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정도(八正道, Eightfold Right Path; Ariya Atthangika Magga)
붓다가 설(설명)한 '정각(완전한 바른 깨달음)으로 가는 여덟(八) 부분으로 이루어진 바른(正) 길(道), 팔정도(八正道, Eightfold Right Path)'의 여덟 부분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정견(正見), Rightly View(바르게 봄)
정견(正見)은 붓다가 사용한 고대인도어 '삼마(Sammā) 딧티(Diṭṭhi)'를 한문으로 번역한 것이다.
한문(중국어) 경전에서 정(正)으로 번역하는 고대인도어 삼마(Sammā)는 붓다의 가르침(설법; 법法을 설명함)에서 '바르게, 여실히(있는 그대로) 바르게, 아(我, ego)가 개입된 주관적인 판단 분별 없이 있는 그대로 바르게, 아상(我相; 나我라는 상대相적 분별심, 에고심) 없이 있는 그대로 바르게, 완전히 바르게' 등의 의미로 사용된다. 영어 경전에서는 'rightly(바르게), thoroughly(철저하게, 완벽하게), properly; in the right way, as it ought to be, best, perfectly(완전하게)' 등으로 번역한다.
한문(중국어) 경전에서 견(見)으로 번역하는 고대인도어 딧티(Diṭṭhi)는 붓다의 가르침(설법; 법法을 설명함)에서 '봄, 관찰, 통찰(깊은 관찰), 조사; 앎, 이해, 견해 또는 믿음' 등의 의미로 사용된다. 영어 경전에서는 'view(보다, 봄), observe, insight, investigate, speculative opinion, speculation(추론, 견해), dogma, theory, belief' 등으로 번역한다.
요컨대, 붓다(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설법; 법法을 설명함)에서 '삼마(Sammā; 正) 딧티(Diṭṭhi; 見), 정견(正見)'은 '바르게, 여실히(있는 그대로) 바르게, 아(我, ego)가 개입된 주관적인 판단 분별 없이 있는 그대로 바르게, 아상(에고심) 없이 있는 그대로 바르게, 완전히 바르게' '봄, 관찰함, 통찰함, 조사함, 앎, 이해함, 견해를 가짐' 등의 뜻으로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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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각으로 가는 여덟 부분으로 이루어진 바른 길(팔정도), 즉 정견, 정사유, 정어, 정업, 정명, 정정진, 정념, 정정을 계발하는 수행은 연기(조건에 따른 상호 의존) 방식의 수행이기 때문에 여덟 부분 각각의 순서는 의미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지만 어쨌든, '팔정도를 계발하는 수행'의 처음 시작은 '지식차원의 정견(正見)을 계발하는 수행'이다.
팔정도를 계발하는 수행의 첫 단계인 '지식차원의 정견(正見)을 계발하는 수행'은, 자신과 세상의 실상(실제 모습; 연기의 실상)과 진리(진실한 이치, 자연의 이치/법칙, 연기의 이치/법칙; 연기의 진리), 그리고 '우리가 괴로움의 굴레에 어떻게 빠져드는지, 또 어떻게 하면 그로부터 근원적으로 완전히 벗어나서(해탈해서) 완전한 행복(열반)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진리(진실한 이치)를 설(설명)한
부처님의 가르침(설법; 법法을 설명함)을 정견(正見; 바르게 보고 읽음 또는 들음)하여 생기는 지식차원의 지혜(문혜聞慧, 들은 지혜; 수타 빤냐)를 계발(열고 발전향상)하는 수행 단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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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차원의 정견(正見; 바른 앎/이해/견해)이라해도 정견(正見; 바른 앎/이해/견해)은 매우 중요하다. 바른 앎(이해, 견해)이 서 있어야 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바른 앎(이해, 견해)은 부처님께서 강조하셨듯이, 처음에는 머리로 공부하여 사성제를 피상적이나마 지식차원에서 스스로 바르게 아는(이해하는, 견해를 가지는) 것이다
“수행자들이여, 바른 앎(이해, 견해; 正見)이란 어떠한 것인가?"
