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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DDHISM/초기불교 순례_임승택 교수

임승택 교수의 초기불교순례 11-20


11. 바라문교와 불교

  초월적 존재에 의존하는 바라문교 비판

   불교와 비불교는 어떻게 구분될 수 있을까. 불교는 인도에서 출현했으며 당시 유행하던 여러 종교·사상들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그 중 하나가 고대의 바라문교이다. 바라문교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 전에 형성된 베다Veda라는 문헌에 근거한 종교이다. 바라문교의 계승자들은 이 문헌을 '신神이 직접 전하는 말씀'으로 간주하고서 자신들의 종교적 실천을 위한 준거로 삼았다. 바라문교를 뒤이은 오늘날의 힌두교 또한 베다를 가장 권위 있는 성전으로 받들면서 '인간에 의해 전승된 가르침' 과는 질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한다.

  베다는 자연의 신비에 대한 고대인들의 경외감과 찬탄을 주된 내용으로 한다. 그들은 우주의 혼돈과 무질서를 넘어 그것 이면에 존재한다고 여겨지는 본질적인 무엇에 관심을 기울렸다. 그리하여 자연현상의 발생과 소멸을 초월적인 실재와 연계시켜 이해하려는 태도를 갖게 된다. 그들에게 달과 별, 바다와 하늘, 여명과 황혼, 계절의 순환 등은 그 자체로 신비하고 신성한 신으로 여겨졌다. 그들은 자연현상을 신격화하고 거기에 신성神性을 부여하고 찬송하고 예배했다.

  베다 문헌은 다수의 현인들에 의해 수 천 년의 세월에 걸쳐 형성되었다. 따라서 인간의 종교적 사색이 깊어가는 여정을 잘 드러낸다. 베다 초기의 경향은 태양이라든가 구름 따위의 단편적인 신성에 대한 찬탄이 주류를 이루었다. 이후 그들은 개개의 자연현상이 일정한 흐름과 조화 속에 있다는 사실엘 주목하게 된다. 그리하여 리따(R.ta)라는 우주적 질서 아래 온 세계가 운행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게 해서 자연은 조화로운 목적이 살아 숨 쉬는 곳으로 해석되기에 이른다. 그들은 그러한 법칙성을 내면의 도덕적 원리로 적용하려는 시도를 보이기도 한다. 자연의 이치에 비추어 마땅히 추구해야 할 삶의 태도를 얻고자 하였다.

  베다적 사유의 가장 발전된 형태는 다수의 신성을 하나의 존재로 모으려 했던 것이다. 그들은 하늘과 허공과 땅의 신들을 한데 묶어 일체신一切神의 관념을 구체화 하였고, 혹은 유일신唯一神이라는 창조주의 개념을 탄생시켰다. 그리하여 모든 다양한 신들이 결국에는 하나의 신으로부터 비롯된다는 인도인 특유의 화신化神 사상으로 나아가게 된다. 이 유일신은 만물의 운행을 관장하는 궁극의 실재이며, 그의 앞에서는 다양한 신들의 구분이 없어진다. 또한 이 유일자는 다른 일체의 존재를 있게 한 장본인으로서, 다른 어떤 것으로도 환원되거나 대체될 수 없는 절대적인 권능을 지닌다.

  일신교적 사고가 정착됨으로 인해 고대의 인도인들은 스스로를 있게 한 창조주를 가슴에 품게 된다. 또한 그의 보호 아래에서 살아가는 자신의 위치를 헤아리면서, 그와의 관계 속에서 삶의 위안과 구원을 열망하게 된다. 이러한 일신교적 사고는 이집트라든가 중동 지방에서 나타났던 유일신교 사상에 비견되곤 한다. 특히 베다의 유일신 관념은 다른 종족의 신들을 추방하거나 박해함으로써 구축된 것이 아니라는 점에 독특한 특징이 있다. 고대 인도인들은 다양한 신들의 이면에 존재하는 통일성을 사색한 결과 고유의 유일신 개념을 확립하였다.

  불교는 베다 문헌이 완성된 지 수 백 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 등장하였다. 당시 인도 사회는 바라문교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던 까달게에 불교 또한 베다의 가르침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베다의 리따 개념은 불교의 업業 관념으로 구체화되었고, 그것을 도덕적 원리와 결부시키려는 시도 또한 더욱 강화된 양상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유일신교적 사고가 신에 대한 인간의 종속을 강화시켜 스스로 책임감 없고 무력한 존재로 만들 위험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초월적 존재의 도움으로 현실의 어려움을 피하려는 미신적 관행에 대해서도 날카롭게 주체적으로 살아 갈 것을 역설한다. 또한 신의 이름으로 바라문 계급만을 옹호하고 다른 태생의 사람들은 천시했던 계급제도에 대해서는 타협 없는 태도로 맞선다. 이와 같은 불교의 개혁적 성향은 당시뿐만이 아니라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종교관에 대해서도 많은 반성의 계기를 제공한다고 할 수 있다.


12. 제식주의와 불교

  세속적 욕망 쫓는 의식으로서 제사 거부

  제사란 불교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불교가 출현할 무렵 고대 바라문교는 인도 사회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바라문교의 실천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제사의례이다. 제사는 신神 혹은 초월적 존재에게 감사의 마음을 올리거나 은총을 구하고자 행해졌다. 당시 사람들은 제사가 자연계의 운행과 질서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엄격한 절차의 제사를 인간의 운명이라든가 길흉화복에 연결시켰다. 제사의 실천은 전문적인 지식을 필요로 했고, 그것을 담당하는 바라문은 최고 지배계급의 지위를 누렸다.

