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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DDHISM/無心님의 불교이야기

삼법인(법法의 세 가지 인장) & 삼특상(존재의 세 가지 특성)

삼법인(법法의 세 가지 인장) & 삼특상(존재의 세 가지 특성)


이 세상(우주자연)은 아무렇게나(아무 질서나 법칙도 없이) 그냥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연기라는 자연의 법(法; 이치/법칙)에 따라 변화하고 존재하는 세계(법계法界)다. 그렇다면 이러한 연기라는 자연의 법(緣起法; 연기의 이치/법칙, 자연의 이치/법칙)에 따라 운행되는 이 우주와 그 우주 안에 실존(실제 존재)하는 존재들은 어떤 특성(특징)을 가지고 있을까? 그 특성이 ‘삼특상 또는 삼법인’이다.

삼특상(삼법인)은 연기법의 또 다른 표현이다. 이 세상(우주자연)에 실존하는 모든 존재는 연기된 존재이고 그로 인해 삼특상(삼법인)의 특성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 우주자연에 실존하는 모든 존재는 예외 없이 세 가지 공통된 특성(삼특상)을 가진다.

붓다(깨달은 자, 부처님)께서 중생(아직 깨닫지 못한 자)들이 잘못된 견해에 빠지지 않도록 이 우주자연에 실존하는 모든 존재(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와 모든 사물)의 실상을 이 세 가지로 밝혀 주셨기 때문에, 마치 '진리(法)의 세 가지 인장(印章)과 같다'하여 삼법인(三法印)이라고 한다.

어떤 가르침이 부처님의 가르침인가 아닌가, 진리인가 아닌가, 정법(正法)인가 사법(邪法 또는 유사정법類似正法)인가가 궁금하다면 삼법인이라는 기준에 맞는지 틀리는 지를 살펴보면 된다. 삼법인이라는 기준에 어긋난다면 그것은 불교(佛敎; 부처님 가르침)라고 주장해도 정법(正法; 바른 진리, 바른 가르침)이라고 할 수 없다. 

삼법인을 한글, 한문, 고대인도어로 표기하면 아래와 같다.

제행무상(諸行無常), sabbe saṅkhāra a·nicca
제행개고(諸行皆苦), sabbe saṅkhāra dukkha
제법무아(諸法無我), sabbe dhamma an·attā

사실 여러 종파, 여러 전통, 여러 형태의 불교와 여러 종류의 불경들을 살펴보면 삼법인에 근거하지 않은 비불교적인 요소들도 불교라는 이름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전세계적인 명상 열풍과 함께 온갖 사상과 가르침들이 난무하는 혼탁한 시대이다 보니 어느 것이 정법인지 사법(또는 유사정법)인지를 구분하기 어렵다.

그런 사법(또는 유사정법)은 사람들에게 깊숙이 내재되어 있는 개인적, 집단적 욕망(예컨대, 영원히 살았으면 좋겠다. 죽기 싫다. 나와 내가 속한 집단이 믿는 존재가 절대적이고 전능한 존재였으면 좋겠다. 그 존재가 나와 내가 속한 집단에게 복을 주면 좋겠다.. 등등)을 이용해서 사람들을 교묘히 홀리고 끌어들인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혼탁한 시대에 더욱 그 중요성이 부각되는 것이 삼법인(삼특상)이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설(설명)하신 삼법인(삼특상)을 지식차원에서나마 반드시 바르게 공부해서 바르게 이해해야 한다.

부처님 가르침이 인도 북방으로 전해진 산스크리트어 경전과 한문 경전에서, 제행무상(諸行無常), 제행개고(諸行皆苦) 또는 일체개고(一切皆苦), 제법무아(諸法無我)를 삼법인이라고 부른다. 열반적정(涅槃寂靜)을 포함시키켜서 사법인이라고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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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행무상(諸行無常)은 부처님께서 고대인도어로 설하신 'sabbe saṅkhāra a·nicca'를 한문으로 번역한 것이다.

여기서, 
(1) sabbe(삽베)는 모든(every, all)이라는 의미로 한문으로는 제(諸) 또는 일체(一切)로 번역되었다.