"수행자들이여, 괴로움(고苦, 둑카; 생명의 근원적 괴로움)에 대하여 바르게 알고(이해하고), 괴로움의 생성(집集, 근원; 근본원인)에 대하여 바르게 알고(이해하고), 괴로움의 소멸(멸滅; 정각, 해탈, 열반)에 대하여 바르게 알고(이해하고), 괴로움의 소멸(정각, 해탈, 열반)에 이르는 길(도道; 팔정도)에 대하여 바르게 알면(이해하면), 수행자들이여, 이것을 바른 앎(이해, 견해; 正見)이라고 한다”
- <분별경; 위방가경(Vibhanga Sutta), 상윳따니까야, S44.1.1.8>
부처님의 모든 가르침(설법)은 사성제로 포섭되고, 사성제는 팔정도로 귀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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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얕은 정견(正見)'과 '깊은 정견(正見)'
습관에는 얕은 습관이 있고 깊은 습관이 있다
착각에는 얕은 착각이 있고 깊은 착각이 있다
세뇌에는 얕은 세뇌가 있고 깊은 세뇌가 있다
무지에는 얕은 무지가 있고 깊은 무지가 있다
지혜에는 얕은 지혜(지식차원의 지혜; 문혜聞慧-들은 지혜, 사혜思慧-사유 지혜)가 있고 깊은 지혜(경험차원의 지혜; 수혜修慧-수행 지혜, 수행의 통찰경험에 의해서 생기는 지혜)가 있다
관찰에는 얕은(피상적인) 관찰이 있고 '깊은 관찰'(통찰)이 있다
앎(이해)에는 얕은 앎(지식차원의 이해)이 있고 깊은 앎(경험차원의 이해)이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팔정도, 즉 '정견(正見; 바른 봄/관찰/통찰, 앎/이해/견해), 정사유 ·· 정념(바른 사띠), 정정(바른 삼매)'에는 얕은 '정견··정정'이 있고 깊은 '정견··정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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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컨대 정견(正見; 바른 봄/관찰/통찰, 앎/이해/견해)을 계발하는 수행(바와나)은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바른 설법; 正法)을 지식차원에서 이해한 피상적인 얕은 앎(이해, 견해), 피상적인 얕은 봄(관찰), 지식차원의 얕은 정견에서 시작하여
나머지 팔정도의 각 부분과 연기(조건에 따라 상호 의존)한 수행, 즉 실라(정어·정업·정명 바와나)-사마타(정정진·정념·정정 바와나)-위빠사나(사마타 후에 하는 깊은 정견·정사유 바와나)의 바른 실천을 통해서
궁극에는 무명(인식의 착각, 전도된 생각)을 완전히 극복하고 자신과 세상의 실상(실제 모습; 연기의 실상)과 진리(진실한 이치, 자연의 이치/법칙, 연기의 이치/법칙; 연기의 진리)를 '있는 그대로' 완전히 꿰뚫어 바르게 보는 것(통찰 경험차원의 깊은 정견)으로 발전 향상하는 바와나(계발 수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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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는 무상정등각(줄임말로 정각; 위 없이 평등하고 완전한 바른 깨달음)을 증득하시고 난 후, 자신이 시행착오를 겪으며 암중모색하여 완성한 수행의 경험을 시행착오를 빼고 '경험적+합리적'( = 과학적)으로 정리하여 자신과 같은 '깨달은 자(붓다, 부처)가 되는, 무상정등각(정각)에 도달하는 여덟 부분으로 이루어진 바른 길', 줄임말로 '팔정도'라고 이름 붙이시고, 그 바른 길(팔정도)을 바와나(경작하여 계발)하는 '팔정도 바와나'(팔정도를 계발하는 수행)를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사람들에게 가르치셨다
몸과 마음의 '행(行)을 닦음(修)'이라는 뜻을 지닌 '수행(修行)'은 '경작하다, 계발(열고 발전향상)하다'라는 뜻을 지닌, 부처님께서 사용한 고대인도어 '바와나(Bhāvanā)'를 한문으로 번역한 것이다. 영어 경전에서는 'meditation(명상 수행), mental development(정신 계발), developing by means of meditation, cultivation by mind, culture(경작하다, 배양하다), increase(향상하다, 상승하다)' 등으로 번역한다.
