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단계 : 아름다운 호흡에 대한 완전하고 지속적인 주의집중
사마타 수행(선정 삼매를 계발하는 수행)의 5단계는 '아름다운 호흡에 대한 완전하고 지속적인 주의집중' 입니다. 4단계에 대한 설명에서 간략히 언급했듯이 알아차림의 균일한 흐름을 방해하는 것이 없어지면 완전한 주의력은 호흡의 경험에만 연속적으로 유지된 상태에서 편안하게 쉬게 됩니다. 그러면 호흡은 저절로 고요하게 가라앉습니다. 거칠고 평범한 호흡이 아주 부드럽고 고요하고 평화로운 ‘아름다운 호흡’으로 바뀝니다. 마음은 이러한 ’아름다운 호흡‘을 인식하고 거기서 기쁨을 느끼며 깊어지는 만족감을 경험합니다. 이런 ’아름다운 호흡‘은 그저 지켜보기만 해도 행복합니다. 그래서 억지로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아무 것도 하지 마십시오
이 단계에서 여러분은 아무 것도 하지 않습니다. 이 단계에서 뭔가 하려고 하면 전체 과정을 망칠 것입니다. ’아름다운 호흡‘은 사라질 것입니다. 이 단계부터는 (능동적인 정신작용인) '행하는 것(doer)' 이 사라져야 합니다. 여러분에게는 (수동적인 정신작용인) '아는 것(knower)' 만이 남습니다. 즉 이 단계에서부터는 의지(의도, 노력), 생각, 판단, 분별, 평가 등과 같은 능동적인 정신작용 없이 수동적으로 지켜보기만 해야 합니다.
'사마디(정定; 정정진·정념·정정)를 계발하는 수행'(=사마타)으로 정정正定(바른 선정 삼매)에 들기 위해서는, 수행이 점점 깊어질수록 자기 자신(我)의 의지의 표현인 노력조차도 점점 더 많이 놓아버리는 것이 정정진(바른 노력)입니다. 왜냐하면 수행이 깊어질수록 자신(我)의 의지의 표현인 노력조차도 미세한 집착으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오직 '아름다움' 만이 남습니다
’아름다운 호흡‘을 그저 고요히 지켜보기만 하면 호흡은 저절로 더욱 고요하게 가라앉으면서, 마침내 호흡은 ‘아름다움’이라는 ‘표상’만 남기고 사라질 것입니다. 이것은 본인이 원해서가 아니라 충분한 고요함이 있을 때 저절로 일어날 것입니다.
수행자에게 호흡의 감각과 함께 몸의 감각이 점차 사라지고 오직 '아름다움'만이 남습니다. '아름다움', 더 정확히 표현하면 '아름다움의 표상'은 다음 단계의 수행에서 등장합니다. 수행자는 고요해진 마음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의 표상'을 명확하게 경험하게 됩니다. ‘표상’을 부처님이 사용하신 고대인도어(빠알리어)로 ‘니밋따nimitta’라고 합니다. 그래서 나는 다음 단계를 '아름다운 니밋따 경험하기' 라고 부릅니다. 니밋따는 본인이 원해서가 아니라 충분한 고요함이 있을 때 나타날 것입니다.
.
6단계 : 아름다운 니밋따 경험하기
이 단계는 생각, 그리고 호흡에 대한 감각을 포함한 모든 신체감각(오감각)을 정말 완벽하게 놓아버려서, 오직 아름다운 정신적 표상, 즉 니밋따만이 남았을 때 성취됩니다.
이 니밋따가 처음 나타날 때는 정말 이상합니다. 수행자는 이런 과정을 전에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식이라 부르는 정신작용은 그 인생 경험의 기억창고에서 '아름다움'에 대한 비슷한 표상을 찾아냅니다. 육체를 벗어난(오감각을 초월한) 이 아름다움, 즉 정신적 아름다움은 대부분의 수행자에게 아름다운 빛으로 감지됩니다. 어떤 사람은 눈부신 흰빛 구름을, 어떤 사람은 금빛 별이나 태양이나 달을, 어떤 사람은 찬란한 푸른빛의 보석 등을 봅니다.
