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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DDHISM/아비담마 길라잡이

아비담마 길라잡이 서문 13. 『아비담마 길라잡이』 ― 번역과 해설의 배경 및 방침


『아비담마 길라잡이』 ― 번역과 해설의 배경 및 방침


 남방 아비담마를 체계적으로 소개하는 글을 써야겠다고 역자들이 마음을 굳히게 된 것은 역자(대림 스님)의 『청정도론』 번역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후 두어 달이 지난 2001년 10월이다. 역자는 박사과정에서 『청정도론』의 주석서인 『빠라맛타만주사』의 혜품을 연구했기 때문에 『청정도론』도 혜품부터 번역을 시작했다. 번역을 하면 할수록 아비담마에 대한 체계적인 소개가 없이는 『청정도론』 혜품의 내용을 제대로 전달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절감하게 되었다. 그래서 『청정도론』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 아비담마의 개론서를 먼저 소개하는 것이 『청정도론』뿐만 아니라 남방불교를 이해하는 선결조건이 된다고 판단하고 그 작업을 진행하였다. 


  『청정도론』 혜품의 일차 번역이 마무리된 12월 말에는 아비담마의 개론서도 거의 틀이 잡혀갔다. 그 후 1월 한 달을 틈틈이 더 다듬어 봤지만 전체적으로 무리한 곳이 많았다. 특히 아비담마를 우리 식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앞섰다. 그리고 『청정도론』만으로는 아비담마에 대한 구체적이고 정확한 설명이 결여되는 점도 문제였다. 2월 중순에 남방 아비담마의 부동의 준거가 되는 『아비담맛타 상가하』를 중심으로 다시 전체를 고쳐 쓰고 미흡한 부분은 보강하기로 합의하였다. 그래서 『아비담맛타 상가하』의 원문을 먼저 한글로 번역하였다. 

  이 번역을 토대로 『청정도론』에서 관련된 부분을 다시 발췌하여 넣고 그 동안 준비해둔 글들도 접목시켰다. 그리고 아비담마에 관한 한 제일의 권위를 가지고 있는 보디 스님(Bhikkhu Bodhi)이 편찬한 “A Comprehensive Manual of Abhidhamma(CMA)”의 설명을 대부분 인용하여서 넣었다. 본서를 엮으면서 역자들은 CMA의 정확한 해설에 재삼 감탄하였다. 그리고 중요한 출처는 논장을 비롯한 여러 아비담마 주석서들, 특히 『위바위니 띠까』와 『빠라맛타디빠니 띠까』에서 발췌하여 보강하였다. 이렇게 해서 6월 말쯤에는 길라잡이가 거의 완성된 형태를 갖추었다. 이런 의미에서 본서는 『아비담맛타 상가하』를 몸통으로 하고 『청정도론』을 왼쪽 날개로, CMA를 오른쪽 날개로 하여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역자들은 본서를 준비하면서 다음 사항들을 염두에 두었다. 

  첫째, 아비담마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길라잡이를 만들자는 것이다. 그래서 아비담마의 부동의 길라잡이로 통하는 『아비담맛타 상가하』를 저본으로 택한 것이다. 물론 본서가 아비담마에 아무런 기초지식이 없는 분들과 빠알리에 문외한인 분들에게는 어렵다는 점도 역자들은 잘 알고 있다. 그런 분들은 서문을 정독할 것을 권한다. 특히 아비담마에 관한 기본 개념은 서문의 ‘11. 각 장의 요점’과 ‘12. 남방 아비담마의 특징’과 ‘상세한 목차’로도 충분하다고 믿는다. 아비담마에 관한 간략하고 개괄적인 지식을 가지고자 하는 분들은 이 부분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사실 초심자가 아비담마를 읽어서 파악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바담마는 들어서 배워야 한다. 아비담마의 요점을 몇 번만 강의로 들으면 쉽게 아비담마의 줄거리를 파악할 수 있음을 역자들 자신이 실감했다. 