(2) saṅkhāra(상카라)의 글자 뜻은 ‘saṅ, 함께, 모여서’ + ‘khāra, 만든다, 행한다’가 합쳐진 말로, ‘함께 모여 만들어진 것, 지어진 것’이다. saṅkhāra(상카라)는 형성된 것, 조건 지어진 것, 연기(조건에 따라 상호 의존)된 것(연기 현상)을 의미한다. 한문으로는 행(行)으로 번역되었고, 영어로는 conditioned thihg(조건 지어진 것)으로 번역한다. saṅkhāra(상카라)는 더 이상 조건 지어지지 않는 현상인 열반(해탈)을 제외한 모든 현상이다.

행(行, saṅkhāra)은 열반(해탈)을 제외한 연기법의 지배를 받는 우주자연에 실존하는 모든 것, 인연(인因-직접 조건과 연緣-간접 조건)에 따라서 상호 의존 작용하여 끊임없이 매 순간 생기 소멸하며 변하는 연기적 존재(연기 현상)를 의미하는데, 유위법(有爲法; 형성된 존재, 지어진 존재, 연기적 존재) 또는 유위행(有爲行; 지어진 작용, 연기적 작용, 연기적 존재의 행)이라고 한역하기도 한다.

인간이 행(行)하는 모든 행위, 일(사건), 생각 등과 그로인한 기억, 감정, 업 등은 물론 이 우주자연에 실존하는 물질-정신적인 모든 것, 모든 존재는 모두 연기법(연기의 이치/법칙)에 따라 매 순간 인과 연기적으로 생멸(생기 소멸) 변화한다.

(3) a·nicca(아닛짜)의 글자 뜻은 '항상(nicca)하지 않음(a)'이다. a·nicca는 ‘항상하지 않음, 한순간도 동일한 상태에 있지 않음, 매 순간 생멸변화 함‘이라는 의미다. 무(無)자를 좋아하는 중국인들은 a·nicca를 비상(非常; 항상하지 않음)이 아닌 무상(無常; 항상함이 없음)으로 번역했다. 영어로는 impermanent(영속하지 않음, 일시적임), 'not stable'(지속적이지 않음), ‘not in a constant state of flux'(흐름의 동일한 상태에 있지 않음) 또는 ‘vanishing from moment to moment'(순간순간 사라짐) 등으로 번역한다.

부처님께서 설하신 "sabbe saṅkhāra anicca(諸行無常)"는 "세상(우주자연)에 실존(실제 존재)하는 조건지어진 모든 것(물질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생명이든 비생명이든)은 매 순간 인과 연기적으로 생멸(생기 소멸) 변화한다"는 진리를 핵심 키워드로 표현하신 것이다. 

제행무상(諸行無常)은 이 세상(우주자연)에 실존하는 모든 조건지어진 것(연기된 것, 연기현상, saṅkhāra; 行)은 모두 다 항상(nicca; 常)하지 않다, 무상하다는 뜻이다. 모든 연기적 존재(유위법有爲法)도 항상 하지 않고, 연기적 존재의 행(유위행有爲行) 또한 항상 하지 않다는 것이다. ‘나’라는 연기적 존재와 '너'라는 연기적 존재도 무상하고, 내가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사물도 무상하고, 내가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감정, 생각, 기억, 의식 따위의 행(行)’ 또한 무상하다.

제행무상은 불교(부처님 가르침)의 존재론이다. 그 밑 바탕이 되는 것은 연기법(연기의 이치/법칙)이다. 모든 존재는 서로 연기(조건에 따른 상호 의존) 관계에 있으며, 그것들은 여러 조건(인연; 인因-직접조건과 연緣-간접조건)에 따라 상호 의존하여 생기하고, 그 조건(인연)이 사라지거나 상호 의존하는 존재가 소멸하면 그로 말미암아 상대적 존재도 소멸한다는 것이 연기법(연기의 이치/법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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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행개고(諸行皆苦)는 고대인도어 'sabbe saṅkhāra dukkha'를 한역한 것이다.