우리에게는 수행이라는 말이 매우 익숙하니 바와나는 '계발 수행', 팔정도 바와나는 '팔정도를 계발하는 수행' 또는 '정각(위 없이 평등하고 완전한 바른 깨달음)으로 가는 여덟 부분으로 이루어진 바른 길을 계발하는 수행' 정도로 표현하면 그 의미가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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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정사(正思 또는 정사유正思惟), Rightly Thought(바르게 생각함)
정사(正思 또는 정사유正思惟)는 부처님께서 사용하신 고대인도어 '삼마(Sammā) 상깝빠(Saṅkappa)'를 한문으로 번역한 것이다.
한문(중국어) 경전에서 사(思 또는 사유思惟)로 번역하는 고대인도어 상깝빠(Saṅkappa)는 부처님 가르침(설법; 법法을 설명함)에서 '생각, 사유, 분석' 등의 의미로 사용된다. 영어 경전에서는 'thought(생각, 사고, 사유), analysis(분석), intention, purpose, plan' 등으로 번역한다.
3. 정어(正語), Rightly Speech(바르게 말함)
정어(正語)는 부처님께서 사용하신 고대인도어 '삼마(Sammā) 와짜(Vācā)'를 한문으로 번역한 것이다.
한문(중국어) 경전에서 어(語)로 번역하는 고대인도어 와짜(Vācā)는 부처님 가르침(설법; 법法을 설명함)에서 '언어, 말, 글' 등의 의미로 사용된다. 영어 경전에서는 'speech(말하기), saying, voice(말로 나타내다, 표현하다), word(단어, 말을 골라 표현하다)' 등으로 번역한다.
4. 정업(正業), Rightly Doing(바르게 행동함)
정어(正語)는 부처님께서 사용하신 고대인도어 '삼마(Sammā) 깜만따(Kammanta)'를 한문으로 번역한 것이다.
한문(중국어) 경전에서 업(業)로 번역하는 고대인도어 깜만따(Kammanta)는 영어 경전에서는 'doing(함, 행동), acting(행위), working; work, business, occupation, profession' 등으로 번역한다.
행위에는 반드시 업(業)이 지어지고 업은 행위로 귀결되기 때문에 정업(正業)은 바른 행위를 의미한다.
5. 정명(正命), Rightly Living(바르게 삶, 생활함)
정명(正命)은 부처님께서 사용하신 고대인도어 '삼마(Sammā) 아지와(Ajīva)'를 한문으로 번역한 것이다.
한문(중국어) 경전에서 명(命)으로 번역하는 고대인도어 아지와(Ajīva)는 부처님 가르침(설법; 법法을 설명함)에서 '삶, 생활, 생계' 등의 의미로 사용된다. 영어 경전에서는 'livelihood(생활, 생계), mode of living(삶의 형태, 방법, 상태), living(삶), subsistence' 등으로 번역한다.
6. 정근(正勤 또는 정정진正精進), Rightly Striving(바르게 노력함)
정근(正勤 또는 정정진正精進)은 부처님께서 사용하신 고대인도어 '삼마(Sammā) 와야마(Vāyāma)'를 한문으로 번역한 것이다.
한문(중국어) 경전에서 근(勤 또는 정진精進)으로 번역하는 고대인도어 와야마(Vāyāma)는 부처님 가르침(설법; 법法을 설명함)에서 '노력, 정진' 등의 의미로 사용된다. 영어 경전에서는 'striving(노력함), effort, exertion, endeavour' 등으로 번역한다.
7. 정념(正念), Rightly Sati(바르게 알아차림)
정념(正念)은 부처님께서 사용하신 고대인도어 '삼마(Sammā) 사띠(Sati)'를 한문으로 번역한 것이다.
한문(중국어) 경전에서 념(念)으로 번역하는 고대인도어 사띠(Sati)는 부처님 가르침(설법; 법法을 설명함)에서 '전념함, (되)새김, 기억함, 전념하여 또는 마음챙겨 알아차림, 삼빠자나(sampajāna; 대상에 대한 바른 알아차림, 빤냐로 봄/앎), 깨어있음' 등의 의미로 사용된다. 영어 경전에서는 'mindfulness(주의깊음, 마음챙김), memory(기억함), recognition(알아차림), consciousness, intentness of mind, wakefulness(깨어있음) of mind, alertness, lucidity of mind, self-possession, self-consciousness' 등으로 번역한다.
