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마음은 무의식(잠재의식/심층의식)이 의식(일상의식/표면의식)보다 훨씬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비유하자면 의식(일상의식/표면의식)은 빙산의 수면 위 부분이고 무의식(잠재의식/심층의식)은 빙산의 수면 아래 부분이다. 의식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예컨대, 의식이 “배고프다 밥 먹자”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 의식은 몸을 이끌고 밥상 앞에 앉는다. 그러나 그 이후의 밥 먹는 과정에서 의식은 더 이상 큰 역할을 하지 않는다. 의식이 간여하지 않더라도 무의식이 알아서 숟가락을 잡고, 밥을 뜨고, 입에 넣고, 씹고, 삼키고, 위와 소장과 대장을 움직이고, 소화액을 분비하고, 음식물을 소화시켜서 온 몸 구석구석에 영양분을 공급한다.
밥 먹는 과정뿐만 아니라 걷고, 뛰고, 서고, 앉고, 눕고, 잠자고, 숨쉬는 과정 등등 일상생활의 모든 과정에서 의식과 무의식은 절묘하게 상호작용하며 인간이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한다.
우리는 인간 정신작용의 빙산의 일각에 불과한 의식(일상의식/표면의식)을 정신작용의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지만, 사실 우리의 일상적인 의식은 무의식(잠재의식/심층의식)에서 벌어지는 일들의 거의 하나도 모른다.
이 모름(무지, 무명)에 숨겨져서, 상카라(어리석은 마음의 습관적 반응 또는 작용; 습관적 탐진치 작용)들은 무의식(잠재의식/심층의식)의 차원에서 계속 일어나고 증식된다.
그래서 팔정도 바와나(계발 수행)의 사마타('사마디/삼매/선정/정定; 정정진·정념·정정' 계발 수행)-위빠사나(사마타 후에 하는 깊은 '빤냐/반야/지혜/혜慧; 정견·정사유' 계발 수행)을 통해서
무의식(잠재의식/심층의식/아뢰야식/바왕가)에서 어떤 탐진치가 어떻게 작용해서 내 삶을 좌지우지하는지 깊이 관찰(통찰)하여 의식화하고 이해함으로써 바와나빤냐(修慧, 수행지혜, 통찰지혜; 수행의 통찰 경험에 의해서 생기는ᆫ 지혜)를 스스로 계발(열고 발전향상)해야 한다.
통찰지혜를 스스로 완성하면 무명이 완전히 부숴지면서 의식뿐만 아니라 무의식(잠재의식/심층의식/아뢰야식/바왕가)에 잠재된 탐진치까지 완전히 소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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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과정이 생략되면 무의식(잠재의식/심층의식)에 잠재된 탐진치가 완전히 소멸되지 않기 때문에(달리 말하면 무의식/잠재의식/심층의식이 바뀌지 않기 때문에) 어떤 수행으로 큰 깨달음을 얻었다(소위 대오각성했다)는 사람도 앎과 행동이 따로 놀게 된다.
"잠재의식(무의식, 심층의식) 속에 탐진치가 남아있는 한 인간은 고(苦; 고통, 괴로움)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 부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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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시이래로 무명 상태에서 습관화된 무의식(잠재의식/심층의식/아뢰야식/바왕가)은 쉽게 자신의 상카라(어리석은 마음의 습관적 반응 또는 작용; 습관적 탐진치 작용)를 변화시키지 않는다. 아무리 훌륭한 부처님 가르침(설법; 진리/법法을 설명함)을 들어도 쉽게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지 않는다.
생명체는 물질-정신적 습관 덩어리(쌓임/무더기)라고도 말할 수 있다. 오늘날 서양 과학(물리학)에서 말하는 물체의 관성력(慣性力, force of inertia)이란 물체가 지닌 '습관(관성慣性; 습관慣의 성질性, inertia)의 힘(force)'을 말하는 것이다.
물체(육체, 몸) 뿐만 아니라 정신(마음; 의식+무의식)에도 관성력(습관의 힘, 습관의 잠재력)이 존재하는데 이를 부처님께서는 '깜마(kamma, 카르마karma) 발라(bala; force, power)'라고 부르셨다. 업력(業力)은 부처님께서 사용하신 고대인도어 '깜마(카르마) 발라'를 한문으로 번역한 것이다.
중생(생명의 무리)이 몸(身)과 말(口)과 생각(意)으로 짓는 행(行)은 그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습(習, 습관)을 형성하고, 동시에 잠재력(습관의 힘, 습성, 습관의 경향성; 업력業力)이 되어 조건(인因-직접조건, 연緣-간접조건; 인연)이 갖추어지면 표출된다.
"어리석은 자는 자신에 대해 무지하기에 어리석은 마음의 습관적 반응(상카라)에 갇혀 지내는 것이다."
- 부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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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마음의 각성)이란 달리 말하면 무의식(잠재의식/심층의식/아뢰야식/바왕가)의 의식화를 일컫는 것이기도 하다.
무의식이 완전히 의식화되면, 즉 완전히 깨달으면, 마음(의식+무의식) 속에 탐진치가 완전히 소멸되면서 텅 빈 하늘같은, 깊고 넓은 바다같은 불성(佛性; 깨달은 자/부처佛의 성품性; 무량한 자비희사의 마음)이 드러난다.
달리 말하면, 무량한 자비(멧따-까루나; 자신과 타인 그리고 세상을 분별 집착 없이 '있는 그대로' 바르게 사랑하는 바른 사랑)와 반야(빤냐; 자신과 타인 그리고 세상의 실상과 진리 '있는 그대로' 바르게 아는 바른 지혜)가 드러나면서 무한한 자유(해탈)와 평화(우빽카)와 완전한 행복(닙바나, 니르바나, 열반)의 경지(상태)에 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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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글은 부처님께서 지식차원에서 설(설명)하신 식(識, 윈냐나viññāṇa; 의식/일상의식/표면의식 + 무의식/잠재의식/심층의식/아뢰야식/바왕가bhavanga)과 사마타-위빠사나에 관련된 가르침(설법; 법을 설명함)을 오늘날의 지식과 용어를 사용하여 옮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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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존재가
지혜(빤냐/반야; 자신과 타인 그리고 세상의 실상과 진리를 '있는 그대로' 바르게 아는 바른 지혜)와
자비(멧타-까루나; 자신과 타인 그리고 세상을 분별 집착 없이 '있는 그대로' 바르게 사랑하는 바른 사랑) 속에서
진정 자유롭고 평화롭고 행복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