여기서, dukkha(둑카)는 ‘근원적 괴로움’이라는 뜻이다. 이 우주자연에 실존하는 모든 존재는 자신이 무상한 연기적 존재라는 실상을 모를 때, 그 ’모름, 무명(無明, avijjā; 존재의 실상과 진리를 완전히 자각하지 못함)‘과 존재의 ’무상성(無常性), 무상한 성질(특성)‘로 인해서 근원적으로 그 자체 안에 괴로움의 씨앗(근본원인)이 들어 있는 존재다. 

dukkha(둑카)는 saṅkhāra(상카라; 열반을 제외한 연기법에 지배를 받는 이 우주자연에 실존하는 모든 연기현상, 연기적 존재)의 ‘무상성과 무명’으로 인해서 근원적으로 조건지어지는 ‘근원적 괴로움’이라는 뜻이다. 한문으로는 고(苦)라고 번역되었고, 영어로는 suffering이라고 번역한다.

부처님께서 설하신 "sabbe saṅkhāra dukkha(諸行皆苦)"는 "이 세상(우주자연)에 실존하는 모든 조건지어진 존재(연기적 존재; saṅkhāra, 行)는 존재의 무상성과 무명으로 조건지어진 근원적인 고(苦)를 내포하고 있다."는 진리를 핵심 키워드로 표현하신 것이다. 

제행개고(또는 일체개고)는 불교(부처님 가르침)의 실존론이다. 그 밑 바탕이 되는 것은 불교의 존재론이자 연기법(연기의 이치/법칙)인 제행무상이다. 자신을 포함하여 일체 모든 생명과 사물이 무상한 것이라는 실상을 모르거나 착각하여 집착할 때 그 존재의 실존양상은 그 자체 안에 근원적으로 고(苦)의 씨앗(근본 원인)을 품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제행무상한 존재의 실존양상을 표현한 것이 제행개고다.

"sabbe saṅkhāra dukkha(諸行皆苦)"라는 진리를 달리 표현하면, "인간이 경험하는 모든 괴로움은 근본 원인(근원)이 있는 괴로움이다. 인간이 경험하는 모든 고(苦)는 조건지어진 고(苦), 즉 존재의 무상성과 무명으로 인해서 근원적으로 조건지어진 고(苦)다."라는 진리다.

존재의 무상성(무상한 성질)은 우리가 어찌할 수 없지만 무명(실상과 진리를 철저히 깨닫지 못함)은 극복할 수 있다. 즉 부처님께서 자신이 실천하시고 나서 가르치신 팔정도 바와나(팔정도를 계발하는 수행)를 바르게 실천해서 정각(실상과 진리를 완전히 바르게 깨달음)을 증득하면 부처님처럼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나 완전한 자유(해탈)와 평화, 나(我)를 초월한 분별 집착 없는 지혜로운 바른 사랑(자비)과 완전한 행복(열반)의 경지(상태)에 도달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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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법무아(諸法無我)는 고대인도어 'sabbe dhamma an·attā'를 한역한 것이다.

여기서, 
(1) dhamma(담마)는 진리, 부처님 가르침, 법칙, 것, 현상 등 여러가지 의미로 사용되는데, 여기서는 것이나 현상을 뜻한다. dhamma(담마)는 더 이상 조건 지어지지 않는 현상인 열반(해탈)까지도 포함하는 모든 현상을 의미한다. 한문으로는 법(法)으로 번역되었고, 영어로는 thing, phenomenon 등으로 번역한다.

삼법인에서 saṅkhāra(상카라; 行)는 ‘조건 지어진 현상, 연기현상’을 의미하고, dhamma(담마; 法)는 ‘조건 지어진 현상과 조건 지어지지 않는 현상(열반)을 모두 포함하는 모든 현상’을 의미한다. saṅkhāra(行)를 ‘conditioned thing’으로, dhamma(法)를 ‘thing’으로 영역한 것은 비교적 잘 된 번역이다.

(2) an·attā(아낫따)의 글자 뜻은 '실체(attā)가 아님(an), 비(an)실체(attā)'다. 무(無)자를 좋아하는 중국인들은 an·attā를 비아(非我; 실체 아님)가 아닌 무아(無我; 실체 없음)으로 번역했다. 영어로는 ‘not-self, non-ego, 아(我) 아님’, egolessness, soul-less, 또는 ‘the illusion of self, 아(我)라는 착각, 환상’ 등으로 번역한다.

attā(앗따, 산스크리트어 atman아트만)는 한문으로 아(我)라고 번역되었다. 영어로는 ego(에고), soul(영혼, 생명체의 내면에 있는 실체-독립적이고 고정불변한 존재) 등으로 번역한다.

