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쾌락주의와 불교 감각적 경험만 강조하다 교리적 모순에 봉착 쾌락주의란 무엇인가. 쾌락을 인간 행위의 궁극 목적이자 도덕의 기준으로 삼는 사상적 경향을 가리킨다. 불교가 출현할 당시 일부 사상가들은 잘 먹고 잘 노는 것만이 인생의 유일한 목적이라고 주장했다. 짜르와까Carvaka 혹은 로까야따Lokayata 등으로 일컬어지는 그들은 현상계 너머 혹은 죽음 이후의 세계를 부정하고서 감각적 경험만을 앎의 유일한 원천으로 인정하였다. 그들에 따르면 죽고 이후 다른 더 좋은 세상에 태어날 목적으로 현재의 쾌락을 포기하는 것은 지극히 어리석은 짓이다. 신이라든가, 영혼, 천국과 지옥 따위는 바라문교의 사제들을 현혹하기 위해 고안해 낸 거짓에 불과하다. 쾌락주의에서는 경험에 근거하지 않은 지식은 허구로서 거부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세상을 구성하는 유일한 실재는 물질이며, 물질이 모이고 흩어지는 과정에서 인간의 의식이 발생한다. 발효된 누룩으로부터 술의 취기가 나오는 것과 같이 의식 또한 육체의 조화에 의해 발생한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하다. 우리가 영혼이라고 부르는 것 또한 의식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신을 우주의 창조자 혹은 유지자로 간주하지만 신은 지각되거나 경험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따라서 신은 알 수도 경험할 수도 없거니와 설령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경험 세계에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 없다. 쾌락주의자들은 죽음을 절대적 소멸로 보았으며, 그렇기 때문에 죽기 이전에 최대한 즐거움을 누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고행을 하거나 금욕을 하는 것은 불필요한 자기 학대이자 망상의 소치라고 가르쳤다. 또한 재물을 모으는 행위 역시 재물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쾌락을 누리기 위한 수단으로 모아야 한다고 보았다. 그들은 고통보다 더 많은 즐거움을 가져오는 행위는 선이고, 즐거움보다 더 많은 고통을 초래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악으로 규정하였다. 현명한 사람이라면 가급적 모든 고통을 피하거나 혹은 최소한으로 줄이면서 최대한의 쾌락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고 여겼다. 쾌락주의는 당시 인도 사회를 지배했던 바라문교에 대한 저항의 분위기에서 구체화되었다. 그들은 경험 세계를 초월한 무언가를 가르치는 모든 유형의 교리들에 대해 맞섰다. 예컨대 브라흐만과 아뜨만이 동일하다는 범아일여梵我一如의 교리는 현실의 부조리와 불공평을 은폐하기 위해 바라문 사제들이 꾸며 낸 이야기에 불과하다. 이러한 관점은 당시 사회적 약자였던 비바라문 계급에게 자신을 둘러 싼 세계의 실상을 공정히 바라볼 수 있도록 해주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가 가능하다. 더욱이 일부 세련된 쾌락주의자들은 쾌락의 질적 차이를 인정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쾌락을 이웃과 나눌 필요성도 인정했다. 따라서 쾌락주의에 대해 무작정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교양 있는 쾌락주의의 신봉자들은 자제력과 분별력을 갖추고 있었으며, 세련된 취미와 순수한 우정 따위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기울렸다. 그들은 철학적 사고의 진전과 더불어 출현한 자유분방한 진보적 지식인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쾌락주의는 불교의 출현에도 좋은 밑거름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바라문교의 계급제도에 맞서 모든 인간의 평등함을 일깨운 붓다의 행적은 일정 부분 쾌락주의와 입장을 공유한다. 또한 현상계를 넘어선 궁극적 실재에 대한 부정 역시 무아설無我說에 대해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쾌락주의는 감각적 경험만을 지나치게 강조한 결과 자체적인 교리적 모순에 봉착하고 만다. 예컨대 "경험 가능한 지식만이 타당하다"는 스스로의 주장 자체가 경험적으로 검증될 수 없다는 난점이 지적된다. 또한 쾌락에 대한 의존은 권태와 허무의 감정만을 낳을 뿐이고, 더욱 강력한 새로운 쾌락을 부추긴다는 자각과 반성을 불러일으켰다. 따라서 붓다는 쾌락에 몰두하는 짓을 천하고 범속하고 거룩하지 못한 것으로 규정하였다. 그는 쾌락의 추구가 완전한 깨달음과 열반으로 나아가는 데 보탬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였다. 그리하여 쾌락주의도 버리고 고행주의도 떠난 중도中道로써 실천해 나갈 것을 권장하였다. 16. 숙명론과 불교 업에 따른 운명 비판… 노력에 의한 변화 강조
불교는 숙명론인가. 불교에 대한 초보적인 오해 중의 하나가 숙명론이 아닐까 싶다. "뿌린 대로 거둔다", "전생의 업보다", "팔자는 못 속인다"는 따위의 말들이 이러한 오해를 부추긴다.
