질의 변화와 그 속성이므로, 몸의 감각 자체는 물질(四大)의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 고엔카가 의미하는 vedanā는 정확하게 무엇을 지칭하는지 좀더 살펴보기로 하겠다.

일반적으로 vedanā가 마음(nāma)에 속하기 때문에 번역어 ‘feeling’이나 ‘느낌’은 주로 정신적인 느낌으로 쓰여지고 있다. 그러나 이 vedanā는 정신적인 느낌뿐만 아니라, 신체적인 느낌까지도 포함하는 용어이다. 상응부 경전의 느낌 상응(vedanā saṃyutta)에 의하면 붓다는 방편에 따라 vedanā의 종류를 다양하게 설했다. 2종류, 3종류, 5종류, 6종류, 18종류, 36종류, 108종류의 vedanā가 있다. 2종류의 vedanā는 몸(kāyikā)의 느낌과 마음(cetasikā)의 느낌이다. 3종류의 vedanā는 즐거운(sukha) 느낌, 괴로운(dukkha) 느낌,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중립(adukkhamasukha)의 느낌이다. 다섯 종류의 vedanā는 sukhindriya(즐거움의 기능) dukkhindriya(괴로움의 기능) somanassindriya(기쁨의 기능) domanassindriya(슬픔의 기능) upekkhindriya(평온의 기능)이다.

상응부의 根 상응(Indriya saṃyutta)에도 위와 똑같은 용어들이 등장한다. 최근에 상응부 경전을 새로 번역한 비구 보디(Bhikkhu bodhi) 스님은 주에서 설명하기를 아비담마를 기반으로 한 해석에 의하면, sukha와 dukkha는 오직 身識에서만 일어난다고 한다. 論藏의 첫 번째 논서인 『法集論 Dhammasaṅganī』를 번역한 리즈 데이빗 여사도 sukha를 설명하는 주에서 동일한 해석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 정신적인 즐거움(cetasikā sukha)은 somanassa라고 하는 것이 더 옳을 것이라고 한다. 후기 논서이긴 하지만 『勝法義總攝, Abhidhammatthasaṅgaha』에서도 sukha dukha는 오직 身識에서만 일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레디 사야도의 또 다른 맥을 잇고 있는 모곡 사야도는 그의 가르침을 정리해 놓은 책에서 “몸에서 일어나는 vedanā는 sukha이거나 dukkha이다”라고 분명하게 언급했다. 그러므로 sukha dukkha는 몸의 느낌으로, somanassa와 domanassa는 마음의 느낌으로, upekkhā는 몸과 마음의 느낌을 모두 포함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대념처경』에는 오직 sukha dukkha vedanā만 언급되었으므로, '몸의 감각'이라고 한 고엔카의 해석은 나름대로 충분히 근거 있는 해석이다.

사실 vedanā 단어 자체는 몸과 마음의 느낌을 구별하고 있지 않다. 그 앞의 수식어에 따라서 구별이 가능할 뿐이다. 그럼 여섯 종류의 느낌(cha vedanā)은 무엇인가 좀더 살펴보기로 하겠다. 고엔카가 ‘몸의 느낌, 감각(sensation)’이라고 해석했던 vedanā를 좀더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여러 자료들을 통합하여 정리해본 것은 다음과 같다.

눈-시각대상-안식>= 접촉->눈의 느낌(cakkhusamphassajā vedanā)- upekkhā

귀-청각대상-이식>= 접촉-> 귀의 느낌(sotasamphassajā vedanā)- upekkhā

코-후각대상-비식>= 접촉-> 코의 느낌(ghānasamphassajā vedanā)- upekkhā

혀-미각대상-설식>= 접촉-> 혀의 느낌(jivhāsamphassajā vedanā)- upekkhā

몸-촉각대상-신식>=접촉-> 몸의 느낌(kāyasamphassajā vedanā)- sukha, dukkha

마음-인식대상-의식>=접촉->마음의 느낌(manosamphassajā vedanā)- somanassa, domanassa,

upekkhā.

위에서 볼 때, 고엔카 수행법에서 말하는 vedanā는 바로 다섯 번째, 몸이 촉각대상을 만나 身識이 일어났을 때 발생하는 몸의 느낌(bodily feeling)이다. 몸의 느낌은 몸의 감각(bodily sensation)이다. 고엔카의 스승 우 바 킨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수행자는 여섯 감각 기관으로 인해 발생한 어느 vedanā를 통해서도 無常(anicca)의 앎를 개발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 수행에서, 우리는 몸이 촉각대상과의 접촉으로 인해서 발생한 몸의 느낌(bodily feeling)이 다른 모든 종류의 느낌 중에서도 관찰 수행을 위해 가장 넓은 범위를 제공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뿐만 아니라 몸과 촉각 대상의 접촉에 의해서 일어난 즉, 몸 속의 깔라빠(kalāpā)의 마찰과 발열, 진동(파장) 등으로 인한 몸의 느낌은 다른 느낌들보다 훨씬 분명하다. 그러므로 위빠사나 수행의 초심자는 물질의 변화인 몸의 느낌을 통해서 좀더 쉽게 無常을 알 수 있다. 이것이 왜 우리가 無常을 빨리 알기 위한 매개체로서, 몸의 느낌(bodily feeling)을 선택했는가 하는 주 이유이다.” 라고 했다.

이로써 고엔카가 ‘몸의 감각’이라고 해석했던 vedanā의 위치가 어디인지, vedanā의 정확한 의미가 무엇인지 그리고 몸의 감각을 수행 주제로 선택했던 이유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드러났다.