념(念)은 '지금(今)+마음(心)'의 합성어다. 사띠(Sati)를 한글로 번역하면, '지금(현재 순간)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또는 작용)을 마음챙겨 전념하여(바르게 기억하여 또는 바르게 새겨) 알아차림' 정도로 표현하면 유사하다
부처님께서 팔정도의 하나로 가르치신 '삼마 사띠(Samma Sati)'를 한문으로 번역할 때, '정전념(正專念 or 정억념正憶念) + 정지(正知)' 또는 정념지(正念知)로 번역하는 것이 사띠의 두 가지 측면을 정확히 전달하는 것이다.
즉, 삼마 사띠(Samma Sati) = <대상에 대한 바른 전념(正專念 or 正憶念; 바르게 대상에 마음챙김, 바르게 대상을 기억함)> + <정지(正知, 삼빠자나sampajāna; 대상에 대한 바른 알아차림)>
8. 정정(正定), Rightly Samādhi(바르게 고요집중함)
정정(正定)은 부처님께서 사용하신 고대인도어 '삼마(Sammā) 사마디(Samādhi)'를 한문으로 번역한 것이다.
사마디(Samadhi}는 한문 경전에서 정(定), 삼매(三昧; 사마디의 한문 음사), 사마지(三摩地; 사마디의 한문 음사), 등지(等持), 심일경(心一境), 정신통일(精神統一) 등으로 번역한다. 영어 경전에서는 concentration(집중); lit. 'the (mental) state of being firmly fixed', onepointedness of the mind, 또는 absorption(전념), ecstasy(황홀경, 무아지경, 무아의 경지) 등으로 번역하고, 'a concentrated, self-collected(차분한, 고요한), intent state(몰두 상태) of mind and meditation, which, concomitant with right living, is a necessary condition to the attainment of higher wisdom and emancipation(해탈)'로 그 의미를 설명한다
사마디(Samādhi)를 한글로 번역하면, '몰아(沒我) 고요집중' 정도로 표현하면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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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매는 '한 가지 대상에 대한 순수한 집중을 통하여 마음이 고요해진 상태'를 말한다. 보통 독서삼매에 빠졌다고 할 때, 독서에 대한 정신집중으로 고요한 상태에 빠졌다는 의미이다. 깨어있는 상태로 고요한 것이지 졸면서 고요한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무언가 하나의 대상에 심취하여 어느 순간 자기(我)를 잊어버리면 그 무아지경(無我之境, 沒我之境, 삼매)의 행복은 매우 크다. 독서삼매라든가 진짜 삼매와 약간 닮은 상태조차도 매우 행복하다. 음악이나 춤 등에 빠져서 어느 순간 자기를 잊어버리고 어느 정도라도 근사 삼매(무아지경, 몰아지경)의 기쁨과 행복을 한 번이라도 경험해본 사람은 그 기억을 평생 잊지 못한다. 수행이 깊어지면서 경험하는 진짜 바른 삼매(삼마 사마디, 정정正定)는 그 기쁨(삐띠)과 행복(수카)이 더욱 더 크고(至福) 차원이 높다.
삼매는 일상의식으로는 알 수도 없고 상상조차도 할 수 없는, 지극한 행복(至福), 신성한 황홀경, 마음의 청정함, 청정한 성스러움, 비이원성, 궁극성, 시간의 멈춤, 시공(시간-공간) 초월 등의 느낌이 부수적으로 동반되는 체험이므로, 그 체험은 수행자를 압도한다
그러나 삼매에서 나온 후 그 체험이 서서히 잦아들어 사라지고 다시 일상의식으로 돌아오면, 다시 번뇌가 되살아난다
삼매의 경험(지극한 행복, 무아지경의 신성한 황홀경 등)은 절대자, 신, 신격화된 부처, 예수, 알라, 브라만, 샤머니즘의 장군신, 조로아스터교(중국에서는 불을 숭상한다 해서 배화교라 불렸다)의 거룩한 불의 신 .. 등의 은총이나 강림 따위에 의해서 발생하는 초자연적인 경험(신비체험)이 아니라,
언제 하든(BC 500년에 하든 AD 2017년에 하든), 어디서 하든(인도에서 하든 한국에서 하든 미국에서 하든), 누가 하든 상관 없이 조건이 갖춰지면 자연의 법칙에 따라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과학적 경험처럼, 언제 하든 어디서 하든 누가 하든 상관 없이 조건이 갖춰지면 자연의 법칙에 따라 누구에게나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마음의 몰아 고요집중 상태'에 대한 경험이므로 일종의 과학적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쉽게 체험할 수 있는 그런 경험은 아니다.