육체를 벗어난 이 정신적 아름다움을 수행자들은 아름다운 빛으로 감지합니다만, 사실 이것은 물리적인 빛이 아닙니다. 눈은 감겨 있고 안식眼識은 이미 꺼져 있습니다. 사실 이것은 (처음으로) 오감각의 세계로부터 자유로워진 의식(제6식)의 표상입니다. 이것은 보름달(아름답게 빛나는 청정해진 마음에 대한 비유)이 구름(오감각의 세계 또는 감각적 욕망의 세계에 대한 비유) 뒤에서 나오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청정해진 마음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빛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수행자에게 빛으로 나타납니다. 이것을 경험한 수행자들이 (빛은 아니지만) 빛으로 표현하는 것은 그것이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최선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수행자들의 경우에는 이 경험을 강력한 평온 혹은 강렬한 희열의 측면에서 묘사(표현)하기도 합니다.
니밋따의 특징
- 니밋따는 수행자가 긴 시간 동안 '아름다운 호흡'(5단계)에서 머물고 난 후에 등장합니다.
- 호흡이 사라져야 나타납니다.
-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이라는 오감각이 완전하게 사라져야 나타납니다.
- 생각(내면의 말, 해설)이 완전히 사라진 고요해진 마음에서만 나타납니다.
- 이상하지만 강렬하고 매력적입니다.
- 매우 아름답고 순수하고 단순한 대상입니다.
니밋따의 특징을 언급한 이유는 여러분이 진짜 니밋따와 상상의 니밋따를 구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때로는 처음 니밋따가 나타날 때 흐릿하게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 즉시 이전 단계인 '아름다운 호흡에 대한 완전하고 지속적인 주의집중' 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때론 니밋따가 밝지만 불안정합니다. 이런 경우에도 이전 단계로 돌아가야 합니다. 마음이 주의력을 '아름다운 호흡'에 편안하게 오래오래 유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마음을 '아름다운 호흡'에서 충분히 훈련시켜야 합니다. 그러면 니밋따로 옮겨갈 때 그것은 빛나고 안정적이며 유지하기 쉬울 것입니다.
놓아버리기
니밋따가 흐릿하게 나타나는 주된 이유는 만족의 깊이가 너무 얕고 뭔가 원하기 때문입니다. 수행자들은 대개 빛나는 니밋따나 선정으로 빨리 가기를 원합니다. 선정은 놓아버림의 상태입니다. 그리고 선정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깊은 만족의 상태입니다. 그러니 '아름다운 호흡'에서 뭔가 원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만족감을 충분히 계발하십시오. 그러면(조건이 갖춰지면) 니밋따와 선정은 저절로(자연적으로) 일어날 것입니다.
다른 각도에서 보자면, 니밋따가 불안정한 이유는 여러분이 여전히 '행하는 것'의 간섭을 멈추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마타 수행은 심신心身(육체작용과 정신작용)이 고요해지는(정지하는, 멈춰지는) 과정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행하는 것'의 간섭을 멈추고 완전히 길을 비켜야 합니다. 깊은 수행은 진정으로 놓아버릴 때에만 일어납니다.
니밋따가 나타났을 때 '이게 뭐지?' '이게 선정인가?' 등의 질문을 하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의문은 수행의 과정을 방해합니다. 여행이 끝난(선정 상태에서 나온) 후에야 여러분은 여행의 모든 것을 평가할 수 있습니다. 수행 중에는 니밋따의 빛깔도 모양도 평가할 필요가 없습니다. 모두 불필요한 의문들입니다. 마음이 원하는 곳으로 기울도록 내버려두십시오. 그곳은 대개 니밋따의 중심입니다. 주의력이 바로 그 중심으로 빨려들 때, 또는 빛이 확장되어 여러분을 덮어버릴 때 그냥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여행을 즐기십시오. 마음이 저절로 지복至福으로 몰입되도록 그냥 놔두십시오. 마음이 저절로 선정 상태로 빠져들도록 그냥 놔두십시오.