부처님께서 설하신 "sabbe dhamma an·attā(諸法無我)"는 "이 세상(우주자연)에 실존하는 모든 것(물질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생명이든 사물이든)은 고정불변(늘 동일)하고 독립적인 존재(실체; attā)가 아니라(an), 연기(조건에 따라 상호 의존)하여 매 순간 생멸(생기 소멸) 변화하는 인과 연기적 현상(dhamma)이다"라는 진리를 핵심 키워드로 표현하신 것이다.

우주자연의 실존하는 모든 것(물질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생명이든 비생명이든)은 고정불변하고 독립적인 실체가 아니라 연기적 현상(연기현상이자 자연현상)이다. 우주자연의 일부인 ‘나’도 실체가 아니라 하나의 연기현상이자 자연현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제법무아는 불교(부처님 가르침)의 인간론이기도 하다. 그 밑 바탕은 불교의 존재론이자 연기법(연기의 이치/법칙)인 제행무상이다. 우주자연에 실존하는 모든 존재가 무상(anicca)한 존재이기 때문에, 즉 조건(인연)에 따라 상호 의존(연기)하여 매 순간 생멸(생기 소멸) 변화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독립적이고 고정불변한 존재(실체)로서의 자아 같은 것은 없다. 

"sabbe dhamma an·attā(諸法無我)"라는 진리를 달리 표현하면, '연기법의 지배를 받지 않는'(연기세계를 벗어나는, 더 이상 조건 지어지지 않는) 현상인 열반까지도 포함한 모든(諸) 것(현상, 法)은 모두 다 실체(我)가 아니라는 진리다.

연기세계를 벗어나는(더 이상 조건 지어지지 않는) 현상인 열반을 포함한 모든(諸) 현상(法)이 ‘무상(無常)하다, 조건(인연)에 따라 상호 의존(연기)하여 생멸(생기 소멸) 변화한다'고 말하는 것(제법무상)은 맞지 않는 표현이지만, 연기 현상 뿐만 아니라 열반을 포함한 모든(諸) 현상(法)이 ’무아(無我)다, 비실체다, 실체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제법무아)은 바른 표현이다. 

"열반은 있으나 열반에 드는 자는 없다.", 열반이라는 현상은 있으나 열반에 드는 자(실체)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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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無常), 고(苦), 무아(無我)는 부처님께서 사용하신 고대인도어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ā)를, 표의문자이기 때문에 가능하면 한 글자로 표현하기를 좋아하고 비(非)자 보다 무(無)자를 좋아하는 중국인들이 한문으로 번역한 것입니다.

오랫동안 한자문화권에 있었던 우리에게 무상, 고, 무아가 익숙하니 이를 사용하더라도, 부처님께서 설(설명)하신 아닛짜(a·nicca), 둑카(dukkha), 아낫따(an·attā)의 본래의 의미를 바르게 분명히 알고 사용하면 혼란과 오해를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이상이 부처님께서 지식차원에서 설(설명)하신 삼법인(삼특상)과 관련된 가르침(설법; 법을 설명함)을 오늘날의 지식과 용어를 동원해서 소상히(자세하고 분명하게) 서술하여 옮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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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관(無常觀)

탁월한 분석과 명료한 법문으로 대중을 제도한 논의제일 제자, 마하캇차야나(마하가전연)가 부처님께 ‘자신과 세상에 대한 바른 인식’에 대해 묻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는 자신과 세상이 매 순간(현재 순간, 지금) 사라지고 있음을 ‘있는 그대로’ 바르게(삼마, 正) 보아 자신(我)과 세상이 있다는 생각을 내지 않는다. 또한 그는 자신과 세상이 매 순간 일어나고 있음을 ‘있는 그대로’ 바르게 보아 자신(吾)과 세상이 없다는 생각도 내지 않는다.”

여기서 ‘바르게(삼마, 正)’는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 ‘주관적인 판단 분별 집착 없이 있는 그대로’ 또는 ‘나(我, 에고)가 개입된 인식작용(생각, 기억, 감정, 의도, 판단, 분별, 집착 따위) 없이 있는 그대로’라는 의미다.

