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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DDHISM/無心님의 불교이야기

경전으로 본 부처님의 하루 일과

■ 경전으로 본 부처님의 하루 일과


2500여 년 전 붓다(석가모니 부처님; BC 624 ~ 544)의 하루 일과는 어떠했을까?

위없는 바른 스승이신 부처님의 가르침이 생생하게 들어있는, ‘상응하는 주제에 따라 함께 엮은 가르침(설법 또는 경전)들의 모음’이란 뜻을 지닌 (2천 8백 89개의 경전을 상응하는 주제에 따라 함께 모아 엮은) <쌍윳따(상응相應) 니까야>를 토대로 본 부처님의 하루 일과는 다음과 같다. (<쌍윳따 니까야>에 해당하는 한문 번역 경전은 <잡아함>이다)

<쌍윳따 니까야>에는 부처님의 하루 일과가 이렇게 묘사돼 있다.

“새벽 4시에 일어나셔서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한 시간 정도 멸진정에 드신 후…. 하루 두 번씩 세상을 살피시며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찾아가시거나 찾아온 사람들과 제자들을 만나 종일 법을 전하시고…. 잠은 사띠하시며 아라한의 경지에서 한 시간 정도 주무시고….”

고단하지만 고단하지 않았던 부처님의 하루 24시간을 들여다본다.

부처님의 24시간은 인간으로서 육체를 영위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수면과 식사 활동을 제외한 모든 시간이 중생을 위한 가르침(설법)과 자비로 채워졌다.

부처님의 하루 일과는 새벽 4시에 시작된다. 자리에서 일어나신 부처님은 새벽 5시까지 한 시간 정도 상수멸정(멸진정)에 드시어 열반(saupadisesa nibbana, 유여 열반)의 상태(경지)에 머무신다. 그리고 6시까지 한 시간 정도 대자비삼매(maha karuṇa samapatti)에 드시어 대자비심으로 뭇 삶(중생; 생명의 무리)들의 괴로움을 살피신다.

오전 6시가 지나면 발우를 들고 제자들과 함께 마을로 나가신다. 이 때 부처님께서는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찾아가신다. 부처님께서는 사람들 각각의 근기(경험, 소질, 적성, 성향, 성격, 여러 가지 능력-이해력, 인내력, 집중력.. 등등)에 맞춰서 그들을 제도하시거나 필요한 도움을 주신다. 

공양 초대를 받으신 날은 초대한 집으로 가셔서 공양을 마치시고 대중들에게 법을 설(설명)하셨으며 초대가 없을 경우에는 탁발하신 음식을 가지고 머무는 곳으로 돌아오셔서 제자들과 함께 공양을 하셨다. 초대한 집에서 공양을 하시든 탁발하시여 공양을 하시든 공양은 정오 전에 끝마치시고 오후에는 물을 제외하고는 음식을 드시지 않았다.(이른바 오후불식)

공양 후의 시간은 제자들의 수행(팔정도를 계발하는 수행)을 지도하시고 간간이 승가의 일을 처리하시는 시간이다. 공양 후에는 늘 간단하게라도 법을 설(설명)하셨으며 출가를 원하는 이가 있으면 그들의 현재의 근기와 인연을 살피셔서 이를 허락해 주셨다. 낮 12시 이후, 부처님께서 법석에 자리를 잡으시면 제자들이 가르침을 듣기 위해 다시 모인다. 이때 수행에 관한 질문도 하고 적합한 수행 주제를 받기도 한다.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이 물러가면 부처님은 처소에서 잠깐 휴식을 취하신다. 필요할 경우 잠시 수면을 취하기도 하셨다. 그런 뒤 다시 대자비삼매에 드시어 세상을 통찰(깊이 관찰)하시며 중생(생명의 무리, 뭇 생명)의 괴로움을 살피신다. 그리고 그들을 도와주시고 일반 사람들을 제도하시거나, 재가 제자들을 살피시고 그들을 찾아 가셔서 수행을 바르게 실천하도록 지도해 주시기도 하신다.