.
7단계 : 선정
니밋따가 확장되고 지속되면 선정이 일어납니다. (선정은 대개 니밋따를 인지한 후에 일어나지만, 아라한 사리뿟따가 말했듯이 니밋따 없이 선정에 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선정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일반적으로 두 가지 장애가 있습니다. 그것은 흥분(들뜸)과 두려움입니다. 들뜸이 일면 선정에 들지 못합니다. 들뜸의 반응을 가라앉히고 모든 '와~'는 선정에서 나온 후로 미루십시오.
더 흔한 장애는 두려움입니다. 두려움은 자기 정체성의 본질적인 부분(자아의식 또는 아상我相)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에서 비롯됩니다. 선정 상태에서는 아상我相('나我'라는 상대적 분별식; 에고식 또는 자아의식)이 한시적으로 사라집니다. 이것은 이런 경험을 해본 적이 없는 초심자에게 큰 두려움을 주기도 합니다. 이러한 두려움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신뢰와 바로 앞에 있는 매혹적인 지복에 대한 끌림을 통해 극복될 수 있습니다. 법法(dhamma; 진리, 부처님 가르침)을 신뢰하고, 애씀 없는 에고 없는 지극히 행복한 경험, 선정의 경험 속에 여러분을 내맡기십시오. 모든 통제를 잠시 완전히 버릴 수 있는 용기를 가지십시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스스로 경험하십시오.
선정의 특징
선정은 긴 시간 동안 지속됩니다. 몇 분 동안 지속된 것은 선정이 아닙니다. 깊은 선정은 일반적으로 여러 시간 동안 지속됩니다. 선정에 들어가면 선택의 여지없이 그간 축척한 연료를 모두 소진했을 때만 빠져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마타 수행에 익숙해져서 '선정의 자유자재'를 이루면 선정에 들어있는 시간도 자유자재하게 조절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선정의 특징은 선정 중에는 외부의 소릴 듣거나 하는 등의 신체감각(오감각)을 경험하거나 생각을 일으키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오로지 사띠(알아차림)의 명확한 단일성, 변치않고 지속되는 비이원적 지복의 경험만이 매우 긴 시간 동안 존재합니다. 이것은 혼수상태나 깊은 수면상태가 아니라 매우 고양된 알아차림의 상태입니다.
- 아잔 브람, 『놓아버리기 (원제; Mindfulness, Bliss, and Beyond)』, 사마타 수행의 기본방법 5,6,7단계 (일부 수정 보완)
.
아잔 브람이 제시하는 사마타 수행의 기본방법;
1단계 : 현재순간 알아차리기(사띠하기)
2단계 : 생각없이 현재순간 알아차리기(사띠하기)
3단계 : 생각없이 현재순간의 호흡 알아차리기(사띠하기)
4단계 : 호흡에 대한 완전하고 지속적인 주의집중
5단계 : 아름다운 호흡에 대한 완전하고 지속적인 주의집중
6단계 : 아름다운 니밋따 경험하기
7단계 : 선정 삼매(초선정 삼매 ~ 제4선정 삼매)
.
__________________
『대념처경大念處經(마하 사띠빳타나 숫따; 사띠 확립 큰 경)』과 『념처경念處經(사띠빳타나 숫따; 사띠 확립 경)』은 팔정도를 닦는 수행의 실實수행(실제 수행, 본격적인 수행)인 사마타-위빠사나 수행에 있어서 매우 (가장) 중요한 경전이다.
