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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DDHISM/담마코리아_고엔카지

담마코리아 10일 명상코스 후기 2

다섯째 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계속 위빠사나 명상을 하면서 고통에 반응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 끔찍한 다리의 고통을 잊으려면 다른 부위의 감각에 집중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다리에서 난리가 나더라도 나는 머리의 감각에 집중했다. 머리에서 목으로, 가슴으로, 팔로, 천천히 내려와 다시 다리에 감각을 집중하고는 발을 거쳐 다시 머리로 돌아갔다. 이렇게 몸의 감각에 집중하다 보면 어떤 감각도 영원히 지속되진 않는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깨닫게 된다. 그리고 다리 저림을 고통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저 감각일 뿐이라고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훨씬 견딜만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것을 부처님 시대의 언어인 빨리어로 ‘아니짜’(Anicca, 무상)라고 한다. 위빠사나 명상을 계속 하다보면 이 진리를 지적 차원이 아니라 경험적 차원에서 몸으로 깨닫게 된다. 어제는 다리가 너무 아팠는데 오늘은 다리가 멀쩡하고 어깨가 아프다. 방금 전까지 등에서 미세한 감각을 느꼈는데 지금은 거칠고 둔한 감각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등등. 그래서 고엔카 선생님은 법문에서 그 어떤 감각도 갈망하거나 혐오하지 말라고 했다. 왜냐면 그 어떤 것도 영원히 지속되지 않기 때문이다. 무상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저 아니짜, 아니짜, 하며 감각을 관찰하라고 했다. 이런 식으로 감각에 반응하지 않고 평정을 유지하는 훈련을 계속하면 일상생활에서 힘든 일이나 기쁜 일을 겪을 때 마음의 평정을 유지할 수 있다고 했다. 또 몸의 감각에 집중하다 보면 자신이 그동안 쌓아온 상카라들이 하나하나 떠오르는데, 그것들에 반응하지 않으면 그 부정성은 점점 약해진다고 했다.



명상의 놀라운 효과를 체험한 것은 일곱째 날이었다. 그날이 가장 힘들었기 때문이다. 과거에 내 딴엔 잘 해 보려고 머리를 이리저리 굴려가며 어떤 선택을 했었다. 그런데 명상을 하다가 그 선택이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간을 과거로 돌려 바로잡고 싶었지만 천만금을 줘도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나는 몹시 괴로워졌고 내가 미워졌다. 묵언을 깨고 누구라도 붙잡고 ‘저 아직 괜찮죠? 괜찮겠죠? 괜찮을까요?’ 하고 호소하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 마음 정리가 안 된 상태로 단체 아딧타나 명상에 들어가야 했다. 그런데 명상을 시작할 때만 해도 너무나 괴로웠던 마음이, 한 시간 동안 몸의 감각에 집중하자 놀랍도록 평화로워졌다. 갑갑한 어깨 통증에 쌓여 있는 내 화를 보았다. 가슴통증에서 느껴지는 우울함을 보았다. 아무 감각도 없는 다리에서 슬픔을 보았다. 하지만 그 감각들은 영원하지 않고 계속해서 변하고 있었다. 그러니 이것도 곧 지나갈 것이다. 모든 것이 무상하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점점 가벼워졌다. 울면서 시작한 명상을 한 시간 뒤 웃으면서 마치고 나자 집으로 돌아간 뒤에도 꼭 명상을 계속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어떤 것도 영원할 수 없는데 우리는 무언가를 갈망하고 혐오한다. 원하는 일이 잘 되지 않을 때, 또는 원치 않은 일을 마주할 때 느끼는 부정성이 우리 자신을 고통으로 몰아넣는다. 속세의 생활은 대개가 부정성을 끊임없이 개발하는 일이었다. 회사생활 역시 그랬다. 일에 대해 그리고 사람에 대해, 싫은 것이 갈수록 많아졌다. 잘 웃고 선한 사람이 바보가 되는 특유의 분위기가 있었다. 남에게 부정성을 강하게 드러낼수록 노련하고 프로페셔널하고 세련되어 보이는 이상한 사회였다. 나는 그곳에서 매주, 매월, 매년 경력을 쌓는다는 명목으로 부정성 위에 부정성을 쌓아 왔다. 그건 전적으로 내 무지 탓이다. 비유하자면 마치 남들이 다 담배를 피우니까 나도 담배를 펴야지, 하는 것과 비슷했다. 부정성을 쌓는 것이 나 자신을 얼마나 힘들게 하는 것인지 알았더라면 남들이 다 그런다고 해서 나까지 물들지 않았을 것이다.