그러나 불교는 숙명론과 근본적으로 다르며, 오히려 숙명의 굴레를 벗어나는 데에 주력한다. 불교의 궁극 목적인 해탈과 열반은 바로 그것을 벗어날 때 얻어지는 절대적인 자유의 경지이다. 따라서 숙명론은 초기불교 이래로 극복의 대상이 되어 왔다는 점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로 이해해야 한다. 인도철학의 무대에서 숙명론을 표방했던 대표적인 학파로서 아지비까Ajivika 혹은 사명외도邪命外道의 무리가 있었다. 그들은 인간의 삶이 필연적인 법칙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았다. 선한 행위이든 악한 행위든 어떤 행위를 하더라도 그러한 행위 자체가 결정된 법칙에 의한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만약 누군가가 착한 행위를 했다면 그것은 착한 행위를 하도록 정해진 운명에 따른 것일 뿐이다. 따라서 착한 행위에 대해 특별히 칭찬하거나 기뻐할 필요가 없다. 이것은 나쁜 행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한 이유에서 아지비까는 모든 행위에 대해 좋다거나 나쁘다는 가치판단을 내릴 수 없다고 주장한다. 아지비까에 의하면 운명niyati 이라든가 천성bhava 은 현재의 자신이 있게 된 이유이다. 인간으로 태어난 것도 운명이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도 운명이다. 따라서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것만이 최선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아지비까는 인간의 노력이나 의지를 전면적으로 부정하였다. 이와 같은 숙명론적 사고는 예나 지금이나 우리에게 매우 친숙하다고 할 수 있다. 예컨대 미래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들 중에는 아직도 사주나 관상 따위에 의존하는 경우가 있다. 거기에서 우리는 숙명론적 사고의 잔재를 보게 된다.그런데 아지비까는 자유의지를 부정했지만 자유의 가능성 자체는 부인하지 않았다. 그들은 끝없이 이어지는 탄생과 죽음이라는 자연적인 과정을 겪다 보면 언젠가는 자유롭고 청정한 상태에 도달한다고 믿었다. 그들은 이것을 산꼭대기에서 던져진 실타래에 비유한다. 정상에서부터 풀리기 시작한 실타래는 차츰 작아지면서 그 크기만큼 아래쪽으로 죽 늘어진다. 그러다가 완전히 풀린 상태가 되면 멈춰 선다. 다른 어떤 노력이나 외부적인 개입도 실의 길이 자체를 변화시킬 수 없다. 이렇듯이 모든 사물은 정해진 역할대로 움직이다가 그것이 다하면 멈춘다. 바로 이것이 아지비까가 생각했던 부자유한 삶으로부터의 벗어남 즉 해탈이었다. 아지비까의 숙명론은 인간의 삶에서 불가항력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요인들에 대한 경각심을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 약간의 의의가 인정된다. 대부분의 인간은 타고나 천성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며 주변의 환경으로부터도 그러하다. 그러나 아지비까는 우리가 이러한 요인들에 대해 전적으로 무기력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주어진 실타래의 크기는 한정되어 있을 수 있지만, 그것에 대해 능동적으로 생각하고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을 놓치고 있다. 얼마든지 주체적으로 삶을 개척해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 이점에서 아지비까의 숙명론은 그 한계를 여실히 노출한다.
붓다는 아지비까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그대들이여, 만일 그렇다면 생명을 죽이더라도 이전에 정해진 원인에 의해서일 것이고, 도둑질을 하더라도 이전에 정해진 원인에 의해서일 것이고, 삿된 음행을 하더라도 이전에 정해진 원인에 의해서일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전에 정해진다고 진심으로 믿는 자에게는 도무지 의욕이나 열의가 있을 수 없고, 또한 '이것은 해야 하고 이것은 하지 말아야 한다.'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 이와 같이 그들은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 진실하고 확고하게 알지 못한다.…"17. 단멸론과 불교
절대적 소멸 주장에 침묵으로 대처하다
단멸론斷滅論이란 무엇인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는 반드시 소멸하여 없어진다는 주장을 가리킨다.