  제식주의란 제사에 대해 특정한 의미를 부여하면서 형성된 형이상학적 경향을 가리킨다. 바라문들은 일정한 절차에 따라 의례를 행하면서 그것이 반드시 어떠한 결과를 가져온다고 가르쳤다. 제사는 미래의 삶에서 원하는 열매를 싹트게 하는 잠재력을 지닌 것으로 여겨졌다. 이러한 사고는 제사를 통해 우주의 흐름에 개입할 수 있다는 생각을 구체화하게 된다. 바라문교의 성전인『브라흐마나』에서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인간은 물론 신까지도 제사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으며, 모든 존재는 제사에 의해 현재의 위치를 얻는다."

  이러한 제식주의는 차츰 인격신人格神에 대한 냉담한 태도로 발전하게 된다. 원래 제사란 신에 대한 귀의의 표시였다. 그러나 제사만 잘 지내면 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들이 점점 우세해지게 된다. 그리하여 초월적인 권능으로 인간들에 복과 은혜를 베풀던 신은 차츰 잊혀지고, 제사에 의해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신 관념이 고착화된다. 인간 위에 군림하던 신이 오히려 인간의 아래에 놓이게 되는 현상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이렇듯 제식주의에서 제사야말로 우주의 질서를 유지하는 최고의 힘을 지닌 것으로 생각되었다.

  붓다는 이와 같은 제식주의가 한창 유행하던 무렵에 등장했다. 인도철학의 여정에서 제식주의적 사고가 반드시 부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만은 아니다. 제식주의의 발달과 더불어 인간은 신들의 영역에 가담하여 우주의 운행에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존재로 부각되기에 이른다. 신의 지배 아래에 종속되어 있던 존재에서 신을 부릴 수 있는 존재로 그 위치가 격상된다. 더불어 제사의 실천이 반드시 어떤 결과를 가져온다는 관념은 인과율에 대한 믿음을 확고히 정착시켰다. 이것은 "스스로 짓고 스스로 받는다"는 업 개념의 탄생에 큰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나 제식주의의 제사는 오로지 세속적인 욕구를 성취하려는 목적에서 수행되었다. 그리하여 인간 자신을 내면의 탐욕이라는 새로운 굴레에 가두는 결과를 초래한다. 바라문교의 제식주의는 인간으로 하여금 신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데에는 긍정적인 역할을 했지만 내면에 대한 성찰을 간과했다는 점에서 치명적인 한계를 지닌다.그리하여 신성해야 할 종교적 의식마저 세속적인 이익 추구의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결국 제식주의는 난해한 절차들로 위장된 교활한 바라문 사제들의 생활 수단으로 전락한다.

  '구라단두경'에서 붓다는 참된 제사에 관해 가르친다. 그에 따르면 바른 제사란 바른 마음가짐이 전제되어야 한다. 각자 자신의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몸과 마음을 잘 다스려 품행이 방정하며, 베푸는 마음 등을 갖추게 될 때 비로소 올바른 제사가 ​가능하다고 이른다. 또한 붓다는 덜 번거로우면서도 더 많은 과보와 이익을 주는 새로운 제사법을 소개한다.

  삼보에 귀의하며, 승가를 위한 거처를 보시하고,  계·정·혜를 닦아 일체의 번뇌를 소멸하여, 깨달음을 실현하는 바로 그것이다. 붓다는 이러한 제사보다 더 높고 수승한 다른 제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못을 박는다. 그는 제사의 의미와 방법에 대한 혁신적인 해석을 통해 종교 생활의 방향을 제시하였다.


13. 금욕주의와 불교

   형식에 갇힌 금욕은 수행 아닌 고행일 뿐

  금욕주의란 무엇인가. 세속적인 명예라든가 이익을 추구하는 따위의 욕심을 경계하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난 상태에 이르러는 종교적·철학적 경향을 일컫는 말이다. ​​초기불교 또한 이러한 부류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초기불교의 전반적인 색채가 출세간의 금욕적인 삶을 지향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중생들의 삶이 탐욕과 갈애로 인해 갖가지 괴로움에 빠지게 된다고 가르쳤으며, 출가자와 재가자 모두 그것을 가라앉히는 수행을 일차적인 과제로 인식하였다. 초기불교의 궁극 목적인 열반涅槃 또한 탐냄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소멸된 경지로 묘사되곤 한다.

  불교가 출현할 당시 바라문교나 자이나교에서 금욕주의를 가르쳤다. 바라문교의 금욕주의는 제식주의와 밀접한 관련을 지닌다. 그들은 제사의례와 관련하여 몸과 마음을 정화하는 수단으로 고행苦行을 하였다. 혹독한 더위나 추위에 몸을 노출시킨다거나, 음식의 섭취를 끊는다거나, 특정한 자세로 움직이지 않는 따위의 육체적 괴로움을 일으키는 행위가 그것이다. 그들은 고행을 통해 초월적 능력이 함양되며, 그것으로 육체적·정신적 장애를 극복하고 원하는 목적을 이룰 수 있다고 믿었다. 또한 고행은 편협한 이기적 자아 관념을 넘어서기 위한 수단으로도 권장 되었다.

