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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DDHISM/아비담마 길라잡이

아비담마 길라잡이 서문 12. 남방 아비담마의 특징


남방 아비담마의 특징


  이런 『아비담맛타 상가하』의 내용을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측면으로 남방 아비담마의 특징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위 각 장의 요점과 중복되는 면도 있지만 남방 아비담마를 처음으로 접하는 분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그 특징을 몇 가지로 요약해 본다. 

  첫째, 정신-물질[五蘊]은 모두 찰나생/찰나멸이라는 점을 들 수 있다. 특히 마음을 생사를 뛰어넘은 근본자리로 이해하고 있는 한국의 대부분의 불자들은 마음은 찰나생/찰나멸이라는 이 명제를 깊이 음미해 봐야 할 것이다. 마음을 찰나생/찰나멸로 이해하고 이것을 내 안에서 확인하지 못하면 초기불교와 아비담마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둘째, 이런 궁극적 실재들을 마음(citta)을 근본으로 하여 여러 관계를 고찰해 보고 있는 것이 아바담마다. 왜냐하면 존재(대상)란 것은 내가 알지 못할 때는 존재라는 말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며, 이런 존재들을 순간순간 생멸을 거듭하면서 알아차리는 역할을 하는 것을 아비담마에서는 마음이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상을 안다고 해서 마음이라 한다(aaramman*am* cintetii ti cittam*)’라거나 ‘대상을 알아차리는 것을 특징으로 함(visayavijaanana-lakkhan*am* cittam*)’ 등으로 주석가들은 모두 대상을 알아차리는 것이 바로 마음이라고 한결같이 정의하고 있다.(마음에 대해서는 1장 §3의 해설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셋째, 마음은 대상을 아는 것으로는 단지 하나일 뿐이지만 찰나생 찰나멸을 거듭하니 이것은 한 개인의 일생에서만 하더라도 수천 억 조 번 이상의 불가설 불가설전으로 일어나고 멸한다. 그러나 아무리 수 없이 많이 일어나더라도 마음은 역할의 측면에서 보면 모두 14가지의 역할만을 하면서 일어나고 멸한다. 마음의 14가지 역할은 아주 중요하다. 아비담마를 배우는 사람은 반드시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3장 §8 해설 참조) 이렇게 14가지로 수없이 많이 일어나는 마음을 역할별로 분류하는 옛 스님들의 안목은 정말 대단하다. 이런 14가지 역할을 하는 마음들을 다시 마음이 일어나는 곳(bhuumi), 선/악/무기 등의 종류(jaati) 등으로 분류한 것이 89/121가지 마음이다. 

  넷째, 거듭 말하지만 마음을 논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대상(aaramman*a)이다. 왜냐하면 마음은 대상이 없이는 결코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아비담마의 가장 중요한 전제 중의 하나이다. 그러므로 어떤 대상을 가질 때 어떤 마음이 일어나는가를 연구하는 것도 아비담마의 큰 주제이다. 사실 이것은 수행에서도 큰 의미를 가진다. 중생은 항상 어떤 무엇인가를 대상으로 하여 해로운 업이나 유익한 업을 짓고 그래서 육도윤회하기 때문이다. 

  아비담마에서는 마음의 대상은

 ① 감성의 물질(pasaada-ruupa) 

 ② 미세한 물질(sukhuma-ruupa)

 ③ 이전의 마음(citta) 

 ④ 마음부수들 

 ⑤ 열반 

 ⑥ 개념(pan$n$atti)의 여섯 종류라고 한다. 

  이 여섯을 깊이 음미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여섯 가지 가운데서 어떤 것을 대상으로 하여 내 마음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매순간 살펴서 해로움을 일으키는 대상은 피하고 이로움을 일으키는 대상을 향해서 마음이 일어나도록 노력해야 한다. 설혹 해로움을 일으키는 대상이 나타나더라도 그것을 통해 해로운 업을 일으키지 않고 이로운 업을 일으키도록 지혜롭게 마음에 잡도리함(yoniso manasikaara, 如理作意)을 닦아야 한다는 것이 아비담마가 우리에게 간곡히 전하는 메시지 가운데 하나이다. 