 

4. 고엔카의 위빠사나 수행법

고엔카는 위빠사나(vipassanā) 수행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위빠사나 수행이라는 것은 자기자신의 실재(reality)를 직접 경험하는 자기관찰 방법이다. 붓다 시대의 말로 ‘passanā’는 보통 뜬눈으로 보고 바라보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vipassanā는 사물을 단지 보이는 대로가 아니라, (본성으로서의) 있는 그대로(yathābhūta)를 관찰하는 것이다. 관습상으로 분명한 진리는 정신적 육체적 전 구조의 궁국적인 진리에 도달할 때까지 통찰되어야만 한다. 이러한 진리를 경험할 때, 맹목적으로 반응하는 것을 멈출 수 있고, 번뇌를 일으키는 것을 멈출 수 있으며, 그래서 자연적으로 묵은 번뇌들이 점점 소멸될 것이다. 그러면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을 경험한다.” 고엔카의 이 말은 위빠사나 수행이 무엇이며, 수행의 과정과 결과, 목적이 무엇인지를 짧은 말로 다 표현한 것이다.

다음에 제시할 고엔카의 실제 수행법은 10일 코스에서 초심자들에게 제공되는 가장 기본적인 수행법이다. 매일 단계적으로 진행되는 방법인데, 이것을 날짜별로 아주 간략하게 정리했다. 고엔카 수행법에는 행선(walking meditation)은 없고 좌선(sitting meditation)이 중심이다. 하루 8-10시간 수행을 하며, 매일 인터뷰가 있고 저녁마다 법문시간이 있다. 코스 내내 철저한 묵언(noble silence)이 중시되나, 개별적인 질문은 질문 시간에 자유롭게 할 수 있다. 10일 코스는 세 가지 수행법으로 구성되었는데, 초기불교의 계정혜 3학이라는 수행체계를 따르고 있다. 계율을 기반으로 한 세 가지 수행법은 다음과 같다.

1) Ānāpānasati : 호흡에 대한 알아차림(入出息念)으로 사마타 수행이다.

2) Vedanānupassanā : 감각에 대한 관찰로 위빠사나 수행이다.

3) Metta bhāvanā : 慈觀 혹은 자비관으로 慈心과 수행공덕을 회향하는 수행이다.

 

< 위빠사나 10일 코스 수행법 요약 >

첫째 날 : Ānāpānasati 수행

호흡을 할 때 주의력, 마음챙김 알아차림(sati)을 제한된 범위, 즉 콧구멍 입구와 그 내부에 고정시키기 위해 들어오고 나가는 호흡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꾸준히 지켜본다. 알아차림이 분명하지 않을 때에는 호흡을 약간 세게 하여 알아차림을 분명히 한다.

둘째 날 : 호흡의 들숨 날숨을 꾸준히 지켜봄과 더불어, 호흡이 콧구멍 안쪽 벽과 바깥 구멍, 아니면 인중 부분(콧구멍 아래, 윗입술 위)을 접촉(touch)하는 것을 주의 깊게 살펴본다.

셋째 날 : 

(1) 윗입술을 기반으로 콧구멍 전체부분을 포함하는 코의 삼각형 부분에 주의 집중한다.

(2) 어떠한 감각이든지 이 제한된 부분에 나타나는 감각을 객관적으로 관찰하며, 이 부분을 벗어난 곳에서 경험되는 감각은 무시한다.

(3) 이 삼각형 부분에서 아무런 감각도 느낄 수 없을 때에는 호흡이나 호흡의 접촉을 알아차 리면 되고, 그 부분에 감각이 일어나자마자 주의를 그 감각에 기울이면 된다. 

넷째 날 오후 : 감각을 관찰하는 위빠사나 수행

(1) 집중된 주의를 신체의 어떤 부분도 빠뜨리지 말고, 머리 끝 정수리에서부터 발가락 끝까 지 부분별로 옮겨가며 피부에 느껴지는 모든 감각을 객관적으로 관찰한다.

(2) 관찰하는 순서는 정수리에서 시작해서 머리카락이 있는 두개골 부분, 이마를 비롯해서 귀를 포함하는 안면부, 오른쪽 어깨로부터 상박부, 팔꿈치, 하박부, 손목, 손, 손가락 순서로 관찰해 내려오고, 반대편 왼팔도 같은 요령으로 관찰한 뒤, 목, 가슴, 복부, 하복부 순서로 상 체의 앞면을 관찰하고, 마찬가지로 뒷목에 서부터 뒤 시작해서 상체의 뒷면도 점검하며, 하 체도 같은 요령으로 점검해 나간다. 즉, 오른쪽 허벅지부터 시작해서 무릎, 장딴지, 발목, 발, 발가락 순으로 관찰하고 왼쪽 다리도 같은 방법으로 점검해야 하며, 몸의 어떤 부분도 빠뜨 리지 말아야 한다. 이와 같이 머리 정수리부터 발가락 끝까지 몸 전체에서 일어나는 감각들 을 차례대로 관찰해 나가는 것을 계속 반복한다.

다섯째 날 : 넷째 날과 동일한 방법으로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위에서 아래로 한 방향으로만 마음을 예리하게 집중시켜 세밀하게 계속 관찰해 나간다.

여섯째 날 :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다시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주의를 왕 복해서 옮겨가며, 몸의 각 부분에서 일어나는 감각을 아주 객관적으로 평정심을 유지하며 관 찰한다.

일곱째 날 : 머리끝에서 발끝으로, 그리고 발끝에서 머리끝으로 의식을 옮겨가는 동안, 가능한 많은 부 분을 동시에 좌우 대칭적으로 지켜보며, 감각이 느껴지지 않은 부분은 다음 차례에 그 부분 들만 개별적으로 점검한다. 지속적으로 관찰해나가다 보면, 몸 전체에서 혹은 부분적으로 감 각의 자연스런 흐름(free flow)을 느낄 것이다.

