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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DDHISM/생활 속의 수행_남상욱님

삶의 나침반

비교적 이른 나이에 나는 직장에서 자발적 명퇴를 하고 바로 배낭매고 유랑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 때 미얀마 수행센터에 있었던 기간을 제외하곤 대부분을 인도에서 지냈는데, 겨울철 내리 삼년간 `마더하우스`에서 일(봉사)한 적이 있다. 

콜카타에 있는 "마더 하우스`중에서도 내가 일한 곳의 정식명칭은 벵갈어로`니르말 흐리데이(Nirmal Hriday) 즉, `죽음을 기다리는 집`이란 뜻이다. 인도의 그 많은 노숙인들 중에서도 상태가 심각한 분들을 모셔오는 일종의 호스피스 병동인 셈인데, 나는 이곳에서 숱한 죽음들과 함께 했다. 그 중에서도 바로 옆 침대를 쓰던 두 분의 임종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한 분은 눈썹이 진하고 키가 훤칠한 분으로 약간의 치매끼가 있었지만 늘 다소곳하고 있는듯 없는듯 조용하신 분이었다. 

대소변 실수를 해서 옷을 갈아입혀 드리면 겸연쩍은 웃음을 지으며 고분고분 잘 따라 주셔서 돌봐드리는데 아무 문제가 없었고, 만날 때 마다 몇 번이고 웃으며 악수를 청하는 분이셨다. 이 분은 건강하다가 갑자기 거동을 못하시더니, 바로 그 이튿날부터 숨이 가빠지기에 경험상 멀지 않았다는 느낌이 들어 계속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않아 임종의 징후가 보여 가볍게 손을 잡고 `두려워 하지 마시고 좋은 곳 가세요, 그리고 부처님 법 만나서 성불하세요`라며 귓가에 나직하게 짧은 영어로 인사를 드렸다.

그 말을 알아들으셨는지 신기하게도 나를 잡은 손에 약간의 힘을 주시는 것이 희미하게 느껴지더니, 잠시 후 잠이들듯 스르르 운명하셨다. 멀지 않은 전생에 나의 아버지였을지도 모르는 그분은 그렇게 편안히 가셨고 나는 그날 이상하게도 죽음의 슬픔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심지어 그분은 틀림없이 좋은 곳으로 가셨다는 생각에 터무니없이 기분까지 좋아지며, 죽음은 슬픈 것이 아니라 참 아쉬운 것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다른 한 분은 비교적 젊고 치매기는 없는 것 같은데, 늘 침상에 고양이처럼 웅크리고 계시다가 다른 사람이 조금만 건드리거나 도와드리려고 해도 곧잘 공격적인 행동을 보였다. 식사도 일일이 떠먹여드렸는데 갑자기 입안에 있던 것을 뿜어버리기도 하고, 체구도 큰데다 너무 공격적 행동을 보여 대소변 갈아드리기가 여간 어려운게 아니었다.

이 분도 급격히 병세가 악화되어 가시는길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어 드리려고 손을 잡고 안정을 시켜드리려 해도, 공포에 질린 눈빛으로 무엇에 끌리는듯 허공에 손을 저으며 줄곧 발버둥을 치셨다. 눈은 충혈되다 못해 아예 붉게 변하고 손을 잡아드리면 무엇을 잡듯 힘껏 움켜지고 휘젓다가 손톱에 긁혀 내 손에 적지않은 상처가 났을 정도이다.

몸은 고통스러워 이리저리 뒤틀고, 헛것이 보이는지 낮게 애원하는듯 중얼거리며 계속 힘들어 하셨다. 결국 가쁜 숨을 몰아쉬며 일주일 이상을 너무 힘들어 하시다가 인사 한마디 못나누고 뜬 눈으로 임종하셨는데, 왠지 그날 난 마음이 몹시 슬프고 아팠다. 가난하게 살면서 평생 사람대접 제대로 받지 못했을 그분의 인생이 측은하고, 편안하지 못한 죽음이 슬퍼서 숙소에 돌아가 잠을 청해도 자꾸만 눈물이 났다.

두 분 다 어쩌다 노숙인으로 인생을 마쳤지만 한 사람의 죽음에서는 슬픔보다 아쉬움이 컸고, 한 사람에게서는 아쉬움보다 슬픔과 연민과 아픔이 컸던 꽤 상반된 경험이었다. 흔히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을 보면서도 자신의 죽음은 망각하거나 마치 남의 일인 것처럼 애써 외면하며 사는 것 같다. 죽음보다는 삶의 문제가 더 바쁘고 시급하니까.

그러나 죽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또 어떻게 죽음을 맞이 할 것인가를 숙고해 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것은 곧 지금 이 순간 내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나침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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