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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DDHISM/無心님의 불교이야기

소요유(逍遙遊), 자유롭게 노닐다


picture_misty morning of winter Li river, Guilin, China

소요유(逍遙遊): 자유롭게 노닐다

소요유(逍遙遊)는 중국 전국시대에 장자(莊子, BC 369~286?)가 저술한 책 《장자(莊子)》의 첫 번째 편의 제목이다. 소요유(逍遙遊)는 좁쌀만한 아(我, ego)의 세계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노닐다'라는 뜻이다. 영어로는 'free wondering'이라고 번역한다.

《장자(莊子)》는 노자(老子, BC 570?~479?)가 저술한 《도덕경(도경+덕경)》과 더불어 중국철학과 중국불교(선종)의 성립과 발전 그리고 사람들, 특히 동양인들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며 동양인들의 정신적인 자유와 평화와 행복에 큰 기여를 했다. 근대 한국의 유명한 선승인 경허는 "나는 일찍이 《장자(莊子)》를 천 번 읽었다"는 말을 남겼다.

《장자(莊子)》는 원래 52편이었다고 하는데, 현존하는 것은 진대(晉代, AC 4세기)에 곽상이 사본들을 정리하여 33편으로 정리한 것이다. 내편 7편, 외편 15편, 잡편 11편으로 이중 내편이 원형에 가장 가깝고 통상 장자 자신에 의해 쓰여진 부분이라고 믿어진다.

장자는 사상적으로는 노자를 이어받았지만 두 사람의 표현방식은 서로 달랐다. 노자는 시(詩) 형식의 잠언으로 표현한 반면 장자는 산문(이야기) 형식의 우화(寓話)로 표현했다. 문학소년이자 철학소년으로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나는 이 두 분의 저서를 매우 좋아할 뿐만아니라 이 두 분을 존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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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장 사상에서 ‘道의 경지에 도달한(至) 사람(人), 道를 깨달은 사람’을 지인(至人) 또는 진인(眞人)이라고 한다. 《장자(莊子)》 내편의 첫 번째 이야기인 소요유에서 장자는 말한다.

至人無己(지인무기) 神人無功(신인무공) 聖人無名(성인무명)

지인(至人, 道를 깨달은 사람)은 자기(己, 我, ego)가 없고(無), 무아(無我)
신인(神人)은 아(我, ego)가 행하여(爲) 이룬 것(功)이 없고(無), 무위(無爲)
성인(聖人)은 이름(名, naming, 이름 지음, 분별)이 없다(無), 무분별(無分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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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가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장자(莊子)》의 첫 번째 편의 이야기인 소요유 편에 실려 있다. 

장자는 소요유 편의 이야기를 통해서 사람들을 '완전히 자유롭고 평화롭고 행복한 세계, 소요유(좁쌀만한 아我의 세계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노닐다)의 세계'로 초대한다. 장자는 말한다.

“인위(人爲)의 틀을 깨고, 좁쌀 만한 '아(我, 에고, 人)의 세계, 아상(에고심)이 개입된 욕망(탐욕과 집착)의 세계, 욕계(慾界)'에 갇혀서 서로를 비참하게 만드는 소인(小人)의 삶에서 벗어나 

‘완전히 자유롭고 평화롭고 행복한 세계, 무위(無爲)의 세계’에서 ‘한없이 자유롭게 노니는 대인(大人)의 삶, 소요유의 삶’을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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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유 편은 대부분 아주 큰 것(大人, 큰 지혜, 큰 그릇, 큰 쓰임새 등)과 아주 작은 것(小人, 작은 지식, 작은 그릇, 작은 쓰임새 등)을 비유하는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는데 그 첫 번째 이야기, ‘곤어붕새’는 북쪽 깊은 바다에 산다는 곤(鯤)이란 물고기의 이야기다. 장자는 말한다.

"북쪽(暗) 바다에 몸길이가 몇 천리나 되는 물고기 곤이 살았는데 이 곤이 변해서 붕(鵬)이라는 새가 되어 남쪽(明)으로 날아간다. 날개가 하늘을 뒤덮는 붕새(大人)를 보면서 매미와 작은 새(小人)가 비웃는데…"

이런 우화들을 통해서 장자는 사람들에게 말한다.

“대체 너는 언제까지 매미(소인배)로 머물 셈인가? 어찌 그리 속이 좁고 한치 앞만 보는가? 한치 앞만 볼 때 당장 눈앞의 이익과 좋고 나쁨 만을 따져서 일희일비(一喜一悲)하며 흥분하고 실망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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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莊子)》의 소요유 편에 나오는 이야기는 이솝 우화보다 더 황당하다. 그 황당함을 통해서 장자가 하고 싶은 것은 아마도 《장자(莊子)》를 읽는 사람들의 머리에 우선 망치로 한 방 날리는 것일 게다. 새가 알을 깨고 나와 비상의 날개를 펴는 것처럼, 하나의 세계, 인위(人爲)의 세계, 아(我, 에고, 人)의 세계가 깨어지고 더 큰 세계, 무위(無爲)의 세계,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세계, 무아(無我)의 세계에 눈뜨기 위해서는 충격이 필요하다.

그 충격은 세상 사람들을 깨우려는 시도다. 날개가 하늘을 다 덮는 새 같은 황당한 뻥을 쳐서라도.. 중요한 건 그게 뻥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좁쌀만한 아(我)의 세계에 갇혀서 아등바등 살지 말고 대자연 속에서 자유롭게 노니는 소요유의 삶을 살아라!"

"한치 앞의 땅만 보고 걷는 당신, 넓은 세상을 봐라.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봐라. 우주자연을 봐라. 너는 좁쌀이 아닌가? 생각 좀 하라!”

“자! 이제, 네 세상이 좁은 것을 알았으면, 스스로 생각하고 고민 좀 하라!”

《장자(莊子)》의 첫 번째 편인 소요유 편의 이야기들을 통해서 장자는 먼저 이렇게 외치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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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존재가
자연과의 조화 속에서
진정 자유롭고 평화롭고 행복하기를…

May all beings
be in Harmony of Nature
really be liberated.. be peaceful.. be hap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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