삼매(몰아 고요집중) 상태에 들어가면 외부의 오감각(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물질 감각, 신체 감각)이 전혀 인식되지 않고(전오식 사라짐; 오감각으로부터의 해탈?) '나(我) 또는 내 몸'이 사라진 듯이 느껴진다. 무아(無我)라고 할 수는 없지만 '스스로(自) 나(我)라는 상대(相)적 분별식(자아의식, 아상我相)'이 삼매 상태에서는 한시적으로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다
여기서 몰아(沒我)는 아상(我相; '나我'라는 상대相적 분별식) 또는 자아(自我; 스스로自 '나我'라는) 의식이 잠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잠길 몰沒) 상태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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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매(사마디; 몰아 고요집중) 상태를 경험하게 하는 수행(수련, 훈련)을 부처님께서는 '사마디(삼매) 바와나(계발 수행) = 사마타'라고 지칭하셨다. 부처님께서는 팔정도를 '바와나(계발 수행)'의 측면에서 실라(계戒; 정어·정업·정명)•사마디(정定; 정정진·정념·정정)•빤냐(혜慧; 정견·정사유) 세 부분으로 그룹핑하여 가르치셨는데, 삼매(사마디) 계발 수행을 지칭하는 사마타(사마디 바와나)는 '정정진(바른 노력/정진)·정념(바른 사띠)·정정(바른 삼매)' 바와나(계발 수행)를 통칭한 것이다
'사띠(알아차림) 초점 확립 계발 수행'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는 '정정진(바른 정진)·정념(바른 사띠)·정정(바른 삼매) 계발 수행’(사마타)을 통해서 사띠(알아차림) 대상의 범위를 점점 줄여가면 마침내 사띠(알아차림)의 초점이 하나로 모여져 고요히 집중되는 삼매(몰아 고요집중) 상태의 첫 단계인 초선정 삼매 상태에 들어가게 된다
사마타 후에 하는 깊은 정견(바른 관찰, 통찰)·정사유(바른 사유, 분석) 바와나(계발 수행), 즉 '사마타 후에 하는 깊은 빤냐(혜慧; 정견·정사유) 바와나'(=위빠사나)를 통해서 바와나빤냐(수행지혜, 통찰지혜; 수행의 통찰경험에 의해서 생기는 지혜)를 계발(열고 발전향상)하는데 필요한
초강력 고요집중의 사띠 능력과 우빽카(평온하고 평정한 마음 상태)는 초선정 삼매 상태에서부터 계발되는데 4선정(네 번째 단계의 선정) 삼매 상태에서 극대로 개발된다. 삼매에 들었다 나오면 삼매 상태에서 계발된 초강력 고요집중의 사띠(알아차림) 능력이 '한시적'으로 유지되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약해진다
삼매에서 계발되는 고요집중의 사띠 능력은 삼매의 깊이와 수행자가 처한 주변상황(경계)에 따라 다르지만 4선정 삼매 상태에 들었다 나온 경우 길게는 수 일 동안 '한시적'으로 유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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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강조하셨듯이, 사마타의 삼매에서 나온 후 법열(法悅; 삼매 체험으로 생기는 무아지경의 황홀경)에 취해서 허송세월하지 말고, 삼매 상태에서 나온 '직후'에 사마타에서 계발되어 '한시적'으로 유지되는 극대화된 고요집중의 사띠(알아차림) 능력과 탐진치에서 '한시적'으로 벗어난 평정심(우빽카; 평온하고 평정한 마음 상태)를 이용해서
사념처(달리 표현하면 자신과 세상의 실상과 진리)를 '있는 그대로' 깊이 정견(바르게 관찰/통찰)-정사유(바르게 분석 사유)하여 바른 지혜(빤냐/반야; 실상과 진리를 '있는 그대로' 꿰뚫어 바르게 아는 바른 지혜, 통찰지혜)를 계발하는 수행(위빠사나)을 해야만 한다.
자신과 세상의 실상과 진리를 여러 가지(4념처)로 깊이 정견(바르게 관찰/통찰)·정사유(바르게 분석 사유)하는 위빠사나를 하다가 고요집중의 사띠 능력이 약해지거나 더 강력한 고요집중의 사띠 능력이 필요해지면 수행자는 하시라도 사마타(사마디 바와나; 삼매 계발 수행)를 하고 더 깊은 삼매를 계발한다.