늦은 오후가 되면 일반 사람들과 재가 제자들이 설법(법을 설명함)을 듣기 위해 찾아온다. 부처님께서는 그들의 근기(경험, 소질, 적성, 성향, 성격, 성품, 이치를 이해하는 능력, 인내력, 집중력 등)에 맞춰서 한 두 시간 정도 설법을 하신다. 일반 사람들과 재가 제자들이 물러간 후 저녁 6~10시까지 출가 제자(출가 수행자; 비구, 비구니)들을 지도하신다. 이때 수행자들은 스승에게 법과 수행에 관해 질문하고 가르침(수행 지도)을 받는다. 이러한 문답은 매우 자유롭게 이뤄진다. 이 시간은 수행 중에 생긴 의문을 풀고 수행의 방향을 바로잡아 수행을 바르게 실천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된다.

밤10시 이후는 범천 등과 같은 욕계(욕망의 세계; 인간, 짐승 등이 사는 세계)를 벗어난 색계(물질세계; 물질로 이루어진 신체는 있지만 물질적 욕망이 매우 적은 세계)의 유정(정신작용이 있는 존재; 생명)들이 부처님을 찾아오는 시간이다. 새벽 2시경에 이들이 물러나면 부처님께서는 한 시간 정도 천천히 걸으시며 경행을 하신다. 그리고 새벽 3시가 되면 오른 편으로 누워 사띠(마음챙겨 알아차림)하시며 잠자리에 드신다. 그리고 한 시간 후 새벽 4시가 되면 또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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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하루 일과를 <쌍윳따(상응) 니까야>를 토대로 시간대별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새벽 4시 ~ 5시 : 새벽 4시에 일어나셔서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한 시간 정도 멸진(상수멸) 상태에 드시어 열반(saupadisesa nibbana; 유여 열반) 상태에 머무심,

새벽 5시 ~ 6시 : 대자비삼매(大慈非三昧:maha karuṇa samapatti)에 드시어 뭇 생명(중생; 생명의 무리)들의 괴로움을 살피심.

오전 6시 ~ 12시 : 탁발하러 가심. 고요집중의 사띠(이른바 하늘 눈)로 세상을 살피셔서 중생들을 찾아가 도와주시고 대중들에게 설법(법을 설명)하심.

오전 6시 경이 되면 부처님께서는 발우를 들고 제자들과 함께 마을로 나가신다. 이 때 부처님께서는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찾아가신다. 부처님께서는 사람들 각각의 근기(경험, 소질, 적성, 성향, 성격, 여러가지 능력-이해력, 인내력, 집중력.. 등등)에 맞춰서 그들을 제도하시거나 필요한 도움을 주신다. 

탁발을 마치시면 머무는 곳으로 돌아오셔서 제자들과 함께 발우 공양을 하셨다. 공양 초대를 받은 날은 초대한 집으로 가셔서 공양을 마치시고 대중들에게 법을 설(설명)하셨다. 탁발하시여 공양을 하시든 초대한 집에서 공양을 하시든 공양은 정오 전에 끝마치시고 오후에는 물을 제외하고는 음식을 드시지 않았다.(이른바 오후불식)

12시 ~ 오후 6시 : 일반 사람들을 제도하시거나, 사문(부처님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하는 재가, 출가 수행자)들에게 법을 설(설명)하시고 수행을 지도하심.

