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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DDHISM/無心님의 불교이야기

사마타-위빠사나 수행법의 두 가지 측면


사마타-위빠사나 수행법의 두 가지 측면


수행(修行)은 몸과 마음의 '행(行)을 닦음(修)'이라는 뜻이다. 수행(修行)은 '경작하다, 계발(열고 발전향상)하다'라는 뜻을 지닌, 부처님께서 사용하신 고대인도어 '바와나(bhāvanā)'를 한문으로 번역한 것이다. 

우리에게는 수행이라는 말이 매우 익숙하니 '바와나'는 '계발 수행', '팔정도 바와나'는 '팔정도를 계발하는 수행' 정도로 옮기면 그 의미가 유사하다.

부처님께서는 팔정도를 '바와나(계발 수행)'의 관점에서 계(戒, 실라; 정어·정업·정명)•정(定, 사마디/삼매/선정; 정정진·정념·정정)•혜(慧, 빤냐/반야/지혜; 정견·정사유) 세 그룹으로 그룹핑하시고, 

설법(법을 설명)하실 때의 편의를 위하여 '사마디(삼매/정定/선정) 바와나(계발 수행)'를 사마타, '사마타 후에 하는 깊은 빤냐(반야/혜慧/통찰지혜) 바와나(계발 수행)'를 위빠사나라고 명칭하셨다. ('실라 바와나'는 실라)

팔정도 바와나(실라-사마타-위빠사나) 중에서 사마타(선정)-위빠사나(통찰) 수행법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첫째는 사마타로 계발된 극대화된 고요집중의 사띠(알아차림) 능력을 사용하여 마음의 의식(일상의식/표면의식) 층과 무의식(잠재의식/심층의식) 층 사이의 장벽을 깨뜨리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은 무의식(잠재의식/심층의식)이 의식(일상의식/표면의식)보다 훨씬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비유하자면 의식(일상의식/표면의식)은 빙산의 수면 위 부분이고 무의식(잠재의식/심층의식)은 빙산의 수면 아래 부분이다. 의식은 빙산의 일각(한 조각 작은 일부분)에 불과하다.

예컨대, 의식이 “배고프다 밥 먹자”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 의식은 몸을 이끌고 밥상 앞에 앉는다. 그러나 그 이후의 밥 먹는 과정에서 의식은 더 이상 큰 역할을 하지 않는다. 의식이 간여하지 않더라도 무의식이 알아서 숟가락을 잡고, 밥을 뜨고, 입에 넣고, 씹고, 삼키고, 위와 소장과 대장을 움직이고, 소화액을 분비하고, 음식물을 소화시켜서 온 몸 구석 구석에 영양분을 공급한다. 

밥 먹는 과정뿐만 아니라 걷고, 뛰고, 서고, 앉고, 눕고, 잠자고, 숨쉬는 과정 등등 일상생활의 모든 과정에 의식과 무의식은 절묘하게 상호작용하며 인간이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한다

보통, 일상의 의식(일상의식/표면의식)은 무의식(잠재의식/심층의식)에서 경험되어지고 있는 것들을 하나도 모른다. 이 모름(무지, 무명)에 숨겨져서, 상카라(업業 형성 작용; 어리석은 마음의 습관적 반응 또는 작용, 아상/에고심의 습관적 작용; 습관적 탐진치 작용; 行)들은 무의식(심층의식)의 차원에서 계속 일어나고 증식되고 있다. 그리고 그것들이 의식(표면의식) 층에 도달하게 될 때는 대부분 너무 강하게 증식(증폭)되어서 마음을 쉽게 압도해버린다. 

이 사마타-위빠사나 수행법으로 마음 전체(의식+무의식)는 깨어 있게 되고(의식적이 되고) 그럼으로써 무명(무지)과 상카라들은 제거되는 것이다.

무의식은, 사마타(선정/삼매 계발 수행)로 계발된 극대화된 고요집중의 사띠(알아차림) 능력을 사용하여 우리가 적극적으로 통찰(깊이 관찰; 위빠사나)함으로써 의식으로 전환(의식화) 시킬 수 있다. 깨달음(마음의 각성)이란 달리 말하면 무의식의 의식화를 일컫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과정이 생략되면 무의식(잠재의식/심층의식)에서 일어나고 증식되는 탐진치가 소멸되지 않기 때문에(달리 말하면 무의식/잠재의식/심층의식이 바뀌지 않기 때문에) 어떤 수행으로 큰 깨달음을 얻었다(소위 대오각성했다)는 사람도 앎과 행동이 따로 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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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타-위빠사나 수행법의 두 번째 측면은 우리 삶의 모든 과정에서 경험하는 몸과 마음의 모든 감각(물질적, 정신적 감각)에 대하여 평정심(우빽카upekkha)을 계발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사마타-위빠사나 수행을 통해서 우리가 삶에서 경험하는 모든 것, 몸과 마음의 모든 감각에 깨어있다. 우리는 감각에 갈망(탐)이나 혐오(진)로 반응하거나 집착하지 않고 갈망이나 혐오의 새로운 매듭들을 맺지 않으며, 그래서 스스로 고통을 만들지도 않는다.