  둘째, 위빳사나 수행의 제대로 된 지침서를 만들자는 것이다. 지금 남방, 특히 미얀마에서 가르치고 있는 위빳사나 수행체계는 모두 아비담마에 바탕을 하고 있다. 이런 바탕 하에서 각 센터마다 지도자 스님들이 여러 가지 독특한 기법을 고안하여 수행자들로 하여금 자신에게서 벌어지는 여러 물․심의 현상을 관찰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계신다. 지금 미얀마에서 널리 행해지고 있는 수행기법은 크게 두 가지라 할 수 있다. 미얀마에서는 인물 중심의 수행 법통을 중시하지 않는다. 실제 현대의 미얀마 윗빠사나의 맥은 레디 사야도(1846-1923) 이상으로는 올라가지 못한다. 마하시 사야도가 인가받았다는 말은 듣지도 못했다. 미얀마에서는 굳이 스승의 인가를 받지 않아도 빠알리 삼장과 『청정도론』과 아비담마의 여러 지침서 등이 빠알리어와 미얀마 말로 잘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이를 통해서 자신의 경지를 정확하게 가늠해 볼 수 있다. 부처님께서는 ‘법을 보는 자는 나를 본다(yo kho, vakkali, dhammam passati, so mam passati. ― S22:87/iii.120)’고 하셨다. 남방에까지 가서 인가 운운하며 탐욕과 무지를 드러내기 이전에 아비담마의 가르침을 통해서 자신의 경지가 어느 정도인지 정확하게 진단하여 겸손할 줄 아는 자라야 제대로 된 수행자라 할 것이다. 

  첫째는 미얀마 역사상 최고의 학승이면서 위빳사나의 대가이셨던 레디 스님 맥이다. 레디 사야도는 빠알리로 22권의 책을 집필하셨고 미얀마어로는 78권의 방대한 분량의 책을 집필하신(Nyanissara, Ven. Ashin, 34-38.) 미얀마 불교사의 독보적인 분이다. 특히 본 『아비담맛타 상가하』의 주석서인 『빠라맛타디빠니 띠까』는 남방불교 문헌에 길이 남을 명저로 꼽힌다. 그는 위빳사나 수행으로도 높은 경지에 오른 분이며 그의 4대째 제자가 인도를 중심으로 전 세계에 위빳사나 수행을 보급하고 있는 고엔카(S.N. Goenka) 거사이다. 

  둘째는 마하시 스님 계열이다. 한국에서는 마하시 사야도가 위빳사나의 대가로만 거의 알려졌지만 미얀마에서는 삼장에 능통한 분으로 더 알려졌다. 특히 1966년에서 68년까지 미얀마어로 번역 출판한 『위숫디막가 마하띠까 닛사야(Visuddhimagga Mahāṭīkā Nissaya, 청정도론 대주석서 대역)』는 마하띠까가 빠알리로 쓰여진지 거의 1400여 년만에 다른 나라 말로 완전하게 번역된 최초의 책으로 꼽는다. 아직 태국과 스리랑카에는 마하띠까의 자국 번역이 없다. 이 책으로 마하시 사야도의 명성은 전 미얀마에 퍼지게 되었다고 한다.(“It must be stated that this text had enhanced the glory and fame of Mahāsi Sayādaw. ― Silananda, Ashin(1982), 190.”) 지금 미얀마에서 위빳사나 센터를 개설하여 수행자들을 제접하고 계신 스님들은 대부분 마하시 스님의 제자들이다. 이외에도 두어 분을 더 들 수 있겠지만 생략한다. 

  본서에서 역자들이 강조하고 싶은 것은 지난 세기 미얀마 최고의 인물로 추앙 받는 레디 사야도와 마하시 사야도 두 분 스님들은 아비담마에도 최고의 달인들이셨다는 점이다. 이 두분 스님들이야말로 아비담마에 대한 통찰지가 위빳사나 수행의 큰 디딤돌임을 보여주는 산 증인들이라 해야 할 것이다. 하물며 후학들이야 말해 무엇하랴. 우리가 아비담마에 대한 바른 지식이 없으면 자칫 테크닉에만 치중하여 자기가 배운 기법만을 정통으로 고집할 우려가 있고 이 테크닉이라는 지엽적인 것에 걸려 위빳사나를 팔정도를 실현하는 큰길로 살려내지 못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아비담마를 통해서 물․심의 여러 현상을 분석해서 꿰뚫지 못하기 때문에 수행 중에 나타나는 여러 현상에 속기 십상이다. 이런 의미에서 본서는 위빳사나 수행자들에게 좋은 지침서가 되리라 확신한다. 특히 본서의 9장 명상주제의 길라잡이는 『청정도론』의 멋진 요약이다. 역자들은 9장을 해설하면서 『청정도론』 가운데서 수행에 요긴한 가르침을 가급적이면 많이 본서에 인용하고 있다. 위빳사나 수행의 이론적인 배경을 알고자 하는 분에게는 9장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각 장의 해설도 가능하면 수행에 초점을 맞추려 노력했다. 아비담마는 수행의 길라잡이라는 근본을 잊지 않기 위해서이고 수행이라는 근본을 잃어버리면 아비담마는 그냥 고담준론이나 메마른 해석학에 떨어질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실제로 설일체유부를 비롯한 북방 아비다르마는 후대로 가면서 수행과 접목되지 못하고 법을 위한 법을 담론하는 쪽으로 치우친 감이 아주 많다. 여기에 대해서는 Dhammajoti(法光), Bkikkhu, 25-26 참조할 것.) 