공양 후의 시간은 제자들의 수행(팔정도를 계발하는 수행)을 지도하시고 간간이 승가의 일을 처리하시는 시간이다. 공양 후에는 늘 간단하게라도 법을 설(설명)하셨으며 출가를 원하는 이가 있으면 그들의 현재의 근기와 인연을 살피셔서 이를 허락하셨다. 낮 12시 이후, 부처님께서 법석에 자리를 잡으시면 제자들이 가르침을 듣기 위해 모인다. 이때 수행에 관한 질문도 하고 적합한 수행 주제를 받기도 한다.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이 물러가면 부처님은 처소에서 잠깐 휴식을 취하신다. 그런 뒤 다시 대자비삼매에 드시어 세상을 통찰(깊이 관찰)하시며 중생들의 괴로움을 살피신다. 그리고 그들을 도와주시고 일반 사람들을 제도하시거나, 재가 제자들을 살피시고 그들을 찾아 가셔서 수행을 바르게 실천하도록 지도해 주시기도 하신다.

늦은 오후가 되면 일반 사람들과 재가 제자들이 설법을 듣기 위해 찾아온다. 부처님께서는 그들의 근기(경험, 소질, 적성, 성향, 성격, 성품, 이치를 이해하는 능력, 인내력, 집중력 등)에 맞춰서 한 두 시간 정도 설법(법을 설명함)을 하신다. 

저녁 6시 ~ 밤 10시 : 출가 수행자(비구, 비구니)들과 수행에 관한 질의응답(문답)의 대화를 나누시고 수행을 지도하심.

일반 사람들과 재가 제자들이 물러간 후 저녁 6~10시까지 출가 제자(출가 수행자)들을 지도하신다. 이때 수행자들은 스승에게 법과 수행(팔정도 바와나; 팔정도를 계발하는 수행)에 관해 질문하고 가르침(수행 지도)을 받는다. 이러한 문답은 매우 자유롭게 이뤄진다. 이 시간은 수행 중에 생긴 의문을 풀고 수행의 방향을 바로잡아 수행을 바르게 실천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된다.

밤 10시 ~ 새벽 2시 : 범천 등과 같은 욕계를 벗어난 색계 유정(생명)들을 제도하심

밤10시 이후는 범천 등과 같은 욕계(욕망의 세계; 인간, 짐승 등이 사는 세계)를 벗어난 색계(물질세계; 물질로 이루어진 신체는 있지만 물질적 욕망이 매우 적은 세계)의 유정(생명)들이 부처님을 찾아오는 시간이다. 

새벽 2시 ~ 3시 : 경행(經行)
새벽 3시 ~ 4시 : 사띠하시며 취침

이들이 물러가는 새벽 2시경에 부처님께서는 한 시간 정도 천천히 걸으시며 경행을 하신다. 그리고 새벽 3시가 되면 오른 편으로 누워 사띠(마음챙겨 알아차림)하시며 잠자리에 드신다. 그리고 한 시간 후 새벽 4시가 되면 또 다시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신다.

정각(완전한 바른 깨달음)을 증득하신 후, 일생이 뭇 생명(중생; 생명의 무리)들을 향한 무한한 자비(멧따-까루나; 분별 집착 없는 지혜로운 바른 사랑과 연민)의 발현이셨던 부처님, 그러한 위대하고 바른 스승이셨던 부처님의 하루 일과는 이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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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팔정도 바와나*

몸과 마음의 '행(行)을 닦음(修)'이라는 뜻을 지닌 수행(修行)은 '경작하다, 계발(열고 발전향상)하다'라는 뜻을 지닌, 부처님께서 사용하신 고대인도어 '바와나(bhāvanā)'를 한문으로 번역한 것이다. 우리에게는 수행이라는 말이 매우 익숙하니 '바와나'는 '계발 수행', '팔정도 바와나'는 '팔정도를 계발하는 수행' 정도로 옮기면 그 의미가 유사하다.