나(吾)는 고정불변(늘 동일)하고 독립적인 실체(我)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nicca, 常)하지 않은(a, 無), 매 순간 일어나고 사라지는, 매 순간 생멸 변화하는, 무상(無常)‘한 연기적 현상(연기현상이자 자연현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오(吾; 나 오)는 그런 ‘연기현상, 자연현상’에 대한 지칭이다. 아(我; 나 아)는 ‘실체로서의 나, 실체라고 착각하는 나, 나(我)라고 집착하는 나, 자아(自我), 에고’에 대한 지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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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관(無常觀)은 '일어나는, 생(生)하는' 측면도 '사라지는, 멸(滅)하는' 측면도 있는 그대로 바르게 보아 생(生)에도 멸(滅)에도 집착하지 않고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 바르게 보는(觀) 것이다. 세상(우주자연)에 실존하는 모든 것은 끊임없이 ‘매 순간 생멸(生滅) 변화하는, 무상한’ 연기적 현상(연기현상이자 자연현상)이라는 것을 항상 마음에 새겨서 바르게 보는 것이다.

생(生)하는 측면만 집착해서 보는 사람은 영원론, 영혼불멸론 따위에 빠지게 된다. 항상 무엇이 있다는 측면만 보려하니까 사람과 사물에 집착하고 탐욕을 가지기 쉽게 된다. 멸(滅)하는 측면만 집착해서 보는 사람은 단멸론, 허무주의, 비관론에 빠지게 된다. 

무상관은 생(生)도 멸(滅)도, 생겨나는 것도 사라지는 것도, 태어나는 것도 죽는 것도 모두 다 '있는 그대로' 바르게(正) 보는(見) 것이다.

흔히 ‘부처님(佛) 가르침(敎), 불교(佛敎)’가 모든 것은 무상(無常)하다고 하니까 허무주의가 아니냐고 하는데 그것은 일부 불자(佛子; 부처님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하는 자)들 조차도 무상을 멸(滅)하는 측면, 사라지는 측면, 죽는 측면으로만 치우쳐서 보는 편향된 사고방식(편견)에서 빚어진 오해다. 

사람들은 모든 게 있다는 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고착화된 습성에 젖어 있다. 그래서 사람이든 애완동물이든 물건이든 생겨나는(生) 측면은 당연하게 받아들여 쉽게 간과하고, 없어지는(滅) 측면만 더 크게 느끼기 때문에, 무상을 변해서 ’언젠가는 없어지는, 영원하지 않은(a·sassata아삿싸따) 관념적인 허무‘의 측면으로만 치우쳐서 보게 되는 것이다. 

보통 인생의 허무함을 강조하는 표현으로 쓰이는 ‘인생무상, 인생은 영원하지 않다’에서 무상은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무상(無常), 아닛짜(a·nicca)'가 아니다.

부처님께서 고대인도어로 설하신 a·nicca(아닛짜)는 '항상(nicca; 常) 하지 않다(a; 非 또는 無), 이 우주자연에 실존하는 모든 것은 한순간도 동일한 상태에 있지 않다. 매 순간 생멸 변화한다’를 표현하신 것이다.

사람들이 인생의 허무함을 강조할 때 쓰는 말인 ‘인생무상, 인생은 영원하지 않다’라는 표현에서 무상은 부처님께서 설하신 a·nicca(아닛짜)가 아니라, ‘영원하지(sassata) 않다(a), a·sassata(아삿싸따)라는 관념적인 무상’을 잘못 사용하는 것이다. 