명상을 하면서 맥락 없이 과거의 일들이 하나씩 떠올랐다. 완전히 잊고 있었던 초등학교 때 첫사랑의 얼굴이 툭, 하고 떠오르기도 했고 어렸을 때 부모님과 같이 간 장소라던가, 그때 먹은 음식이라던가 그런 기억들이 뜬금없이 떠올랐다. 한때 인연을 맺었던 여러 사람들의 얼굴도 떠올랐다 사라졌다. 그때 당시에는 그것들이 영원할 줄 알았다. 하지만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았다. 그렇게 작았던 나는 이만큼 컸고 그렇게 젊었던 엄마 아빠는 이만큼 늙었다. 소중한 사람들을 한 명 한 명 떠올려 보며 앞으로 함께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생각했다. 그동안 일과 진로와 미래에 대해서만 생각했는데, 처음으로 그것보다 더 큰 것 - 태어남과 죽음과 늙어감에 대해, 한 세대가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명상할 때마다 반복되는 '아니짜'- 모든 것은 변한다는 말에 현재가 몹시 소중하게 느껴졌다. You only live once라던가, 내일 죽을 것처럼 오늘을 살자는 말을 나는 잘못 이해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건 반드시 회사 때려치우고 세계여행을 떠난다거나 내일은 없는 것처럼 진탕 술을 먹는 등, 하고 싶은 것을 다 하고 살라는 뜻이 아니었다. 그것은 현재에 살라는 뜻이었다. 그냥 이대로 살다가 내일 죽더라도 아쉽지 않을 만큼, 나의 오늘이 행복해야 했다. 회사를 다니더라도 오늘 내게 주어진 시간과 공간을 소중히 하고, 선하고 평화로운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하고, 남의 부정성에 내 마음을 다치게 하지 말아야 했다. 만약 그것이 도저히 불가능한 환경이라면 돈과 안정과 인정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사뿐히 떠날 수 있어야 했다. 왜냐면 모든 것은 변하고, ‘나’도 ‘내 것’도 없으며, 우리는 곧 늙고 병들어 죽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짜, 모든 것은 변한다


힘들다면 힘든 10일 명상 과정을 버티게 해 준 것은 밥심이었다. 순수 채식 식단으로 구성되는 이 곳의 밥은 정말 맛있었다. 기교없이 단순한 반찬이었지만 항상 정성이 가득했고 먹고 나면 속이 편안했다. 아침은 간단히 죽과 토스트가 제공되 점심은 두세가지 반찬과 국이 나오는데 늘 적게 먹어야지, 하면서도 음식에 대한 집착만은 버리기 어려웠다. 나름 끼니 때마다 많이 먹는다고 먹었는데 집에 가서 몸무게를 재어 보니 2kg가 빠져 있었다. 확실히 속세에 있을 때보다 적게 먹고, 건강하게 먹고, 늦은 밤에 먹지 않으니 다이어트가 되는구나 싶었다. 이 곳 부엌 역시 과거에 명상코스를 들은 구수련생들의 자발적인 봉사로 운영된다.


