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음의 미시적 실상
“매순간 생멸하는 마음의 빠르기는 번갯불이 번쩍이는 것보다 더 빠르다” - 붓다
매순간 생멸하는 마음(‘수상행식’ 작용)을 ‘심찰나(心刹那)’라고 합니다. 우리가 눈을 통해서 어떤 대상을 “보았다”고 인식할 때 빛보다 더 빠르게 매순간 생멸 변화하는 ‘수상행식’ 작용의 무더기가 일어났다 사라집니다. 그것은 귀, 코, 혀, 몸을 통해서 대상을 인식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석서(아비담마, 아비다르마, 아비달마, 논장)에서는 마음(정신작용)의 생멸속도가 물질(물질작용)의 생멸속도보다 수배~십여배 정도 빠르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현대물리학(양자역학)에서는 물질이 1초에 10^23번 정도 생멸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어쨌든 마음(정신작용)은 물질(물질작용)보다 더 빠르게 생멸 변화합니다.
영화나 TV 영상은 1초에 수십 번 정도 생멸(명멸)하지만 인간의 감각기관(눈)은 그 생멸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영화나 TV에서 생멸 변화하는 영상을 볼 때처럼, 우리의 감각기관을 통한 인식 작용(‘수상행식’ 작용)은 대상의 매순간 생멸 변화 중에서 생(生)하는 것만 인식되고 멸(滅)하는 것은 인식이 안 되며, 몸도 마음도 어떤 대상도 매순간 생멸변화 없이 항상 존재한다고 착각하게 됩니다.
영화나 TV의 영상을 느리게 돌려서 빠르게 나타났다 사라지는 개개의 정지영상을 볼 수 있다면 영상 속 인물이 실체인 듯이 느껴지는 착각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몸과 마음의 매순간의 생멸 변화를 볼 수 있다면 자기 자신이 실체[atta, atman]라는 착각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육근(六根), 여섯 감각기관’과 ‘육경(六境), 여섯 감각의 대상’과 ‘육식(六識), 여섯 감각의 식(識) 작용’이 연기(조건에 따라 상호의존) 작용하여 일어나고 사라지는 마음(‘수상행식’ 작용)은 매 순간(찰나) 생멸(生滅; 생기 소멸)하며 변합니다.
육근(여섯 감각기관)으로부터 들어오는 감각에 대한 인식 작용(‘수상행식’ 작용) 중에, 몸(육근)과 상호의존 작용하여 발생하는 심소(心所; 감정, 기억, 업 따위의 마음의 내용 성분)의 작용이 또 다른 ‘인연(因緣), 인因-직접조건과 연緣-간접조건’이 되어 또 다른 다음 순간의 마음이 일어났다 사라집니다. 마음은 이렇게 매순간 인과 연기적인 생멸 변화의 흐름을 계속합니다.
요컨대 마음은 몸과 연기(인연조건에 따라 상호의존) 작용하여 매순간 생멸 변화하는 ‘수상행식’ 작용의 인과 연기적 흐름현상(줄임말로 연기현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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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중생(衆生; 생명의 무리,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이란 단지
무상[a·nicca; 늘 변함], 고[dukkha; 근원적 괴로움을 품고 있음], 무아[an·attā; 비실체]라는 특성을 지닌
몸(물질작용; [註]‘지수화풍’ 작용)과 마음(정신작용; ‘수상행식’ 작용)의 '인연조건에 따른 상호의존'(연기) 작용이 일으키는
연기적 현상(연기현상이자 자연현상)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 붓다(석가모니 부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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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안근(眼根)’을 통해 일어나고 사라지는 마음(‘수상행식’ 작용)의 미시적 진행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인연조건에 따라서, 안근(眼根)의 대상인 빛(色)이 ‘눈, 안근(眼根)’에 부딪히면 안식(眼識)과 함께 상호 작용하여 유분심(有分心, 바왕가)의 동요작용이 일어납니다. 그 동요작용이 사라지고 나서 ‘감각 받음[웨다나, 수受] 작용’, ‘상[想, 산냐; imaging] 작용’, ‘행[行, 상카라; 의지, 의도, (업)형성] 작용’, ‘식[識, 윈냐나; 앎, 판단, 분별] 작용’ 무더기가 순환 병행적으로 생겨나서 사라지고, 생겨나서 사라져 갑니다.
이렇게 미시(찰나)적인 ‘수상행식’ 작용 무더기의 인과 연기적 생멸 흐름(진행 과정)이 “보았다”라는 일상적인 인식작용인 것입니다. 거기에서 의근(意根, 마노 인드리야; 인간의 경우 뇌를 기반으로 한 정신 감각 기능)으로 다시 수없이 많은 심찰나(心刹那)가 생멸 회전(순환)해서 ‘내(我)가 어떤 대상을 보았다’라는 ‘자아개념, 자아의식’이 뒤따라 생겨납니다. 눈으로 본 순간에는 ‘나(我)라는 개념, 나(我)라는 의식’은 없습니다. ‘나(我), 자아(自我), 자아의식, 아상(我相)’이라는 것은 미시적 인식과정 뒤를 쫓아서 튀어나오는 허깨비 같은 ‘의식, 개념, 관념’에 불과합니다.