부처님께서는 팔정도를 '바와나(계발 수행)'의 관점에서 계(戒, 실라; 정어·정업·정명)•정(定, 사마디/삼매/선정; 정정진·정념·정정)•혜(慧, 빤냐/반야/지혜; 정견·정사유) 세 그룹으로 그룹핑하시고, 

설법(법을 설명)하실 때의 편의를 위하여 '사마디(삼매/정定/선정) 바와나(계발 수행)'를 사마타, '사마타 후에 하는 깊은 빤냐(반야/혜慧/통찰지혜) 바와나(계발 수행)'를 위빠사나라고 명칭 하셨다. ('실라 바와나'는 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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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상) : 부처님의 일생

부처님께서는 정각(완전한 바른 깨달음)을 증득하신 후 입멸하실 때까지 45년 동안을 매일같이 맨발로 걸으시고 걸식(탁발)하시면서 사람들, 특히 가난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을 찾아다니시며, 그들이 고통에서 근원적으로 벗어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 법(法; 실상과 진리)을 깨우치도록 가르치셨다.

일생이 뭇 생명(중생)을 향한 무한한 자비(慈悲, 멧타-까루나; 분별 집착 없는 지혜로운 바른 사랑과 연민)의 발현이셨던 부처님.

부처님께서는 듣는 사람의 근기(경험, 소질, 적성, 성향, 성격, 여러가지 능력-이해력, 인내력, 집중력.. 등등)와 처지(처한 환경과 상태)에 맞춰서 비유적, 우화적, 문학적, 분석적, 종합적, 논리적, 경험적, 합리적, 과학적 표현 방법 등 다양한 표현 방법과 다양한 수준의 수 많은 설법(설법; 법을 설명함)을 하셨다.

부처님께서 일생 동안 설하신 수없이 많은 가르침(설법; 법을 설명함)은 정각에 이르는 바른 실천인 팔정도 바와나를 가르치시기 위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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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가르침(설법; 법을 설명함)을 이해하면, 처음에는 비록 지식차원의 피상적인 이해라 해도 스스로 실천할 마음을 갖게 되고, 실천하면 이해가 더 깊어지고 다시 더 깊은 실천을 하게 되어, 결국, 지식차원의 피상적인 이해(문혜聞慧, 사혜思慧)는 팔정도 바와나(실라-사마타-위빠사나)의 구체적인 실천경험을 통해서 자신과 세상의 실상과 진리를 여실히(있는 그대로) 꿰뚫어 보는 통찰지혜(수혜修慧; 수행의 통찰경험에 의해서 생기는 지혜)가 된다.

팔정도 바와나를 바르게 실천하여 스스로의 통찰경험으로 완성한 바와나빤냐(수혜修慧; 수행의 통찰경험에 의해서 생기는 통찰지혜)만이 무명을 완전히 부수고 정각을 증득(증명경험으로 득)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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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좌하) : 발우를 들고 계신 부처님 탁발상

탁월한 분석과 명료한 설법(법을 설명함)으로 대중을 제도한 논의제일 제자, 마하깟짜야나(마하가전연 존자)가 부처님께 물었다.

"스승님, 자신('나')과 세상을 어떻게 보는 것이 바르게 보는 것입니까?"

“그는 자신('나')과 세상이 지금(현재 순간, 매 순간) 사라지고(滅, 소멸하고) 있음을 '있는 그대로' 바르게 보아 '나'와 세상이 있다(有)는 생각을 내지 않는다. 또한 그는 '나'와 세상이 지금(현재 순간, 매 순간) 일어나고(生, 생기하고) 있음을 '있는 그대로' 바르게 보아 '나'와 세상이 없다(無)는 생각도 내지 않는다.”

- <가전연경, 잡아함; 깟짜야나-곳따 숫따(Kaccaayana-gotta Sutta), 상윳따 니까야, S.12.15>

부처님 가르침은 나와 세상이 지금(현재 순간, 매 순간) 일어나고(生) 사라지는(滅) 것을 '있는 그대로' 바르게 보아 내가(그리고 세상이) 있다는 것(有)에도 없다는 것(無)에도 집착하지 말라는 이른바 양 극단, 생멸, 유무 .. '나(我)'를 기준으로 한 선악, 옳고 그름, 정의와 불의, 좋고 싫음, 사랑과 미움 .. 등등에서 벗어나라는 중도(中道)의 가르침이다.