부처님께서 이들 경전에서 사마타의 '바른 삼매[삼마sammā 사마디samādhi; 정정正定]'를 설(설명)하시는 부분을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수행자들이여, 무엇이 '바른 삼매[삼마sammā 사마디samādhi; 정정正定]'인가?
수행자는 감각적 욕망들로부터, 그리고 불선한 것(不善法)들로부터 벗어나서, 마음의 탐색적 작용[위딱까vitakka]와 회귀반성적 작용[위짜라vicāra]이 있는(아직 남아있는) 상태에서, (감각적 욕망과 불선법, 또는 신체감각 또는 세속을) 멀리 벗어남에 의해서 생겨난 희열[삐띠pīti]과 행복[수카sukha]이 있는, 그리고 (그 삐띠와 수카에 대한) 섬세하고도 확실한 자각[삼마사띠와 삼빠자나]의 심일경성心一境性[찟따-에깍가따citta-ekaggata; 마음의 전일성]을 갖춘 첫 번째 선정(초선初禪, 초선정 삼매)을 성취하여 머문다."
<각주 : 첫 번째 선정에 도달한 수행자에게는 다음과 같은 마음의 다섯 가지 요소(현상 또는 작용)가 있다. (맛지마니까야中部 43 『유명대경有明大經』 MN I, 294)
• 위딱까vitakka(심尋)
• 위짜라vicara(사伺)
• 삐띠piiti(희喜; 희열)
• 수카sukha(락樂; 행복)
• 찟따-에깍가따citta-ekaggata(심일경성心一境性)>
<각주 : 부처님께서는 삼매를 색계 삼매(물질적 요소를 집중 대상으로 드는 삼매)와 무색계 삼매(비물질적 요소를 집중 대상으로 드는 삼매)로 구분하셨는데, 특히 색계 삼매를 자나jhāna(선禪; 선禪은 자나..선나..선으로 변천된 자나의 한문 음사)라고 칭하셨다.
한문(중국어) 번역 경전에서는 자나jhāna(색계 삼매)를 대개 선禪 또는 선정禪定이라고 번역하는데, 정定(고요할 정定)은 사마디samādhi(삼매三昧는 사마디samādhi의 한문 음사)를 한문으로 뜻 번역한 것이니, 엄밀히 말하면 선정禪定은 '자나사마디jhānasamādhi'(선삼매禪三昧)다. 이하 자나jhāna(색계 삼매; 호흡과 같은 물질적 현상 또는 물질적 작용을 집중 대상으로 드는 삼매)를 '선禪 또는 선정 또는 선정 삼매'로 표기함.
자신이 든 삼매가 부처님이 설(설명)하신 초선정 삼매인지 아닌지는 마음 상태에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요소(현상 또는 작용)가 있는지를 점검하고 확인함으로써 판단할 수 있다. 이 다섯 가지 요소가 진정 무엇인가(어떤 것인가)는 초선정 삼매에서 나온 직후에 초선정 상태를 반조返照(되돌아 비추어 봄)해서 스스로 확인하고 알아내야 한다.
• 위딱까vitakka, 심尋(찾을 심尋), 심구尋求(찾을 심尋 + 구할 구求) : 니밋따(초선정 삼매에 진입하기 직전의 마음 상태에 대한 물질적 표상; 초선정 삼매에 진입하기 직전에 나타나지만, 아라한 사리뿟따가 말했듯이 경우에 따라서는 니밋따 없이 초선정에 드는 경우도 있음)가 아니라, 지복至福[삐띠와 수카]을 무의식적으로 반복하여 움켜쥐는(심구尋求하는) 마음의 탐색적 작용. 위딱까는 일종의 집착 작용이기도 하다.