  한편 자이나교에서는 모든 존재가 본래부터 청정하고 순수한 영혼을 지닌다고 보았다. 그런데 현실을 살아가는 중생들은 이전부터 알게 모르게 지어 온 죄업에 의해 그 영혼이 더럽혀져 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본래의 깨끗함을 회복하기 위해 일체의 욕구를 억제하고 육체적인 고행을 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들에 따르면 고행은 영혼에 달라붙은 업의 찌꺼기를 태워 없앨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또한 업은 물리적 법칙과 같이 실재하는 까닭에 고행을 통하지 않고서 그것의 영향으로 벗어날 방법은 없다고 여겨졌다. 이러한 생각과 더불어 자이나교에서는 나체 수행이라든가 단식을 통해 죽음에 이르는 따위의 극단적인 금욕주의로 나아갔다.   바라문교나 자이나교의 금욕주의는 대체로 외적인 형식을 중요시했다. 특히 제식주의의 고행은 내면의 동기와는 상관없이 특정한 행위의 절차만을 염두에 두었다. 그들은 어떠한 의도에서든 일정한 형식에 따라 고행을 실천하면 원하는 결과가 뒤따른다고 보았다.

  한편 자이나교는 욕망 자체에 대한 반성적이 태도를 분명히 하고서 오로지 영혼의 순수성을 회복하기 위해 고행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한층 고양된 면모를 보인다. 그러나 그들 역시 형식적인 고행에 경도되어 일상적인 생활마저 곤란한 지경에 이른다. ​

자이나교의 신봉자들은 숨 쉴 때 벌레를 마셔서 죽게 하는 일이 없도록 마스크를 착용하였고, 걸을 때는 발밑의 개미나 벌레들이 다치지 않도록 빗자루로 쓸면서 다녔다.​

  정신적인 안정과 평안을 위해 얼마간의 금욕은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절제 없는 삶은 나태와 불건전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과거를 반성하고 새로운 각오를 다잡기 위해서는 3000배 정진과 같이 일시적인 고행을 감행하는 방법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내면의 탐욕과 갈애를 조절할 줄 알아야만 완성된 인격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이유에서 초기불교에서는 금욕적인 태도로써 스스로를 다스려 나갈 것을 권장하였다. 탐냄과 성냄 따위의 노예로 살지 말고 그들의 실체를 깨달아 의연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쳤다​.

  그러나 초기불교의 금욕적 가르침은 외적인 형식보다 내면의 의도를 중요시했고, 또한 언제나 그것을 깨달음의 문제와 연계시켜 설명하곤 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숫따니빠따』에서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생선 혹은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이나, 단식하는 것이나, 벌거벗거나, 삭발하거나, 상툴를 틀거나, 먼지를 뒤집어쓰거나, 거친 가죽을 걸치는 것도, 불의 신을 섬기는 것도, 또한 불사不死를 얻기 위해 행하는 많은 종류의 고행, 진언을 외우거나, 희생제를 지내거나, 제사를 올리거나, 계절에 따라 수련 따위의 모든 것도 의혹疑惑을 뛰어넘지 못한 사람을 청정하게 할 수 없다."


14. 범아일여와 불교

   인간의 존엄성엔 동의… 관념적 독단 경계

  범아일여梵我一如란 무엇인가. 우주적 자아인 브라흐만Brahman과 개체적 자아인 아뜨만Atman이 동일하다는 가르침을 말한다. 불교가 출현할 무렵 일부 바라문교의 현인들은 변화하는 현상계 너머에 과연 무엇이 존재하는가의 문제에 천착해 들어갔다. 현상 세계의 번잡스러움과 덧없음에 만족할 수 없었던 그들은 그것을 앎으로써 다른 모든 것들을 알게 되는 단 하나의 근원적인 실재를 추구하였다. 그 결과 현상계의 다양한 사물들을 포함하여 모든 신들의 의지처가 되는 근본 원인인 브라흐만 개념을 고안해 내기에 이른다.   브라흐만은 모든 존재의 배후에 혹은 그들 안에 내재해 있다고 믿어졌다. 현상계의 차별적인 모습들은 브라흐만으로부터 유래된 환영에 비유되곤 하였다. 혹은 브라흐만이라는 거대한 바다 위의 파도 혹은 물거품으로 설명되기도 하였다. 브라흐만은 세계의 발생과 운행 그리고 조화와 목적을 설명해 줄 수 있는 유일무이한 궁극의 실재였다. 브라흐만 안에서 일체 사물의 차별적인 모습은 하나의 원리로 귀결되었다. 그러나 브라흐만을 부정하는 것은 자신의 근원을 회피하는 것이며, 아집에 빠져 경험적·현상적 자아만을  유일한 실재로 여기는 어리석음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범아일여의 신봉자들은 브라흐만을 내면의 영적 존재인 아뜨만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였다. 아뜨만이란 개인의 영혼과 같은 것으로 외부의 사물들과 구분되는 본질적인 무엇으로 믿어졌다. 모든 인간이 고귀한 까닭은 저마다 영원불변하는 실체인 아뜨만을 지닌 까닭이다. 아뜨만은 인식의 주체인 동시에 윤리적 주체로서 비록 육신이 죽는다고 하더라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이와 같은 아뜨만에 대해 '바가드바기따'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브라흐만은 우주의 아뜨만이요, 아뜨만은 인간 안에 존재하는 브라흐만이다."

  범아일여 사상의 정착은 외향적 사변으로부터 내향적인 자기성찰로의 전환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철학사적 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생각과 더불어 고대 인도인들은 더 이상 외적인 현상들에 연연하지 않게 되었다. 그들은 자신이 곧 세상의 주인이라는 의식을 가지고서 일체의 현상을 통합적인 안목에서 바라보았다. 또한 개인 존재는 대우주의 반영인 까닭에 우주의 신비를 알  수 있는 실마리는 곧 자신 안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일원론적一元論的 사고의 확립은 내면적인 전환을 통해 일체의 괴로움으로부터 해탈하는 방법을 가르친 불교의 출현에 훌륭한 사상적 믿거름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붓다는 범아일여 사사에 얼마간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여겨진다. 특히 후대의 대승불교에서는 일체의 중생이 불성佛性 혹은 여래장如來藏을 지닌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모든 중생들이 궁극적 존재로서의 의의를 지닌다고 가르친다. 일부 학자들은 바로 이것이 범아일여 사상과 동일하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초기불교 경전에 나타나는 붓다의 언행에서 범아일여를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내용은 나타나지 않는다.