이렇게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자신의 완전한 해탈(완전한 깨달음)을 향해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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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정도 바와나의 사마타-위빠사나를 바르게 실천하는 바른 수행자가 할 일은, 바른 선정/삼매 계발 수행으로 극대화된 고요집중의 사띠 능력을 계발하여 거친 것(의식/일상의식/표면의식)에서부터 점점 더 미세한 것(무의식/잠재의식/심층의식/아뢰야식/바왕가)까지 보다 깊이 관찰(통찰)하여 아는 것이다.

팔정도 바와나(팔정도를 계발하는 수행)를 바르게 실천하여 완성하면 마음(의식+무의식) 속에 탐진치가 완전히 소멸되면서 텅 빈 하늘 같은, 깊고 넓은 바다 같은 불성(佛性; 깨달은 자/부처佛의 성품性; 무량한 자비희사의 마음)이 드러난다. 

달리 말하면, 무량한 자비(멧따-까루나; '나我'를 초월한 분별 집착 없는 지혜로운 바른 사랑)와 반야(빤냐; 존재의 실상과 진리를 '있는 그대로' 바르게 아는 바른 지혜)가 드러나면서 무한한 자유(해탈)와 평화(우빽카)와 완전한 행복(닙바나/니르바나; 열반)의 경지(상태)에 도달한다.

어떤 이는 말하길, 수행의 마지막 점검 단계가 시장 바닥으로 나왔을 때도 마음(깨달은 마음; 자비희사의 마음, 지혜와 자비의 마음)이 여여한가(흔들리지 않는가)를 점검하는 것이라고 한다. 즉 거친 경계(환경과 관계) 속에서도 깨달은 마음(자비희사의 마음, 지혜와 자비의 마음)이 흔들리는지 아닌지를 스스로 점검하고 확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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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글은 부처님께서 지식차원에서 설(설명)하신 사마타-위빠사나 수행법과 관련된 가르침(설법; 법을 설명함)을 오늘날의 지식과 용어를 사용하여 옮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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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존재가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正法)을 따라
지혜(존재의 실상과 진리를 '있는 그대로' 바르게 아는 바른 지혜)와
자비('나'를 초월한 분별 집착 없는 지혜로운 바른 사랑) 속에서
진정 자유롭고 평화롭고 행복하기를...

May all beings
following the Buddha's samma dhamma
within the Panna & Metta
really be liberated.. be peaceful.. be hap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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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Post Script) : 

우리는 자신의 마음(정신작용; '수상행식' 작용 무더기)을 거친(일상의식/표면의식) 수준에서부터 미세한(무의식/잠재의식/심층의식/아뢰야식/바왕가) 수준에 이르기까지 스스로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정신작용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과정에서 거친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그 과정을 의식할 수 있게 되고 탐진치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사마타-위빠사나 기술(art; intellectual fine skill)을 통해서 우리는 느끼고, 지각하고, 생각하고, 인식하고, 행동하는 모든 과정을 깊고 상세하게 살펴볼 수 있다. 우리는 우리의 몸(물질작용 무더기, 사대작용 무더기; 물질세계)과 마음(정신작용 무더기, 수상행식 작용 무더기; 정신세계)에 같은 기술을 배워 익힐 수 있다.

마음(정신작용)의 고요집중의 사띠(알아차림) 능력을 계발하면 뇌가 자극되고 중요한 신경 연결통로가 새롭게 만들어져 깊고 바른 관찰 능력이 활성화되고 향상된다.

자신의 마음(의식+무의식)을 두려워하지 말고 호기심을 품고 존중하며 '있는 그대로' 깊이 들여다 볼 때 위대한 변화가 발생한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있는 그대로' 통찰(깊이 관찰)하여 의식 속으로 불러들이면 거기서 본질적인 변화가 시작된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바르게 관찰하여 의식 속으로 불러들이면 널 뛰는 생각과 감정을 무시하지 않고 진정 시킬 수 있다. 생각과 감정이 내면에서 일으키는 날카로운 소리에 겁먹지 않고 지혜의 음성을 들을 수 있게 된다.

자신의 몸과 마음 그리고 자신과 타인에 대한 바른 관찰의 통합이 이루어질 때 우리는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면서 진정으로 소통하는 마음의 문을 저절로 활짝 열게 된다.

자신의 내면(몸과 마음)을 '있는 그대로' 정견(바르게 관찰/통찰)-정사유(바르게 분석 사유)하여 '직접 경험'으로 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타인(모든 생명)과 세상(우주자연)을 '있는 그대로' 바르게 이해하는 첫 걸음이 된다.


"진리(法)를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자신의 내면(몸과 마음)을 들여다보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정견(바르게 관찰)하는 것이다." 

- 부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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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로만 이해해서 아는 것과 자신의 내면(몸과 마음)을 직접 관찰하여 직접 경험으로 아는 것은 천지 차이다. 진리(法)를 직접 경험하면 모든 의문과 의구심(의심과 두려운 마음)이 사라진다. 생각으로는 상상은 할 수 있어도 자신이 실제로 자유롭고 평화롭고 행복지지는 않는다. 자신이 실제로 지혜롭고 자비로운 사람이 되지는 않는다.

진리(法; 담마, 다르마)를 직접 경험하면 모든 것이 달라진다. 
자기 자신도 그리고 타인과 세상에 대한 인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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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르게 관찰하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르게 알 수 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르게 알면 
타인과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르게 알 수 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르게 알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르게 사랑할 수 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르게 알고 바르게 사랑하면

타인과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르게 알고 바르게 사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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