사마타는 위빠사나를 계발(열고 발전향상) 시키고 위빠사나는 사마타를 발전향상 시킨다. 부처님께서 누누이 강조하셨듯이 "팔정도 바와나는 '연기(조건에 따른 상호 의존) 방식'의 바와나(계발 수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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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로만 하는 수행자는 하급 수행자다
몸으로만 하는 수행자는 중급 수행자다
머리와 몸으로 하는 수행자야 말로 상급 수행자다"
- 부처님
부처님께서는 지혜가 계발(열리고 발전향상)되는 단계에 따라, 지혜(빤야/반야)를 세 단계의 세 종류의 지혜, 즉 수타빤냐(들은 지혜; 문혜聞慧), 찐따빤냐(사유지혜; 사혜思慧), 바와나빤냐(수행지혜; 수혜修慧)로 분류하셨다
우선 완전히 바르게 깨달은 자(붓다, 부처)의 바른 가르침, 즉 연기의 실상과 진리에 대한 지식차원의 바른 가르침(설법; 법法을 설명함) 그리고 가장 중요한 실천(정각으로 가는 여덟 부분으로 이루어진 바른 길을 계발하는 수행; 팔정도 바와나)에 대한 바른 가르침(바른 설법; 正法)을
듣거나 읽어서 갖게 되는 수타빤냐(들은 지혜; 聞慧), 그리고 듣거나 읽은 것을 바르게 사유해서 갖게 되는 찐따빤냐(사유지혜; 思慧)를 스스로 계발(열고 발전향상)한다.
이렇게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바른 설법; 正法)을 바르게 배우고(듣고, 보고/읽고) 바르게 사유해서 문혜聞慧와 사혜思慧를 계발(바와나)하는 것이 팔정도 바와나의 첫 단계인 머리로 하는 '지식차원의 빤냐(혜慧; 정견·정사유) 바와나'이다
다음 단계(지식의 실천 단계; 경험차원의 단계)로 문혜와 사혜를 바탕으로 실라(계戒; 정어·정업·정명) 바와나를 통해서 청정한 삶을 계발(열고 발전향상)하고, 이를 기반으로 사마타(사마디/삼매 바와나; 정정진·정념·정정 계발 수행), 위빠사나(사마타 후에 하는 깊은 빤냐 바와나; 사마타 후에 하는 깊은 정견·정사유 계발 수행)를 바르게 실천해서 바와나빤냐(수혜修慧, 수행지혜/통찰지혜; 수행의 통찰경험에 의해서 생기는 지혜)를 스스로 계발한다
지식차원의 지혜(들은 지혜와 사유지혜)를 넘어선 경험차원의 지혜인 바와나빤냐(수행의 통찰경험에 의해서 생기는 지혜)가 모든 사람을 완전한 깨달음(완전한 자유와 평화와 행복)의 경지로 이끄는 궁극의 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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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정도를 계발하는 수행(팔정도 바와나)의 진행 단계를 개괄하면 다음과 같다
(1) 머리로 하는 지식차원의 빤냐(혜慧; 정견·정사유) 바와나(계발 수행) 단계
(2) 몸으로 하는 실라(계戒; 정어·정업·정명) 바와나 단계
(3) 몸으로 하는 사마디(정定; 정정진·정념·정정) 바와나 단계
; 사마타 = 사마디 바와나, 선정 삼매를 계발하는 수행
(4) 몸과 머리로 하는 경험차원의 깊은 빤냐(혜慧; 정견·정사유) 바와나 단계
; 위빠사나 = 사마타 후에 하는 깊은 빤냐(혜慧; 정견·정사유) 바와나, 바와나빤냐(수행지혜/통찰지혜; 수행의 통찰경험에 의해서 생기는 지혜)를 계발하는 수행
(5) 몸과 머리로 하는 팔정도 바와나(팔정도를 계발하는 수행)의 완성 단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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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정도 바와나를 완성하여 정각을 이룬 후에 팔정도(완성된 팔정도)는 계발해야하는 수행이 아니라 그냥 생활 또는 삶 그 자체가 된다. 부처님께서는 입멸하시는 순간까지 생활화된 팔정도를 항상 실천하셨다. 