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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DDHISM/담마코리아_고엔카지

고엔카 수행법과 대념처경의 해석 2

2. 身念處의 入出息念(ānāpānasati)에 대한 해석 

Ānāpānasati는 들숨(āna)과 날숨(apāna)에 대한 알아차림, 혹은 마음챙김(sati)이라는 뜻으로, 한문으로는 ‘入出息念’이라 한다. Ānāpānasati는 신념처의 첫 번째 수행인데, 여러 종류의 수행 중에서도 가장 기본이 되면서도 또한 가장 중요한 수행으로도 간주되고 있다. 

여기서 수행처와 수행자세, sati를 두어야 할 지점 등이 언급되는데, 먼저 경의 내용을 인용하고 고엔카의 해석과 설명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여기 한 비구가 숲으로 가거나 나무 아래, 혹은 빈방으로 가서 다리를 가부좌로 틀고, 윗몸을 반듯하게 세운 뒤, 입 주변에 마음챙김을 고정시키고(parimukhaṃ satiṃ upaṭṭhapetvā) 앉는다.마음을 챙기면서 그는 숨을 들이쉬고, 마음을 챙기면서 숨을 내 쉰다. 

깊거나 길게 숨을 들이쉴 때에는 “(나는) 깊거나 길게 숨을 들이쉰다.”고 바르게 알고, 얕거나 짧게 숨을 들이쉴 때에는 “얕거나 짧게 숨을 들이쉰다.”고 바르게 안다. 

깊거나 길게 숨을 내쉴 때에는 “깊거나 길게 숨을 내쉰다”고 바르게 알고, 얕거나 짧게 숨을 내쉴 때에는 “얕거나 짧게 숨을 내쉰다.”고 바르게 안다. 

그는 스스로 수련하기를, “온 몸을 느끼면서(sabbakāyapaṭisaṃvedī) (나는) 숨을 들이쉴 것이다”, 라고 하고, “ 온 몸을 느끼면서 숨을 내쉴 것이다” 라고 스스로 수련한다. 

그는 또 수련하기를 “몸의 활동을 가라앉히면서 숨을 들이쉴 것이고, 몸의 활동을 가라앉히면서 숨을 내쉴 것이다” 라고 스스로 수련한다. 

여기서 고엔카가 독특하게 해석하고 있는 부분은 ‘parimukhaṃ satiṃ upaṭṭhapetvā’ 부분이다. Primukhaṃ을 자신 앞에(in front of him) 혹은 전면에(in front of face)라고 해석한 경우가 있으나, 고엔카는 접두사 pari를 around로, mukha를 ‘입’으로 해석하여 ‘입 주변, 콧구멍 입구’라고 해석했다. 

그래서 실제 수행에서는 대략 윗입술 위, 코 구멍 아래, 좀더 폭을 좁히자면 인중 부위에 sati를 고정시킨 뒤 호흡의 출입을 지켜볼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레디 사야도는 Ānāpāna-Dīpanī에서 “주의력을 관찰 대상(parimukhaṃ)에 고정시키고”라고 하여 고엔카의 해석과 차이를 보여준다. 

사실 『대념처경』에 설해진 ānāpānasati의 수행 방법은 간략하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적인 호흡을, 길면 길다고 짧으면 짧다고 그대로 알아차려(pajānāti)가는 수행이다. 

여기서 또 한 가지 해석의 차이점을 보이는 곳은 ‘sabbakāyapaṭisaṃvedī’이다. 주석서를 기반으로 하는 전통적인 해석은 sabbakāya를 ‘호흡의 온 몸(the whole body of breath)라고 해석한 반면, 고엔카는 kāya를 그냥 신체적인 몸으로 해석했다. 그는 설명하길 

“호흡을 관찰하다 보면 그 부분에서 감각을 느끼게 되고, 이 두 가지(호흡과 감각)를 수행하다 보면 온 몸(sabbakāya)에서 감각을 느끼는 단계가 온다. 자연스런 호흡으로 시작해서, 온 몸에 있는 감각을 한 호흡에 다 느끼는 중요한 지점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몸에 대한 관찰(kāyānu passanā)을 수행하기 때문에 온 몸은 느껴져야만 한다.” 

그러니까 호흡의 시작과 중간, 끝이라는 ‘호흡의 온 몸’을 다 경험해야 된다는 전통적인 해석과 신체의 감각으로서 온 몸을 경험한다는 고엔카의 해석은 상당히 관점이 다르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레디 사야도도 sabbakāya를 '호흡의 전체'로 해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고엔카가 레디 사야도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으면서도 경전의 해석에 있어서 분명한 차이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또 해석을 달리하는 부분은 ‘외적으로(bahiddhā)’란 말이 내포한 뜻에 대해서이다. 먼저 경전의 반복구를 인용해보고자 한다. 

