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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DDHISM/無心님의 불교이야기

정각(正覺)에 이르는 바른 실천 [마무리 글]

■ 정각(正覺)에 이르는 바른 실천 [마무리 글]


요컨대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생명의 무리)이 근원적으로 안고 있는 괴로움(苦, 고성제)과 그 괴로움이 발생하는 근본원인(集, 집성제)이 무엇인지에 대한 가르침이며, 또한 그 근본원인을 완전히 소멸(滅, 멸성제)시키고 정각(해탈, 열반)에 도달(道, 도성제)하는 바른 길(八正道)을 경작하여 계발하는 팔정도 바와나(팔정도를 계발하는 수행)에 대한 가르침이다

부처님께서는 듣는 사람의 근기(여러 가지 경험-일상경험, 수행경험 등, 소질, 적성, 취향, 성향, 성격, 여러 가지 능력-이해력, 집중력, 인내력 등)와 그 사람이 처한 환경(처지, 상태)에 맞춰서 비유적, 우화적, 문학적, 분석적, 종합적, 논리적, 경험적, 합리적, 과학적 방법 등 다양한 방법으로

실상(존재의 실제 모습; 연기의 실상)과 진리(진실한 이치, 자연의 이치/법칙, 연기의 이치/법칙; 연기의 진리) 그리고 팔정도(정각에 도달하는 여덟 부분으로 이루어진 바른 길)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를 시키고 나서 연기(조건에 따른 상호의존) 방식의 수행인 팔정도 바와나의 구체적인 실천(실라-사마타-위빠사나)을 가르치셨다

부처님의 가르침(설법; 법法을 설명함)을 이해하면, 처음에는 비록 지식차원의 피상적인 이해라 해도 스스로 실천할 마음을 갖게 되고, 실천하면 이해가 더 깊어지고 다시 더 깊은 실천을 하게 되어, 결국, 지식차원의 피상적인 이해(문혜聞慧, 사혜思慧)는 팔정도 바와나(실라-사마타-위빠사나)의 구체적인 실천경험을 통해서 자신과 세상의 실상과 진리를 여실히(있는 그대로) 꿰뚫어 보는 통찰지혜(바와나빤냐/수혜修慧; 수행의 통찰경험에 의해서 생기는 지혜)가 된다

팔정도 바와나(팔정도를 계발하는 수행)를 스스로 실천하여 자신의 통찰경험으로 완성한 바와나빤냐(수행지혜/통찰지혜)만이 무명을 완전히 부수고 정각을 증득(증명경험으로 득)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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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는 듣는 사람의 근기와 그 사람이 처한 환경(처지, 상태)에 맞춰서 그 사람이 이해하도록 가르치셨다는 것을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 보면, 나의 근기(경험, 소질, 적성, 성향, 성격, 여러 가지 능력 등)에 따라서 그리고 내가 처한 환경(처지, 상태)에 따라서 부처님의 가르침(설법, 법法을 설명함; 경전의 내용) 중 어떤 것은 이해가 되기도 하고 어떤 것은 이해가 안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또한 내 근기가 좋게든 나쁘게든 변하기 때문에 어제 이해가 안 되던 것이 오늘은 이해가 되기도 하고, 또는 그 반대가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부처님의 가르침(설법; 법法을 설명함)을 수시로 다시 읽고 공부해서 바른 이해를 점점 더 바르게 Update(갱신) 해야 하는 이유다.

특히 부처님께서 설(설명)하신 실천법(수행법)인 팔정도 바와나(팔정도를 계발하는 수행)는 실천이기 때문에 문헌(기록물, 경전)의 이해만으로는 실천 상의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부처님의 직접 저술을 보면서 직강을 듣거나 직접 지도를 받으면 좋을 텐데 부처님께서는 직접 저술을 하지 않으셨고 적멸하신지 2500년이 지나면서 기록물(경전)의 변질 변형, 즉 후대 제자들에 의한 경전의 기록, 번역 시의 오류, 언어의 시대적 변천, 그리고 개인적 집단적 욕망(사리사욕 또는 탐진치)이 개입된 변질 변형이 있으므로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실천법(팔정도 바와나)을 바르게 배우고 바르게 실천하는데 어느 정도 문제가 있다.