여덟째 날 : (1) 이렇게 몸을 위 아래로 왕복하면서, 마치 한 양동이의 물을 머리 위에 부었을 때 일어 나는 것 같이 자연스런 에너지의 흐름(free flow)으로 가능한 몸의 많은 부분을 훑고, 느껴지 지 않았던 나머지 부분들은 개별적으로 점검한다.

(2) 이때 굳거나 강렬하며 거친 감각이 있는 부분에서는 free flow가 일어나지 않는 반면, 부 드럽고 미세한 감각이 있는 곳에서는 어디든지 막힘 없는 free flow를 느끼게 된다.

(3) 비록 free flow를 몸 전체에서 다 느낀다 할지라도, 한 두 번 전체적으로 훑어내린 뒤, 다시 몸의 각 부분에 개별적으로 의식을 통과시켜야 한다.

아홉째 날 : (1) 만일 자연스러운 흐름이 온몸에 걸쳐 일어나는 경우, 의식을 신체 내부로 투사하기 시작한다. 즉 신체 앞면에서 뒷면으로, 뒷면에서 앞면으로, 좌에서 우로, 우에서 좌로, 신체를 관통하면서 관찰한다.

(2) 이때, 내부에서도 어디 한군데 막힘 없이 자연스러운 흐름이 일어나게 되면, 같은 방법으 로 중추신경을 관통하면서 관찰한다.

(3) 결코 과정을 건너뛰지 말 것이며, 중추신경을 통해서도 막힘 없는 자연스러운 흐름이 일 어날 경우에도 오랫동안 축적되어온 상카라(saṅkhāra)는 이제부터 떠오르기 시작한다는 것 을 알고 평정심을 유지하며 관찰을 계속해나간다.

열째 날 : 자비관(Metta bhāvanā) 수행

신체에서 자연스런 흐름(free flow)이 일어나는 부분이 어디든지 간에 그 흐름에 모든 존재 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방사한다.

그럼 고엔카 위빠사나 수행센터에서의 하루 수행일정표를 참고로 보자면 다음과 같다.

 

오전 4시 기상 벨

오전 4시 30분 - 오전 6시 30분 선실이나 개인 방, 혹은 개인 수행실(cell)에서 수행

오전 6시 30분 - 오전 8시 아침식사 및 휴식

오전 8시 - 오전 9시 선실에서 그룹 수행(Group Sitting)

오전 9시 - 오전 11시 인터뷰(지도에 따라 선실이나 방, 셀에서 수행)

오전 11시 - 오전 12시 점심식사

오전 12시 - 오후 1시 개인면담(선택사항) 및 휴식

오후 1시 - 오후 2시 30분 선실이나 방, 셀에서 수행

오후 2시 30분 - 오후 3시 30분 선실에서 그룹 수행

오후 3시 30분 - 오후 5시 선실이나 방, cell에서 수행

오후 5시 - 오후 6시 차시간 및 휴식

오후 6시 - 오후 7시 선실에서 그룹 수행

오후 7시 - 오후 8시 30분 저녁 법문

오후 8시 30분 - 오후 9시 선실에서 수행(다음날의 수행법 지도)

오후 9시 - 오후 9시 30분 질문시간(선택사항)

오후 9시 30분 소등

 

위와 같은 수행 일정표에 따른 10일 코스 수행법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개발해야 할 것은 sati와 upekkhā(평정심)인데, 새의 두 날개와 같이, 수레의 두 바퀴와 같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감각의 일어남과 사라짐을 통해서 무상을 알아야 할 것도 강조되고 있다. “세 가지 통찰 지혜에서 無常에 대한 앎(anicca-ñāna)이 맨 먼저 처음으로 획득되어져야 한다. 만약 우리가 몸에서 항상 작용하고 있는 무상과 죽음의 작용을 분명하게 인식한다면, 일초 내의 매 찰라 마다 몸의 여러 부분에서 부서지고 나눠지며 사라지는 현상 속에서, 소멸의 지혜(bhanga-ñāna)를 얻을 것이다. 만약 무상의 관찰이 잘 성취되면, 무아에 대한 관찰 또한 성취되는 것이다. 증지부의 Meghiya Sutta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무상을 인식한 사람에게는 무아의 인식이 스스로 확립된다. 그리고 무아를 인식한 사람에겐 ‘내( I )가 있다’는 환상은 완전히 제거되고, 이 생에서 열반을 얻는다”고 했다. 이것이 바로 위빠사나 수행자가 걸어야 할 길이며, 목적이며, 결과인 것이다. 

 

Ⅲ. 고엔카 수행법과 대념처경의 해석

이 장은 고엔카 수행법과 『大念處經』과의 관련성을 알아보기 위한 것이다. 고엔카는 “위빠사나Vipassana 수행이란 바로 염처Satipaṭṭhāna 수행이다”라고 말한다. 비록 이런 구절이 경전 상에서는 언급되지 않을지라도 현재의 위빠사나 수행법이 『대념처경』에서 설한 수행법과 그 맥을 같이 하기 때문이다. 그럼 고엔카는 『대념처경』을 어떻게 해석하는가? 기존의 해석들과 어떻게 다르며, 그의 독특한 해석은 무엇인지 사띠빳타나 코스에서 해설한 『대념처경』법문집과 『대념처경』번역본을 바탕으로 살펴볼 것이다. 고엔카는 경전을 학자처럼 해석하기보다는 수행과 관련하여 설명하고 있다. 한정된 지면 관계상 여기에서는 고엔카 수행법에서 중심이 되는 신념처의 ‘호흡에 대한 알아차림(ānāpānasati)’과 ‘감각에 대한 관찰(vedanānupassanā)’ 부분을 중점적으로 다룰 것이다.