• 위짜라vicara, 사伺(엿볼 사伺), 사찰伺察(엿볼 사伺 + 살필 찰察) : 위딱까(일종의 집착 작용)에 의해 멀어지는 초선정의 지복을, 다시 무의식적으로 집착을 반성하고(사찰伺察하고) 위딱까를 놓아버림으로써 지복으로 반복하여 되돌아가는 회귀반성적 작용. 위딱까-위짜라 반복 과정은 초선정 삼매 상태에서 아직 남아있는 마음의 미세한 흔들림(진동, 동요)이다.
• 삐띠piti, 희喜, 희열喜悦 : 고요한 희열, 기쁨. (수카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다소 거친 기쁨)
• 수카sukha, 락樂, 안락安樂, 행복幸福 : 깊고 고요한 행복, 평온하고 아늑한 행복감.
• 찟따-에깍가따citta-ekaggata, 심일경성心一境性 : 마음이 완전히 한 곳으로 고요히 모여 있는 상태, 순수 고요집중. 자아自我(스스로自 '나我'라는) 의식 사라짐; 고요한 멈춤, 시간의 멈춤, 시공時空 초월, 영원함, 궁극성, 비이원성非二元性(또는 무분별) 등으로 느껴지기도(경험되기도) 한다.
초선정에서는 '지복至福(지극한 행복), 즉 삐띠(고요한 희열; 다소 거친 기쁨)와 수카(고요한 행복)'에 대한 '미묘하고도 확실한 자각[정념正念과 정지知正; 삼마사띠와 삼빠자나]의 심일경성[찟따-에깍가따]'을 이루며 삐띠와 수카는 구분되지 않는다. 세 번째 선정(三禪, 제3선정 삼매)에 도달해서야 이 둘(삐띠와 수카)이 분리되고 수행자는 3선정 삼매에서 나온 후에 반조를 통해서 삐띠와 수카를 구분하게 된다.
‘삐띠와 수카’는 물질세계(오감각의 세계, 감각적 욕망의 세계-욕계欲界, 또는 속세)의 어떤 것도 능가(초월)하는 ‘지복至福(지극한 행복, 더 없는 행복)’으로 경험된다. 마음 상태에 위의 다섯 요소가 존재하고, 물질적인 오감각(신체감각)의 인식(전오식前五識)을 포함하여 그 외의 어떤 것도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면 그때가 초선정 삼매 상태다.
초선정 삼매는 일상의식으로는 알 수도 없고 상상조차도 할 수 없는, 지극한 행복(지복至福), 신성한 황홀경, 마음의 청정함, 청정한 성스러움, 고요한 멈춤, 자아自我(스스로自 '나我'라는) 의식 사라짐, 비이원성(무분별), 궁극성, 시간의 멈춤, 시공(시간-공간) 초월 등의 느낌이 부수적으로 동반되는 체험이므로, 그 체험(느낌)은 수행자를 압도한다.
이러한 초선정 또는 유사 근접 삼매의 체험에 압도되어 미혹한(현혹된) 사람은 이 체험을 자신이 믿는 어떤 '신(절대자, 신격화된 부처, 예수, 알라, 하느님, 브라만, 샤머니즘의 장군신, 조로아스터교의 거룩한 불의 신 .. 등)과의 합일 또는 접신, 신의 은총이나 강림 따위에 의해서 발생하는 초자연적인 경험(신비체험)이나 축복' 따위로 오해하기도 한다.
부처님은 '바른 삼매'[정정正定, 삼마 사마디; 바른 몰아 고요집중] 상태를 경험하게 하는 수행(수련, 훈련)을 '사마디(삼매) 바와나(계발 수행), 삼매를 계발하는(닦는) 수행 = 사마타'라 칭하셨다.
부처님은 팔정도를 '바와나bhāvanā(계발 수행, 계발하는 수행, 닦는 수행)'의 측면에서, '실라(계戒; 정어·정업·정명), 사마디(정定; 정정진·정념·정정), 빤냐(혜慧; 정견·정사유)' 세 부분으로 그룹핑하여 가르치셨는데, '바른 삼매를 계발하는(닦는) 수행'을 지칭하는 사마타는 '정정진(바른 노력/정진)·정념(바른 사띠)·정정(바른 삼매)' 바와나를 통칭한 것이다.