특히 초기불교에서 문제시하는 단멸론은 죽음 이후의 삶을 부정하고서 업에 의한 지음과 받음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를 지칭한다. 이러한 주장은 무아無我의 가르침과 혼동을 일으켜 불교적 가르침으로 오인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붓다는 죽고 난 이후의 삶 혹은 내세를 부정하지 않았다. 그는 착한 행위를 하면 천상에 태어나고 악한 행위를 하면 지옥에 태어난다고 가르쳤다. 어떠한 경우라도 죽고 나면 그대로 소멸하여 없어지고 만다는 방식의 가르침을 펼치지는 않았다.
일부 학자들은 초기불교가 무아를 가르쳤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단멸론과 흡사한 방식으로 이를 설명한다. 그들에 따르면 무아란 말 그대로 자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개인 존재의 연속성에 대한 부정을 의미한다. 이러한 무아 해석은 고착화된 자아Atman 관념을 극복하는 데 얼마간이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행위의 책임 소재를 불분명하게 만들고, 미래를 위한 노력을 상쇄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이 순간의 '나'가 정말로 이 순간에 그친다면 과연 누가 내일의 '나'를 위해 고민하겠는가, 죽고 나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장인데, 도대체 무엇을 위해 현실의 어려움을 감내하겠는가.
붓다는 현상계를 넘어서 존재한다고 여겨지는 불변적 실체로서의 자아라든가 영혼에 대해서는 부정했다. 그러나 오온五蘊으로 이루어진 경험적 자아 혹은 영혼은 부정하지 않았다. 그는 인격의 주체로서의 자아에 대해서는 기꺼이 인정하였고, 사후의 세계에도 그것은 계속된다고 가르쳤다. '자니사경' 에 나타나듯이 붓다는 수많은 사람들의 전생轉生에 관한 이야기를 매우 상세하게 들려준다. 초기불교 경전에 근거하는 한 붓다는 내세와 윤회를 인정하였다. 윤회를 멈춘 사후의 아라한에 대해서도 생각과 논의의 범위를 벗어났다고 말했을 뿐, 존재하지 않는다는 따위의 단정적인 어투를 사용하지는 않았다.
"모든 것이 단절되어 소멸한다" 는 주장은 일종의 형이상학形而上學에 해당한다. 이와 같은 형이상학적 주장에 대해 붓다는 냉소적인 태도를 취했으며 또한 성스러운 침묵(무기無記)으로 대처했다. 우리는 경험 영역을 살아가는 까닭에 경험을 벗어난 문제에 대해 함부로 이야기하지 말아야한다. 경험적으로 입증되지 않는 생각들은 불필요한 논쟁의 빌미만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단멸론자는 절대적인 소멸을 주장한다. 붓다에 따르면 이러한 주장은 "모든 것이 영원하다"는 정반대의 논리와 마찬가지로 아무런 타당성도 지닐 수 없다. 경험을 벗어난 관념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초기불교에서는 영원하다는 주장과 마찬가지로 단멸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삿된 견해見解로 간주한다.
단멸론은 육신만을 절대시하고서 육신의 죽음을 완전한 소멸로 본다. 이러한 사고는 전통적인 서구적 영혼 관념에 거부감을 느끼는 현대인에게 상당한 호소력을 발휘하는 듯하다. 그러나 이러한 허무주의 혹은 염세주의를 조장한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또한 도덕의 부정과 쾌락주의를 부추길 수도 있다. 사실 현대의 물질문명에는 이와 같은 쾌락주의와 허무주의의 요소가 얼마간 포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거기에는 죽음 이후의 세계를 애써 부정하려는 단멸론적 사고가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다.
모든 존재는 영원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사라져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바른 지혜를 갖춘 사람은 계속됨을 보면서 없어진다고 말하지 않는다. 또한 사물의 사라짐을 보면서 영원하다고도 말하지 않는다. 붓다는 이러한 입장에 서서 있음과 없음의 논리에 현혹되지 말라고 이른다.
"모든 것이 존재한다는 주장도 극단적이요, 모든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도 극단적이다. 여래는 이러한 두 가지 극단에 다가가지 않고 그 가운데에서 가르침을 드러낸다."
붓다는 우리에게 영원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 아이러니한 존재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수용할 것을 요구한다.
18. 힌두교와 불교
개개의 차이 무시·계급제도 용인 비판 대상
힌두교란 어떤 종교인가.
흔히 인도(Indo, Hindu)에 뿌리를 둔 다양한 신앙 형태의 복합체로 설명한다.