스스로(自) 실체[주체, 我; atta]라고 착각하는 자아의식은 생생하게 인식되는 ‘인간의 감각기관이 제공하는 기만적 일상감각’을 바탕으로 인식습관과 언어습관이 만들어내는 ‘생각, 의식’이자 ‘개념, 관념’입니다. 이러한 자아의식은 물론이고, ‘개념, 관념’이 정형화된 ‘언어, 지식, 학문, 사상’ 그리고 온갖 ‘감정, 기억’ 따위도 모두 인간의 여섯 감각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것들입니다.
자아의식이란 여섯 감각(인식정보)을 처리하는 주체나 실체(我)가 따로 있다는 ‘생각, 의식’입니다. ‘나라는 실체(我)가 있다’라는 자아의식, 자아실감은 감각(인식정보)을 ‘수상행식’ 작용으로 처리하는 과정 중에 발생하여 ‘생각, 판단, 분별’ 따위의 의식작용을 통해서 강화되는 착각의식, 착각실감입니다.
'현재 내(我)가 있다'라는 자아실감은 ’현재의 실감‘이 아닙니다. 감각기관으로부터 감각(인식정보)이 들어와 인식작용(‘수상행식’ 작용)으로 그 인식정보를 처리하고 나면 비로소 '내(我)가 보았다, 내가 들었다, 내가 느꼈다.' 따위의 자아실감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현재 내(我)가 있다'라는 자아실감은 현재의 실감이 아니라 짧은 순간 전 ’과거의 감각‘을 가공처리해서 생겨나는 개념(관념)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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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지수화풍’ 작용, 몸의 미시적 실상
‘지수화풍’을 한문 경전에서는 ‘사대(四大) 또는 사대색(四大色)’이라고 합니다. 사대색(四大色)은 부처님께서 사용하신 고대인도어 ‘마하부따루빠[mahā-bhūta-rūpa]’를 한문으로 번역한 것입니다.
여기서 색(色)은 ‘물질’을 의미하는데 고대인도어 루빠[rūpa]를 한문으로 번역한 것입니다. “루빠[rūpa; 물질, 물체]는 색깔(色)과 형태(모양, 형체)를 지니는 것이 그 특징이다”라는 부처님의 설법(법法을 설명함)에 따라, 표의문자의 특성상 한 글자로 표현하기를 좋아하는 중국인들은 루빠[rūpa]를 ‘색(色)’으로 번역했습니다.
부처님께서 설(설명)하신 마하부따루빠[mahā-bhūta-rūpa]를 우리말로 번역하면 ‘물질[물체, 육체; rūpa]을 형성하는[bhūta] 기본[mahā] 작용(또는 요소)’ 정도로 표현하면 유사합니다.
부처님께서 물질세계와 정신세계의 실상과 진리를 관찰 탐구(조사 분석)하여 발견하시고 나서 설(설명)하신 ‘물질을 형성하는 기본 작용(또는 요소)’은 (1) 地[pathavi] 작용, 무거움(중력 또는 질량) 작용, (2) 水[apo] 작용, ‘수축, 응축, 인력, 잡아당김’ 작용, (3) 風[vayo] 작용, ‘팽창, 척력’ 작용, (4) 火[tejo] 작용, ‘변화, 열’ 작용입니다.
물질의 기본 구성체(물질의 최소단위; 부처님께서 사용하신 용어로는 깔라빠kalāpa)인 원자도 물질이기 때문에 극미하지만 얼마간의 ‘地[pathavi; 무거움 또는 질량] 작용‘이 있습니다. 이 무거움(질량, 地) 작용은 다른 작용, ’水[apo; 수축인력] 작용’에 의해서 잡아당겨져 연결되어 있고, 동시에 또 다른 작용, ‘風[vayo; 팽창척력] 작용’에 의해서 어느 정도 밖으로 당겨져 형체적 균형을 이루고 있으며, 또 다른 작용, ‘火[tejo; 변화] 작용’에 의해서 끊임없이 매 순간 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컨대, 깔라빠(물질의 최소단위, 원자) 그리고 깔라빠(원자)로 구성된 모든 루빠(물질, 물체, 육체)는 실체(고정불변하고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라, 연기(조건에 따라 상호 의존) 작용하여 매순간 생멸(생기 소멸) 순환(삼사라)하며 변화하는 사대[四大; 地水火風] 작용의 인과 연기적인 흐름현상, 줄임말로 연기현상입니다.
이처럼 매 순간(찰나) 생멸 변화하는 사대(四大; 地水火風) 작용이 ‘인연(인因-직접조건, 연緣-간접조건)에 따라 상호의존 작용하면’(연기 작용하면, 인연 화합하면) 깔라빠(물질의 최소단위, 원자)라고 인식됩니다.
'고정불변(늘 동일)하고 독립적인 존재'(실체)로서의 원자는 없습니다. 원자(깔라빠)로 구성된 모든 물질(물체, 육체, 몸)도 마찬가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