동일(고정불변)하고 독립적인 존재(실체)로서의 내(我)가 있는 것도 아니고, 연기적인 현상(연기현상이자 자연현상)으로서의 내(吾)가 없는 것도 아니다.

부처님 가르침은 '내(我)가 없다(無)'는 가르침이 아니라, '나에 대한 착각된 앎(식識; 의식+무의식)'에서 벗어나라는 가르침이다.

'나' 그리고 세상(우주자연)의 모든 것은 동일하고(고정불변하고) 독립적인 실체(Atta, Atman, 我)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an, 非) (an·Atta; 비아非我 또는 무아無我), 

'인연조건(인因-직접조건과 연緣-간접조건에 따라 상호 의존'(인과 연기)적으로 매 순간 생멸(생기 소멸; 일어나고 사라지며) 변화하는 (항상Nicca常 하지 않은a非/無, a·Nicca한, 비상非常/무상無常한) 하나의 연기적 현상(연기현상이자 자연현상)으로 존재한다.

‘없는 듯 있는'(매 순간 인과 연기적으로 일어나고 사라지는) '나’가 '나'라는 생명현상(연기현상이자 자연현상)의 실상(실제 모습)임을 알지 못하고 ... '(꿈처럼) 있는 듯 없는'(매 순간 인과 연기적으로 일어나고 사라지는)게 세상임을 알지 못하고 ... 안다고 착각하지만 실제(실상)를 모르는 게 식(識, 앎; 의식+무의식)임을 알지 못하고 ... 거짓 앎과 거짓 나를 실체라고 착각하고 ... 온갖 욕망을 쫓아 괴롭고 힘들게 이리저리 우왕좌왕 몰려다니며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흘러가는 시간에 쫓기듯이 허겁지겁 아웅다웅 살고 있는 중생(생명의 무리, 뭇 생명)들 ... 

그런 중생(뭇 생명)들이 안타깝고 가여워서 부처님께서는 정각을 증득하신 후 입멸하실 때까지 45년 동안을 매일같이 맨발로 걸으시고 발우를 들고 걸식(탁발)하시면서 사람들(특히 가난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을 찾아 다니시며, 그들이 고통에서 근원적으로 벗어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 진실(실상, 존재의 실제 모습; 연기의 실상)과 진리(진실한 이치, 자연의 이치/법칙, 연기의 이치/법칙, 연기법; 연기의 진리)를 깨우치도록 가르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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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우하) : 부처님 길 따라

부처님께서는 정각(완전한 바른 깨달음)을 증득(증명경험으로 득)하시고 나서, 당신의 수행경험을 '경험적+합리적'으로 정리하시여 당신과 같은 '정각(완전한 바른 깨달음)에 도달하는 여덟(八) 부분으로 이루어진 바른(正) 길(道), 줄임말로 팔정도'라고 이름 붙이시고, 

그 바른 길(팔정도)을 바와나(경작하여 계발)하는 수행, 줄임말로 '팔정도 바와나'(팔정도를 계발하는 수행)를 가장 중요하게 가르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완성하시고 가르치신 팔정도는 
정각으로 가는 바른 길입니다.

그 길은
위없는 바른 스승이신 부처님 당신께서 먼저 걸으시고 나서 가르치신 
정각(완전한 바른 깨달음); 완전한 자유(해탈)와 평화, '나를 초월한 분별 집착 없는 지혜로운 바른 사랑'(자비)과 완전한 행복(열반)으로 가는 바른 길입니다.

나도 부처님 길 따라 걷기를 서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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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존재가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正法)을 따라
지혜(빤냐/반야; 연기의 실상과 진리를 '있는 그대로' 바르게 아는 바른 지혜)와
자비(멧타-까루나; '나'를 초월한 분별 집착 없는 지혜로운 바른 사랑) 속에서

완전한 자유와 평화와 행복에 머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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