1. 대념처경 서론의 해석

붓다는 『대념처경』서론에서 수행의 목적을 명확하게 제시하신다. 그런 뒤에 身kāya, 受vedanā, 心citta, 法dhamma 四念處를 차례대로 설명해 나갔다. 고엔카의 해설을 바탕으로 위빠사나 연구소(VRI)가 정리해 논 『대념처경』서론 부분의 영역을 한글로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오 비구들이여, 이것은 한 길이자 유일한 길(the one and only way)로서, 존재의 청정을 위함이며, 슬픔과 비탄을 극복하기 위함이며, 괴로움과 고통을 소멸시키기 위함이며, 진리의 길을 얻기 위함이며, 열반을 직접 경험하기 위함이다. 그것은 바로 네 가지에 대한 알아차림의 확립(四念處)다. 그럼 네 가지란 무엇인가? 여기에 한 비구가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열심히 무상에 대한 지속적이고도 철저한 앎(sampajāno)과 바른 알아차림을 지니며, 마음과 물질의 이 세계에 대한 욕망과 혐오를 제거하면서 지낸다. 그는 감각에서 감각을 관찰하며....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며....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지낸다.” 

경에서 언급했던 신수심법 四念處에 대한 고엔카의 해석은 매우 독특하다. 그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Satipaṭṭhāna 수행의 목적은 나(I)라고 하는, 그래서 너무나 많은 집착이 붙어있는 자기 자신을 탐구하는 것이다. 관찰해야할 분명한 두 분야는 몸(kāya)과 마음(citta)이다. 이것은 지적으로가 아니라 경험적인 차원이어야 한다. 몸의 실재(reality)를 경험하기 위해선 몸을 직접 느껴야만 하는데, 그러려면 몸에 감각이 있어야만 한다. 그러니까 몸(kāya)과 감각(vedanā)은 이 탐구 수행에서 함께 간다. 마음도 마찬가지이다. 마음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마음 안에서 무엇인가 일어나야만 한다. 가령 강한 욕망이나 혐오, 혹은 어떤 생각들이라도. 그것은 일어났다가 사라진다.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것을 법(dhamma)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법이라는 것은 마음에 담겨진 모든 것들을 말한다. 몸과 감각이 함께 가듯이, 마음(citta)과 법(dhamma)도 함께 간다." 

고엔카는 다음과 같은 붓다의 말을 인용하며 사념처에 대해서 설명을 계속한다. “vedanā samosaraṇā sabbe dhammā”는 ‘마음 안에서 일어난 모든 것은 몸의 감각으로 귀결된다'는 뜻이다. 여기서 samosaraṇā는 ‘함께 모아져서 흐른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vedanā는 무척 중요하다. 몸을 탐구하기 위해 감각을 느껴야만 하듯이, 마음과 법을 탐구하는데도 마찬가지이다. 왜냐면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sabbe dhammā)은 다 vedanā로서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엔카는 신수심법 四念處 모두가 오직 감각vedanā을 기반으로 수행되어질 수 있다고 한다. 그럼 고엔카의 해석을 기반으로 四念處와 vedanā의 관계를 간략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kāyānupassanā (몸에 대한 관찰) * Body(kaya)->vedanā \

2. vedanānupassanā (감각에 대한 관찰) > vedanā => 4념처 포섭

3. cittānupassanā (마음에 대한 관찰) * Mind(citta)->dhamma/

4. dhammānupassanā (법에 대한 관찰)

간단히 말해서 감각을 관찰하면, 몸은 물론이고 마음과 법까지도 다 관찰되어진다는 해석이다. 그러므로 고엔카의 수행법은 마하시 수행법처럼 신수심법 四念處를 골고루 다 닦지 않고, 신념처의 호흡에 대한 마음챙김(入出息念)을 준비수행으로 닦은 뒤, 감각에 대한 관찰을 본 수행으로 닦는 것이다. 사념처 중 감각을 관찰하는 受念處가 고엔카 수행법의 중심이 된다.

고엔카에 의하면 『대념처경』에서 四念處가 골고루 설해졌다하더라도, 실제 수행에서 차례대로 다 닦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신수심법 사념처는 대탑의 동서남북 사방에 세워진 門, 혹은 통로와 같고, 탑을 오르는 네 계단과도 같다. 그래서 동서남북 어느 문이나 계단을 통해서도 탑의 맨 상층부에 도달할 수 있듯이, 신수심법 중에서 어느 한가지 念處 수행을 통해서도 수행의 최종 단계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한다.

 

2. 身念處의 入出息念(ānāpānasati)에 대한 해석

Ānāpānasati는 들숨(āna)과 날숨(apāna)에 대한 알아차림, 혹은 마음챙김(sati)이라는 뜻으로한문으로는 ‘入出息念’이라 한다. Ānāpānasati는 신념처의 첫 번째 수행인데, 여러 종류의 수행 중에서도 가장 기본이 되면서도 또한 가장 중요한 수행으로도 간주되고 있다. 여기서 수행처와 수행자세, sati를 두어야 할 지점 등이 언급되는데, 먼저 경의 내용을 인용하고 고엔카의 해석과 설명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여기 한 비구가 숲으로 가거나 나무 아래, 혹은 빈방으로 가서 다리를 가부좌로 틀고, 윗몸을 반듯하게 세운 뒤, 입 주변에 마음챙김을 고정시키고(parimukhaṃ satiṃ upaṭṭhapetvā) 앉는다. 마음을 챙기면서 그는 숨을 들이쉬고, 마음을 챙기면서 숨을 내 쉰다. 깊거나 길게 숨을 들이쉴 때에는 “(나는) 깊거나 길게 숨을 들이쉰다”고 바르게 알고, 얕거나 짧게 숨을 들이쉴 때에는 “얕거나 짧게 숨을 들이쉰다”고 바르게 안다. 깊거나 길게 숨을 내쉴 때에는 “깊거나 길게 숨을 내쉰다”고 바르게 알고, 얕거나 짧게 숨을 내쉴 때에는 “얕거나 짧게 숨을 내쉰다”고 바르게 안다. 그는 스스로 수련하기를, “온 몸을 느끼면서(sabbakāyapaṭisaṃvedī) (나는) 숨을 들이쉴 것이다”, 라고 하고, “ 온 몸을 느끼면서 숨을 내쉴 것이다” 라고 스스로 수련한다. 그는 또 수련하기를 “몸의 활동을 가라앉히면서 숨을 들이쉴 것이고, 몸의 활동을 가라앉히면서 숨을 내쉴 것이다” 라고 스스로 수련한다.