  셋째, 아비담마에 관한 한 최고로 신뢰할 수 있는 참고서(reference book)를 만들자는 것이다. 그래서 중요한 아비담마의 전문술어들은 거의 대부분 어원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해설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서 중요한 진술에 대해서는 각주를 통해서 정확한 출처를 밝히고 있으며 『청정도론』을 제외한 인용문은 거의 대부분 빠알리 원문을 각주에서 제시하고 있다. 도표도 CMA에 나타난 것을 대부분 그대로 옮겼고 많은 부분은 실라난다 스님(U Silananda Sayadaw)의 『아비담맛타 상가하 강의교본』에 나타나는 원래의 도표를 참고하여 반영하였다. 본서는 아비담마의 전문술어들이나 가르침에 대해서 정확한 출처를 알고자 하는 불교 전공자들에게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참고서가 되리라 확신한다. 

  넷째, 무엇보다도 『아비담맛타 상가하』에 나열되고 있는 아비담마의 주제와 가르침을 가능하면 『청정도론』의 입장에서 설명하자는 것이다. 『청정도론』이야말로 남방불교의 부동의 준거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요한 전문술어들의 해설은 『청정도론』을 인용하고 있다. 『청정도론』에 나타나지 않는 설명은 다른 주석서들을 인용하고 있다. 물론 극히 드물게 『청정도론』과 『상가하』의 관점이 다른 곳도 있다. 예를 들면 물질과 마음의 존속기간을 『청정도론』은 1:16으로 보지만 『상가하』와 후대 주석서들에서는 1:17로 정착이 되었다. 그러나 이것도 관점의 차이일 뿐 결코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문제는 본서에서 해당되는 부분에서 해설을 달고 있다. 본서는 『아비담맛타 상가하』의 주제를 따라서 『청정도론』의 핵심을 골라서 인용하고 있다. 그러므로 본서는 “아비담마 길라잡이”이면서 “청정도론의 길라잡이”이기도 하다. 

  이런 의미에서 역자들은 본서를 한국 불교 1600년 역사에서 최초로 남방 아비담마를 우리의 입장에서 제대로 이해하려 노력한 책이라고 자평하고 싶다. 여기서 우리의 입장이란 수행을 중시하는 한국 선불교 전통을 말한다. 그렇지만 간화선과 아비담마(위빳사나)를 비교하는 것은 크게 자제하였다. 아직 그럴 시점이 아니며 일단 아비담마-위빳사나 체계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섣불리 간화선과 위빳사나의 두 체계를 섞어서 이해하려들면 큰 잘못을 범하게 된다고 우려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느 분야든 그 분야에서 처음 시도하는 번역은 다 그렇겠지만 역자들은 본서를 엮으면서 쏟아져 나오는 엄청난 아비담마의 전문술어들을 어떻게 한글로 옮길 것인가 하는데 무척 고심하였고 잘못 옮기지 않았나 두려워하고 있다. 물론 이 술어들 가운데서 상당한 부분은 중국에서 한문으로 정착이 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생소한 한문으로서만 옮길 수도 없었다. 한글로 풀어 적자니 말이 길어지고 산만해져서 문제가 되었다. 물론 이 둘 가운데서 중도를 취해야 하겠지만 역자들은 의논 끝에 일단 정확한 이해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한글이 어색하고 말이 길어지더라도 일단 정확한 이해를 하고 나면 다음에 더 좋은 한글 역어로 정착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정확한 이해를 기본 모토로 하여 번역과 해설을 하면서 고심을 한 몇 가지 문제를 적어본다. 