불교 또한 인도에서 출현하였다. 따라서 넓은 의미로 불교를 힌두교에 포함시키는 경우가 있다. 실제로 일부 힌두교 추종자들은 붓다를 힌두교의 최고신인 비슈누Visnu 의 화신化身으로 믿는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자면 힌두교의 범위는 '베다'의 권위를 인정하고 그 가르침에 따르고자 하는 종교적 신념들에 한정된다. 따라서 불교라든가 자이나교와 같이 '베다'와 다른 독자적인 실천의 길을 모색해 온 종교인들은 인도에서 발생했지만 힌두교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힌두교는 고대 바라문교와 구분되는 몇 가지 특징을 지닌다. 힌두교가 바라문교에서유래 또한 '베다'를 최고의 가르침으로 받드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바라문교는 아리안Aryans 이라는 특정한 종족이 다른 종족들의 종교와 문화를 정복하는 과정에서 발생시킨 신앙 체계이다. 반면에 힌두교는 바라문교에 바탕을 두지만 다른 여러 종족의 토착 신앙을 수용하면서 형성된 종교이다. 일반적으로 힌두교는 굽타Gupta 왕조의 성립(A.D 320년)을 기점으로 한다. 그 시기의 인도는 불교가 크게 발흥해 있었으며, 그로 인해 바라문교 내부에서는 스스로에 대한 변화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다.
바라문교를 모태로 하는 힌두교는 기본적으로 다신교多神敎이다. 힌두교의 신봉자들은 보통 그가 태어난 가계에서 대대로 믿어온 가정의 신이나 혹은 그들 스스로가 선택한 신을 믿는다. 이러한 힌두교의 신앙적 특징은 다양한 구원의 길을 인정한 데에 있다. 힌두교에서는 어느 하나의 교리적 원칙만을 고집하여 다른 사상을 이단으로 몰지 않는다. 또한 힌두교는 다신교적인 색채가 강하지만 그 내부에는 일신교一神敎적 성향이 잠재해 있다. 힌두교에는 다양한 신들의 배후에 최고신의 신 혹은 하나의 단일한 신이 존재한다는 믿음이 강하게 깔려 있다.
이것은 브라만Brahman, 비슈누Visnu, 쉬바Siva 라는 삼신삼신 일체설에서 잘 나타난다. 최고의 실재인 브라흐만은 창조자로, 비슈누는 유지자로, 그리고 쉬바는 파괴의 신으로 신봉된다. 이들은 단일한 신의 세 측면으로 해석되어 왔다. 이러한 관념은 하나의 신이 다양한 신격이나 인물·동물 등으로 나타난다는 인도인 고유의 화신사상化身思想과 결부되어 있다. 이와 같이 하나의 신이 다양한 모습으로 그 자신을 드러낸다는 화신사상은 여러 부족 혹은 다른 계급의 신들이 서로 융합할 수 있는 이론적 근거가 되었다.
후대의 대승불교에 등장한 화신불化身佛 관념이라든가, 천 개의 손과 천 개의 눈을 지닌 관세음보살 등은 이러한 화신사상의 불교적 수용 결과이다. 화신사상은 현대에 이르러서도 여러 종교들이 서로 화합할 수 있다는 이론적 근거를 제공하기도 한다.
예컨대 라다끄리쉬난Radhakrishnan 과 같은 사상가는 힌두교의 포용적 가르침에 기초하여 세계의 모든 종교를 하나로 통섭하는 보편종교Universal Religion 를 언급하기도 한다. 그에 따르면 다양한 양상으로 드러난 모든 종교의 가르침은 결국 하나로 회통될 수 있다. 걷고 있는 길은 다르지만 궁극의 목적지는 같다는 것이다.
붓다 당시 힌두교는 아직 출현하지 않았다. 따라서 초기불교와 힌두교의 직접적인 대비는 곤란하다. 특히 힌두교의 화신사상은 대승불교의 가르침에 편입되어 우리에게 그다지 낯설지 않다. 그러나 통합적인 시각만을 강조하는 힌두교의 가르침은 개개의 사물이 지닌 독창성과 차별성을 간과한다는 취약점이 지적되곤 한다. 나아가 다신교, 일신교, 제식주의, 금욕주의 등이 혼재한 신앙형태는 미신적인 관습들을 원칙 없이 수용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으로 비판된다.
더욱이 바라문이라는 성직자 계급을 정점으로 하는 전래의 계급제도를 용인하면서, 오래도록 피지배 계급에 대한 차별에 앞장서 왔다는 사실은 힌두교가 안고 있는 치명적인 문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을 고려할 때 초기불교와 힌두교 사이의 간극은 크다고 할 수 있다.
[출처] 임승택 교수의 초기불교 산책|작성자 제비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