  다섯째, 남방 아비담마의 가장 큰 특징은 모든 물/심의 현상은 생멸을 거듭하지만 물질이 생멸하는 속도와 마음이 생멸하는 속도는 서로 다르다고 설하는 것이다. 아비담마에서는 물질이 머무는 동안 마음은 16번이나 일어났다가 사라진다고 가르친다.(물질이 일어나는 순간까지 합치면 17번이 되고 그래서 『상가하』의 저자인 아누룻다 스님은 17번으로 정리하셨다) 북방 설일체유부 등의 아비다르마에서는 마음과 물질간의 이런 차이점까지 세밀하게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물질:마음=17:1의 속도이므로 대상을 아는 것을 그 존재이유로 하는 마음은 당연히 하나의 물질적인 대상을 두고 최대 열일곱 번을 일어나고 멸하는 것이다. 이것이 삼매에 들었을 때를 제외하고 유정들이 한 대상을 두고 일으킬 수 있는 최대의 마음순간[心刹那, citta-kkhan*a]이다. 

  여섯째, 이것을 바탕으로 아비담마의 인식론은 정교하게 체계화되었다. 이렇게 인식과정을 정리해 보면 제멋대로 일어나는 것 같은 우리 마음은 너무나 엄연한 법칙에 의해서 매찰나 생멸하고 있다는 것을 아비담마는 가르쳐주고 있다. 이런 정해진 법칙을 아비담마에서는 니야마(niyama)라 부르고 있다. 이런 마음의 법칙을 이해하면 오리무중이요 도저히 시종을 분간할 수 없을 것 같은 우리 마음도 그 가닥이 잡히게 되고 어떠한 현상이 내 마음에서 일어나더라도 그것에 속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런 힘을 아비담마는 길러주는 것이다. 

  일곱째, 남방 아바담마에서만 설하는 것이 24가지 빳짜야(조건)이다. 물론 북방 아비다르마에서도 조건에 대해서 설하기는 하지만 남방과 같이 정교하지는 않다. 남방에서는 연기법을 삼세양중인과로 설명한다. 이것이 남방불교가 가장 비판받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렇게 단순한 구도로만 남방불교를 이해해서 폄하하는 것은 남방불교에서 연기를 설명하는 심도깊은 체계인 빳타나(상호의존)를 모르기 때문에 저지르는 실수이다. 남방에서는 연기법을 일단 윤회를 설명하는 방편으로 받아들이고 매찰나 찰나에 중중무진으로 벌어지는 물/심의 현상은 24가지 빳짜야(조건)로 조직적이면서도 분석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것이 빳타나이다. 이것은 북방의 화엄에서 연기를 중중무진 연기로, 법계연기로 이해하는 것과 같은 맥락에 있다고 봐야 한다. 

  여덟째, 이런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아비담마는 내 마음에서 매찰나 일어나는 모든 해로운 것들에 속지 말고 그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을 하고 그런 노력을 체계적으로 반복해서 닦아서 필경에는 모든 해로움[不善]의 뿌리인 저 탐욕[貪], 성냄[嗔], 어리석음[痴]을 다 잘라버려서 성자가 되고 아라한이 되도록 인도하고 있다. 아비담마에서는 사마타와 위빳사나의 두 가지로 이런 수행을 체계화하여 제시하고 있다. 사실 우리가 아비담마를 공부하는 것은 이런 도닦음을 위한 것이다. 그러나 도닦음을 수행센터에서 찾고 가부좌하고 앉는데서만 찾으면 그것 또한 옳지는 않다. 물론 일상생활에서 매순간 도를 닦는다는 것은 어렵고도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도닦는 가장 고귀한 일을 하려는 사람들을 위해서 많은 수행센터가 설립되어 있는 것이다. 그곳에서 도닦는 좋은 습관을 길러 일상생활에서도 매순간 마음챙기는 노력을 쉼없이 해야 할 것이다. 

  도닦음은 매순간에 있다. 그러므로 내가 아비담마를 공부하고 이해하는 그 귀중한 시간들은 바로 나 자신을 통찰하는 도닦는 순간들이 되어야 한다. 실제로 매순간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그 마음의 일어나는 양태에 아비담마의 가르침을 견주어보지 않으면 아비담마는 진전이 없다. 아비담마는 결코 책을 통해서만 이해되지 않는다. 책의 가르침을 내 마음에 적용시켜야만 이해된다. 아비담마에서 설하는 법수들은 실제 내 마음에서 모두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아비담마야말로 진정한 위빳사나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몇 가지 측면에서 역자들이 느낀 아비담마의 중요성을 적어보았다. 이 이외에도 여러 가지를 더 들 수 있겠지만 이 정도가 아비담마를 공부하는데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아닐까 생각하여 이만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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