  첫째, 우리에게 생소한 중요한 술어들을 어떻게 해설할 것인가를 두고 고심하였다. 일단 모든 해설은 아비담마 전문술어들의 어원과 기본적인 의미를 파악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가능하다면 초기경에서는 어떤 문맥에서 나타나고 이것이 어떻게 아비담마에서 정착이 되었나 하는 것을 나타내려 하였다. 그러다보니 문제는 전체적으로 해설이 너무 길고 산만하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것이 아비담마 술어들을 한글로 옮기고 해설하는 처음 시도이므로 가급적이면 자세하게 설명하려 했다. 특히 아비담마는 기본 용어의 정확한 이해가 없이는 자기 식의 잘못된 이해에 빠져 버리기가 쉽기 때문이다. 

  둘째, 모든 술어들은 가급적이면 한글로 풀어 적는다는 원칙을 세웠다. 이것은 우리에게 익숙한 용어들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짝쿠윈냐나(cakkhu-vin$n$aan*a, 眼識)는 ‘눈의 알음알이’ 등으로 옮겼다. citta(心)는 ‘마음’으로 cetasika(心所)는 ‘마음부수’로 옮겼다. 그리고 초기불교의 기본 법수가 되는 칸다(khandha, 蘊)는 ‘무더기’로, 다뚜(dhaatu, 界)는 ‘요소’로, 인드리야(indriya, 根)는 ‘기능’ 혹은 ‘감각기능’으로, 아야따나(aayatana, 處)는 ‘장소’ 혹은 ‘감각장소’로 옮겼다. 이렇게 옮긴 배경은 이 단어가 처음 나오는 곳에서 나름대로 설명하고 있다. 이렇게 하다보면 한문 용어에 익숙한 분들은 당황스럽고 짜증나기 마련일 것이다. 그래서 한문 불교 용어에 익숙한 분들을 위해서 많은 곳에서 눈의 알음알이[眼識] 무더기[蘊], 기능[根] 등으로 한문을 병기했다. 무리하게 한글식 표기만을 고집하지는 않았다. 

  셋째, 善/不善으로 한역한 꾸살라/아꾸살라(kusala-akusala)의 문제이다. 아비담마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 중의 하나가 善/不善이다. 아비담마에서는 마음을 선과 불선과 이 두 개념으로 판단할 수 없는 것[無記, abyaakata]으로 분류하고, 무기는 다시 과보인 것(vipaaka)과 작용만 하는 것(kiriya)으로 나눈다. 이 관점을 놓쳐 버리면 아비담마는 어렵게 된다. 중국에서 kusala를 善으로 akusala를 不善으로 옮겼다. 이를 중국에서 善/不善으로 옮긴 것은 그 시대에 가장 적합한 말이었기 때문이겠지만 요즘 우리나라에는 善을 ‘착할 善’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선한 마음을 ‘착한 마음’으로 옮기는 것을 많이 보아왔다. 善(kusala)한 마음을 단지 착한 마음으로 이해해 버리면 아주 문제가 많다고 본다. 

  꾸살라(kusala)의 원 의미는 ‘유익한, 숙련된, 능숙한, 이로운, 좋은’ 등으로 나타낼 수 있다. 기본적으로는 도덕적으로 좋은 것을 뜻하지만 아비담마에서 善은 해탈과 열반에 도움이 되는 것이고 불선은 그와 반대되는 것이다. 이런 사정을 감안하여 역자들은 과감하게 선/불선이라는 역어를 배제하고 한글로 풀어 적기로 했다. 그래서 kusala(선)는 ‘유익한’으로 akusala(불선)는 ‘해로운’으로 옮겼다. 물론 많은 곳에서 ‘유익한[善]’, ‘해로운[不善]’으로 한문과 함께 옮기고 있다. 책을 마무리지으면서 다시 善이라는 단어가 주는 깊은 맛에 끌려 모두 선과 불선으로 다시 고치려하다가 이왕 시도한 것이라서 ‘유익한-해로운’으로 살려서 출판한다. 