  그는 인간 존재의 무한한 가능성과 존엄성에 대해서는 기꺼이 동의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사고가 교만과 아집 그리고 관념적 독단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한 반성적 태도를 취한다. 그는 다만 경험할 수 있는 사실들에 비추어 일체의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에 주력하였다.



15. 쾌락주의와 불교

​  감각적 경험만 강조하다 교리적 모순에 봉착

  쾌락주의란 무엇인가. 쾌락을 인간 행위의 궁극 목적이자 도덕의 기준으로 삼는 사상적 경향을 가리킨다. 불교가 출현할 당시 일부 사상가들은 잘 먹고 잘 노는 것만이 인생의 유일한 목적이라고 주장했다.

  짜르와까Carvaka 혹은  로까야따Lokayata 등으로 일컬어지는 그들은 현상계 너머 혹은 죽음 이후의 세계를 부정하고서 감각적 경험만을 앎의 유일한 원천으로 인정하였다. 그들에 따르면 죽고 이후 다른 더 좋은  세상에 태어날 목적으로 현재의 쾌락을 포기하는 것은 지극히 어리석은 짓이다. 신이라든가, 영혼, 천국과 지옥 따위는 바라문교의 사제들을 현혹하기 위해 고안해 낸 거짓에 불과하다.

  쾌락주의에서는 경험에 근거하지 않은 지식은 허구로서 거부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세상을 구성하는 유일한 실재는 물질이며, 물질이 모이고 흩어지는 과정에서 인간의 의식이 발생한다. 발효된 누룩으로부터 술의 취기가 나오는 것과 같이 의식 또한 육체의 조화에 의해 발생한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하다. 우리가 영혼이라고 부르는 것 또한 의식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신을 우주의 창조자 혹은 유지자로 간주하지만 신은 지각되거나 경험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따라서 신은 알 수도 경험할 수도 없거니와 설령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경험 세계에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 없다.

  쾌락주의자들은 죽음을 절대적 소멸로 보았으며, 그렇기 때문에 죽기 이전에 최대한 즐거움을 누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고행을 하거나 금욕을 하는 것은 불필요한 자기 학대이자 망상의 소치라고 가르쳤다. 또한 재물을 모으는 행위 역시 재물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쾌락을 누리기 위한 수단으로 모아야 한다고 보았다. 그들은 고통보다 더 많은 즐거움을 가져오는 행위는 선이고, 즐거움보다 더 많은 고통을 초래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악으로 규정하였다.  현명한 사람이라면 가급적 모든 고통을 피하거나 혹은 최소한으로 줄이면서 최대한의 쾌락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고 여겼다.

  쾌락주의는 당시 인도 사회를 지배했던 바라문교에 대한 저항의 분위기에서 구체화되었다. 그들은 경험 세계를 초월한 무언가를 가르치는 모든 유형의 교리들에 대해 맞섰다. 예컨대 브라흐만과 아뜨만이 동일하다는 범아일여梵我一如의 교리는 현실의 부조리와 불공평을 은폐하기 위해 바라문  사제들이 꾸며 낸 이야기에 불과하다.   이러한 관점은 당시 사회적 약자였던 비바라문 계급에게  자신을 둘러 싼 세계의 실상을 공정히 바라볼 수 있도록 해주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가 가능하다. 더욱이 일부 세련된 쾌락주의자들은 쾌락의 질적 차이를 인정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쾌락을 이웃과 나눌 필요성도 인정했다.

  따라서 쾌락주의에 대해 무작정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교양 있는 쾌락주의의 신봉자들은 자제력과 분별력을 갖추고 있었으며, 세련된 취미와 순수한 우정 따위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기울렸다. 그들은 철학적 사고의 진전과 더불어 출현한 자유분방한 진보적 지식인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쾌락주의는 불교의 출현에도 좋은 밑거름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바라문교의 계급제도에 맞서 모든 인간의 평등함을 일깨운 붓다의 행적은 일정 부분 쾌락주의와 입장을 공유한다. 또한 현상계를 넘어선 궁극적 실재에 대한 부정 역시 무아설無我說에 대해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쾌락주의는 감각적 경험만을 지나치게 강조한 결과 자체적인 교리적 모순에 봉착하고 만다. 예컨대 "경험 가능한 지식만이 타당하다"는 스스로의 주장 자체가 경험적으로 검증될 수 없다는 난점이 지적된다. 또한 쾌락에 대한 의존은 권태와 허무의 감정만을 낳을 뿐이고, 더욱 강력한 새로운 쾌락을  부추긴다는 자각과 반성을 불러일으켰다. 따라서 붓다는 쾌락에 몰두하는 짓을 천하고 범속하고 거룩하지 못한 것으로 규정하였다.

  그는 쾌락의 추구가 완전한 깨달음과 열반으로 나아가는 데 보탬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였다. 그리하여 쾌락주의도 버리고 고행주의도 떠난 중도中道로써 실천해 나갈 것을 권장하였다.