여기서 고엔카가 독특하게 해석하고 있는 부분은 ‘parimukhaṃ satiṃ upaṭṭhapetvā’ 부분이다. Primukhaṃ을 자신 앞에(in front of him) 혹은 전면에(in front of face)라고 해석한 경우가 있으나, 고엔카는 접두사 pari를 around로, mukha를 ‘입’으로 해석하여 ‘입 주변, 콧구멍 입구’라고 해석했다. 그래서 실 수행에서는 대략 윗입술 위, 코 구멍 아래, 좀더 폭을 좁히자면 인중 부위에 sati를 고정시킨 뒤 호흡의 출입을 지켜볼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레디 사야도는 Ānāpāna-Dīpanī에서 “주의력을 관찰 대상(parimukhaṃ)에 고정시키고”라고 하여 고엔카의 해석과 차이를 보여준다.

사실 『대념처경』에 설해진 ānāpānasati의 수행 방법은 간략하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적인 호흡을, 길면 길다고 짧으면 짧다고 그대로 알아차려(pajānāti)가는 수행이다. 여기서 또 한 가지 해석의 차이점을 보이는 곳은 ‘sabbakāyapaṭisaṃvedī’이다. 주석서를 기반으로 하는 전통적인 해석은 sabbakāya를 ‘호흡의 온 몸(the whole body of breath)라고 해석한 반면, 고엔카는 kāya를 그냥 신체적인 몸으로 해석했다. 그는 설명하길 “호흡을 관찰하다 보면 그 부분에서 감각을 느끼게 되고, 이 두 가지(호흡과 감각)를 수행하다 보면 온 몸(sabbakāya)에서 감각을 느끼는 단계가 온다. 자연스런 호흡으로 시작해서, 온 몸에 있는 감각을 한 호흡에 다 느끼는 중요한 지점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몸에 대한 관찰(kāyānu passanā)을 수행하기 때문에 온 몸은 느껴져야만 한다.” 그러니까 호흡의 시작과 중간, 끝이라는 ‘호흡의 온 몸’을 다 경험해야 된다는 전통적인 해석과 신체의 감각으로서 온 몸을 경험한다는 고엔카의 해석은 상당히 관점이 다르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레디 사야도도 sabbakāya를 '호흡의 전체'로 해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고엔카가 레디 사야도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으면서도 경전의 해석에 있어서 분명한 차이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또 해석을 달리하는 부분은 ‘외적으로(bahiddhā)’란 말이 내포한 뜻에 대해서이다. 먼저 경전의 반복구를 인용해보고자 한다.

“이와 같이 그는 내적으로(ajjhattam)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지내고, 외적으로(bahiddhā)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지낸다. 또한 내적, 외적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면서 지낸다. 이와 같이 그는 몸에서 일어남의 현상을 관찰하면서 지내고, 사라짐의 현상을 관찰하면서 지내며, 동시에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현상을 관찰하면서 지낸다. “이것이 몸이다” 라는 마음챙김이 그에게 확립된다. 그는 그의 마음챙김을 단지 앎과 맨 알아차림만을 위한 상태까지 개발한다. 이렇게 그는 마음과 물질의 세계에서 그 어떤 것에도 집착함이 없이 초연하게 지낸다." 

전통적인 해석에 의하면, ajjhattaṃ을 ‘자신의 몸(his own body)’으로, bahiddhā를 ‘다른 이의 몸(body of another)으로 해석하고 있으나, 고엔카는 ajjhattaṃ을 ‘몸 안으로(inside the body)’ 해석했고, bahiddhā란 몸 밖, 즉 ‘몸의 표면(the surface of the body)’이라고 해석했다. 고엔카는 말하길, bahiddhā를 ‘다른 사람의 몸’으로 해석했다는 것은 수행자가 단지 다른 누군가를 생각하고, 다른 존재들이 어떻게 숨을 쉬는지 생각한 것으로 설명할 수는 있겠으나, 그것은 (직접적인 관찰이 아니라) 상상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해석에 동의할 수 없다. 그리고 vipassanā나 anupassanā의 전통에서는 자기자신의 몸 안에서(kāye) 관찰하는 것이기에 우리는 bahiddhā를 몸의 표면이라고 한다고 했다. 