삼매 상태의 경험은 절대자, 신, 신격화된 부처, 예수, 알라, 하느님, 브라만신, 샤머니즘의 장군신, 조로아스터교(중국에서는 불을 숭상한다 해서 배화교라 불렸음)의 거룩한 불의 신 .. 등의 은총이나 강림 따위에 의해서 발생하는 초자연적인 경험(신비체험)이 아니라,
언제하든, 어디서하든, 누가하든 상관없이 조건이 갖춰지면 자연의 법칙에 따라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과학적 경험처럼, 언제하든(2500년 전에 하든 지금하든), 어디서하든(인도에서하든 한국에서하든 미국에서하든), 누가하든 상관없이 조건이 갖춰지면 자연의 법칙에 따라 누구에게나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마음의 몰아 고요집중 상태'에 대한 경험이므로 일종의 과학적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쉽게 체험할 수 있는 그런 경험은 아니다.
삼매(몰아 고요집중) 상태에 들어가면 외부의 오감각(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의 신체 감각)이 전혀 인식되지 않고(전오식 사라짐; 오감각으로부터의 해탈?) '나(我) 또는 내 몸'이 사라진 듯이 느껴진다. 무아無我라고 할 수는 없지만 '스스로(自) 나(我)라는 상대(相)적 분별식'(자아의식, 아상我相)이 바른 삼매 상태에서는 한시적으로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다. 여기서 몰아沒我는 아상我相('나我'라는 상대相적 분별식) 또는 자아의식이 잠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잠길 몰沒) 상태를 의미한다.>
<각주 : 한문(중국어) 번역경전에서 념念(생각 념念; 마음에 둠, 기억함)이라고 한역하는 고대인도어 사띠sati는 부처님 가르침(설법; 법法을 설명함)에서 '마음챙김, 전념함, (되)새김, 기억함, 전념하여 또는 마음챙겨 알아차림, 빠자나pajāna(알아차림, 앎), 깨어있음' 등의 의미로 사용된다. 사띠sati는 대개 빠자나pajāna(알아차림)를 포함한 의미로 사용되지만 강조하기 위해서 마음챙김[사띠sati]과 알아차림[빠자나pajāna]으로 분리해서 사용되기도 한다.
한문 번역경전에서 정념正念이라고 한역하는 삼마사띠samma-sati도 대개 삼빠자나sam-pajāna(바른 알아차림)를 포함한 의미로 사용되지만 강조하기 위해서 바른 마음챙김[삼마사띠samma-sati]과 바른 알아차림[삼빠자나sam-pajāna]으로 분리해서 사용되기도 한다.
참고로 삼빠자나sam-pajāna에서 ‘삼sam’을 빼면 ‘빠자나pajāna’인데, ‘빠자나’의 동사형이 ‘빠자나띠pajanati’다. 빤냐paññā(혜慧, 지혜; 반야般若는 빤냐paññā의 한문 음사)의 동사형도 ‘빠자나띠pajanati’이다. ‘삼sam’은 흔히 삼붓다, 삼보리, 팔정도의 삼마사띠(바른 사띠; 정념正念) 등등’에서처럼 단어 앞에 붙는 접두어로 ‘바른’이라는 뜻이다.>
.
"수행자는 위딱까-위짜라(마음의 미세한 흔들림, 진동, 동요)가 가라앉음으로 인해 마음이 (더욱 고요한) 평온하고 집중된 상태가 되어, 위딱까-위짜라가 없는 삼매에 의해서 생긴 희열[삐띠]과 행복[수카]의 정결浄潔[sampasadana]함이 있는, 그리고 (그 삐띠와 수카에 대한) (더욱) 섬세하고도 확실한 자각[삼마사띠와 삼빠자나]의 심일경성心一境性[찟따-에깍가따citta-ekaggata; 마음의 전일성]을 갖춘 두 번째 선정(二禪, 제2선정 삼매)을 성취하여 머문다."