16. 숙명론과 불교

 업에 따른 운명 비판… 노력에 의한 변화 강조

  불교는 숙명론인가. 불교에 대한 초보적인 오해 중의 하나가 숙명론이 아닐까 싶다. "뿌린 대로 거둔다", "전생의 업보다", "팔자는 못 속인다"는 따위의 말들이 이러한 오해를 부추긴다.

  그러나 불교는 숙명론과 근본적으로 다르며, 오히려 숙명의 굴레를 벗어나는 데에 주력한다. 불교의 궁극 목적인 해탈과 열반은 바로 그것을 벗어날 때 얻어지는 절대적인 자유의 경지이다. 따라서 숙명론은 초기불교 이래로 극복의 대상이 되어 왔다는 점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로 이해해야 한다.

  인도철학의 무대에서 숙명론을 표방했던 대표적인 학파로서 아지비까Ajivika 혹은 사명외도邪命外道의 무리가 있었다. 그들은 인간의 삶이 필연적인 법칙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았다. 선한 행위이든 악한 행위든 어떤 행위를 하더라도 그러한 행위 자체가 결정된 법칙에 의한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만약 누군가가 착한 행위를 했다면 그것은 착한 행위를 하도록 정해진 운명에 따른 것일 뿐이다. 따라서 착한 행위에 대해 특별히 칭찬하거나 기뻐할 필요가 없다. 이것은 나쁜 행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한 이유에서 아지비까는 모든 행위에 대해 좋다거나 나쁘다는 가치판단을 내릴 수 없다고 주장한다.

  아지비까에 의하면 운명niyati 이라든가 천성bhava 은 현재의 자신이 있게 된 이유이다. 인간으로 태어난 것도 운명이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도 운명이다. 따라서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것만이 최선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아지비까는 인간의 노력이나 의지를 전면적으로 부정하였다. 이와 같은 숙명론적 사고는 예나 지금이나 우리에게 매우 친숙하다고 할 수 있다.

 예컨대 미래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들 중에는 아직도 사주나 관상 따위에 의존하는 경우가 있다. 거기에서 우리는 숙명론적 사고의 잔재를 보게 된다.그런데 아지비까는 자유의지를 부정했지만 자유의 가능성 자체는 부인하지 않았다. 그들은 끝없이 이어지는 탄생과 죽음이라는 자연적인 과정을 겪다 보면 언젠가는 자유롭고 청정한 상태에 도달한다고 믿었다. 그들은 이것을 산꼭대기에서 던져진 실타래에 비유한다. 정상에서부터 풀리기 시작한 실타래는 차츰 작아지면서 그 크기만큼 아래쪽으로 죽 늘어진다.   그러다가 완전히 풀린 상태가 되면 멈춰 선다. 다른 어떤 노력이나 외부적인 개입도 실의 길이 자체를 변화시킬 수 없다. 이렇듯이 모든 사물은 정해진 역할대로 움직이다가 그것이 다하면 멈춘다. 바로 이것이 아지비까가 생각했던 부자유한 삶으로부터의 벗어남 즉 해탈이었다.

  아지비까의 숙명론은 인간의 삶에서 불가항력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요인들에 대한 경각심을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 약간의 의의가 인정된다. 대부분의 인간은 타고나 천성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며 주변의 환경으로부터도 그러하다. ​그러나 아지비까는 우리가 이러한 요인들에 대해 전적으로 무기력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주어진 실타래의 크기는 한정되어 있을 수 있지만, 그것에 대해 능동적으로 생각하고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을 놓치고 있다. 얼마든지 주체적으로 삶을 개척해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 이점에서 아지비까의 숙명론은 그 한계를  여실히 노출한다.

  붓다는 아지비까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그대들이여, 만일 그렇다면 생명을 죽이더라도 이전에 정해진 원인에 의해서일 것이고, 도둑질을 하더라도 이전에 정해진 원인에 의해서일 것이고, 삿된 음행을 하더라도 이전에 정해진 원인에 의해서일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전에 정해진다고 진심으로 믿는 자에게는 도무지 의욕이나 열의가 있을 수 없고, 또한 '이것은 해야 하고 이것은 하지 말아야 한다.'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 이와 같이 그들은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 진실하고 확고하게 알지 못한다.…"


17. 단멸론과 불교 

절대적 소멸 주장에 침묵으로 대처하다

 

  단멸론斷滅論이란 무엇인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는 반드시 소멸하여 없어진다는 주장을 가리킨다.

특히 초기불교에서 문제시하는 단멸론은 죽음 이후의 삶을 부정하고서 업에 의한 지음과 받음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를 지칭한다. 이러한 주장은 무아無我의 가르침과 혼동을 일으켜 불교적 가르침으로 오인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붓다는 죽고 난 이후의 삶 혹은 내세를 부정하지 않았다. 그는 착한 행위를 하면 천상에 태어나고 악한 행위를 하면 지옥에 태어난다고 가르쳤다. 어떠한 경우라도 죽고 나면 그대로 소멸하여 없어지고 만다는 방식의 가르침을 펼치지는 않았다.

 

  일부 학자들은 초기불교가 무아를 가르쳤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단멸론과 흡사한 방식으로 이를 설명한다. 그들에 따르면 무아란 말 그대로 자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개인 존재의 연속성에 대한 부정을 의미한다. 이러한 무아 해석은 고착화된 자아Atman 관념을 극복하는 데 얼마간이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행위의 책임 소재를  불분명하게 만들고, 미래를 위한 노력을 상쇄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이 순간의 '나'가 정말로 이 순간에 그친다면 과연 누가 내일의 '나'를 위해 고민하겠는가, 죽고 나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장인데, 도대체 무엇을 위해 현실의 어려움을 감내하겠는가.