우리가 경험하는 세상에 실존(실제 존재)하는 촛불은 'a·nicca, 항상(nicca) 하지 않다(a)‘로 표현되는 ‘한순간도 동일한 상태로 있지 않는’ 촛불이다. 'a·sassata, 영원하지(끝없지; sassata) 않다(a)‘로 표현되는 ‘일정 기간동안 동일한 촛불로 존재하다가 소멸하는’ 촛불은 관념화된 상상 속의 촛불이지 실존하는 촛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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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체의 몸과 마음은 빛과 같이 빠른 속도로 끊임없이 ‘매 순간 생멸 변화하는, 무상(無常)한’ 물질작용(사대 작용)과 정신작용(수상행식 작용)의 인과 연기적 현상이다. 비슷한 요소와 작용들이 연이어서 매 순간 생멸 변화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 빠른 생멸 변화를 알아채지 못하고, 영화나 TV에서 빠르게 생멸 변화하는 영상을 볼 때처럼 생하는 것만 인식되고 멸하는 것은 제대로 인식되지 않으므로 겉보기엔 매 순간 생멸(생기 소멸) 변화가 없이 연속적인 것처럼 보여서 무상(無常)에 둔감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 특히 일부 물리학자들이나 과학지식을 배운 사람들은 자기의 동질성(동일성)을 몸(물질)에서 찾기보다는 마음(정신)에서 찾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마음이야말로 지속적인 면에서 볼 때나 자신의 동질성(동일성)을 유지하고 있는 정도에서 볼 때 몸보다 더 믿을 만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정신작용)은 몸(물질작용)보다도 변화가 더 심하게 출렁이며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더 빠르게 생멸 변화하는 연기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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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매 순간 인과 연기적인 생멸변화)은 우주자연에 실존하는 모든 것(물질, 정신적인 모든 것)의 있는 그대로의 실상(實相; 실제 상태, 실제 모습)이다. 그것은 누가 그렇게 만든 것도 아니고, 일부러 그렇게 보려고 해서 그렇게 보이는 것도 아닌 자연현상이다. 

우주자연에 실존하는 모든 것이 실체(고절불변하고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매 순간 인과 연기적으로 생멸 변화하는’ 연기현상(자연현상)이라는 것은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사실이지만, ’인간의 감각기관이 제공하는 기만적 일상감각’과 그로인해 고착화된 언어와 사고 습관 그리고 관습과 고정관념은 그것을 보지 못하거나, 부정하거나, 외면하거나 또는 그 의미를 축소하고 싶어 한다.

인간의 일상감각, 특히 시각과 촉각에는 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져지는 인간의 몸과 주변의 사물들이 모두 실체처럼 기만적으로 느껴지고 인식된다. 그러나 인간의 일상적 수준의 감각, 특히 시각 관찰 능력을 미시(원자-아원자 레벨) 수준으로 확장시켜주는 원자현미경, 입자가속기, 거품상자 등의 과학도구를 사용해서 물체(물질)를 관찰하면 어떤 물체(물질)도 고정불변한 실체인 것은 없으며, 물질은 ‘끊임없이 순간순간(매 순간) 생멸 변화하는, 무상(無常)한’ ‘실체(我)가 아닌, 비실체인, 무아(無我)인’ 역학적(力學的) 인과(因果) 현상이라는 과학적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오늘날의 물리학자라면 누구나 물체(물질)의 '무상-무아한 실상(실제 상태, 실제 모습; 과학적 사실)'을 단순히 과학지식으로는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모두 지혜롭거나, 지혜를 깨달은 것은 아니다.

부처님께서 자신과 세상(우주자연)의 무상-무아한 실상(실제 모습; 연기의 실상)과 진리(진실한 이치, 자연의 이치/법칙, 연기의 이치/법칙; 연기의 진리)를 직접 관찰하여 발견하고 깨달으셨다는 것은, 과학도구를 사용하여 자신 이외의 물질을 간접 관찰하여 과학적 사실을 단순히 발견했다는 것이 아니고, 수행의 직접경험으로 자신과 세상의 실상과 진리를 '있는 그대로' 통찰(깊이 관찰)하여 정각(正覺; 완전한 바른 깨달음)을 증득(證得; 증명뎡험으로 득)하시고 궁극의 지혜를 완성하셨다는 것이다.

자신과 인식대상(타인, 사물; 세상, 우주자연)이 모두 무상하고(매 순간 인과 연기적으로 생멸 변화하고) 무아한(고정불변하고 독립적인 실체가 아닌) 하나의 연기적 현상(연기현상이자 자연현상)임을 ‘있는 그대로’ 바르게 보고 받아들일 때 우리는 자신과 세상(인식대상)에 대한 욕망과 집착에서 벗어나 세상을 ‘있는 그대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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