“이와 같이 그는 내적으로(ajjhattam)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지내고, 외적으로(bahiddhā)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지낸다. 또한 내적, 외적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면서 지낸다. 이와 같이 그는 몸에서 일어남의 현상을 관찰하면서 지내고, 사라짐의 현상을 관찰하면서 지내며, 동시에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현상을 관찰하면서 지낸다. “이것이 몸이다.” 라는 마음챙김이 그에게 확립된다. 그는 그의 마음챙김을 단지 앎과 맨 알아차림만을 위한 상태까지 개발한다. 이렇게 그는 마음과 물질의 세계에서 그 어떤 것에도 집착함이 없이 초연하게 지낸다.” 

전통적인 해석에 의하면, ajjhattaṃ을 ‘자신의 몸(his own body)’으로, bahiddhā를 ‘다른 이의 몸(body of another)으로 해석하고 있으나, 고엔카는 ajjhattaṃ을 ‘몸 안으로(inside the body)’ 해석했고, bahiddhā란 몸 밖, 즉 ‘몸의 표면(the surface of the body)’이라고 해석했다. 

고엔카는 말하길, bahiddhā를 ‘다른 사람의 몸’으로 해석했다는 것은 수행자가 단지 다른 누군가를 생각하고, 다른 존재들이 어떻게 숨을 쉬는지 생각한 것으로 설명할 수는 있겠으나, 그것은 (직접적인 관찰이 아니라) 상상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해석에 동의할 수 없다. 그리고 vipassanā나 anupassanā의 전통에서는 자기자신의 몸 안에서(kāye) 관찰하는 것이기에 우리는 bahiddhā를 몸의 표면이라고 한다고 했다. 

『대념처경』에는 매 수행법 뒤에 동일한 내용을 반복하는 반복구가 21번 나온다. 고엔카는 이 부분을 매우 중요시하며, 매우 독특하게 해석을 하고 있다. 간단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몸에서 일어남의 현상(samudaya-dhamma)을 관찰하고, 사라짐의 현상(vaya-dhamma)을 관찰하며, 일어남 사라짐의 현상을 동시에 관찰하며(samudayavaya-dhamma)" 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 부분은 위빠사나의 실제적인 수행을 묘사하고 있으며,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선 굉장한 주의를 필요로 하는 부분이라고 한다. 

일어남, 사라짐이 별도로 관찰되어질 때는 『청정도론』에서 말하는 udayabbaya(生滅)의 단계라고 할 수 있고, 일어남-사라짐이 동시에 관찰되어질 때는 감각의 완전한 용해 현상, 즉 일어남 사라짐이 굉장한 속도로 간격 없이 경험되어지는 Bhaṅga(消滅)의 단계라고 해석한다. 

‘이것이 몸이다(atthi kāyo)’ 라는 알아차림이 확고하게 확립되었을 때는, 이 몸이 내가 아니고 내 것이 아니며 단지 몸일 뿐이라고 경험하여 無我를 처음으로 인정하는 단계이며, 無常(anicca)에 대한 사실적이며 실제적인 경험이 시작되었다고 본다. 

그리고 집착의 위험을 자각하게 되면서 끊임없이 변해 가는 내재된 본성 때문에 苦(dukkha)도 인식된다. 無我(anattā)가 이해되어졌으므로, 몸에 대한 집착도 사라졌다. 이것은 sati가 순간순간마다 이런 진리에 확고하게 확립된 높은 단계이다. 

그리고 “마음과 물질의 세계(loka)에서 그 어느 것도 집착함이 없이 초연하게 지낸다”는 구절은 마음과 물질(nāmarūpa)의 전 영역을 다 초월한 것이며, 그에겐 다 이상 매달릴 세계나 우주는 없다고 했다. 

이와 같이 고엔카는 이 반복구에서 수행의 시작 단계부터 최종의 단계가 다 함축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이 반복구에 함축되어 있다고 하는 수행의 진보단계는 대략 다음과 같다고 볼 수 있다. 

* 無常무상(anicca)--消滅소멸(bhaṅga)--苦고(dukkha)--無我무아(anattā)--無執着무집착--超然초연(涅槃열반) 

『대념처경』의 ānāpānasati와 관련하여 고엔카가 가르치는 ānāpānasati의 실제 수행법을 정리해보자면 간단히 두 단계로 볼 수 있다. 

(1) 들어오고 나가는 자연스런 호흡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며 집중해 나가다가 

(2) 코밑이나 인중 부위에서 일어나는 감촉이나 감각에 집중한다.
 

여기까지 사마타 수행으로 볼 수 있으나, 이 사마타 수행은 선정(jhāna)의 도달을 목표로 하기보다는 위빠사나 수행을 위한 준비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sati의 대상이 ‘호흡’에서 ‘감각’으로 바뀌었다). 그리곤 몸의 감각을 관찰하는 본 수행으로 진행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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