 

  붓다는 현상계를 넘어서 존재한다고 여겨지는 불변적 실체로서의 자아라든가 영혼에 대해서는 부정했다. ​그러나 오온五蘊으로 이루어진 경험적 자아 혹은 영혼은 부정하지 않았다. 그는 인격의 주체로서의 자아에 대해서는 기꺼이 인정하였고, 사후의 세계에도 그것은 계속된다고 가르쳤다. '자니사경' 에 나타나듯이 붓다는 수많은 사람들의 전생轉生에 관한 이야기를 매우 상세하게 들려준다. 초기불교 경전에 근거하는 한 붓다는 내세와 윤회를 인정하였다. 윤회를 멈춘 사후의 아라한에 대해서도 생각과 논의의 범위를 벗어났다고 말했을 뿐, 존재하지 않는다는 따위의 단정적인 어투를 사용하지는 않았다.

 

   "모든 것이 단절되어 소멸한다" 는 주장은 일종의 형이상학形而上學에 해당한다. 이와 같은 형이상학적 주장에 대해 붓다는 냉소적인 태도를 취했으며 또한 성스러운 침묵(무기無記)으로 대처했다. 우리는 경험 영역을 살아가는 까닭에 경험을 벗어난 ​문제에 대해 함부로 이야기하지 말아야한다. 경험적으로 입증되지 않는 생각들은 ​불필요한 논쟁의 빌미만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단멸론자는 절대적인 소멸을 주장한다. 붓다에 따르면 이러한 주장은 "모든 것이 영원하다"는 정반대의 논리와 마찬가지로 아무런 타당성도 지닐 수 없다. 경험을 벗어난 관념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초기불교에서는 영원하다는 주장과 마찬가지로 단멸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삿된 견해見解로 간주한다.

 

  단멸론은 육신만을 절대시하고서 육신의 죽음을 완전한 소멸로 본다. 이러한 사고는 ​전통적인 서구적 영혼 관념에 거부감을 느끼는 현대인에게 상당한 호소력을 발휘하는 듯하다. 그러나 이러한 허무주의 혹은 염세주의를 조장한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또한 도덕의 부정과 쾌락주의를 부추길 수도 있다. 사실 현대의 물질문명에는 이와 같은 쾌락주의와 허무주의의 요소가 얼마간 포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거기에는 죽음 이후의 세계를 애써 부정하려는 단멸론적 사고가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다.

 

  모든 존재는 영원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사라져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바른 지혜를 갖춘 사람은 계속됨을 보면서 없어진다고 말하지 않는다. 또한 사물의 사라짐을 보면서 영원하다고도 말하지 않는다. 붓다는 이러한 입장에 서서 있음과 없음의 논리에 현혹되지 말라고 이른다.

 

  "모든 것이 존재한다는 주장도 극단적이요, 모든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도 극단적이다. 여래는 이러한 두 가지 극단에 다가가지 않고 그 가운데에서 가르침을 드러낸다."

 

  붓다는 우리에게 영원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 아이러니한 존재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수용할 것을 요구한다.

 

  

18. 힌두교와 불교

  개개의 차이 무시·계급제도 용인 비판 대상

 

  힌두교란 어떤 종교인가.

흔히 인도(Indo, Hindu)에 뿌리를 둔 다양한 신앙 형태의 복합체로 설명한다.

불교 또한 인도에서 출현하였다. 따라서 넓은 의미로 불교를 힌두교에 포함시키는 경우가 있다. 실제로 일부 힌두교 추종자들은 붓다를 힌두교의 최고신인 비슈누Visnu 의 화신化身으로 믿는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자면 힌두교의 범위는 '베다'의 권위를 인정하고 그 가르침에 따르고자 하는 종교적 신념들에 한정된다. 따라서 불교라든가 자이나교와 같이 '베다'와 다른 독자적인 실천의 길을 모색해 온 종교인들은 인도에서 발생했지만 힌두교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힌두교는 고대 바라문교와 구분되는 몇 가지 특징을 지닌다. 힌두교가 바라문교에서유래 또한 '베다'를 최고의 가르침으로 받드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바라문교는 아리안Aryans 이라는 특정한 종족이 다른 종족들의 종교와 문화를 정복하는 과정에서 발생시킨 신앙 체계이다. 반면에 힌두교는 바라문교에 바탕을 두지만 다른 여러 종족의 토착 신앙을 수용하면서 형성된 종교이다. 일반적으로 힌두교는 굽타Gupta 왕조의 성립(A.D 320년)을 기점으로 한다. 그 시기의 인도는 불교가 크게 발흥해 있었으며, 그로 인해 바라문교 내부에서는 스스로에 대한 변화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다.

 

  바라문교를 모태로 하는 힌두교는 기본적으로 다신교多神敎이다. 힌두교의 신봉자들은 보통 그가 태어난 가계에서 대대로 믿어온 가정의 신이나 혹은 그들 스스로가 선택한 신을 믿는다. 이러한 힌두교의 신앙적 특징은 다양한 구원의 길을 인정한 데에 있다. 힌두교에서는 어느 하나의 교리적 원칙만을 고집하여 다른 사상을 이단으로 몰지 않는다. 또한 힌두교는 다신교적인 색채가 강하지만 그 내부에는 일신교一神敎적 성향이 잠재해 있다. 힌두교에는 다양한 신들의 배후에 최고신의 신 혹은 하나의 단일한 신이 존재한다는 믿음이 강하게 깔려 있다.