다행스러운 점은 부처님의 가르침(설법; 법法을 설명함)은 매우 경험적이고 합리적이고 논리적이기 때문에 그리고 부처님께서 구사하신 언어는 매우 소박하면서도 적확(적절+명확)하기 때문에,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관점에서 변질 변형된 부분을 걷어내고 보면 바르게 공부하고 바르게 이해하기가 가능하며 또한 바르게 실천(수행)한 결과(성과, 성취)를 경험적으로 합리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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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인 팔정도 바와나의 실천, 특히 사마타('정定, 사마디/삼매; 정정진·정념·정정' 바와나)와 위빠사나(사마타 후에 하는 깊은 '혜慧, 빤냐/반야; 정견·정사유' 바와나)의 실천은 문헌상의 기록만으로는 실천상의 어려움이 있을 수 있고 시행착오가 생길 수 있으므로 바른 수행경험을 갖은 바른 수행자(스승, 선지식)의 지도를 받아 바르게 실천하는 것이 보다 더 좋을 것이다.

스승을 택할 때 반드시 유의할 점은 팔정도 바와나(팔정도를 계발하는 수행)에 대한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바른 설법; 正法)이 기록된 경전을 기준으로 바른 스승인지 아닌지를 판단해서 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팔정도를 계발하는 수행을 바르게 실천하고 가르치는 바른 스승을 찾지 못했다면 그런 스승을 찾을 때까지 (도반이 있다면 도반과 함께)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바른 설법; 正法)이 기록된 경전에 의지해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는 편이 났다'(법등명 자등명)

어쨋든 부처님의 가르침(설법; 법法을 설명함)을 이해하면, 처음에는 비록 지식차원의 피상적인 이해라 해도 스스로 실천할 마음을 갖게 되고, 실천하면 이해가 더 깊어지고 다시 더 깊은 실천을 하게 되어, 결국, 지식차원의 피상적인 이해(문혜聞慧, 사혜思慧)는 팔정도 바와나(실라-사마타-위빠사나)의 구체적인 실천경험을 통해서 자신과 세상의 실상과 진리를 여실히(있는 그대로) 꿰뚫어 보는 통찰지혜(바와나빤냐/수혜修慧; 수행의 통찰경험에 의해서 생기는 지혜)가 된다

팔정도 바와나(팔정도를 계발하는 수행)를 바르게 실천하여 스스로의 통찰경험으로 완성한 바와나빤냐(수행지혜/통찰지혜; 수행의 통찰경험에 의해서 생기는 지혜)만이 무명을 완전히 부수고 정각(완전한 바른 깨달음)을 증득(증명경험으로 득)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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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팔정도 바와나' 관련 용어 정리

• 수행(修行) : 수행(修行)의 글자 뜻은 몸과 마음의 '행(行)을 닦음(修, 수련함)'이라는 뜻이다. 수행(修行)은 '경작하다, 계발(열고 발전향상)하다'라는 뜻을 지닌, 부처님께서 사용하신 고대인도어 '바와나(bhāvanā)'를 한역한 것이다. 우리에게는 수행이라는 말이 매우 익숙하니 바와나는 '계발 수행', 팔정도 바와나는 '팔정도를 계발하는 수행' 또는 '정각으로 가는 여덟(八) 부분으로 이루어진 바른(正) 길(道)을 경작하여 계발하는 수행' 정도로 표현하면 그 의미가 유사하다

• 실라(계戒) : 정어(바른 언어)·정업(바른 행위)·정명(바른 삶/생활/생계)
• 사마디(정定, 삼매; 定은 사마디의 한문 의역, 삼매는 사마디의 한문 음사) : 정정진(바른 노력/정진)·정념(바른 사띠)·정정(바른 삼매)
• 빤냐(혜慧, 지혜, 반야; 慧는 빤냐의 한문 의역, 반야는 빤냐의 한문 음사) : 정견(바른 봄/관찰/통찰, 조사, 앎/이해/견해)·정사유(바른 생각/사유, 분석)

• 빤냐(반야) : 빤냐(반야)는 일반적인 지혜가 아니라, 자신과 세상(우주자연)의 실상(실제 모습; 연기의 실상)과 진리(진실한 이치, 자연의 이치/법칙, 연기의 이치/법칙, 法; 연기의 진리)를 '있는 그대로' 바르게 아는 바른 지혜이자, '우리가 괴로움의 굴레에 어떻게 빠져드는지, 또 어떻게 하면 그로부터 근원적으로 벗어날 수 있는지'에 대한 진리(진실한 이치)를 바르게 아는 바른 지혜

