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LIFE /사회

1980년 6월 1일_이오덕 일기



1980년 6월 1일 
 
오다가 교구청에 들렀다.
전남대학에서 나온 인쇄물을 읽었다.
아, 천인공노할 이 만행!
젊은이는 보는 대로 모조리 잡아 죽여
"오늘은 몇 마리 잡았나" 하는 것이
그 공수부대원들의 말이었다니!
역전 광장 분수대에 여학생을 매달아
발가벗기고
칼로 젖가슴을 도려냈다니!
그리고는 선량한 시민을 폭도라 하고
2천 명이 죽고 만 몇천 명이 부상하고
죽은 사람의 얼굴에 콜타르를 칠해서 알아볼 수도 없게 하고
아, 이 극악무도한 학살 행위가 이 땅 여기서 겨우 몇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곳에 벌어졌는데도
이놈의 경상도 땅에서는 그 폭도들의 욕을 하고
전라도놈들 좀 당해야 한다고 하고
주여, 하나님이여 당신은 어디 가 있나이까.
하루를 굶기고 또 하루를 잠재우지 않고 술을 퍼 먹인 공수부대에게
가서 모조리 찔러 죽이라고 한 악마를
당신은, 보고만 있는 당신은 대체 누구의 편입니까?
교구청을 나와 그래도 먹고살겠다고
좁쌀이며 감자를 사 가지고 차를 타고 온 나는 사람인가, 짐승인가.
짐승이야 얼마나 착한가. 벌레야 얼마나 거룩한가. 나는 어찌 극악무도한 인류에 속해
이렇게 일기에 적는 것도 훗날 어떤 기회에 들킬까 겁을 내는 비겁을 가졌구나.
비겁을 가졌구나! 
 
<이오덕 '이오덕 일기' 중>


맨 위로 맨 아래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