 

  이것은 브라만Brahman, 비슈누Visnu, 쉬바Siva 라는 삼신삼신 일체설에서 잘 나타난다. 최고의 실재인 브라흐만은 창조자로, 비슈누는 유지자로, 그리고 쉬바는 파괴의 신으로 신봉된다. 이들은 단일한 신의 세 측면으로 해석되어 왔다. 이러한 관념은 하나의 신이 다양한 신격이나 인물·동물 등으로 나타난다는 인도인 고유의 화신사상化身思想과 결부되어 있다.  이와 같이 하나의 신이 다양한 모습으로 그 자신을 드러낸다는 화신사상은 여러 부족 혹은 다른 계급의 신들이 서로 융합할 수 있는 이론적 근거가 되었다.

 

  후대의 대승불교에 등장한 화신불化身佛 관념이라든가, 천 개의 손과 천 개의 눈을 지닌 관세음보살 등은 이러한 화신사상의 불교적 수용 결과이다.​ 화신사상은 현대에 이르러서도 여러 종교들이 서로 화합할 수 있다는 이론적 근거를 제공하기도 한다.

예컨대 라다끄리쉬난Radhakrishnan 과 같은 사상가는 힌두교의 포용적 가르침에 기초하여 세계의 모든 종교를 하나로 통섭하는 보편종교Universal Religion 를 언급하기도 한다. 그에 따르면 다양한 양상으로 드러난 모든 종교의 가르침은 결국 하나로 회통될 수 있다. 걷고 있는 길은 다르지만 궁극의 목적지는 같다는 것이다. 

 

  붓다 당시 힌두교는 아직 출현하지 않았다. 따라서 초기불교와 힌두교의 직접적인 대비는 곤란하다. 특히 힌두교의 화신사상은 대승불교의 가르침에 편입되어 우리에게 그다지 낯설지 않다. 그러나 통합적인 시각만을 강조하는 힌두교의 가르침은 개개의 사물이 지닌 독창성과 차별성을 간과한다는 취약점이 지적되곤 한다. 나아가 다신교, 일신교, 제식주의, 금욕주의 등이 혼재한 신앙형태는 미신적인 관습들을 원칙 없이 수용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으로 비판된다.

 

  더욱이 바라문이라는 성직자 계급을 정점으로 하는 전래의 계급제도를 용인하면서, 오래도록 피지배 계급에 대한 차별에 앞장서 왔다는 사실은 힌두교가 안고 있는 치명적인 문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을 고려할 때 초기불교와 힌두교 사이의 간극은 크다고 할 수 있다. 



19. 불교에서의 신神
  마음 속 바람·희망의 상징적 존재
 
  불교는 무신론無神論인가. 흔히 불교를 일컬어 무신론적 색채가 강하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붓다는 신에 대해 어떻게 말했는가. 과연 그는 신을 완전히 부정했는가. 초기불교 경전에는 무시할 수 없는 빈도로 신들에 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깨달음 직후 붓다에게 설법을 간청했던이도, 초전법륜을 찬탄하면서 진리의 등불이 영원히 꺼지지 않을 것이라고 노래했던 이들도 신적 존재들이다. 초기불교 경전에서 신에 대한 묘사는 결코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한다.
 
  초기불교의 전반적인 색채는 경험세계에 초점을 모은다. 따라서 현실과 초현실을 넘나드는 신들의 이야기는 붓다의 가르침에 주된 지위를 차지한다고 볼 수 없다. 일부의 학자들은 그러한 신적 존재를 내면의 심리현상에 대한 은유로 해석한다. 마음속의 바람이나 희망 따위를 신이라는 상징적 존재를 통해 구체화하는 방식을 취했다는 것이다. 그러한 입장에 따르면 객관적인 실재로서의 신은 부정된다. 굳이 신을 개입시키지 않더라도 붓다의 가르침에 충분히 접근할 수 있고, 오히려 그렇게 할 때 더욱 온전한 이해가 가능하다.
 
  그런데 초기불교에서는 세계loka를 반드시 우리의 마음과 연결시켜 설명한다는 점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붓다는 마음과 무관하게 존재하는 객관적 실재로서의 세계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우리의 인식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일부를 구성한다고 가르쳤다. 따라서 세계란 우리에게 이해된 방식으로서의 세계를 의미하며, 또한 우리의 경험과 더불어 발생하고 소멸하는 것이 된다. 이점을 고려하면, 굳이 신을 배제하고서 세계를 규명하려는 시도는 공허한 것이 될 수 있다. 우리의 생각이 작동하는 한에서 신은 우리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인도철학에서 신에 대한 해석은 일반적으로 세 가지로 나뉜다. 자연주의적 다신교多神敎, 유일신교唯一神敎, 단일신교單一神敎가 그것이다.
자연주의적 다신교란 태양이라든가 달 혹은 하늘과 바다와 같은 자연현상을 신격화하여 숭배하는 것을 말한다.
다신교적 관념은 가장 시원적인 신앙에 속하며, 아직까지 존속해 있는 무속신앙이라든가 정령신앙 따위를 여기에 포함시킬 수 있다.
​한편 단일신교는 다양한 여러 종류의 신들이 결국은 하나라는 믿음을 내용으로 한다. 이러한 단일신교적 사고는 전통적인 동양적 신 관념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예컨대 힌두교에서 신봉되는 수많은 신들은 하나의 단일한 신이 다양한 모습으로 그 자신을 드러낸 것이다.
 