코스 중에는 자원봉사자 분이나 지도선생님과는 수련에 대해, 또는 생활의 불편함에 대해 언제라도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수련생들끼리는 '거룩한 침묵'(Noble silence)을 유지해야 했다. 대화를 비롯한 일체의 접촉을 해서는 안됐기 때문에, 아침에 눈을 뜬 이후론 복도에선 늘 고개를 숙이고 다녔다. 혹여 다른 수련생과 부딪히게 될까봐 적당한 거리를 두고 다녔고, 사람의 얼굴을 빤히 본다던가 우산을 함께 쓰는 등의 접촉도 하지 않았다. 한번은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정전으로 인해 잠시 불이 꺼진 적이 있다. 보통의 경우라면 누구라도 정전에 대해 이야기를 했을 테지만, 우리는 '거룩한 침묵' 중이었기 때문에 스무명 남짓한 수련생들 모두 아무 말 없이 눈앞의 밥에만 집중했던 기억이 있다.

눈 내린 여자 숙소 앞


11일째 되는 날 거룩한 침묵이 해제되고 수련생들은 다음 차수 수련생들을 위해 기부를 하게 된다. 보통 우리는 내가 먹고 자고 수업듣는 것에 대해 값을 지불하는데, 그러면 이것이 '내 것'이라는 집착과 분별심을 갖게 된다. 내가 돈을 얼마를 냈는데 왜 밥이 이렇게밖에 안 나오냐, 는 식이다. 하지만 이곳은 구수련생들의 보시로 다음 차수가 운영되고, 남의 보시로 코스를 마친 수련생들이 또 다음 차수에 대한 보시금을 내는 식으로 운영된다. 스님이 탁발을 하여 밥을 얻어먹는 것처럼, 비록 12일 간이지만 남의 보시로 살아보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일절 금액에 대한 제한이나 강요는 없었다. 물질적으로 보시하기 어려운 경우 쌀 같은 식료품을 보낸다거나, 시간될 때 와서 봉사를 하는 식으로 단체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나는 현금으로 보시를 하긴 했지만 여기서 받은 것에 비해서는 한참 부족한 금액이라고 생각한다. 다음에 시간이 된다면 며칠이라도 와서 봉사를 하고 싶다.


12일의 코스를 마치고 나오며 휴대폰을 받았다. 근 2주간 쌓인 뉴스들을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카톡을 켜자마자 잊었던 부정성이 떠오르는 것을 보니 속세에서 부정성을 내지 않기란 참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옆자리에서 같이 명상한 사람들과 오랜 묵언을 깨고 이야기를 나누며 진안터미널로 왔다. 옆자리 언니의 친구분이 차를 타고 마중을 나와 있었다. 속세와 한동안 단절되었던 우리는 그 친구분에게 지난 12일간 한국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물었다.

“포항에 지진이 나서 수능이 일주일 연기됐어요.”

“에이, 거짓말하지 마세요ㅎㅎ” (믿지 않음)

“진짠데? 아 그리고 북한군 한 명이 공동경비구역 넘어와서 귀순했어요. 총 몇십 발 맞았는데 다행히 수술하고 살았어요.”

“에이, 거짓말 너무 잘하시는 거 아니에요? ㅎㅎㅎ” (믿지 않음)

그것들은 모두 진실이었다. 과연 다이내믹 코리아!




담마코리아 위빠사나 10일 코스는 이런 분들에게 추천한다.

- 12일의 시간을 낼 수 있는 사람

- 시간은 많은데 상대적으로 돈은 없는 사람

- 스스로 부정성과 에고가 강하다고 느끼는 사람

- 전환점에 선 사람. 그동안의 삶을 정리하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고 싶은 사람

- 인간관계 디톡스, 디지털 디톡스가 필요한 사람

- 하루 11시간, 명상을 제대로 배워보고 싶은 사람

- 명상하면서 동시에 허리 사이즈를 줄이고 싶은 사람


12일의 시간을 내기 어려운 분은 고엔카 선생님의 책을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22540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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