• 수타 빤냐(들은 지혜, 문혜聞慧) :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바른 설법; 正法)을 바르게 듣거나 읽어서 생기는 지식차원의 지혜
• 찐따 빤냐(사유 지혜, 사혜思慧) : 정법(正法)을 바르게 사유해서 생기는 지식차원의 지혜
• 바와나 빤냐(수행 지혜, 수혜修慧) : 팔정도 바와나(실라-사마타-위빠사나)를 바르게 실천(수행)해서 생기는 경험차원의 지혜

• 사마타 = 사마디(정정진·정념·정정) 바와나
; 삼매(몰아 고요집중) 상태를 계발하는 수행

• 위빠사나 = 사마타 후에 하는 깊은 빤냐(정견·정사유) 바와나
; 삼매 상태에서 계발되어 '한시적'으로 유지되는 극대화된 고요집중의 사띠 능력을 사용해서 4념처(신수심법; 자신과 세상)를 깊이 정견(바르게 관찰, 통찰, 조사)·정사유(바르게 분석 사유)하여 자신과 세상의 실상과 진리에 대한 통찰경험의 지혜를 계발하는 수행

• 마른 위빠사나 = 사마타로 바른 삼매를 계발하지 않고 하는 위빠사나
; 바른 삼매 상태에서 극대화되는 고요집중의 사띠 능력을 계발하지 않고 4념처(몸과 마음 그리고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감각/현상)를 알아차림하는 수행을 '마른 위빠사나'라고 부르기도 함

• 사띠 : 마음챙김(mindfulness), 전념, 알아차림; 지금 이 순간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을 마음챙겨 전념하여 알아차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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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의 가르침(설법; 법法을 설명함)' 사진첩에 포스팅한 글들은 부처님께서 지식차원에서 설(설명)하신 팔정도 바와나(팔정도를 계발하는 수행)와 관련된 가르침(설법; 법法을 설명함)을 오늘날의 지식과 용어를 동원해서 소상히 서술하여 옮긴 것입니다.

요즘 유행하는 남방불교의 마하시 명상쎈터 등의 Vipassana meditation(위빠사나 명상), Mindfulness 명상 또는 서구에서 유행하는 MBSR(Mindfulness Based Stress Reduction) 명상, 그리고 티벳불교의 로종(lo마음 jong닦기/바꾸기) 수행, 정지正知 수행, 고엥까식 위빠사나 등은 일종의 마른 위빠사나이자 재가자들을 위한 일상수행(일상생활 속에서 하는 수행)의 범주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남방불교(마하시, 쉐우민 명상쎈터 등)에서 가르치는 마른 위빠사나 보다, 티벳불교에서 가르치는 일상수행, 고엥까 명상쎈터에서 가르치는 일상수행, 정토회(법륜승려)에서 가르치는 일상수행(깨달음의 장, 일명 깨장 수행)이 일상생활에서 일반 사람들의 평화와 자비(바른 사랑)와 행복에 더 도움이 되는 방편이라고 생각합니다

팔정도를 계발하는 수행에 속하는 수행은 어떤 수행이라도 바르게 배워서 바르게 실천하면 그 나름대로 효과가 있습니다. 물론 팔정도 바와나(팔정도를 계발하는 수행)에 대한 전체적인 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자신의 현재 근기(여러 가지 경험-수행경험, 일상경험, 소질, 적성, 성향, 성격, 여러 가지 능력-이해력, 집중력, 인내력 등)와 처한 환경(처지, 상태)에 맞는 바른 수행을 하면 효과와 성취가 더 좋을 것입니다