『대념처경』에는 매 수행법 뒤에 동일한 내용을 반복하는 반복구가 21번 나온다. 고엔카는 이 부분을 매우 중요시하며, 매우 독특하게 해석을 하고 있다. 간단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몸에서 일어남의 현상(samudaya-dhamma)을 관찰하고, 사라짐의 현상(vaya-dhamma)을 관찰하며, 일어남사라짐의 현상을 동시에 관찰하며(samudayavaya-dhamma)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 부분은 위빠사나의 실제적인 수행을 묘사하고 있으며,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선 굉장한 주의를 필요로 하는 부분이라고 한다. 일어남, 사라짐이 별도로 관찰되어질 때는 『청정도론』에서 말하는 udayabbaya(生滅)의 단계라고 할 수 있고, 일어남-사라짐이 동시에 관찰되어질 때는 감각의 완전한 용해 현상, 즉 일어남 사라짐이 굉장한 속도로 간격 없이 경험되어지는 Bhaṅga(消滅)의 단계라고 해석한다. ‘이것이 몸이다(atthi kāyo)’ 라는 알아차림이 확고하게 확립되었을 때는, 이 몸이 내가 아니고 내 것이 아니며 단지 몸일 뿐이라고 경험하여 無我를 처음으로 인정하는 단계이며, 無常(anicca)에 대한 사실적이며 실제적인 경험이 시작되었다고 본다. 그리고 집착의 위험을 자각하게 되면서 끊임없이 변해 가는 내재된 본성 때문에 苦(dukkha)도 인식된다. 無我(anattā)가 이해되어졌으므로, 몸에 대한 집착도 사라졌다. 이것은 sati가 순간 순간마다 이런 진리에 확고하게 확립된 높은 단계이다. 그리고 “마음과 물질의 세계(loka)에서 그 어느 것도 집착함이 없이 초연하게 지낸다”는 구절은 마음과 물질(nāmarūpa)의 전 영역을 다 초월한 것이며, 그에겐 다 이상 매달릴 세계나 우주는 없다고 했다. 이와 같이 고엔카는 이 반복구에서 수행의 시작 단계부터 최종의 단계가 다 함축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이 반복구에 함축되어 있다고 하는 수행의 진보단계는 대략 다음과 같다고 볼 수 있다. 

* 無常(anicca)--消滅(bhaṅga)--苦(dukkha)--無我(anattā)--無執着--超然 (涅槃)

『대념처경』의 ānāpānasati와 관련하여 고엔카가 가르치는 ānāpānasati의 실제 수행법을 정리해보자면 간단히 두 단계로 볼 수 있다. (1) 들어오고 나가는 자연스런 호흡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며 집중해 나가다가 (2) 코밑이나 인중 부위에서 일어나는 감촉이나 감각에 집중한다. 여기까지 사마타 수행으로 볼 수 있으나, 이 사마타 수행은 선정(jhāna)의 도달을 목표로 하기보다는 위빠사나 수행을 위한 준비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sati의 대상이 ‘호흡’에서 ‘감각’으로 바뀌었다). 그리곤 몸의 감각을 관찰하는 본 수행으로 진행하게 된다.

 

3. 감각에 대한 관찰(vedanānupassanā)에 대한 해석

『대념처경』 受念處에서는 어떻게 vedanā에서 vedanā를 관찰하며 지낼 것인가? 에 대해 설명하면서 9가지 vedanā를 언급한다. 어느 vedanā일지라도 매 vedanā를 느낄 때마다, 수행자는 그것을 바르게 알아차리라고(pajānāti) 가르친다. 고엔카는 이 vedanā들을 다음과 같이 번역했다.

1. sukha vedanā- 즐거운(혹은 유쾌한) 감각

2. dukkha vedanā- 괴로운(혹은 불쾌한) 감각

3. adukkhamasukha vedanā-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중립의 감각

4. samisam sukham vedanam- 집착이 있는 즐거운 감각

5. niramisam sukham vedanam- 집착이 없는 즐거운 감각

6. samisam dukkham vedanam- 집착이 있는 괴로운 감각

7. niramisam dukkham vedanam- 집착이 없는 괴로운 감각

8. samisam adukkhamsukham vedanam- 집착이 있는 중립의 감각

9. niramisam adukkhamasukham vedanam- 집착이 없는 중립의 감각

앞 장 ‘고엔카 수행법에서 vedanā의 위치’에서 마음의 느낌은 somanassa, domanassa라고 표현하고, sukha, dukkha는 몸의 느낌이라고 했다. 여기 수념처에서는 오직 sukha, dukkha , adukkhamasukha만이 언급되므로 몸의 감각(bodily sensation)을 의미한다고 해석했다. 여기서 문제는 ‘samisaṃ, niramisaṃ’의 해석이다. 번역자마다 미세한 번역의 차이를 보이는데, 고엔카는 samisaṃ을 ‘욕망이나 집착이 있는(with attachment)’이라고 보았고, niramisaṃ은 ‘욕망이나 집착이 없는(without attachment)’으로 해석했다. 세 가지 감각들은 각각 다시 이 두 종류의 감각으로 나뉘어져서 총 9가지 감각이 언급된 것이다. 고엔카의 설명에 의하면, 즐거운 감각(sukha vedanā)은 수행의 결과로 일어나기도 하고 감각적인 즐거움과 결부되어 일어날 수 있다. 그런 즐거운 감각을 느낄 때, 그것을 지속시키거나 증가시키고자 하는 욕망과 집착으로 반응한다면 그건 samisaṃ sukhaṃ vedanā이고, 평정심을 갖고 반응함이 없이 단지 관찰하기만 한다면 그건 niramisaṃ sukhaṃ vedanā라고 한다. 나머지 두 감각도 마찬가지이다. 감각이 어떤 것이든 간에 감각은 다만 관찰되어져야만 한다. 그때 자연적으로 법의 법칙에 따라서 객관적인 관찰 기능이 증가할 것이다.라고 했다.

신념처 入出息念에서 이미 살펴보았듯이, 반복구의 ‘ajjhatta bahiddhā’의 고엔카 해석은 동일하다. 내적으로(ajjhatta)는 몸의 내부(inside the body)를 의미하고, 외적으로(bahiddhā)는 몸의 표면(on the surface of one's own body)을 말하므로, 몸의 내부와 몸의 표면에서 감각을 다 경험해야 한다고 한다. 고엔카는 말하길, 경전에 의하면 수행자는 숲에서나 나무아래, 혹은 빈방에서 혼자 수행하는데, 남의 호흡이나 남의 감각을 알아차려 관찰한다는 해석은 타당하지 않다고 한다. 나머지 반복구의 해석도 입출식념에서 살펴본 것과 동일하다. 그 반복구 속에는 일어남 사라짐을 관찰하는 무상에 대한 인식을 비롯해서 위빠사나 수행의 진보 단계들이 대략 다 묘사되어 있다고 해석했다.