<각주 : 초선정 삼매를 이루는 마음 상태의 다섯 요소(현상 또는 작용)인 ‘위딱까, 위짜라, 삐띠, 수카, 심일경성[찟따에깍가따]’ 중에서 ‘마음 작용의 미세한 요동(흔들림, 동요)인 위딱까와 위짜라’를 가라앉히고, 더 깊고 고요한 ‘삐띠, 수카, 심일경성’, 이 세 요소만 남게 되면 그때가 2선정 삼매다.>
"수행자는 (상대적으로 거친) 희열[삐띠]이 가라앉음으로 인해 마음이 (더욱 더 고요한) 평정[우뻭카upekkha]한 상태에 머문다. 성인聖人(예류자~아라한)들이 말하는 '평정[捨; 우뻭카]에서 사띠[念]를 갖추어 행복[樂; 수카]에 머문다[捨念樂住]'고 하는, (더욱 더 고요한) 평정심[우뻭카]에서 오는 행복감[수카]에 대한 (더욱 더) 섬세하고도 확실한 자각[삼마사띠와 삼빠자나]의 심일경성心一境性을 갖춘 세 번째 선정(三禪, 제3선정 삼매)을 성취하여 머문다."
<각주 : 2선정 삼매 상태에서의 상대적으로 거친 삐띠(희열)를 가라앉히고, 더 고요하고 깊은 집중이 이루진 가운데 더욱 더 고요하고 깊은 수카(행복감)와 그 수카에 대한 심일경성(고요집중의 사띠)만 남게 되면 그때가 3선정 삼매다.>
"수행자는 이미 기쁨, 슬픔, 만족, 불만족의 느낌은 완전히 끊어졌고, 이제 괴로움[둑카]도 즐거움[행복; 수카]도 떠나서(벗어나서, 뛰어넘어서) (둑카와 수카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우뻭카와 사띠의 청정함[upekkha-sati-parisuddhi; 捨念淸淨]이 있는 (또는 온전히 청정한 평정심에 의한 사띠의 청정함이 있는), 그리고 (온전히 청정해진) 평정심[우뻭카]에 대한 (온전히) 섬세하고도 확실한 자각[삼마사띠와 삼빠자나]의 심일경성心一境性을 갖춘 네 번째 선정(四禪, 제4선정 삼매)을 성취하여 머문다.
수행자들이여, 이것을 ‘바른 삼매[삼마sammā 사마디samādhi; 정정正定]'라고 한다."
<각주 : 3선정 삼매 상태에서의 ‘수카’마저 가라앉히고, 더욱 더 고요한 상태에서 온전히 청정해진 평정심[우빽카]과 그 평정심에 대한 극도로 고요히 집중된 심일경성(극대화된 고요집중의 사띠)만 남게 되면 그때가 4선정 삼매다.
사마타 후에 하는 깊은 빤냐(혜慧; 정견·정사유) 바와나(계발 수행), 즉 신수심법身受心法(자신과 세상)에 대한 깊은 정견(바른 관찰/통찰)-정사유(바른 사유)를 통해서 통찰지혜를 계발하는 수행인 위빠사나에 필요한 고요집중의 사띠와 우뻭카(평정심; 평정한 마음 상태), 즉 탐(갈망, 탐욕)·진(혐오, 성냄)·치(갈망과 혐오에 대한 집착의 어리석음)에서 벗어난 평정한 마음 상태가 4선정 삼매에서 극대로 계발된다.