팔정도 바와나(팔정도를 계발하는 수행)를 바르게 실천하면 수행의 중간 과정에서도 식(識; 앎, 알음알이; 의식/일상의식/표면의식 + 무의식/잠재의식/심층의식/아뢰야식/바왕가)의 착각과 집착에서 벗어나는 정도 만큼, 특히 아상(我相; ‘나我’라는 상대相적 분별식, 에고심)의 착각과 집착 그리고 탐(갈망, 탐욕), 진(갈망의 다른 측면인 혐오, 증오, 분노, 화, 두려움), 치(갈망과 혐오, 탐·진에 대한 집착과 어리석음)가 줄어드는 정도 만큼 저마다의 자유와 평화, 분별 집착 없는 지혜로운 바른 사랑(자비)과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런 점이 부처님께서 당신의 가르침을 '처음도 중간도 끝도 좋은 가르침'이라고 하신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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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는 삼명(三明; 숙명명, 천안명, 멸진명)으로 무상정등각(줄임말로 정각; 위 없이 평등하고 완전한 바른 깨달음)을 증득하시고 난 후, 당신께서 시행착오를 겪으며 암중모색하여 완성하신 수행경험을 '경험적+합리적'으로 정리하여 당신과 같은 '깨달은 자(부처)가 되는, 무상정등각(정각)에 도달하는 여덟 부분으로 이루어진 바른 길', 줄임말로 '팔정도'라고 이름 붙이시고, 그 바른 길(팔정도)을 바와나(경작하여 계발)하는 '팔정도 바와나'(팔정도를 계발하는 수행)를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사람들에게 가르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팔정도 바와나(팔정도를 계발하는 수행)의 가르침을 따라 많은 사람들이 정각을 증득한 사람(아라한)이 되었습니다 (십대 제자를 포함한 이른바 천이백 아라한)

당시의 인구 추정치와 역사적 자료를 참고한 학자들의 추정치에 의하면 부처님께서 활동하셨던 갠지즈강 중북부 지역에서 사문(재가, 출가를 포함해서 부처님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하는 사람)의 수효가 약 십만 명 정도였다고 하니 그 중에서 약 천 명 정도(백 명당 한 명 꼴)를 당신과 같은 아라한(부처님도 아라한입니다. 스승으로서의 능력이 매우 뛰어난 아라한)으로 이끌었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들 아라한들 중에는 스승으로서의 능력이 뛰어난 사람도 있고, 분석력이 뛰어난 사람도 있고, 논리력이 뛰어난 사람도 있고, 토론 능력이 뛰어난 사람도 있고, 두타행이 뛰어난 사람도 있고, 청소를 잘하는 사람도 있고, 브라만 계급도 있고, 크샤트리아 .. 불가촉천민 계급도 있습니다. 부처님을 포함한 아라한들은 그 출신과 근기(경험, 소질, 적성, 성향, 취향, 성격, 여러가지 능력 등)는 모두 다르지만 정각(완전한 바른 깨달음)을 증득하여 완전한 자유(해탈)와 평화, '나'를 초월한 분별 집착 없는 완전히 지혜로운 바른 사랑(자비)과 완전한 행복(열반)의 경지(상태)에 머무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팔정도 바와나를 연기(조건에 따른 상호의존) 방식으로 완성하여 정각을 증득하는데 걸리는 기간이 개인의 근기, 즉 경험, 소질, 적성, 취향, 성향, 성격, 여러 가지 능력(예컨대, 지적능력, 이치를 이해하는 능력, 한 가지 일에 집중하는 능력, 인내력 등), 현재 수행 상태(수행 경험) 등의 개인차에 따라 7년~7일 정도라고 부처님께서는 여러 경전에서 말씀하십니다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을 당시에는 바보라 불릴 정도로 일반인에 비해 지적능력이 매우 부족했던 쫄라빤따까(일명 바보 주리반특)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수 년 간 수행하여 정각을 증득한 사람(아라한)이 되었습니다. 사리뿟따(사리불, 사리자; '사리'라는 여인의 아들子)는 부처님의 제자가 된 후 15일 만에 아라한이 되었고, 이미 네 단계 선정의 자유자재와 네 단계 무색계 삼매를 모두 이룬 수행 상태였다고 추정되는 바히야 따루찌리야는 탁발하러 가시는 부처님께 가르침을 청하여 듣고 난 후 그 자리에 앉아서 수행하여 불과 몇 시간 만에 아라한이 되었습니다

부처님께서 펼쳐 놓으신 팔정도를 계발하는 수행의 바른 가르침(正法)이 오늘날에도 바르게 전승 전파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정각으로 가는 올바른 길을 안내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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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존재가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正法)을 따라
지혜(빤냐/반야; 연기의 실상과 진리를 '있는 그대로' 바르게 아는 바른 지혜)와 자비(멧타-까루나; 나와 너를 초월한 분별 집착 없는 지혜로운 바른 사랑) 속에서
진정 행복하고 평화롭고 자유롭기를...

May all beings
following the Buddha's samma Dhamma
be in the Panna & Metta
really be happy.. be peaceful.. be liberated...

Moosim 두손모음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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