부처님을 비롯하여 많은 아라한들(이른바 천이백 아라한) 중에 '생사에도 선악에도 그 무엇에도 걸림없는 대자유'를 얻었다고 여느 선사, 도사들처럼 막행막식한 사람(팔정도에서 벗어난 생활을 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부처님께서 입멸(pari nibbana; 반열반, 무여열반)하시는 순간까지 항상 실천하시고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가르침의 시작과 끝은 팔정도이다(초전법륜경 ~ 대반열반경). 꼰단냐를 비롯한 최초의 다섯 제자들에게 정각을 성취하는 바른 길(팔정도)을 가르치신 초전법륜의 사성제('고집멸도' 성제) 가르침을 시작으로 마지막 제자인 수밧타에게 팔정도를 계발하는 수행의 실천을 간곡히 당부하시는 마지막 가르침까지,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가르침의 시작과 끝은 '깨달은 사람(붓다)이 되는, 정각으로 가는 바른 길, 팔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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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우리도 용기를 내어 팔정도를 계발하는 수행의 첫 걸음을 내디뎌 봅시다. 정각(완전한 바른 깨달음), 완전한 자유와 평화, 나와 너를 초월한 분별 집착 없는 지혜로운 바른 사랑과 완전한 행복의 경지를 향해서! 수 없이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걸음마를 배우고 익히는 어린 아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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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좌) : TIME Magagine Cover, 'The Science of Meditation, Meditation(바와나Bhāvanā; 계발 수행 또는 명상 수행)의 과학'
사진(우상) : 팔정도의 여덟 부분, 정견(正見; 삼마Sammā 딧티Diṭṭhi)·정사(正思 또는 정사유正思惟; 삼마 상깝빠Saṅkappa)·정어(正語; 삼마 와짜Vācā)·정업(正業; 삼마 깜만따Kammanta)·정명(正命; 삼마 아지와Ajīva)·정근(正勤 또는 정정진正精進; 삼마 와야마Vāyāma)·정념(正念; 삼마 사띠Sati)·정정(正定; 삼마 사마디Samādhi)
사진(우하) : 부처님께서는 팔정도의 여덟 부분을 '바와나(Bhāvanā; 계발 수행)'의 관점에서 실라(Morality, 계戒; 정어·정업·정명)•사마디(Concetration, 정定; 정정진·정념·정정)•빤냐(Wisdom, 혜慧; 정견·정사유) 세 그룹으로 그룹핑하시고, 설명의 편의를 위하여 '사마디 바와나'를 사마타, '사마타 후에 하는 깊은 빤냐 바와나'를 위빠사나라고 명칭하셨다. ('실라 바와나'는 실라)
사진(우중) : 부처님께서는 팔정도 바와나(팔정도를 계발하는 수행)를 '여덟 개의 바퀴살로 이루어진 바퀴가 순환하며 구르는 것'에 비유하셨다. 훗날 여덟 개의 바퀴살로 이루어진 법륜(法輪; 법의 바퀴)은 불교(佛敎; 부처님 가르침)의 상징(symbol)이 되었다
마치 여덟 개의 바퀴살로 이루어진 바퀴가 '순환'하며 구르듯이 실라('계戒; 정어·정업·정명' 바와나)-사마타('정定; 정정진·정념·정정' 바와나)-위빠사나(사마타 후에 하는 깊은 '혜慧; 정견·정사유' 바와나)를 연기(조건에 따른 상호 의존) 방식으로 반복 '순환'해서 바르게 실천함으로써 팔정도의 여덟 부분(정견, 정사유, 정어, 정업, 정명, 정정진, 정념, 정정)을 계발(열고 발전향상)하여
결국에는 정각을 증득함과 함께 팔정도 전체와 바른 지혜(반야/빤냐; 실상과 진리를 '있는 그대로' 바르게 아는 바른 지혜)와 바른 사랑(자비/멧따-까루나; '나我'를 초월한 분별 집착 없는 지혜로운 바른 사랑)을 완성하고, 완전한 자유(해탈; 모든 번뇌, 괴로움, 苦로부터의 완전한 해방, 모든 속박으로부터의 완전한 자유)와 완전한 평화와 완전한 행복(열반)의 경지(상태)에 도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