그러나 4선정 삼매에서 극대로 계발되는 고요집중의 사띠와 우뻭카(평정심)도 삼매에서 나온 후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잦아들어 사라지고 다시 탐진치와 번뇌가 되살아난다. 선정 삼매에서 계발되는 고요집중의 사띠와 우뻭카(평정심)는, 수행자가 들었던 선정 삼매의 깊이와 수행자가 처한 주변환경(경계)에 따라 다르지만, 4선정 삼매에 들었다 나온 경우 길게는 수 일 동안 '한시적'으로 유지된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누누이 강조하셨듯이, 삼매에서 나온 후 법열法悅(삼매 체험으로 생기는 무아지경의 황홀경)에 취해서 허송세월하지 말고, 삼매 상태에서 계발되어 '한시적'으로 유지되는 극대화된 고요집중의 사띠와 우빽카(탐진치에서 한시적으로 벗어난 평온하고 평정한 마음 상태)를 이용해서 신수심법(身受心法; 자신과 세상)을 '있는 그대로' 깊이 정견(바르게 관찰/통찰)-정사유(바르게 분석 사유)하여 자신과 세상의 실상(실제 모습)과 진리(진실한 이치; 자연의 이치/법칙, 연기의 이치/법칙; 법法)를 여실히(있는 그대로) 꿰뚫어 아는 통찰지(통찰지혜)를 계발하는 수행을 해야만 한다.>
<각주 : 선정의 자유자재
사마타(바른 선정 삼매를 계발하는 수행)에 숙달된 수행자로서 높은 경지에 도달하여 머무는 사람이라면 손가락 한 번 튕길 사이에도 입정入定(선정 삼매에 듦) 할 수 있다고 한다. 심신心身이 안정된 상태에 머무는 사람으로서 머리가 베개에 닿자마자 깊은 잠에 드는 사람과 유사한 능력(?)인 셈이다
부처님 당시의 아라한들은 모두 손가락 한 번 튕길 사이에 입정할 수 있을 정도의 자유자재한 선정 능력을 지녔다고 전해진다. 경전에 기록된 선정의 자유자재는 아래와 같다
• 전향의 자유자재 : 언제든 선정의 조건들로 자유자재하게 전향함
• 입정의 자유자재 : 언제든 자유자재하게 선정에 입정함
• 머묾의 자유자재 : 언제든 선정에 들어 자유자재하게 머물 수 있음
• 출정의 자유자재 : 언제든 자유자재하게 선정에서 나올 수 있음
• 반조의 자유자재 : 언제든 자유자재하게 선정조건들과 선정상태를 반조함
어쩌다 한 번 경험하는 선정 삼매는 바와나-빤냐[수행 지혜 또는 통찰 지혜; 신수심법에 대한 미시-일상-거시적인 통찰(깊은 관찰) 경험에 의해서 생기는 수행 지혜 또는 통찰 지혜]를 계발하는데 쓸모가 없다.
팔정도 바와나[팔정도를 닦는(계발하는) 수행]를 완성하고 정각을 증득하기 위해서는 선정의 자유자재를 계발해야 한다.
사마타를 숙달시켜서 선정의 자유자재를 계발하면 할수록 위빠사나(사마타로 계발된 초강력 고요집중의 사띠 능력을 사용하여 깊은 정견-정사유를 계발하는 수행)를 통해서 바와나-빤냐(수행 지혜 또는 통찰 지혜)를 더 발전 향상시킬 수 있고 팔정도 바와나 전체가 더 발전 향상된다.
여기서 바와나bhāvanā는 '계발 수행, 계발하는(닦는) 수행'을 뜻하는 고대인도어다. 팔정도 바와나, 즉 '실라(계戒; 정어·정업·정명)•사마디(정定; 정정진·정념·정정)•빤냐(혜慧; 정견·정사유) 바와나(계발 수행)'를 한문 번역경전의 표현으로 말하면 '계戒•정定•혜慧 삼학三學'이고 부처님이 사용하신 고대인도어로 말하면 '실라•사마타•위빠사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