『대념처경』의 수념처 수행법과 고엔카 수행법과의 관련성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경전에 의하면, 특정한 느낌이나 감각이 나타났을 때, 수행자는 그것을 정확하게 알아차리라고(pajānāti) 한다. 그러나 고엔카 수행법에서는 특정한 감각에 mental noting을 하기보다는, sati를 관찰 대상인 몸에 댄 순간 어느 감각이라도 느껴지면 관찰 부위를 계속 옮겨가면서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몸 전체를 세밀하게 관찰하는 것이다. 특정한 감각을 찾거나 거친 감각만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미세한 감각까지 어느 한 부분도 소홀함이 없이 온 몸 전체를 돌면서 예리하고도 세밀하게 관찰해 나간다. 이런 과정에서 통증이나 가려움, 기쁨, 슬픔, 쾌감, 불쾌감, 등 다양한 느낌이나 감각이 느껴지지만, 그때마다 그것에 명칭을 붙여 noting하지는 않는다. 단지 느끼면 된다. 그리고 평정심을 유지하며 객관적으로 관찰할 뿐이다. 여기서 평정심을 유지하지 못하고 순간 순간의 현상에 반응한다면, 수행의 이익이나 결실은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즐거운 감각에는 욕망으로 반응하고, 괴로운 감각에 혐오감으로 반응하는 것은 결국 또 다른 상카라(업의 형성작용)를 만든 결과이기 때문이다. 

한가지 분명하게 언급하고 싶은 것은 고엔카 수행법에서 감각(vedanā)을 아무리 중시하고 강조한다하더라도, 감각 그 자체는 수행의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라는 점이다. 無常(anicca)을 체득하기 위한 한 대상(object)일 뿐이며, 고통의 바다를 건너 열반에 이르기 위한 하나의 탈것(vehicle)일 뿐이다. 정신적인 번뇌를 관찰하기보다는 구체적이며 분명한 몸의 감각을 관찰하는 것이 無常을 체득하는데 수월하고 적절하다는 것이 이 전통의 견해이다. 위빠사나 수행이란 無常을 알기 위한 수행이며, 이것이 바로 苦와 無我라는 통찰 지혜로 이끌어 수행자를 涅槃, 解脫로 나아가게 하기 때문이다.

 

4. 대념처경 결론의 해석 

『대념처경』 결론을 말하기 전에 心念處와 法念處에 대해서 간단히 언급하고자 한다. 고엔카는 심념처와 법념처에 대해서도 강의를 하지만, 마음의 대상이 밖에 있을지라도 마음(citta) 그 자체는 항상 몸 안에 있다고 한다. 그래서 (마음의) 모든 진행과정은 계속 몸이라는 형체 안에 있으며 감각기관들도 모두 다 몸에 있으므로 사실 몸이 중심이 된다고 한다. 마음 안에서 무엇인가 일어났을지라도 그것은 다 몸의 감각으로서 느껴질 수 있는 것이다. 고엔카는 법념처의 다섯 가지 덮개(五蓋)를 강의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여러분들이 신수심법 중 어느 염처를 닦더라도 감각의 일어남 사라짐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마음의 심층에 이미 축적되었던 번뇌들에 도달하지도 못하고 또한 소멸될 수도 없다. 수행은 다만 표피적인 부분에서의 게임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와 같이 『대념처경』에는 심념처 법념처의 다양한 수행이 설해졌을지라도 고엔카는 여전히 감각에 대한 관찰을 강조한다. 상응부 염처 상응(Satipaṭṭhāna Saṃyutta)에서는 이와 관련된 아주 중요한 구절이 언급된다. ”세 가지 vedanā의 이해(앎)를 위해서 사념처를 닦아야만 한다“고 했다. 다시 말하면 사념처 수행을 하는 것은 결국 세 가지 vedanā에 대한 바른 이해가 목적이라는 말이다.

고엔카 수행법에는 심념처, 법념처에 대한 별도의 구체적인 수행법은 없다. 신념처에서도 입출식념을 제외한 나머지 수행들, 즉 몸의 동작(iriyāpatha)과 正知(sampajāna), 사대수행(dhātumanasikāra) 등도 일상생활에서 적용할 수 있는 수행법들이나, 여전히 중요한 건 감각의 알아차림으로 다 모아진다. 그리고 수념처 수행 중에도 심념처나 법념처에 언급된 여러 현상들이 수시로 나타나지만, 그럴지라도 sati는 항상 vedanā로 간다. 왜냐하면 “마음에서 일어난 모든 현상들은 다 감각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수념처 수행만 해도 심념처와 법념처가 다 포섭된다는 예를 하나 들어보고자 한다. 어느 누군가가 굉장히 화가 나 있다고 하자. 그래서 얼굴이 붉어지며 호흡이 가빠지고, 맥박이 빠르며 몸이 흥분으로 떨린다고 할 때, 화나 분노는 분명 정신적인 현상인데 몸이 왜 동시에 그렇게 반응하는가? 이 화는 심념처의 화가 난 마음(sadosa cittam)이며, 법념처의 五蓋 중 분노(byāpāda)에 속하는 정신적인 번뇌들이지만, 그것이 몸의 현상, 감각으로 여실하게 다 드러나고 있다. 이와 같이 마음의 현상들은 동시에 신체적 현상으로 다 드러난다. 그래서 몸의 감각을 관찰하면 정신적인 현상들을 다 관찰하게 되는 셈이다. 왜냐하면 몸과 마음(名色,nāmarūpa), 혹은 五蘊은 서로 각각 분리되어 작용하는 독립체라기보다는 함께 일어났다가(co-arising) 함께 머물다가(co- existing) 함께 사라지는(co-vanishing) 현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엔카는 화나 분노 같은 추상적인 번뇌를 관찰하는 것보다는 호흡이나 감각을 관찰하는 것이 보통 사람들에게 구체적이며 수월하다는 것, 그래서 수념처만 닦아도 신념처, 심념처, 법념처까지 다 포섭한다는 것이 고엔카 수행법의 四念處에 대한 독특한 해석이다.