  마지막의 유일신교는 기독교라든가 이슬람교에서 나타나는 신 관념과 유사하다.
여기에서는 모든 피조물과 구분되는 유일무이한 존재로서의 인격신人格神에 대한 믿음이 강조된다. 유일신은 만유를 창조해 낸 창조주이며 또한 그들 모두의 운행을 직접 주관한다. 유일신은 다른 어떤 존재로도 환원되거나 대체될 수 없는 절대적인 권위를 지닌다. 이러한 유일신 관념은 대승불교의 아미타불Amit-a-bha-Buddha 사상에서도 일부 나타난다. 예컨대 아미타불을 신봉하는 정토교에서는 현실의 모든 고통마저 중생들을 극락으로 이끌기 위한 아미타불의 은혜로운 방편으로 간주한다.
 
  신에 대한 믿음이 많은 사람들에게 정서적 안정감을 주어 왔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믿음이 지나치면 스스로의 삶에 대한 책임의식이 결여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붓다는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비판한다. 
 
  "만일 그렇다면, 생명을 죽이더라도 신의 창조에 의해서일 것이고, 도둑질을 하더라도 신의 창조에 의해서일 것이고, 삿된 음행을 하더라도 신의 창조에 의해서일 것이다. 모든 것이 신의 창조에 의한다고 완고하게 고집하는 자에게는 도무지 의욕이나 열의가 있을 수 없고, 또한 이것은 해야 하고 이것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있을 수 없다. 이와 같이 그들은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 진실하고 확고하게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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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인도철학의 업業
   살며 경험하며 다양한 현상의 원인·결과
 
  업業,karma 이란 무엇인가. 문자 그대로 옮기자면 행위action·일work 등이 된다. 인도철학 일반에서 업이란 "특정한 행위 혹은 결심으로 인해 발생하는 응보적 힘"으로 정의된다. 예컨대 과거의 행위라든가 결심 따위가 현재 혹은 미래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 경우를 일컬어 업 혹은 업보業報하고 한다. 이러한 업 개념은 우리에게 이미 친숙하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말이 거기에 해당한다. 업 개념은 비단 불교에서만이 아니라, 인도에서 출현한 거의 모든 종교적·철학적 가르침에서 중심적인 지위를 차지한다고 할 수 있다.
 
  업은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여러 현상에 대해 원인과 결과를 생각하게 해준다.
어떠한 일이 발생하는 데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기 마련이며, 또한 현재 진행되는 일 역시 거기에 부합하는 결과를 낳는다. 그지없는 모든 일들이 다 그 원인에 그 결과라는 사고가 바로 업 관념에서부터 도출된다. 올바른 행위는 그것에 상응하는 좋은 과보를 가져오고, 그렇지 못한 잘못된 행위는 괴롭고 비참한 과보를 가져온다. 따라서 업 개념은 윤리적인 삶의 당위성을 환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업 관념은 윤회輪廻 사상과도 긴밀한 관련성이 있다. 업의 논리를 현재의 삶 너머로까지 확대하면 그것이 곧 윤회이다. 예컨대 현재의 삶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신분상의 차별, 민족적·계급적 위치, 천부적 재능 따위가 그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사례를 접하면서 업과 윤회를 떠올린다. 누구누구는 전생에 좋은 업을 많이 쌓아서 그렇다거나, 지어 놓은 공덕이 모자라 그렇다는 따위의 말들을 하곤 한다. 나아가 업과 윤회의 관념은 종교적 이상과 관련해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인도에서 출현한 모든 종교의 궁극 목적으로 제시되는 해탈解脫 혹은 열반涅槃이란 다름 아닌 업과 윤회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경지이다.
 
  이렇듯 업은 인도철학의 중심부를 관통하는 키워드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종교가 혹은 철학자들이 출현하여 각기 자신의 입장에서 업 개념을 해석하곤 하였다. 예컨대 바라문교를 중심으로 한 보수 세력들은 과거에 벌어진 일들의 결과를 중심으로 업 개념을 설명한다.
 
  그들은 현재의 삶은 과거에 지은 업의 과보인 까닭에 설령 현실이 불공평하게 느껴지더라도 그것을 달게 받으라고 가르친다. 노예로 태어난 까닭은 그렇게 태어날 수밖에 없는 전생의 업 때문이다. 따라서 노예로서의 삶을 받아들이고 묵묵히 살아가는 것만이 과거에서 지은 업보를 청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주장한다.
 
  이와 같은 보수적인 업 해석은 사회적 강자들로 하여금 약자들의 지배를 정당화해주는 억압의 이데올로기로 악용된다. 카스트caste 의 계급제도가 그것이다. 카스트 제도에 따르면 태생에 의한 신분상의 차별은 과거생의 업의 결과인 까닭에 그대로 감수해야 한다. 놀랍게도 이러한 계급제도의 폐습은 아직까지 인도사회에 부정적인 그림자를 짙게 남기고 있다. 따라서 암베드키르Ambedkar 와 같은 현대 인도사상가는 업 관념을 재생이나 윤회와 연결시켜 해석하는 것에 대해 '사기' 라고까지 혹평한다.
 
  그러나 업과 윤회를 가르치면서도 그것을 지배이데올로기로 악용하지 않았던 사례는 엄연히 존재한다. 업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에 주력했던 초기불교와 자이나교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들 종교에서는 업 관념이 숙명론으로 흐르는 것을 반대하면서,더 좋은 많은 업을 쌓으면 현재의 삶에서 과거의 죄업을 모두 청산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이와 관련하여 붓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람은 자신이 지은 업을 그대로 받는다.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청정한 행위를 하지 않으면 바르게 고통을 종식시킬 기회를 얻지 못한다. 또한 사람은 자신이 받아야 할 업을 짓고서 그것을 그대로 받는다.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청정한 행위를 닦으면 바르게 고통을 종식시킬 기회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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