  넷째, 법(dhamma)의 문제이다. 아비담마에서 dhamma는 모두 물/심의 현상을 뜻한다. 이것을 법(法)이라고 옮겨 버리면 현실성이 없어져버린다. 그렇다고 현상이나 성질로 옮기는 것도 문제가 많다. 그러나 아직 어떤 한글로 옮겨야 할지 마땅한 역어를 찾을 수 없어서 많은 경우에 법(法)으로 옮겨서 어떤 특정 현상을 강조하지만 때로는 ‘것’이라고 옮기기도 하며 문맥에 따라서 ‘현상’ ‘성질’ 등으로 옮긴 곳도 있다. 중요한 경우에는 모두 괄호 안에 dhamma라고 병기하고 있다. 

  다섯째, 많은 경우에 같이 지혜로 옮기는 빤냐(pan$n$aa, 慧, 반야)와 냐나(n$aan*a 知, 智)의 문제이다. 아비담마에서 이 둘은 같은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굳이 구분하자면 지혜에는 빠린냐(parin$n$aa, 통달지), 아빈냐(abhin$n$aa, 신통지), 앗냐(an$n$aa, 구경지), 빤냐(pan$n$aa, 통찰지) 등 초기경에 나타나는 고결한 지혜를 다 포함하는 개념이고 빤냐는 그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역자들은 본서에서 pan$n$aa를 과감히 ‘통찰지(洞察智)’로 옮기고 있다. 경이나 아비담마에서 빤냐는 무상/고/무아를 통찰하는 것(pat*ivedha)과 깊이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청정도론 IV.48; XVI.76 및 본서 7장 §28해설과 9장 처음 해설 등을 참조할 것.) 그러나 한문에 익숙한 분들을 위해서 ‘통찰지[慧]’나 ‘통찰지(반야)’ 등으로도 옮겼다. n$aan*a는 모두 ‘지혜’로 옮겼다. 

  이 이외에도 ‘마노’로 음역하고 있는 mano(意), ‘상카라’로 음역하고 있는 san#khaara(行) 등에 대해서는 본서의 해당 해설에서 나름대로 이유를 제시하고 있으니 참조하기 바란다. 



14. 맺는 말 


 본서를 마무리하면서 느낀 점은 언젠가는 『아비담맛타 상가하』와 두 중요한 주석서인 『위바위니 띠까』와 『빠라맛타디빠니 띠까』를 함께 엮어서 한글로 번역해야 한다는 점이다. 아마 한국 불교학계의 역량이 갖추어지면 가까운 장래에 뜻있는 분들에 의해서 이런 번역은 실현되리라 생각한다. 그렇게 되어야 명실공히 한국 불교도 세계 아비담마 학계에 당당하게 동참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무엇보다도 위빳사나 수행이 기법 위주의 신비주의로 흐르지 않고 팔정도를 실현하는 큰길이 되도록 그 토대를 제공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지금이야 출발 단계라 할 수 있지만 수행전통을 잘 간직하고 있는 한국불교가 수행의 길라잡이인 아비담마의 연구에서도 큰 기여를 할 수 있으리라 역자들은 확신한다. 

  역자들은 본 『아비담마 길라잡이』는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 아비담마 지침서라고 감히 자부한다. 『아비담맛타 상가하』가 모든 아비담마의 주제를 남김없이 다루고 있으며 본서는 이런 모든 주제를 『청정도론』과 『위바위니 띠까』와 『빠라맛타디빠니 띠까』를 대조해가면서 각 주제의 개념을 정확한 출처를 제공하고 옮기어 해설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자들은 일단 본서를 남방 아비담마를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디딤돌로 먼저 출간하고 차후에 아비담마를 일목요연하게 나타낼 수 있는 간결한 책들을 계속해서 출판하려 한다. 

  아비담마는 아주 섬세하여 한 부분이라도 잘못 이해하면 아비담마 전체를 오해하게 됨을 역자들은 절감했다. 특히 아비담마의 한 분야를 깊이 천착하다보면 아비담마의 큰 틀이나 큰 전제를 망각해 버리고 엉뚱한 주장을 늘어놓는 경우를 많이 보아왔다. 그래서 번역에 임하면서 한글 정착은 어색하더라도 오역과 잘못된 해설은 없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역시 잘못은 있기 마련일 것이다. 학문과 수행이 탁마를 통해서 더욱더 원숙해지는 것이라 한다면 눈밝은 분들이 본서를 읽고 부디 잘못을 지적해 주시기를 간곡히 바란다. 아비담마를 공부하는 역자들에게 그 보다 더한 기쁨은 없을 것이다. 독자제위의 많은 경책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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