『대념처경』결론에서 붓다는 사념처 수행의 결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누구라도 이 4념처를 이와 같이 바르게 7년간 수행한다면, 두 가지 결실 중 어느 한가지 결실이라도 얻을 수 있다. 이 생에 아라한이 되든지, 아직 집착이 남아있다면 아나함이 될 것이다." 그러면서 붓다는 계속 설명하시길, 사실 7년이 아니어도 괜찮다. 내가 가르친 대로 올바르게 수행한다면 6년, 5년, 4년, ....아니, 보름 안이라도, 혹은 7일 안이라도 아라한 이나 아나함, 이 두 가지 결실 중 하나를 성취할 수 있다고 했다. 그렇게 때문에 붓다는 이 4념처 수행이 바로 중생을 청정하게 하고, 슬픔과 비탄을 극복하게 하며, 고통과 괴로움을 소멸시키며, 바른 법에 들게 하고 궁극적으로 열반을 체득하기 위한 유일한 길이라고 말한 것이다. 이렇게 붓다는 대념처경의 결론을 멋지게 내렸다. 고엔카는 이 부분에서 수행을 하여 아라한이 되고 안되고의 필수조건은 ‘evaṃ bhāveyya(이와같이 수행한다면)’라고 한다. 이 의미는 붓다가 가르친 것처럼 얼마만큼 정확하게 수행했느냐가 관건이라는 말인데, 그것은 삶에서 어느 한 순간도 sampajañña(正知,무상에 대한 지속적이고 철저한 앎)를 놓치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수행할 때 수행자는 붓다가 보증했던 수행의 결실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IⅤ. 결 론

지금까지 고엔카 수행법의 여러 측면들을 살펴보았고, 또한 이 수행법과 『대념처경』과의 관련성에 대해서도 살펴보았다. 그 결과 현재 인도를 중심으로 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는 고엔카 수행법은 남방 상좌불교의 수행전통 중에서 미얀마의 레디 사야도 계통의 수행법을 따르고 있으나, 현재 그는 자신이 가르치는 위빠사나 수행을 ‘우바킨 전통의 수행’이라고 한다. 고엔카 수행법의 주 관찰 대상은 vedana인데, 접촉(phassa)이 있을 때마다 6근에서 일어나는 여러 느낌 중에서 특히 몸에서 일어나는 느낌, 즉 몸의 감각을 관찰한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감각을 관찰하여 苦의 원인인 욕망을 일으키지 않고, 그래서 苦를 벗어나 열반에 이르고자 하는 고엔카 수행법의 교리적 이론적 근거는 12연기에서 찾을 수 있다. 고엔카 수행센터에서의 수행은 10일 코스가 기본인데, 세 가지 수행법으로 구성되었다. 계율을 바탕으로 호흡에 대한 알아차림 수행인 입출식념을 선정수행으로 닦고, 감각을 관찰하는 수념처를 지혜(위빠사나) 수행으로 닦아 초기불교의 계정혜 3학이라는 수행체계를 잘 따르고 있다.

고엔카 수행법이 실제 수행에서 적용하고 있는 『대념처경』의 수행이론은 신념처의 입출식념과 수념처이다. 입출식념에서 고엔카의 해석과 수행법이 주석서를 기반으로 하는 전통적인 해석과 얼마간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 있으나, 『대념처경』의 수행이론과 큰 차이는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수념처 수행에 있어서 고엔카 수행법과『대념처경』의 수행법이 방법상 동일하다고 하기엔 주저되는 점이 있다. 왜냐하면 『대념처경』의 수행법은 아주 간략하게 소개되었으나, 고엔카의 수행법은 어느 특정한 느낌이나 감각이 일어났을 때만 그것을 알아차리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순간 끊임없이 머리에서부터 발가락까지 온 몸 전체를 돌면서 지속적으로 몸의 감각을 훑어내리는 세밀한 관찰방법을 쓰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신적인 느낌이든 신체의 감각이든, vedanā를 관찰하여 무상(anicca)을 체득하는 수행이라는 점에서『대념처경』의 수행법과 수행원리는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대념처경』에는 ‘바르게 알다, 이해하다’ 라는 의미의 동사 pajānāti가 무려 126번이나 쓰였다. 이것으로 볼 때 붓다가 직계 제자들에게 고구정령하게 가르쳤던 초기불교 수행법은 자신의 몸과 마음(신수심법)을 있는 그대로 바르게 알아차리는 ‘pajānāti 수행’이다. 이 pajānāti 수행을 통해서 마음챙김sati이 확립(u)paṭṭhāna되면 칠각지가 일어나고, 그래서 사성제를 깨닫게 되는 것이『대념처경』의 수행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고엔카 수행법을 이 『대념처경』과 비교해 볼 때, 경전의 해석과 수행법에 약간의 변용은 보일지라도, 『대념처경』의 수행이론을 따르고 있음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21세기 현재,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수행하고 있는 고엔카 수행법은 붓다가 제시했던 계정혜 삼학의 수행이며, 8정도, 7청정, 37 조도품의 수행이다. 이러한 수행을 통해서 수행자는 불교도의 최종 목적지인 열반, 해탈,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는 가르침이 바로 붓다가 45년간 설하신 法(dhamma)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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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TS Pāli Texts의 약어는 Critical Pāli Dictionary(CPD) Vol.Ⅰ의 약어(Abbreviation) 기준을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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